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치트키의 파트너
진욱은 차 시동을 걸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피식 웃었다.
“맞는 거 같네.”
본사에 연락하고 바로 계약을 위해서 변호사 대동하고, 수출 대행 계약서 준비하고, 중개무역에 대한 에이전트 계약서까지 할 게 많았다.
진욱이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중안무역은 지난 삶에서 친구가 말해 줬던 그 사례와 아주 일치했다.
‘수도권은 한복판에 떡하니 있지만, 지방은 아직도 공단 외곽에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있다.’
“그거 맞고…….”
‘분명 허름해 보이고, 직원도 몇 없어 보이는데 실적은 우수하다. 하지만 그게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 분식회계 하는 유령회사하고 다를 바 없지만… 그건 나도 확인하고, 본사에서 사람 와서 검토해 보면 된다.”
거기에만 잘 통과된다면, 이번 파트너는 확실하게 중안무역이 될 것이다.
호텔에 돌아온 진욱은 일단 아버지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믿을 만하겠어?]
“이제부터 검토해야죠. 팩스로 서류 보내고 위에서 검토해 주세요. 그리고 확인하시려면 몇 분 보내 주세요.”
[알았어. 아주 세밀히 면밀히 살펴보마!]
상만은 어지간해선 아들의 제안을 모두 들어줬지만, 이번 건에 대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서류 검토에 대한 통화를 마친 다음 진욱은 부산에 있는 KOTRA(대한무역공사)에 방문하여 무역업 거래를 앞두고 몇 가지 서류를 확인했다.
“기가 막힌 사례가 많구만.”
흔히 중소 업체를 통해서 대규모 수출을 준비하면서 나올 수 있는 사기 사례들을 전부 출력해서 하나하나 확인하는 진욱이었다.
일단 이 계약 자체가 다른 사람이라면 생각하지 못할 아이디어였고,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납득을 해야 통과될 수 있는 건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도 다 알고 있어야지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 * *
얼마 후.
상록시의 아성사료 본사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사장 상만과 재무이사 이정열이 직접 내려와서 중안무역 김 사장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계약서에 싸인하러 왔다.
“이게… 전부입니까?”
“하하하, 조금 영세하지요?”
김 사장은 협소한 공간의 회사 건물에 대해 멋쩍게 웃었고, 이정열 이사는 안경은 연신 고쳐 쓰면서 ‘진짜 믿을 만한가?’ 하는 식으로 그동안의 거래 내역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대한라텍스 수출 거래도 하셨군요?”
“예, 라텍스 용품을 미국에 수출한 건입니다.”
“HHC의 거래에 대해 좀 알고 싶은데요?”
“아, 여기 관련 서류 있습니다.”
“이 건에 대한 서류도요.”
“아, 그거요? 준비하겠습니다.”
차분하게 하나하나 꺼내서 관련 서류를 건네주자 그것을 상세히 검토하는 이 이사를 보니 과거 대기업 감사팀에 있었다는 게 허명은 아닌 것 같았다.
반면 상만은 서류 검토는 이 이사에게 맡기고 다른 것에 대해 물었다.
“그동안 회사 운영하시면서 힘드셨겠습니다? 이 인원으로 회사가 굴러가요?”
“저희는 소수정예로 나가는 방식입니다. 특히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 온 간부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김 사장이 손을 들었다.
“아줌마, 여기 커피 한 잔 더!”
“저도 한 잔 더 마시지요.”
“두 잔 더!”
상만의 것까지 추가해서 커피 두 잔을 주문하자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중년 부인이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한편 이 거래를 주도한 진욱은 상만의 옆에서 천천히 상황을 지켜봤다.
“저희와 계약을 하면 수출 시장에서 어떻게 진행할지 자세히 좀 듣고 싶네요.”
“네, 저희가 기획안으로 팩스를 보냈지만, 여기 하 상무님께서 우선순위를 북미로 정하셨으니 캐나다와 미국 시장 조사를 먼저 해야겠죠.”
“지금부터 조사요?”
“하하하, 물론 맨땅에 헤딩은 아닙니다. 기존에 유통업 납품 경력이 있고 펫푸드 같은 경우는 FDA만 통과되면 기존 거래처를 통해 중개하려고 합니다.”
김 사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관련 자료에 대해 건네줬다.
“저희가 식품의 경우에는 탈지분유, 통조림, 육포와 어포 수출도 맡았는데, 처음에는 한인 마트를 중심으로 시작해서 움직이려고 합니다. 마침 저희 직원이 캘리포니아 한인 타운에 있고요.”
