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미술관 옆 동물원
“뭐? 동물원 인수?”
“네, 한번 진행해 보려고요.”
“아이고, 상만아. 네 아들은 어째 갈수록 스케일이 커진다?”
상규는 밤중에 진욱과 상만이 찾아와서 일단 차는 내왔는데, 동물원을 인수하는 금액이 필요하다는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형님 아들만 하겠습니까? 이번에 700억대 융자 진행한다면서요?”
“부산 항만 쪽에 뭐 크레인 설치하는 중공업 회사라는데, 제법 돈이 될 것 같더라고.”
그래서 진성이 부산에 인수한 저축은행인 아성저축은행 부산지점 융자 담당으로 출장을 간 상태였다.
상만은 찻잔을 들고 휘휘 돌리면서 진욱에게 물었다.
“동물원을 어떻게 운영하려고?”
“부도로 지자체에 넘어간다고 하는데, 그걸 공동투자해서 운영권을 받을 겁니다.”
“걔들이 인수한대?”
“치악산에 있는 동물원인데, 지금 원주시하고 강원도청에서 인수 논의를 한다고 합니다.”
“잠깐, 어디?!”
상규는 ‘치악산에 있는 동물원’이라는 말에 흠칫하면서 진욱에게 되물었다.
“원주에 있는 동물원이요. 이름이…….”
“드림월드?”
“아, 큰아버지도 아시는 곳입니까?”
그 순간 상규는 말도 꺼내기 싫다면서 고개를 돌려 손사래를 쳤다.
“어우-거긴 손대는 게 아니다. 먹으려고 했다가 탈나.”
“네?”
“그거 순 깡패 새끼들 돈세탁용으로 남긴 거야.”
“……!!”
진욱은 큰아버지 상규를 통해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 * *
아성그룹이 만들어지기 전에, 사료 공장을 하는 아버지와 달리 큰아버지 역시도 따로 사업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부동산과 건설업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지역 건달들하고 개발 문제로 충돌이 잦았고, 몇 번의 법정 소송 끝에 더러워서 안 한다며 레미콘 회사와 건설사를 팔아 버리고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나 운용했었다.
그리고 지금 원주 드림월드를 인수했던 업체는 그때 큰아버지와 싸웠던 ‘창근이파’라고 한다.
경기도 동부와 강원권 일대에 거점을 잡고서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과 알박기를 하던 놈들에게 언제나 시달렸다고 한다.
“후우~ 네 계획이 나쁘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안 되겠다.”
“…….”
“엮이지 않는 게 좋아. 칼침 맞아 뒈지기 싫으면.”
아버지와 큰아버지 모두 이번 건에 대해서는 진욱에게 계획을 취소하라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진욱은 오히려 조폭이 끼어 있다는 말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거기가 건달들이 점거한 상태라고요?”
“그렇다니까?”
“오히려 잘됐네요.”
“뭐?!”
조폭이 낀 사업체라는데 오히려 잘됐다고 말하는 진욱.
상만은 혹시나 이 녀석이 지금 돈 잘 벌린다고 ‘조폭하고 껴서 사업을 하려고 하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200억 정도 투자해서 경영권을 가지려고 했는데, 그 절반만 있어도 되겠습니다.”
“뭐?!”
“큰아버지께서 이번 융자를 허락 안 해 주시면 그냥 제 개인 계좌로 따로 융자를 받죠.”
“하~ 이놈보게?”
당돌하게 말하는 진욱을 보고서 상규는 이 철부지 녀석이 어디까지 움직일지 한번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그와 반대로 아버지 상만은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진욱은 이미 결정했다.
“너 그러다 잘못하면 뒈져.”
“아뇨. 죽는 건 그놈들이겠죠.”
진욱은 자신만만하게 동물원 인수 건에 대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 * *
기껏 복학했지만, 자체 휴강을 하면서 원주로 달려간 진욱.
그리고는 인근에서 숙소를 잡아놓고 이제부터 차근차근 움직이기로 했다.
진욱이 먼저 만난 것은 원주시의 고위공무원들이었다.
“원주시시설관리공단의 차민혁이라고 합니다.”
관광지팀 팀장이라는 차민혁은 50대 중반에 배가 나온 전형적인 아저씨상의 인물이었다.
