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태풍의 눈 아성사료
진욱은 다시 한번 호남 출장을 향했다.
전남대로 향해 사돈 어른의 지원을 받고 농업생명대 안의 ‘전남대 생명환경연구소’에게 PPT 발표, 그리고 광주에서 무안으로 전남도청과의 협약까지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수로 가서 대화 아쿠아리움에 대한 희귀,관상어 사료 및 소형 포유류 사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아성사료와의 거래 담당인 김선호 차장을 넘어서 사육사들과 영업부 직원들이 모여서 진욱의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했다.
“이상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질문 받겠습니다.”
그러자 바로 손을 드는 인물이 있었다.
확실히 대기업 상대로 돈과 관련된 계약을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파고드는 법이다.
“네, 질문해 주세요.”
“현재 사육팀을 맡고 있는 김대한 팀장입니다. 저희가 원한 것은 기존 수입산 사료에 대한 MOU인데, 아예 새 개발을 하겠다는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거기에 따른 기간을 우리가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까?”
진욱은 첫 질문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답했다.
“아닙니다. 현재 저희 아성사료는 영업팀에서 요청한 관상어와 소형 포유류 사료에 대해서 미국 레슬리 사의 사료를 OEM으로 생산해 납품하는 것으로 이미 대화와의 거래를 마쳤습니다.”
“그럼 이건 따로 검토해야 된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OEM이 아닌 완전 국산화를 위한 발표입니다.”
“흐음.”
친환경, 국산, 대기업 상생, 국가 지원.
말은 쉬운데 그것을 아성사료라는 이제 거래 튼 지 얼마 안 된 중소기업, 그것도 사장도 아닌 그 아들이 와서 발표하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하는 인물도 많았다.
물론 지금 발표하는 진욱이 ‘대화리조트 애견호텔부터 갤럭시아 사료 납품까지 한 청년사업가’라는 것을 아는 임직원들도 있지만,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이쪽 사람들 눈에는 이제부터 거래하는 사람이다.
당장에 아직 대학교 졸업도 안한 20대 초중반의 애송이가 거래처 사장 아들에 이사 직함 달고 와서 ‘대기업-중소기업-공공기관 상생사업 건으로 PPT 봐주세요.’하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아, 이쪽도 질문해도 되나?”
“네, 말씀해 주시죠.”
지긋한 나이에 부장쯤으로 보이는 인물은 진욱을 보고서 하나 물었다.
“이 프로젝트로 전남도청하고 전남대까지 엮였다고 하는데, 그쪽에서 확답받은 상태인가?”
“양해각서 체결했고, 다음 4분기부터 전남도청 농수산식품부에서 지원예산이 합동연구소로 지원이 될 겁니다.”
“어이구, 그 정도로 했으면 능력 좀 있나 보네?”
건들거리는 인상이 진욱을 보고 제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지만, 거기에 대해서 뭐라 제지하는 인물은 없었다.
이후로 진욱은 다른 간부들의 질문에도 조리 있게 대답했고, 프레젠테이션을 모두 마친 후 나올 수 있었다.
“하 팀장.”
“아, 네. 차장님.”
김선호 차장은 오늘 발표 좋았다면서 잠시 밖으로 나가자고 하면서 흡연실로 데려갔다.
“담배 태워요?”
“안 핍니다만, 먼저 피시죠.”
김 차장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다음 천천히 말했다.
“부장님도 그러시고, 위에서 여기 개장 이후로 말이 많아요.”
“네?”
“안 그래도 대화리조트가 환경부 감사를 많이 받아서 돌고래쇼도 취소됐고, 몇몇 종은 희귀 관상어여서 생사료를 줘야 하는데, 그것도 오염이라고 추가 세금 문다고요.”
“으음.”
아직 ESG경영,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에 대한 것이 대중화되는 시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부가 대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환경부 감사, 사회적기업 지원, 지배구조에 대한 세무 조사이기 때문에 저쪽에서 긁어 대면 일단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이번 발표에 대해서 저도 기획안을 올렸는데요. 영~ 시큰둥해요.”
