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79화 (79/200)

79화 중소가… 간보기?!

그날 저녁은 NK와의 거래 이후로 야근이었다.

“자~ 먹고 합시다!”

구내식당 음식도 나쁘지 않았지만, 진욱이 직접 요청해서 야근을 하는 거니 좀 더 비싼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장어랑 소고기 도시락 인원 맞춰 가져왔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로타 MD와 같이 나간 김 부장을 제외하고, 영업팀이 모여 한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김 부장 대신 밑에 직원들을 통솔하는 이는 표영훈 차장이라고, 이 사람 역시도 사료업계 대기업 유통 납품을 맡다가 이정열 이사의 추천으로 스카웃된 인물이었다.

전형적인 중간관리자의 모습으로, 계약을 진행할 때 판세를 읽으면서 밑에 직원들에게 신뢰가 두터운 사람이라 대립야당이라 부르는 재무팀 이 이사의 추천에도 진욱이 상당히 잘 쓰고 있는 인재였다.

영업팀은 진욱이 건네준 도시락을 먹었고, 진욱 역시도 민물장어 한 점을 집어먹어 보니, 간부들 야근 식사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든 밥 잘 주는 회사가 최고야.’

진욱도 공무원 사회에 오래 있었고, 다른 공기업이나 국제기구 파견 등을 갔었을 때 느꼈던건 야근 때 당장 주는 거에 따라서 직원 사기가 다르단 걸 당연하게 느꼈다.

당장에 사무실에서 까만 비닐봉지에 20초 겨우 데운 삼각김밥에 컵라면, 캔 커피 하나 들고 와서 먹는 것보다 도시락 정식 시켜 줘서 먹이면 나중에라도 이건 기억하게 될 거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직원들이 담배 타임을 가지고 있을 때, 표 차장은 진욱의 옆에서 자료를 준비했다.

“차장님도 좀 쉬고 오세요.”

“전 담배 안 태웁니다.”

“그렇다고 안 나가시면, 나중에 다른 직원들이 눈치 보고 안 나가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럴 땐 쉬러 나가는 김에 올 때 자판기에서 뭐 하나 뽑아오라면 알아서 쉬고 와요.”

그걸 노하우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 남아 있겠다고 하니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계약을 위해 준비했다.

“본부장님, 지금 김 부장 온다고 합니다.”

“술 많이 먹었으면 들어가 쉬라고 하세요.”

“네? 그래도 로타 이야기는…….”

“그건 내일 아침 회의로 들으면 됩니다. 술 반쯤 먹고 들어와서 이런저런 썰 풀어야 혀만 꼬이죠.”

“하지만……”

“괜찮아요. 내일 듣도록 하겠습니다. 아, 차장님. 잠깐 옆방 비품 창고에서 화이트 보드 새거 좀 가져다 주실수 있나요?”

“아, 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나이차는 삼촌뻘이었지만, 여긴 엄연한 회사.

표 차장은 바로 나가 비품창고에서 화이트 보드를 챙겼다.

하지만 그가 물품을 챙길 때 진욱을 떠올리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러시면 안 될 텐데…….”

지금의 상황을 두고서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한마디였다.

* * *

영업팀의 야근은 로타부터 NK, 그리고 앞으로 올 유통사 납품을 위해 수수료와 계약 내용을 하나로 합쳐 파일로 정리하고 있었다.

엑셀을 잘 다루는 젊은 직원들이 계속 서로 자료를 돌려가면서 내용을 합치며 확인하고 있었고, 원본은 바로 인트라넷에, 그러면서 출력본은 파일로 만들어 내일 아침 사장님 책상 위에 올릴 것이다.

“내일 스케줄은 제가 나설 거니까, 오늘 서류 정리만 끝나면 바로 퇴근할 수 있습니다.”

진욱이 그렇게 말하면서 다른 직원들에 비해 여러 개를 준비하며 계속 멀티로 움직이고 있었다.

표 차장이 건네준 화이트 보드에 뭔가를 계속 마카로 적고 있었고, 그러면서 한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고, 남들 하나 할 때 여러 일을 하면서 본부장 자리는 단순 수저로 딴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본부장님, 지금 자료 보냈습니다.”

“음~ 네.”

