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그저 사업하는 사람
도시개발 팀장의 연락을 받고 온 이 자리.
오자마자 한산한 외곽의 가게에서 도착하자마자 마중을 나온 검은 정장의 사내들.
그리고 안내를 받고서 들어오니 인상이 상당히 날카로운 지역 사업가.
딱 봐도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조폭이겠지. 이름이 창수라고 하니, 창근이파하고 상관이 있는 건가?’
수배중인 창근이파의 두목 이름이 양창근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형제일 수도 있을거다.
진욱은 일단 테이블에 굽고 있는 고기를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소개를 드려야겠군요. 저희 CK건설은 이곳 원주에서 시작해서 관광개발 공사를 시작한 회사입니다.”
“네, 그렇죠. 치악산 케이블카 공사부터, 원주미술관 건립 공사 등 전부 시공을 했습니다.”
차 팀장이 거들면서 이야기를 할 때, 명함을 확인하면서 CK건설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아는 게 없었다.
지역 내에서 이런 건설사가 한두 개가 아닐 테고, 도시개발공사와 짝짜꿍하는 사이라면, 합리적인 의심이 가득했다.
“현재 원주시하고, 아성사료가 같이 인수를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제안할 것은 공동 투자를 하면서 동물원의 낡은 시설을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거요.”
“아~ 공사를 그쪽에서 말입니까?”
“그래요. 이미 드림월드를 많이 가 보셨겠지만, 거기 단전과 단수 이상으로 노후화가 심해요.”
“네, 저도 봐서 알고 있습니다.”
진욱은 그 말을 하면서 넌지시 소주를 한잔 비우면서 말했다.
“원래 있던 회사가 기업사냥꾼 깡패들한테 점거당한 이후로 먹튀해서 그렇게 된 거라죠?”
“……!?”
진욱의 말에 순간 흠칫한 양 사장.
그러면서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일단은 원주시에서 협상하기로 한 기존의 인원 문제부터 생각해봐야 하죠. 따지고 보면 지금의 방치된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육사분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습니까?”
다른 회사라면 몰라도, 동물원이라면 전문 사육사와 수의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드림월드는 몇 달째 월급이 체불된 상태에서도 끝까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에 원주시 개입으로 인해서 일부 월급이라도 받기는 했다고 하지만, 잘못하면 전부 굶어 죽을 판이었다.
“일단, 지금은 원주시가 인수하는 방향으로 잡혔고, 옛 회사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양 사장은 창근이파에 관한 이야기에 선을 긋고, 계획을 말했다.
“이미 지난 회사와 그 조직은 사라지고, 저희가 나서서 건설 현장을 맡는다면, 강원도 유이의 동물원인 드림월드를 제대로 재건시킬 수 있을 겁니다.”
“네~.”
진욱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감고도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창근이파가 맞다면 딱 시나리오 돌아가네?’
먼저 기존의 드림월드를 인수한 창근이파는 조직폭력배 논란에, 횡령 문제로 인해서 수사가 들어갔다.
그래서 원래였다면 조직의 두목이자 드림월드 소유주인 양창근이 도피하고, 그사이에 붕 떠 버린 드림월드는 겨우 숨통만 붙어 있는 상태.
거기에서 방치된 동물들이 죽어 나가는 게 언론을 탔으니 각종 시민단체가 시위하면서 반 강제에 가깝게 원주시에게 떠밀었고, 그것을 인수하려는 큰손이 나타났을 때, 은근슬쩍 창근이파가 새 회사를 설립하고, 양지로 올라와서 공사와 개발 이권을 잡을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래 왔다는 것처럼 말이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일단 승부수를 띄웠다.
“사실 강원도는 저희 아성사료가 연어사육 사업으로 인해서 국가적으로 납품을 한 곳입니다. 그리고 당시에 지자체 분들도 많이 만났군요.”
“예~ 그래서 이번 계약 같이 하실 건가요?”
좀 더 승낙을 재촉하는 양 사장을 보고서 진욱은 한 가지를 말했다.
“일단 저희도 법무팀이 따로 있으니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원주시와의 협상은 계속할 것이니 이 계장님을 통해서 관광팀과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아이고~ 더 끌 거 뭐 있어요? 나도 그쪽 출신인데, 죄다 아는 사이요! 어떻게 내가 오늘 관광팀 과장도 불러올까?”