“네, 잘됐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사실 거래하는 대기업들은 아성사료의 편의를 굉장히 잘 봐주고 있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일단 아성사료가 다른 중소기업들처럼 중기청지원이다, 지자체 세금 감면이다, 상생 지원금이다 해서 나랏돈 많이 받아먹는 것도 있지만, 회사 규모에 비해 SNS 마케팅이나 환경부 장관 표창 등 굵직굵직한 일에도 엮여 있어서 인지도가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 아쿠아리움 원장님이 결정하시는 게 중요할 거예요.”
“아, 네.”
사실 지금 오픈한 여수 아쿠아리움 원장이 사실 본사 내에서도 이름 난 임원인데 잠시 내려온 상황이라고 하니 다시 복귀를 위해서 푸쉬해 준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진욱은 일단 레슬리에서 만든 관상어 사료 OEM 건부터 해결하고, 다음 달부터 납품 관련에 대한 계약만 끝을 냈다.
절반의 성과지만 돌아오면서 진욱의 어깨는 가벼웠다.
* * *
“연락 올 거예요.”
“확신할 수 있어?”
“그러게요. 하 이사님. 이번 게 정말 잘될지 모르겠습니다?”
상록시 아성사료 회의실에서 이번에 진욱이 벌려놓은 판이 너무 커서 몇 번의 간부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간부들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하는 상만, 그리고 영 불안해 보이는 이 이사나 유 팀장 등은 진욱의 대답을 기다렸다.
진욱은 그 상황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 일에 대한 자신감을 비췄다.
“일단 판은 벌렸고, 연락은 차례대로 올 겁니다.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질 거예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한번 들어보자.”
상만이 진욱에게 말하자 그는 또 가방을 열어서 자료를 꺼냈다.
각각 [사료협회 협회장 투표건], [전남대-전남도청-아성사료 친환경 사료 연구개발건], [대화리조트-아성사료 관상어,희귀동물 사료 국산개발건.]을 모두 꺼내고 팜플렛으로 만든 것을 간부들에게 돌렸다.
상만은 그것을 보면서 언제 또 이런걸 준비했냐고 펼쳐 봤는데, 그 안에는 엄청난 내용들이 적혀 있어서 상만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처음부터 보인 게 인물관계도였는데, 현재 사료협회 협회장 투표로 나오고 진욱이 우겨서 아성사료가 지원하기로 한 임동호 이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임동호 이사의 옆에는 여수 아쿠아리움 관장 겸 대화리조트 상무인 황현우 수족관장에 대한 내용이었다.
“두 분이 천안대화고 동기이면서 매우 친하시더군요. 사료협회에서 우리 회사 대화 아쿠아리움에 납품 건 이야기한 것도 임 이사가 얘기해 준 거라고 합니다.”
“치야, 이건… 세상에 이 양반 나한테도 안 한 말인데!”
상만은 그 자료를 보고서 둘의 관계를 뒤늦게 알았고, 진욱은 놀랄 건 이제라면서 계속 조직도에 대해 말했다.
“재밌게도 저희가 지난 국산 연어 양식산업 때 배합사료 농림수산식품부에 납품했는데, 그쪽에서도 임 소장과 담당 동해수산연구소 국장하고 또 친분이 있다고 합니다.”
“으으음.”
“이야, 이거 따지고 보면 진짜 짝짜꿍인데요?”
유 팀장 역시도 진욱의 조사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정열 이사는 그것을 보고서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이사님. 그런데… 아무리 공무원하고 대화의 임원 간에서 이렇게 학연, 지연이 엮여 있다고 해도 이 큰 건을 그냥 해결하기에는 좀 무리 아닙니까?”
“네~ 그렇죠?”
진욱은 이 이사가 하는 말에 대해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의욕 있게 이렇게 치고 올라올 때 ‘관제 야당’의 필요성을 생각해서 테니스 토스하듯이 그 다음 자료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건 이번에 농림수산식품부와 환경부가 공동 주관하는 사업입니다.”
“친환경 그린 사업?”
“네, 기존의 생사료 이후로 국립수산과학원하고, 환경부가 저오염 배합사료 건에 대해서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말이 벤처기업의 아이디어지. 사실상 이건 컨소시엄 모으는 겁니다.”
진욱은 이미 그것까지 자료를 준비한 다음 정부 기관에 대해 기획안을 올리면 그쪽에서 냄새 맡고 바로 연락할 것이다.
