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크고 위험한 사업
진욱은 오랜만에 복학을 한 뒤로 공부에 몰두했다.
그동안 학교 생활은 강의 듣고 학점 관리하랴, 근처에 있는 펫푸드 대리점 관리하랴, 다른 학과에 있는 사람들과 사업 논의하랴 바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아성사료도 궤도에 올렸으니 후딱 학점 쌓아 놓고서 다시 움직일 셈이었다.
“오랜만에 복학하니 아는 애들도 별로 없고.”
교내 카페 느티나무에서 와플이랑 커피를 마시면서 바깥을 본 진욱은 전생이나 현생이나 캠퍼스 라이프는 못 즐긴다는 생각에 못내 아쉬워했다.
지난 삶에서는 강압적인 부모 아래서 고시 공부부터 준비했던 공부 기계, 지금은 정말 좋으신 부모님 밑에서 무한 지원을 받지만, 가족끼리 하는 사업에 몰두하는지라 복학을 자주 했다.
뭐 CC를 꿈꾸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보는 것은 전공 서적, 그리고 간간이 스마트폰으로 주식 증권을 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모아 놓은 돈과 아성사료의 주가도 확인했다.
현재 시가총액대로만 간다면 중견기업까지는 내년쯤이면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체 직원 100명도 안 되는 좋소기업에서 국가납품과 펫푸드 사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모습에 그저 함박웃음이었다.
내친김에 큰아버지의 회사도 봤을 때, ‘아성저축은행’은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전국 3개 지점과 산하의 아성산업개발을 상장 준비하면서 기업집단의 모습을 갖춰갔다.
이후 큰아버지가 아성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지주회사의 기업집단을 만든다고 했지만, 아성사료만큼은 진욱과 상만 가족의 독립된 업체로 계속 운영될 것이다.
뭐, 이것도 지금부터 착실히 지분 유지를 하면서 굴릴 수 있는 일이니 천천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주식 확인과 전공 공부를 하면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때, 갑자기 진욱을 향해 다가오는 여성이 있었다.
“저, 저기…….”
“네?”
진욱 앞에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여성이 있었다.
키는 160 전후에 작은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도드라지는 쌍커풀이 수수하긴 해도 꾸민다면 굉장히 예쁠 거 같은 소녀였다.
“안녕하세요? 저… 교내 동아리 ‘공존의 길’에서 나왔어요.”
“네~ 무슨 일이시죠?”
교내 동아리 출신이라는 소녀가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진욱이 주변을 둘러보니 그녀가 넘겨 준 것 같은 팜플렛을 하나씩 읽어 보는 손님들이 있었다.
“저희 공존의 길은 자연과 동물, 사람이 한 곳에서 모이는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에요. 저, 그…….”
우물쭈물하면서 말하는데 ‘사회운동’이라는 말에 진욱의 미간이 약간 찌푸러졌다.
진욱은 사회운동에 대해서 지지하지도, 그렇다고 증오하지도 않았지만, 지자체 쪽 사람들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학교 내 벌써부터 사회운동이라고 모인다는 것은 훗날 학생회 임원을 하거나 졸업 이후 시민단체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는 정치권 입문 테크트리를 내는 사람들이 대다수고, 진욱의 동기들 역시 그러면서 금배지 단 애들이 전생에 몇 있었다.
“저는 뭐, 이런데 기부 안 하는데.”
“아, 아니요! 기부가 아니라 그냥 한번 읽어 주시고, 지지 선언만 해 주세요.”
“대체 뭘 지지해 달라는 건… 으흠?”
[굶어 죽고 있는 치악산의 호랑이를 살려주세요.]
“어이쿠!”
교내 동아리 공존의 길의 여학우가 내민 팜플렛은 굶어 죽어 가는 호랑이를 살려 달라고 강원도청에 보내는 서명운동이었다.
“여기가 강원도 원주에 있는 동물원이거든요? 하지만 운영 실패로 인해 전기도 끊기도 사육사분들 임금도 체불된 상태라고 해요. 그 속에서 굶어 죽어 가는 동물들을 살리기 위해 저희가 나서고 있어요.”
“서울대 동아리가 강원도에 있는 동물원을 어떻게 살리고, 뭐에 대해 서명운동을 하는데요?”
“네? 아, 그거는 그…….”