“그 형님은 나도 잘 아는 분인데, 오면 좋죠. 하 이사 생각은 어떤데요?”
내친김에 원주시 관광팀 사무관까지 불러주겠다는 차 팀장과 그분과 잘 아는 사이라고 자신하는 양 사장.
차 팀장이 진욱의 선택을 이 자리에서 끝내자는 식으로 말했다.
그때 진욱은 조용히 시계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협상이라는 건 역시 밝은 대낮에 술 없는 자리에서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요.”
“하~ 젊은 양반이 꼼꼼하시네?”
양 사장이 조용히 손을 들자 차 팀장도 그 이상 파고 들었다가는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면서 물러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가게 안에 새로운 손님이 왔다.
30대 중후반의 두 남성이 왔을 때, 양복입은 남성들은 잔뜩 그들을 경계했다.
그리고 진욱은 놀랐다는 눈치를 하며 슬쩍 일어났다.
“어?!”
“왜 그래요?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자연스럽게 문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간 진욱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선배님!”
“응?”
두 일행 중 한 명은 진욱을 보고서 눈썹이 움직였다.
“접니다. 08학번 하진욱이요.”
“아, 아~ 그래! 진욱이구나!”
“선배님을 여기서 뵙네요?”
선배라고 한 인물은 서울대 사학과 출신의 선배, 김철환.
그는 사학과 출신이면서 행시를 패스한 인물이었고, 진욱에게는 동문회 때 안 이름인데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상만이 학과의 이름으로 후원을 했을 때 연락처를 교환했었다.
그리고 진욱이 이곳에 오기 전 은근슬쩍 연락을 했었다.
그 이유는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강원지방경찰청이었기 때문이다.
“인사해. 여기는 우리 후배 하진욱. 그리고 이쪽은 내 친구.”
“이유철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배님.”
강원청 팀장급 인사가 다가왔을 때, 차 팀장은 물론이고, 양 사장 역시도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천천히 드세요. 저희도 자리 끝나면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진욱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와 둘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친한 선배를 만나게 됐네요?”
“저 사람… 제가 알기로는 이번에 새로 온 강원청 간부로 알고 있는데.”
“양 사장님이 우리 선배 아세요?”
“으, 으음. 뭐… 지역에서 사업하다 보면 제일 친해지는 게 경찰이랑 소방이랑 도청 사람들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찔리는 게 있는지 계속 힐끗거리던 양 사장은 먼저 일어났고, 거기에 따라 신기하게도 주변에 있던 양복 입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차 팀장 역시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면서 자리를 파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에 확정되면 연락드리지요.”
“네~.”
“그래도 좋은 제안이니 생각 잘해 주세요. CK 저기. 관광단지 개발로 알짜 건설사입니다. 시공도 우수하고요.”
“알겠습니다. 신중히 고려하지요.”
진욱은 차 팀장도 돌려 보낸 뒤로 개운해진 얼굴을 하며 휴대폰에 녹취록을 저장했다.
“여기서 건져 낼 건… 창근이파 이야기하고, 원주시에서 양 사장이란 사람의 인맥 정도인가?”
진욱은 언젠간 쓸 일이 있을거라 생각하며 그 내용이 담긴 휴대폰을 주머니에 담았다.
* * *
“우리가 그렇게 친하진 않은데, 어떻게 다 불렀어? 그것도 춘천에서 여기까지 와 달라고.”
“하하하, 그래도 동문인데 여기 왔으면 연락은 드려야죠. 게다가 이번에 저희가 드림월드 인수 건이 있어서요.”
“아~ 맞아. 그거 너희 회사가 한다고 했지?”
김철환 경정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거기가 조폭이 끼어 있던 회사라서 수사 자료가 많이 있긴 한데.”
“아까 저랑 있다가 나간 사람은요?”
“음? 그 양복쟁이들? 건달이었냐?”
아직 경찰보다는 펜대 공무원에 가까운 철환의 모습에, 진욱은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경찰청 간부로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창근이파 조직원들에 대해 유착이 없으니까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을 거다.
“무슨 이야기인가 했더니만, 치악산에 그 동물원 얘기구나.”
“아, 네.”
“그렇지 않아도 그거 지역하고 조폭 낀 사업이라고 말이 많더구만. 우리 의원님이 그거 잡는다고 벼르고 있고.”
