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78화 (78/200)

78화 무수한 계약 제안 세례

아성사료가 미국과 캐나다 수출을 먼저 뚫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 어떤 제품이라고 해도 일단 미국에서 성공하면, 다른 나라의 수출 논의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최근 중소기업들이 수출에 부담스러워했던 바이어 문제, 해운업 수수료 등에 대해서 진욱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해결한 게 신의 한 수였다.

그 이후로 새 공장과 본사 이전을 한 다음 진욱은 분주하게 회사를 위해 움직였다.

“오늘자 공무서류입니다.”

“네~ 사인했어요.”

인트라넷으로 도착한 생산 라인에 대한 내용을 확인한 다음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진욱이 출력하고, 바로 파일철에 담아 대표이사실로 가져갔다.

이제는 독립적인 사장실을 만들어 그 안에서 업무를 하던 상만은 진욱이 가져온 서류를 보고서 만년필을 꺼내 능숙하게 사인했다.

상만은 서류를 건네주고는 잠깐 기다리라면서 비서실에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요새 회사 일할 분위기 나지?”

“저야, 뭐 언제나 즐기고 있죠.”

“하하하, 그래. 맞는 말이다!”

이제는 아성사료를 두고 더 이상 좋소라고 하는 알못은 없어졌다.

아직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중견기업 심사 기간이지만, 이미 아성사료를 중소 그 이상으로 여기며 협력회사들도 거기에 맞게 대우해 줬다.

게다가 지금 사장실을 장식하는 진열장의 수많은 국가 표창과 트로피들을 보고 있으면 누가봐도 흐뭇해할 만했다.

“하 상무, 이번에 또 바쁘게 좀 움직여야겠어.”

“뭔가요? 어디서 또 중요 입찰이 올라왔나요?”

“그건 나오는 대로 바로 보내 줄 거고, 이거 좀 봐라.”

상만이 내민 자료는 대형 유통업체에 관련된 계약 건이었다.

“어이구, 많기도 해라.”

현기백화점그룹, 현기홈쇼핑, 로타유통, 신누리유통 등등 수많은 대형 유통업체가 아성사료 납품을 위해 움직였다.

“전부 공식적으로 MD 파견한다고 한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는데, 신누리랑 대화 빼고는 저흴 너무 듣보 취급했었어요!”

진욱은 싱글벙글하면서 아버지가 이 서류들을 자신에게 준 것에 대해 눈치챘다.

“협상 전부 제가 하라는 말이죠?”

“되겠어? 인원은 지난번 영입한 사람들로 되겠어?”

“네, 안 그래도 영업팀에 괜찮은 사람들 많이 들어왔더라고요.”

“네가 원하는 대로 고용해 줬으니까.”

진욱은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규모로 임직원을 채용했다.

특히 그가 이사에 영업총괄 본부장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아서 영업팀에 관련된 인물을 경력직 간부와 신입 직원으로 나뉘어 채용했고, 제법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지역인재 할당, 수도권 대학교들에 취업 설명회, 중견/대기업 시니어 간부 경력직 고용. 할 건 다 했지.’

진욱은 그것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제부터는 진짜 그 역할에 맡는 일을 시켜야 해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영업 관련은 영업팀에게, 재무 관련은 재무팀에게, 자재 관련은 자재팀에게요. 여기로 오면서 제가 임원 회의에 몇 번 이야기드렸지만, 계약 건 하나 잡았다고 다른 팀 직원들까지 우루르 와서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이는 건 이제 지양해야죠.”

“어, 그래. 다른 팀 추가 인원 필요없단 말로 들으면 되지?”

“네. 앞으로는 진짜 회사의 중대사만 있을 때만 TF팀을 만들고 그 외에는 각자 할 일 하라고 하면 됩니다.”

“좋아! 알았다. 그럼 잘해 봐! 본부장!”

“네, 아주 감사히 맡겠습니다.”

진욱이 아버지에게 약속을 받자 상만은 엄지를 올리면서 퇴근 준비를 했다.

“나는 주말에 골프 약속이 몇 개 있어. 상록시장하고 김 의원이 한번 치자더만.”

“여당하고 친하게 지내는 건 나쁘지 않죠. 뭐, 그리고…….”

“음?”