뭔가 선배들한테 들은 이야기는 있을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 나는지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순간 또 여성이 다가와 설명했다.
“현재 원주시청이 채권을 가진 상태로 강원도청이 인수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 시립이나 도립 동물원 상태로 인수 촉구를 원하는 서명운동입니다.”
“아, 언니!”
당당하게 말하는 동아리원에 소녀가 깜짝 놀라했고,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펜을 들었다.
“처음뵙겠습니다. 공존의 길 동아리의 유현아라고 합니다.”
“아, 네.”
“아, 소개도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공존의 길 동아리의 김아영이라고 합니다.”
앳된 얼굴의 그 소녀도 뒤늦게 인사를 했고,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 소개를 했다.
“동양사학과 08학번 하진욱입니다.”
“아! 혹시 학내신문에 나오셨던 펫푸드 사업에…….”
“네~ 맞습니다.”
“만나뵈서 반가워요. 08학번 법학과입니다.”
“아, 네.”
“앉아서 좀 더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진욱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일이 있어서 나중에 한번 이야기를 듣죠.”
“아, 네.”
진욱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 하자 둘은 ‘동물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의 지지를 받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보였다.
“동물과 사람 공존이라… 네, 좋아 보이네요.”
“아, 감사합니다.”
“사상 강요만 없다면 말이죠.”
“…저희 그런 단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걸 보니 저 동아리도 뭘 말하는 건지 알아듣는 것 같았다.
진욱은 그 둘을 보면서 인사를 하고 조용히 남은 시간은 오후 강의를 듣기 위해 움직였다.
* * *
집에 돌아온 뒤로 진욱은 아까 그 동물공존 단체라고 했던 동아리 공존의 길에 대해 검색해 봤다.
학내 커뮤니티에서 보니 아까 설명을 해 준 유현아라는 사람과 주변에 많은 학생이 보였다.
“흐음, 사회운동 단체인데… 동물권, 인권 등을 나누고… 근데 이거 재밌네?”
거기에 공개한 이름 몇몇을 공개했을 때, 재미난 것은 그동안의 사회운동과는 다른 유형의 인적 구성이었다.
유현아라는 사람은 현재 보수권 여당 국회의원의 딸이었다.
조금만 찾아도 바로 나오는데, 인터뷰로는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라는 기사와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아버지 선거 운동을 돕는 효녀’라는 사진이 양분됐다.
그외 다른 인물들도 강남 출신의 유명한 기업 자제라던가, 유학파 출신의 금수저들도 있었다.
“얘들 뭐야? 정치 꿈나무인가?”
진욱은 자신이 생각했던 시민단체나 사회운동 대학생과는 전혀 다른 스펙의 집안 자제들이 모인 것을 보고서 쓴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동물과 공존이라는 이름이 나오면서 채식주의를 강요하거나, 동물권 도축 반대 등을 안 하는 걸로 봐서 아까 그 사람이 말했던 ‘저희 그런 단체 아닙니다.’라고 말한 게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뭐, 이런 사람들이라면 오다가다 한 번씩 보겠구만.”
진욱은 그러면서 그들이 말했던 원주 동물원에 관한 이야기도 찾아봤다.
“흐으음.”
진욱은 아까 공존의 길에서 들은 대로 원주에 있는 동물원 드림월드에 대한 자료들을 보며 눈살이 찌푸러들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99년, 지역기업에서 운영하던 회사가 기업사냥꾼에게 인수된 이후로 횡령 사건이 터지고, 지자체에서 전기와 수도가 끊긴 상태이다.
거기에서 사육사들이 파업하고, 그 속에서 70종이 넘는 동물들이 굶어서 폐사하고 곰이나 호랑이에게 개 사료를 줘서 겨우겨우 먹이고 있다는 상황이었다.
“어우~ 이건 진짜 학대지.”
운영사가 먹튀를 하고, 그 밑의 사육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먹이고는 있어도 각종 질병과 굶주림에 빠진 상황이었다.
거기에서 공존의 길 동아리 같은 일부 사회운동 단체들은 지자체에 정식으로 ‘드림월드 인수 종용’에 대한 서명운동을 했고, 거기에 따라 강원도청과 원주시가 검토 중이었다.