나쁘지 않은 마케팅이었다.
강아지 사료, 고양이 캔, 물고기 배합 사료 가지고 메이드 인 코리아 마케팅을 쓴다면 일단 현지의 한인 마트 쪽을 공략한다.
한인 마트야 대부분은 미국, 그것도 캘리포니아에 편중된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역에 없는게 아니니 일단은 소규모 상가를 중심으로 깔았다가 점점 입소문 마케팅을 통해 들어간다는 방식이었다.
“검토 끝나면 현지에 나가 있는 직원에 대한 내용증명도 바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초면에 사람을 경계하던 김 사장은 프로 상사맨이 되어서 아성사료 임원들에 대해 모든 것을 공개했고, 이제야 회사 대 회사 거래다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현미경으로 꼼꼼이 들여보고 나서 상만이나 이 이사 모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회사 조금 영세해 보이긴 해도 거래할 만한 회사 같다.’
‘수수료도 대기업 종합상사의 절반 이하이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만 잘 진행된다면 제법 괜찮은 시장 진출을 할 수 있다.’
둘도 설득해서 양 사가 계약서에 사인한 순간 진욱은 이제 본격적인 수출 진행이라면서 안도했다.
* * *
한편 중안무역 내에서는 김 사장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참나, 이제는 사람 쓰는 것도 아니고 개밥을 다 가지고 거래한다?”
[어차피 저희는 뭐든지 다 팔아야 하는 입장 아닙니까?]
“아, 알지~ 너랑 나랑 이 사업 15년을 했는데 그걸 모르겠냐?”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일단 우리 찾아와서 거래하자는 회사인데, A급으로 잘해 주죠? 이야기 들어보니 뭐 어려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 내가 아주 진짜 상사맨으로 거듭나나 보다!”
통화를 마친 김 사장은 담배 몇 대를 태우다가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돌렸다.
* * *
중안무역이 착실하게 북미 수출을 진행하는 동안 아성사료는 연달아 겹경사가 터졌다.
쨍그랑-
짝짝짝짝짝-
아성사료 제 2공장이자, 기존 공장의 규모를 아득히 뛰어넘는 규모에 최신식으로 지은 건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돼지머리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야 하는데, 진욱이 세련되게 하자면서 배 진수식 때 하는 것처럼 막걸리와 돼지머리 고사 대신 샴페인 병을 공장 입구에 던져서 깨트리는 걸로 축사를 대신했다.
상만 역시도 새로운 아성사료 본사를 보고 감회가 새로운지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전직 지방 공기업 회사. 하지만 IMF와 동업자의 뒤통수, 그리고 기술의 부재 등으로 하청이나 받아먹는 영세 공장으로 전락.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바뀌었다.
달라진 아들이 모든 것을 변하게 했고, 공장에 수많은 정부 지원, 지자체와의 거래, 히트 상품의 개발, 농수산부와 환경부 장관 표창, 코스닥 상장, 그리고 중소기업 졸업을 이제 앞두고 있다.
새 건물 안에 들어왔을 때, 은색의 광이 올라온 새 기계들, 그리고 수제 작업실과 연구실 모두 최신형 장비를 들인 시스템이었다.
“어떠냐? 기깔나게 만들었지?”
이 공장을 짓는데 자신의 회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큰아버지 상규.
그러면서 축하 화환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렸다.
“원래보다 설계안이 계속 바뀌어서 혼났어.”
“그래도 규모가 점점 커지다 보니 그렇죠.”
“그래도 만들어 놓은 거 보니 나도 속이 다 후련하다!”
진욱이 금방 다 지을 수 있다던 공장은 아성사료의 규모가 커질수록 계속 주변부지를 인수해서 원래에는 없었던 연구실, 작업실 증축, 창고 증설 등으로 계속 새 공사가 바뀌어서 시간이 꽤 걸렸다.
제일식품, 소셜커머스 업체 몬스터티켓, 대화리조트, 농협사료, 상록시청, 경기도지사, 상록시 국회의원 새한국당 XXX 등 각각의 화환들이 길을 장식했다.
“이제부터 여기 출근인가?”
진미는 자신이 쓸 연구소를 보면서 원하는 장비를 다 들여온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이거, 이거 내가 원하는 대로 배치해 달라는 대로 됐고.”
큰누나 진미가 손으로 가리킬 때마다 약지에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번득였다.
결혼 이후 양가에서 말하고, 결국 아성사료 현장에서 일하게 된 진미, 물론 학업도 계속할 수 있게 돼서 상록시 내에 있는 전문대학에 ‘펫푸드 제조학과’가 신설되어 한 달에 일정 기간 겸임교수도 맡게 됐다.