“정권 바뀌면 그때 여당하고도 친하면 무난하게 갈 겁니다.”

진욱은 자신의 지론이지만, 아버지에게도 미리 일러 둬 앞으로 기업이 성장할 때마다 정치권과의 이야기는 당에 상관없이 ‘친여당 정책’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상만이야 지금은 가벼운 골프 자리지만, 나중에는 어떤 로비가 나올지 모르니 그 말을 유념해 두기로 했다.

* * *

“저희가 너무 늦게 만난 게 아닌가 모르겠군요.”

“원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 아닙니까? 그래도 저희와 계약을 위해 이렇게 와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해 주니 부끄럽네요!”

맨 처음으로 아성사료를 찾아온 것은 로타유통의 반려동물사업부 MD 박원기 차장이었다.

사실 진욱은 다른 대형유통업체와의 계약 속에서도 로타의 연락을 받았을 때 엄청나게 뿜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이전부터 아성사료가 수제 간식이다, 안심 캔사료다 하면서 신제품을 내놓을 때도 시큰둥하면서 납품에 대해 신경을 안 썼다.

오히려 얍살하게 비슷한 디자인으로 미투 상품을 만들어서 계열사 PB로 몰아주거나, 다른 수입 업체들의 제품을 우선순위로 해서 아성을 듣보 취급하면서 아이디어만 빼먹는 놈들이었다.

‘대기업 거래 중에서 제일 드러운 케이스지.’

진욱은 협상 자리만 아니었어도, 그때의 일을 꺼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마음의 편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일단 내용을 들어 보기로 했다.

“뭐, 서로 빙빙 돌릴 것도 없죠. 저희가 늦은 만큼 잘해 드리겠습니다.”

“잘해 주신다는 것은 마케팅 푸쉬나 계약에 대해 얼마나 해 주신다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

진욱의 지금 질문은 기업의 체급차를 생각하면 상당히 무례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국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통 공룡이 직접 제품을 자사 유통회사에 납품해 준다고 하는데, 그쪽 조건에 대해 선제안을 요청한 거니 말이다.

하지만 박 차장은 헛기침을 하면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일단 로타마트와 로타아울렛 내에서 반려동물 코너 파트를 만들고, 거기서 아성사료가 납품을 해 주는 겁니다.”

“네, 그렇군요.”

“특히 여름을 앞두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기획전이 있는데 그때 확실히 프로모션을 드리겠습니다.”

“흐음, 네. 알겠습니다. 저희가 바로 임원 회의에 올리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 바로 계약이 아니고요?”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은 얼굴로 바라보는 박 차장.

하지만, 진욱은 미리 이야기해 둔대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가 공장 세 곳을 가동하고 있는데, 로타유통에 납품할 수량 문제에 대해서도 조율을 해야 하고, 지금 주신 계약서에 있는 물량을 한 번에 소화가 가능한지 몰라 생산팀과 논의를 해 봐야 합니다.”

“하, 하… 그래요? 그런 건 보통 OEM 주지 않나?”

“저희가 이번에 품질 경영을 위해서 재하청 업체를 정하지 않고 있어 확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계약은 하고 싶은데, 물량이 후달려서 확답 못 드리겠네요~.’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로타 측 MD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연락달라고 하고 일단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진욱은 그런 박 차장을 달래기 위해 슬슬 긁어 줬다.

“그래도 저희가 물량 확보가 되는 순간에는 꼭 로타와 우선 협상을 하겠습니다.”

“네, 그럼 이번 주 내에 연락을 주세요. 그 정도면 충분하겠죠?”

지금이 화요일인데, 금요일까지 연락을 달라는 말에 진욱은 웃으면서 그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공장 시찰을 한번 해 보려는 박 차장을 기다리게 하고 영업팀에 있는 김학용 부장을 불렀다.

“부장님이 로타마트 쪽에서 일하셨다고 하셨죠?”

“네, 정확히는 거기 계열사 중 하나였습니다만.”

“지금 온 MD 좀 잘 대해 주세요. 이거 제 법인 카드인데…….”

진욱은 바로 법카를 꺼내서 김 부장에게 건네주고는 속삭였다.