“관광개발과의 이은희입니다.”
이은희 계장은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아주머니였는데, 치악산 관광지 개발에 대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차 팀장님과 이 계장님에게 먼저 이야기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뭐지요?”
“지난번에 원주 드림월드에 사료값 기증했던 게 접니다.”
“…아! 그때 그 익명의 기부자 분이… 하 이사님이셨습니까?”
“네에~.”
진욱은 질질 끌 거 없이 여기다가 바로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현재 원주 드림월드가 막대한 적자로 파산된 상태이고, 원주시가 일부 차압을 한 상태라고 했는데, 시립공원화를 같이 추진하고 싶습니다.”
“드림월드 그 동물원을… 시립화로요?”
턱을 어루만지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두눈은 전혀 모른다는 투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쩐주를 찾고 있으면서 빼기는…….’
지방직 공무원들이 애물단지가 된 회사 차압했다가 새 투자자 받아서 넘기는 거야 많이 봐 왔었다.
특히 지방의 소도시의 경우 그 일대의 유지들과 외부 자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 지자체 공무원들의 역할이기도 했다.
“시의회 내에서도 이야기가 나왔고, 시장님이 검토해 보라고 하셨습니다만…….”
“아무래도 예산이 문제입니다. 저희 시가 그렇게까지 재원 마련이 힘들어서요.”
인구 30만의 시의 예산안이면 한 1조 원 정도는 될 것이다.
그 속에서 600억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문화예술 공무원들의 소리.
만약 이게 동물원이 아니라 어디 병원 짓거나, 건물 올리고, 도로공사에 관련된 거였다면 600억이 아니라 6천억이라도 배팅을 할 게 지자체 공무원들이다.
“거기에 대해서 제가 한번 제안서를 만들어 봤습니다.”
진욱은 아타셰 케이스에서 직접 만든 운영안에 대해 원주시설관리공단과 원주시 관광개발과에 한 부씩 돌렸다.
“흐으음.”
알기 쉽게 읽히는 기획안을 보고서 진욱은 세 번째 운영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직접 설명했다.
“원주시에서 치악산 개발을 위해서 케이블카 사업과 미술관 사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공교롭게도 현재의 드림월드 근처이고요.”
“그, 그렇기는 합니다.”
“원주시가 인수한다면, 저희 역시 공동출자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흐으음.”
“운영권은 5년, 그 이후 재무제표를 확인한 다음에 저희에게 계속 맡기실지, 아니면 타 업체에 매각하실지는 결정하면 됩니다. 아! 물론 우선협상권은 저희에게 제공해 주셔야겠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적자투성이에 조폭이 엮여 있어 이미지가 최악으로 떨어진 동물원을 시민단체 등쌀에 밀려 원주시가 인수하지만, 거기에 대한 운영권을 아성사료가 가지고 매출을 시와 분배하는 것이다.
거기에 생기는 적자는 아성사료가 맡을 것이고, 그들이 운영을 잘한다면 진욱의 말대로 더 큰돈으로 매각을 하거나, 아예 공단 산하에 둬서 지방 공기업으로 운영할수도 있었다.
원래였으면 그런 운영은 지방자치단체 내에서도 ‘인구 100만 이상’에 ‘분구가 된 지역’만 가능했지만, 한 가지 조커가 있었다.
바로 강원도는 ‘타 단체와 다르게 인구 50만 이상 선에서 특례시 승격 논의가 이뤄진다.’
물론 이것도 강원도를 키워 주기 위해 시범적으로 운영하려고 하다가, 결국 전 지역의 특례시 기준을 50만으로 조정해서 같은 출발선이 되지만, 그건 한참 뒤의 일이다.
현재 원주는 강원도 내에서도 인구 1의 도시라 상당한 특혜를 받고 있으며, 혁신도시 유치로 인해 적십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의 알짜 공공기관이 입주하고, 지금이야 앓는 소리를 해도 시 예산 운영은 비슷한 규모의 도시 중에서도 탑티어였다.
“그럼 아성사료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투자를 하실 생각입니까?”
“1/5까지는 됩니다.”
“그럼 100억은 넘는다는 말이군요.”
제법 구미가 당기는 건이었다.