“의원이요……?”
“아, 아까 명함 안봤어? 이 녀석 여기 의원 보조관이야.”
“……!”
철환의 소개로 만난 또 다른 서울대 선배의 정체는 바로 원주시 갑의 김대선 의원의 보좌관이라고 한다.
강원도의 정치는 참으로 재미난 게 도 내의 도지사와 시장은 모두 야당인 우리민주당 사람들이 꽉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역구는 또 달라서 갑/을로 선거구가 나뉜 원주시 갑,을에는 모두 여당인 새한국당이 의석을 차지했다.
진욱은 오히려 이건 기회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두 선배님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뭐야, 이거 청탁이냐?”
철환이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안 그래도 여기까지 와 줄 정도라면, 도와줄 것이다.
게다가 고시 준비하는 인문대학 동문들 재단 지원도 해 줬던 집안인데 한번쯤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경찰청 있는 내가 동물원 일을 뭘 도와달라고?”
“에, 선배님하고, 보좌관 선배님에게도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진욱은 거기에 대고 다시 한번 혀가 돌아갔다.
* * *
얼마 후.
드림월드 내에서 갑자기 소송이 걸렸다.
횡령 이후 일부러 부도 처리를 시켰던 창근이파가 파산무효신청을 한 것이었다.
[김남우(44):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항간에는 전 사장님이 조직폭력배 문제로 인해서 소송이 걸렸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분의 문제입니다. 아직도 소유권은 저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그러면서 원주시청과 협의를 해 밀린 전기세와 수도세를 일부 대납하고, 사육사들의 월급 역시도 일부 지불을 하여 시립동물원화 되려는 계획을 망치려 든 것이었다.
“하 이사님.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이러면 알박기 들어가는 건데… 하아.”
차 팀장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창근이파가 뒷배에 있을 드림월드의 원래 주인을 두고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법적으로 효과가 없다고요?”
“파산처리 과정에 있던 채무자와 협상이 되고 있고, 파산무효 소송을 하면 저희가 인수할 수 없게 돼요. 그러면 아성사료는 저희가 아니라 드림월드와 같이 협상을 해야 될 겁니다.”
“채권압류무효 소송이 그렇게 얼치기로 진행될 리가 없는데…….”
진욱은 소식을 듣고서 빠르게 움직인다는 상황에 뺨을 긁적였다.
“CK 건설은 어떻게 되는거죠?”
“아~ 그쪽 또한 따로 드림월드와 협상을 한다는 거죠. 게다가 그쪽에서 새 스폰을 잡았나 봐요.”
“거기가 어딥니까?”
“관광공사… 후우, 완전 텄어요.”
그림이 딱 그려졌다.
진욱이 원주시청과 원주도시공사 쪽으로 협상을 하려고 했을 때, 창근이파는 지역 공무원들에게 정보를 듣고서 한탕 하기 위해서 간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아성사료가 시나리오대로 원주시와 함께 공동인수를 하고, 운영권을 받는다면 거기에 슬쩍 숟가락을 올리고서 개발 이권을 노렸을 것이다.
아마 그쪽에서는 합법적인 법인으로 나왔다가 내부에서 조폭 짓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고, 아성사료를 호구로 보고 등쳐 먹을 생각인 것 같았지만, 진욱이 간파하자 다른 수를 낸 것이다.
명목상 드림월드 대표였던 창근이파 두목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법적으로 채권회생 절차를 벌이면서 알박기에 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원주시청은 빠지고, 한국관광공사 강원지사가 지원을 해 줘서 그쪽과 같이 개발한다.
어차피 가장 큰 돈은 지자체건 공공기관 중 하나가 투입하고 거기에 대한 떡고물은 아성사료가 가지냐, 창근이파가 가지냐였다.
진욱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피식 웃으면서 다음 수를 준비했다.
“그럼 원주시와는 여기까지인 거 같군요.”
“네? 아니 하 이사 잠깐만! 내가 다시 한번 협상해 본다니까? 어디까지나 우리 계획은 동물원 시립화에 운영권을 댁들이 5년간 가지는거 아니었어?”
“네, 그렇죠. 근데…….”
진욱은 조폭과 더럽게 엮여 있는 동물원 인수를 두고서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건 드림월드는 아성사료 소유로 들어가는 것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