특히 이 건은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농해수(농림수산식품해양수산) 위원이나,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의 국회의원들도 한번 물어서 자기 이름과 인지도 알릴 건이라 여당이고 야당이고 다 달려들 거다.
“그래서 저희가 할 것은 관련 담당자들에 대한 설득,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계속해서 그들의 동의를 모두 얻어 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할 거 아니냐?”
상만의 말에 진욱은 그 말이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이해관계로 진욱이 엮으려는 존재들에 대해 말했다.
“그럼 하나하나 설명해 보죠. 일단 우리 아성사료. 펫푸드와 펫드레스, 테마카페 사업에 이어서 희귀동물과 관상어 등의 국내개발로 인해서 블루오션 시장 개척입니다.”
성공만 한다면 당분간 아성사료는 국내에서 누가 시도를 못 하고 수입하거나 OEM으로 만드는 시장에서 전국 동물원과 아쿠아리움 시장은 거의 다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대한사료협회입니다. 그쪽은 이미 정회원인 우리 아성사료 덕분에 농수산부에게 지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저희가 밀어주는 후보가 협회장이 된다면… 거래는 계속 이어지고, 사장님도 사료협회 임원 겸직 가능하실 겁니다.”
“예잇-그거 귀찮기만 하지 별로 좋은 것도 없어.”
“이권은 있겠죠.”
“…….”
거기에 대해서는 답변 안 하는 거 보니 역시 협회라는 건 일단 정부 산하에만 있으면 소득이 생긴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 아버지다.
“세 번째로 대화그룹. 여기야 뭐 원가 절감에다가 사회적기업에 신경을 쓰니 이미지 마케팅도 좋죠.”
예전 거기 회장이 술자리에서 폭력 사건을 일으키고, 오너일가의 횡령 및 배임으로 인해서 이미지가 점점 추락하던 대화그룹이었다.
대화그룹은 그 오명을 씻기 위해 정부의 요청으로 여수 국제엑스포 지원도 하고, 그곳에 아쿠아리움과 리조트 관광단지도 만들면서 아성사료 같은 곳에 협력도 하면서 상생 마케팅을 여기저기 언론에 뿌려 댔다.
대기업이 사업으로 돈은 갈퀴로 쓸어담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갈퀴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쓸어담기에는 힘든 법이다.
“마지막으로 전남대. 여기는 이미 국공립대로써 국가 예산을 받으면서 운영하는 사업인데, 이 참에 제안을 하니 통합을 해서 같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대화그룹과 농수산식품부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말이죠.”
진욱은 마지막으로 ‘사장님은 특히 가족 문제로 손잡으면 좋고요.’라고 말하려다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결국 공통점이 없고, 손을 잡을 일도 없었던 곳들이 아성사료를 통해서 한데 묶여 컨소시엄이 된다.
각각 차기 협회장, 정부의 행정, 사회적 기업 이미지, 지방 국공립대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 그리고 신사업에 대한 돈.
이 모든 것이 엮여서 아성사료가 움직이게 된다.
“물론 이게 그냥 저만의 기획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제가 발로 뛰면서 앞으로 충분히 엮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진욱은 팜플렛을 하나하나 보면서 원한다면 정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준비한 아들을 보고서 상만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해보자.”
“감사합니다.”
그렇게 아성사료의 모든 임직원들이 모여서 각각의 팀을 만들었고, 내일부터 특별경영에 대한 대책으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사장님, 전화입니다.”
“어디서?”
“과천정부청사라고 합니다.”
“……!?”
경리 직원의 말을 들은 상만은 회의실에서 바로 나와 전화를 받았고, 10분 동안 ‘예’, ‘아닙니다’라는 단어와 ‘감사합니다’라는 단어가 연신 반복되는 것에 진욱은 흥미를 가지고 들어봤다.
그리고 통화가 끝났을 때, 상만은 주변을 둘러보며 긴 숨을 내쉬다가 진욱을 보고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귀신 같은 녀석…….”
“어딘데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좀 보잔다! 그 친환경 그린인지 뭔지 해서 다른 부처하고 업무 추진한다고!”
진욱은 그 말을 듣고서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역시 정부기관은 한번 눈에 들면 계속 써먹어 주는 감이 있는 걸 지난 삶부터 알고 있던 지식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