원주시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예산으로 통째로 삼킬 리스크를 줄이고, 운영까지도 그들이 흑자전환을 위해 알아서 움직여 줄 테니 말이다.
“추가로 드림월드 일대의 관광 부지 역시도 저희가 직접 투자를 해서 개발을 하겠습니다.”
“어머, 개발까지요?”
이 계장의 눈이 순간 반짝였고, 차 팀장은 확실히 이 건을 위에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온간 감언이설로 장밋빛 미래란 미래는 죄다 말해서 두 고위공무원들을 홀리게 한 진욱은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언제든 연락을 받으면 움직이겠습니다.”
“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벌써부터 부탁한다는 말의 차 팀장의 이야기를 듣자 일단은 잘 풀릴 것 같았다.
이 계장 역시도 위에 알리겠다면서 인사를 했고, 두 고위공무원들을 떠나 보낸 이후로 진욱은 바로 밖으로 나왔다.
둘이 떠나는 것을 확인한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차에 올라탔다.
“원주시 밑밥은 뿌렸고…….”
진욱은 그 상황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네비게이션에 어딘가를 찍었다.
“어디보자. 여기서 지금 출발하면 60km 정도란 말이지?”
시간을 보면 아직 여유는 있는데, 한번 밟아 보기로 했다.
* * *
얼마 후 진욱은 저녁에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아이고, 하 이사! 통화 가능해요?]
차 팀장이었다.
원주시청이 아니라 시설공단에서 먼저 온 연락이었고, 진욱은 숙소 안에서 옷을 갖춰 입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네, 쉬고 있는데 무슨 일이시죠.”
[하 이사! 이번에 시설공단하고 그 드림월드 인수 문제요. 그거 저녁 먹으면서 얘기 좀 해 봅시다! 어떻게, 나올 수 있겠어요? 원주에 숙소 차렸다면서요?]
“흐음, 네. 알겠습니다. 나가지요.”
[아이고 고마워요. 그럼 여기가 어딘지 내 바로 문자로 주소 보낼게요!]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는 피식 웃었다.
“냄새를 맡았나 본데?”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두 염두에 둔 다음 전화를 여기저기에 돌렸다.
그리고 친구 인맥 쪽에 이 일대에 계신 분이 있다길래 넌지시 전화를 걸었다.
원주에 위치한 한 소고기 정식집.
공무원들이 부르기에는 꽤나 가격이 세 보이는 곳인데, 차 팀장은 이곳으로 진욱을 불렀다.
진욱이 들어오자 안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오십시오. 하진욱 이사님 되십니까?”
“그런데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보이지만, 어딘가 모를 살기에 눈매가 날카로운 둘이었다.
‘창근이파겠지.’
진욱은 이미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졌다.
자신이 ‘100억 이상의 금액을 투자해서 시와 같이 공동 인수를 하자.’라는 말을 뿌리면 이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고위공무원들의 귀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지역 사업가들에게 알릴 것이고, 그러다보면 실소유주이자 두목은 도피한 상태라는 창근이파가 떡밥을 물 것이다.
진욱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서 전화를 기다렸고, 역시 평범한 공무원 아주머니로 보였던 이 계장과 다르게 차 팀장 쪽에서 이야기를 가졌다.
“일단 소개부터 하지. 여기는 아성사료의 하진욱 이사.”
“안녕하세요. 하진욱이라고 합니다.”
“양창수라고 하오. 나 여기 원주내에서 조그맣게 건설업 하고 있소.”
다부진 체격에 구렛나룻에 흰머리가 약간 있는 인물은 한눈에 봐도 ‘나 좀 거친 사업하는 사람이오.’ 라고 얼굴에 쓰여 있었다.
진욱은 그를 보면서 미소를 짓고 앉았다.
“다름이 아니라 아성사료가 드림월드 인수하는 거 있잖아. 이쪽도 거기 개발을 위해서 같이 투자를 한다고 하는데 말이죠.”
“그렇군요.”
“하하하, 둘 보다는 셋이 낫죠? 그리고 더 안전하고요.”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는 지금의 동물원에 대해서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그 인근 미술관과 관광부지에 대한 개발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네~.”
진욱은 느긋하게 대답만 하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슬며시 시계를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세 치 혀가 움직이는 것을 기록으로 남길 것이고,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살며시 틀어 책상 밑에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