진욱은 바로 파일을 확인했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리스트를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피식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정리하시죠.”

그래도 아직 대중교통 탈 수 있는 10시 안에는 끝낼 수 있어서 남은 직원들이 안도하며 일어났다.

* * *

다음 날

아침에 임원 회의를 마친 진욱은 바로 영업부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자, 간단하게 끝냅시다. 간단하게!”

회의는 짧을수록 좋다는 지론으로 간부들을 부른 뒤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해 말했다.

“어제 NK와의 협상 이후로, 오늘은 우체국홈쇼핑하고, 농협 하나마트입니다.”

“둘 다 납품 수수료는 적은 편이나, 거기에 따른 물량도 적습니다.”

어제 로타 접대 이후로 숙취가 가득한 얼굴인 김 부장은 어제 야근했던 자료들을 전부 검토하고는 바로 말했다.

“로타와의 계약은 금요일 날 끝내실 겁니까?”

“네, 그쪽에 의사가 있다면요.”

“어제 NK와 바로 우선협상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독점도 아니고 조건이 좋아서 우선적으로 보낸 거죠.”

그때 표 차장과 김 부장은 석연찮은 얼굴을 잠시 보였다.

진욱 역시도 그것을 빨리 캐치하면서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지만, 일단 전권을 잡은 것은 자신이니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의 협상에 대해 움직이기로 하며, 차분하게 대화를 하는 동안 갑작스럽게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다.

* * *

“…네. 네. 아이고 아닙니다. 박 차장님이 오해하신 겁니다! 저희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김 부장은 전화를 받으면서 연신 쩔쩔매고 있었다.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연신 상대방을 향해 송구하다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그걸 과연 휴대폰 너머의 상대가 보고 있을 줄은 모르겠다.

밖에 나와서 연신 사과를 하는 김 부장의 뒤로 진욱이 일하다가 슬며시 나와 그 통화를 지켜봤다.

처음에는 금방 끝날 것 같았던 통화는 10분이고 15분이고 계속 진행됐고, 김 부장은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네, 알겠습니다. 저희가 바로 계약하겠습니다. 네~ 문제없을 겁니다. 제가 하 상무에게 확실히 알릴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끝내는 통화까지도 쩔쩔매면서 겨우 끝낸 김 부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거 시발 것, 더럽게 쫑코 주네.”

욕지거리 한번 시원하게 한 김 부장의 뒤로 진욱이 다가왔다.

“욕봤습니다.”

“어억?! 본부장님!”

김 부장이 화들짝 놀랐을 때, 그는 시원한 콜라 한 캔을 건네줬고, 휴게실에서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박 차장 뿔났어요?”

“로타 자체가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그쪽에서 이미 NK와 거래한 걸 아나 봅니다.”

그래서 어제 진욱과도 대화를 하고 김 부장에게 거하게 술 한잔 받아먹은 박 차장은 헐크가 되어서 아성사료에 대한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했다고 한다.

욕받이는 전부 김 부장이 해 줬고, 스트레스 때문에 10년은 더 늙은 것 같은 그를 향해 진욱은 고생했다면서 위로했다.

“어쩔 수 없죠. 한정된 수량 내에서 우리 수익이 더 좋아야 하니까.”

“본부장님, 저… 주제넘은 말일수도 있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십시오. 부장님 아닙니까?”

진욱은 나이로는 한참 어리니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손짓했고, 김 부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유통업에서 로타한테 찍히면 진짜 답 없습니다.”

“으음, 그래요?”

“그쪽에서는 그동안 계약 논의를 안 하다가, 이번에 아성사료의 제품을 가지고 백화점/대형마트/홈쇼핑에 대한 제안을 했는데, 사인 안 하고 NK와 먼저 거래했다고 감정 상한 상태입니다.”

대기업이 확실히 정보력이 좋았다.

아성하고 NK의 거래인데, 그걸 하루 만에 바로 로타가 알아서 바로 아성사료에 연락을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오더를 내리고, 직접 계약서에 싸인까지 한 진욱 역시 그 리스크는 이미 계산에 둔 상태였다.

“로타가 좀 서운해도 어쩔수 없죠. 지금 우체국에, 농협에, 현기에 신누리까지 밀린 사람 많습니다?”

“하지만, 본부장님! 저희 아성이…….”