그래서 금액이 얼마나 나올지 살펴봤는데, 이거저거 다 합쳐서 나오는 금액은 꽤나 컸다.
“휘유~ 한 550억 정도 되나?”
안에 있는 동물들과 동물원 대지, 그리고 운영권까지 다 합쳐서 나온 금액이었는데 큰돈이긴 했지만, 진욱은 의외로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으음. 그럼 일단…….”
일단은 자료를 더 모아야했다.
그리고 공강이 있는 날에 한번 직접 원주로 가 보기로 했고, 거기에 따라 이 건이 아성사료에게 있어 득이 될지 건드려선 안 될 독일지는 진욱이 판단해 보기로 했다.
* * *
원주시 치악산 일대에 있는 드림월드 동물원은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게다가 이 당시 강원도는 철도 환경도 좋지 않아서 도로교통 위주로 움직이는 상황이었는데, 낮은 접근성에 기업사냥으로 먹튀가 되어 껍데기만 남은 상황.
거기에 현수막에 붉은 글씨로 [원주시청은 조속히 해결하라!], [우리 모두 다 죽는다!], [치악산 동물들은 살고 싶다!] 등의 살벌한 단어들이 가득했다.
안에 들어가서 확인하고 싶지만, 입장료를 받으면서 내부에 관련 직원이 청소부 하나 없는 썰렁한 곳이었다.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은 가엽게도 피골이 상접하고 병을 앓고 있는지 골골거리면서 퀭한 눈으로 진욱을 바라봤다.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라고 쓰여 있었지만, 생각 같아서는 마트에서 생닭이라도 사서 곰이나 호랑이에게 던져 줘 좀 먹으라고 해 주고 싶었다.
“야, 이건 좀 심각한데…….”
진욱은 인간의 욕심으로 방치된 동물원을 보고서 혀를 찼다.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공시된 대지는 개발이 안 돼 황량한 모습을 본 진욱은 여기에 대해서 결심했다.
“조금 애매하긴 해도… 살릴 수는 있겠어.”
진욱은 결심한 듯 그들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움직이기로 한 게 있었다.
“여보세요? 아, 원주시청 민원 담당자 되십니까?”
* * *
진욱은 원주에서 고기와 건초를 좀 기증하고 온 다음 집에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제가 이번에 큰 사업을 하나 해 보려고 합니다.”
“거, 사람 불안하게 또 무슨 큰 사업이야?”
회사도 아니고 집에서 사장인 아버지에게 제안하는 아들을 보고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염려됐다.
“조금 큰 건입니다. 600억 정도가 들 사업이거든요.”
“뭐?! 야 임마. 너 지금 우리 회사 자산이 얼마인 줄 알고 한 말이냐?”
“네~ 물론 그게 전부 투입되는 건 아니고, 그정도 규모라고요.”
진욱의 말에 상만의 등 뒤로 식은땀이 작게 흘렀다.
최근에 진욱이 만든 얼룩말 동결건조 사료로 인해 이번 분기 역대급으로 매출이 잘 오르고 있었다.
이럴 때 사내 현금을 잔뜩 갖춰 두고, 추가로 큰집에서 짓고 있는 신공장이 완성되는 대로 본사 이전하려는 그림이었는데, 여기서 아들 녀석이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동물원을 하나 인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 개발사업도 같이 하려고 합니다.”
“……!”
“거기에 대해서 기획안을 준비했고, 아성사료의 투자금을 포함해 저도 개인적으로 사재 출연을 하려고 합니다.”
진욱은 그동안 주식을 하면서 모아 놓은 증서와 예금통장을 배팅하듯이 기획안과 같이 아버지에게 건네줬다.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달려들고 있는데, 일단은 전부 다 살펴봐야 했다.
“하, 짜식… 오늘 잠은 다 잤구만.”
“같이 밤새시죠. 하나하나 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부자는 침실 대신 서재에서 직접 기획안을 보면서 돈을 만들어 낼 곳, 향후 그 지역의 발전 가능성, 그리고 현재 누적 적자를 흑자로 돌릴 방법에 대해 토론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지역 언론에 원주시청을 통해서 익명의 자산가가 원주 드림월드 동물원에 먹이용 닭고기와 알곡사료, 건초 등을 기증하고 갔다는 것은 아주 가볍게 포털의 한 줄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