“나도 이사 준비 때문에 바빠.”
둘째 누나 진영 역시도 싱글벙글한 얼굴로 같이 공장을 둘러봤다.
“서울 절대 안 벗어날 거라면서, 결국은 오기로 했어?”
“꽁짜로 받을 수 있는 사무실인데 당연히 가야지!”
진영은 그러면서 남동생 진욱을 향해 품 안에서 케이스 하나를 건네줬다.
“뭐야?”
“선물, 너 하도 양복 입고 다니길래 넥타이핀 하나 샀어.”
열어 보니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고급 명품 브랜드의 넥타이핀이 영롱한 자태를 드러냈다.
“진짜 너 덕분에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재미 좀 봤어.”
“하하하…….”
유학부터 개인사업까지 등골브레이커라 불렸던 철부지 둘째 누나는 진욱의 조언을 그대로 수용해 이제는 애견 의류 업계에서 확실하게 이름을 알린 큰손이 되었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 협찬으로 브랜드 가치가 계속 상승하고, 그러면서 연예인들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고 아주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빚 다 갚으니 속이 다 후련하더라.”
“창업지원금 다 갚았으니 남은 건 전부 누나 꺼지.”
“그러니까 말이야~ 꺄하하하!”
그날 저녁은 큰집과 진욱의 집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정말로 가족 같은 회사에, 아성이란 이름으로 기업집단이 된 일종의 축제였다.
* * *
“네, 네~ 알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통화를 끝낸 상만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만세를 불렀다.
“7백만 불 수출탑 시상 준비한다!”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거봐요! 그 회사 완전 대박이라니까!”
그렇게 수상했던 무역회사는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게 잘해 줬다.
그들이 말했던 한인 마트에서 시작하는 마케팅은 입소문을 타고, 특히 애완동물을 동일한 가족으로 여기며 끔찍하게 사랑하는 미국, 캐나다인의 감성에 아성사료의 수제 간식은 매우 좋은 카드였다.
덕분에 중소기업 업체가 일정 금액 이상 수출을 하면, 신청해서 받을 수 있는 황금의 트로피 ‘수출의 탑’을 아성사료가 받게 됐다.
원래는 100만 불 탑부터 시작해서 300만 불 탑, 500백만 불 탑, 그리고 700만 불의 탑이 있는데, 올해 아성사료는 700만 불 탑을 수령하게 됐다.
이 이상 넘어가면 천만 불대 탑과, 억 불대 탑 수상이 있는데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진욱은 자신감 있게 진행할 것이다.
그날 또 한 번 상만은 법카를 돌려서 전 직원 회식을 시켜 줬고, 진욱은 이번에도 잘 안 마시는 술을 분위기상 아버지와 같이 마시게 됐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나 진짜 거기 사짜인줄 알았다.”
“어디, 중안무역이요?”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그런 신통한 놈들을 다 알아 왔냐? 진짜 대기업 상사맨들보다 더한 거 같더라.”
삼정이나 대화 같은 대기업 종합상사보다 월등히 가성비가 좋은 그 기업에 대해 상만이 묻자 진욱은 조용히 아버지를 밖으로 불렀다.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이는 아버지에게 진욱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 아니지 아직도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말하죠.”
“음? 뭔데?”
“중안무역 사장이 알고 보니 국가관료 출신이었어요.”
“뭐? 그 코딱지만 한 회사가?”
“네~ 수출입 쪽에 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놈들이 와이로 좀 칠 줄 아나 보다.”
딱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었다.
상만은 그 말만 듣고 그러려니 하면서 하면서 넘어갔다.
그리고 진욱은 그때의 거래를 되짚으면서 피식 웃었다.
‘원’으로 시작하는 전직 국가공무원의 무역회사.
한국에서 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부서는 많았다.
금감원, 감사원, 그리고…….
국정원.
그쪽 사람들 은퇴하면 보안 문제 때문에 특정 직급 아니면 민간 취업도 힘들고, 생계유지는 현직에 있는 동료들의 후원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과거의 경험을 살려 무역업체나 통번역, 혹은 행정업무 해결 등을 사무소에서 하는데 진욱이 건드린 게 흔히 말하는 전 직원 출신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회사였다.
‘고맙다 친구야. 네가 지금 삶에서도 그 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삶의 동기에게 들었던 이 고급 정보는 이번의 삶에서 엄청난 치트키가 되어서 진욱에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