“우리!”

“…죄송합니다 ‘우리 아성사료’가 지금 성장세가 좋은 상태긴 하지만, 이렇게 로타하고 거리를 두면 납품 매출의 증가는 어느 순간 멈추게 됩니다.”

국내 최대 유통회사를 제칠 수 있는 간덩이가 부은 중소기업이 있다?

그 제친 회사가 아성사료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에 로타뿐만 아니라 그 산하의 수많은 계열사 눈에도 아성사료는 아웃이었다.

감히 중소기업 따리가 납품을 두고 대기업 MD를 물을 먹이냐면서 별의별 갑질이 다 나올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 대기업 내 PB상품이나 대체상품 계약으로 아성사료 완전히 아웃 오브 안중으로 만들고, 덤핑 공세를 벌여서 기존의 영업망도 다 뺏길 수 있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조져 버리는 방법은 한두 개도 아니고 100개는 넘으니 말이다.

“이게 말이죠. 결국은 로타하고 이런 기싸움 한 번은 했어야 했어요.”

“네?”

“그게 지금일 뿐입니다.”

대기업 로타와의 기싸움이라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싶어서 바라보는 김 부장에게 진욱은 피식 웃으며 콜라 캔을 땄다.

“아직까지도 사료시장에서 로타가 주력으로 미는 업체들은 전부 다국적 기업의 수입 상품입니다.”

“아, 네. 보수적인 경영으로 검증된 브랜드 위주로 쓰는 로타이다 보니…….”

“세 번입니다. 강아지 옷, 습식 사료, 동결건조 간식까지 납품 요청을 했는데 개무시하고 씹어 버린 게 세 번이라고요.”

로타는 국내 유통 1위 업체다운 콧대로 아성사료 같은 곳은 신경도 안 썼고, 그 자리에서 독점 납품을 하던 업체가 한국 레슬리, 카이저 사료, 그리고… 아성사료에게 있어서는 철천지 원수 중의 원수.

“한국 마쓰모토가 우리 회사 제품들 교묘하게 베껴 납품하는데 꼴에 우수 납품사라고 수수료 깎아 주고 아주 꿀을 빨게 해 줬죠.”

그것도 27.1% 정도였지만, 이번에 아성에게 제안한 오프라인 유통시장에 납품수수료 28.5% 생각하면 거의 최대치로 땡긴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마쓰모토가 아니어도 저 수수료는 횡포였다.

“지금 로타하고 바로 계약해 봤자, 대기업 납품 타이틀 빼고 우리가 재미 볼 게 있습니까? 0.1% 수수료 차이로 한 해 매출하고 수익이 날뛰는데 최대치를 뽑아먹으려고 하잖아요.”

“네, 그건 압니다만… 차라리 그렇다면 NK하고도 유보를 한 다음에 그쪽에 슬쩍 흘리는 방향도 나을 것 같았습니다.”

김 부장도 상황은 알아서 좋게좋게 끝낼 수 있는 대안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욱은 그 말을 듣자 바로 콜라를 마시며 말했다.

“그랬다간 NK가 간보냐면서 접었을 겁니다. 그쪽 입장에서는 부장급 MD 보내서 그 자리에 바로 계약서 도장 찍려고 별별 조건을 다 걸었는데 말이죠.”

“후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재협상 가능하겠습니까?”

“네~ 해야죠. 정 안 되면 제가 직접 나설 겁니다.”

진욱의 이번 움직임은 이전과 달리 ‘대기업 납품!’, ‘신제품의 홍보!’ 그것으로 끝날 게 아니었다.

납품하더라도 얼마에 계약할 것인지, 앞으로 신제품이 나올때도 ‘아성사료’의 이름을 고객들에게 똑똑히 알려서 위상을 올릴 계획이었다.

“어차피 그쪽이 완전 빡친 거도 아니에요. 지금은 뭐랄까… ‘어, 이놈 봐라?’ 수준일걸요?”

“그 정도로 끝난다면 좋겠습니다만…….”

“조금 튕겨도 이번 주까지 계약은 다 끝내죠. 저를 믿어 주시면 됩니다. 책임도 제가 져요.”

진욱은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향후 다른 대기업 유통업체들과의 협상에서 일방적인 을질을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실한 의사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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