“상식적인 선에서 저 사람 서운하지 않게 해 주세요. 금요일까지 시간 끌었으니 구워삶아야 될 겁니다.”

“아, 네! 무슨 일인지 잘 알겠습니다.”

50대 초반에 이번 경력직 스카우팅으로 데려온 김 부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유통업체 납품 거래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었다.

특히 대놓고 자신은 ‘아는 사람 많아서 기름칠을 잘한다.’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었으니 어디 그 실력 한번 볼 셈이었다.

그렇게 로타 쪽 MD를 김 부장을 보내 잘 모시라고 한 다음 바로 영업팀 사무실에 들어온 진욱이 다음 스케줄에 대해 물었다.

“오늘 4시에 오는 게 NK프라자죠?”

“네, 지금 상록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시간 맞춰 오겠다고 합니다.”

사실 로타와의 협상을 두고 시간을 끈 것은 또 다른 대형유통업체의 참가 때문이었다.

NK프라자는 대기업 나경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마트와 슈퍼마켓 없이 면세점과 백화점 전문으로 움직이는 회사였다.

규모는 백화점 업계 순위에서 4~5위 정도였고, 로타에 비교하면 같은 대기업이라도 급이 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조건이 워낙 파격적이었다.

‘미친 거지. 수수료 25% 계약이라니.’

진욱이 처음 백화점 거래를 했던 행복백화점 만큼은 아니어도 대화 갤럭시아나 신누리 백화점에 비하면 엄청난 파격가였다.

보통 백화점의 판매수수료는 평균 28% 정도이고, 그중에서도 3대장이라 불리는 로타-신누리-현기는 0.1% 단위로 미묘하게 올려 대서 중소기업들이 수수료에 등골 빠진다고 호소할 정도였다.

그런데 NK프라자가 이번에 지점을 대규모로 늘리면서 파격적인 25% 판매수수료를 약속하자 다른 대형 유통업체 말고서 그들의 협상을 서둘렀다.

로타도 로타지만, 질보다 양으로 팔기에 이만한 조건이 없었다.

진욱은 지금 밖에서 로타유통의 MD와 같이 대화를 나누는 김 부장을 보고서 다음 거래처 상대를 위한 PPT를 준비했다.

* * *

오후 4시에 딱 맞춰 온 NK프라자의 MD는 40대의 커리어 우먼이었다.

“가공식품사업부의 이향주라고 합니다.”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장님.”

이향주 MD는 NK 내에서 부장까지 올라온 인물이었고, 보통 유통업에서 여자가 부장급까지 올라갈 정도라면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아는 진욱은 천천히 협상을 시작했다.

“이번에 NK의 조건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바로 협상하고 싶습니다. 제가 사장님 대신 전권을 받아서 협상에 올라왔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저희도 하진욱 상무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아성사료 사장님 자제분이시라니까 문제도 없겠네요.”

“하하하-.”

이 부장은 로타의 박 차장과 같이 일단 미팅을 잡은 다음 바로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처음 제안부터 판매수수료 25%. 거기에 부장급 인사가 직접 왔고, 계약서까지 꺼내서 사장 아들과 직접 협상하려고 한다.

사실상 여기서 시간 끌거나 간 보는 짓을 하면 바로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회의실에서 같이 이야기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러죠. 혹시 아메리카노 커피 있나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자는 말에 두 남녀는 회의실로 들어갔고, 바로 영업팀 사원이 커피 두 잔을 재빨리 준비했다.

잠시 후.

둘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와 다시 한번 악수했다.

“오늘 계약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오히려 저희가 바로 계약해 준 거에 대해 감사드리죠.”

“하하, 아닙니다.”

“아, 그런데 말이죠. 아까 한 말 진짜 맞죠?”

“아, 네!”

“흐으음~?”

이 부장은 다른 것도 중요했지만, 현재 납품 물량에 대해 로타의 협상을 잠시 유보하고서 NK와 먼저 협상했다는 말에 만족한 얼굴이었다.

진욱 역시도 백화점에서 가장 싼 수수료로 계약을 한 다음 앞으로 이걸 가지고 다른 업체와 협상을 할 수 있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늘 2건의 제안 말고도 다른 유통업체들 역시 전화 세례가 계속 날아왔고, 모든 것은 진욱이 하나하나 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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