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국제 애완동물 박람회
진욱은 바쁘게 움직였다.
습식 사료 라인을 야채 수제 간식과 동결건조 생선사료로 대체하고, 대장균 이슈가 있는 고기류는 새 거래처를 찾지 않고 아예 생산을 중단했다.
“아산의 계주사료도 대장균 검출됐단다.”
“그럼 벌써 네 곳입니까?”
“더 걸릴 수도 있어. 지금 그쪽 태국발 말고기 수입 알선한 제우 인터내셔널까지도 고소한다고 난리더라.”
사료 공장이 받은 고기가 알고 보니 오염되어 있었고, 그것을 써서 만든 사료와 기계에 대장균이 검출됐으니 그쪽도 미칠 지경일 거다.
“산자부 애들 죽어 나겠… 아, 지금은 외교통상부 관할이지.”
아무튼 그쪽 역시도 조사를 못 한 책임이 있어서 이번 대장균 이슈가 끝난다면 국가와 기업 간의 법정 싸움이 정말로 치열할 것이다.
“아무튼 생산 라인은 유지했지만, 수익이 문제야. 습식 포기하는거 확실히 크긴 하네.”
상만의 말에 진욱은 식약청에서 보낸 공문을 보이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식약청 통과된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당분간은 말은 보기도 싫네요.”
“그러게 말이야. 그거 잘 팔린다고 잔뜩 물량 받은 게 문제지.”
진욱은 일단 고비를 넘긴 상황에서 조용히 아버지에게 새로운 기획서를 건네줬다.
“이게 뭐냐?”
“기존 직원들 능률을 올릴 방법이요.”
“……?”
그 와중에 뭔가를 또 가져온 진욱을 보고 일단 돋보기 안경을 끼고 읽어본 상만이었다.
“식품가공기능사? 이거는 지금도 딴 직원들 많은데?”
“수제 간식하고, 동결건조 파트에 인원들 좀 추가로 가지게 해야 할 거 같아요.”
“……!”
진욱은 지금의 수제 공장에서 국가자격증 비율을 늘리기로 했다.
이쪽은 국가기술자격이니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신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지금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봤자 추가월급 5만 원 더 주는게 전부죠?”
“뭐, 그렇긴 하지.”
“앞으로 주임에서 대리급 올라가는 데는 기능사 자격증 필요하고, 과장 이상 올라가려면 산업기사 자격증을 필수로 가지게 해야 합니다.”
“뭐?”
“참고로 전 이미 따 놨어요.”
지금은 자격이 기능사에서 관련 경력 2년 이상에 있어야 하니 산업기사지만, 내년까지 식품기사까지 준비하려는 진욱이었다.
“위에서 이런 걸 보여 주고, 밑에 직원들에게도 자격증 비율을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월급도 좀 더 늘려서 기능사-산업기사-기사에 따라 특근수당을 따로 줘야 하고요.”
“흐으음.”
기존의 직원들에 대해서도 질적 향상을 해야 한다는 진욱의 제안에 상만은 일단 그 기획안을 받아들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올해 시험은 다 끝났으니 내년부터겠구만.”
기능사 시험은 1년에 두 번 접수를 받으니 지금부터 공부를 시킨다면 문제는 없을 거다.
일단 회사 내에 관련 서적을 비치하고, 시험을 치를 직원들 접수를 받아서 현재 회사 내에 자격증이 있는 직원을 파트장으로 삼아 교육 시간을 만든다.
진욱이 내민 제안에 상만은 자격증 승진에 대해는 찬성했지만, 특근수당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조정을 하기로 하고 조건부 승낙을 해 줬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 앞에서 뭔가를 계속 찾고 있는 진욱.
전부 다 영문으로 된 해외 사이트들이었고, 관련 자료를 하나하나 드래그해서 워드 파일에 담아 두고, 필요한 링크를 저장해서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에 영상을 띄웠다.
오늘의 업무시간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진욱은 퇴근 준비를 하는 상만에게 말했다.
“사장님.”
“어, 왜? 또 할 말 있어?”
“네. 오늘 저녁 나가서 먹는 거 어떱니까?”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오늘은 나가서 고깃집에 소주나 한잔하기로 했다.
* * *
상만 부자가 모이는 자리는 언제나 소고기집이었다.
전생에 진욱이 그렇게 소고기를 좋아했다고 하더니, 아버지인 상만도 취향에 맞춰서 상록 일대의 소고기 맛집이란 맛집은 다 꿰고 있었고, 오늘 이곳도 이름난 곳이었다.
치이익-
철판에 구워진 소고기가 입안에서 살살 녹았고, 평소 술을 잘하진 않지만 오늘은 아버지와 같이 한 잔씩 나눠 마셨다.
“어떻게 급한 불은 껐으니 고생했다. 안 그래도 회식하려고 했는데.”
“네, 그건 따로 아버지가 해 주세요.”
“그래서, 오늘은 그냥 고기가 먹고 싶어서 부른 거야? 아니면 회사에서 못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야?”
“회사 일이자 개인 일입니다. 저 휴가 좀 보내 주세요.”
“뭐, 휴가?”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자택근무를 하거나, 야간 교대조로 나서서 일을 했고, 휴학을 한 뒤에는 아예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회사에 남아 업무에 몰두했었다.
그러고보니 진욱이 외출계는 많이 썼어도 휴가를 잘 안 쓰긴 했고, 쌓여 있는 것들이 전부 해가 지나면 사라질 예정이었다.
“휴가라, 그래 뭐… 그동안 회사 일 많이 했으니 쉴 때가 됐지.”
“한 2주 정도 다녀올게요.”
“뭐? 그렇게 길게?”
적당히 3~4일 휴가를 주려고 했는데, 2주를 쓰겠다는 말에 상만은 ‘이 녀석이 또 뭘 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유심히 바라봤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차분하게 말했다.
“유럽에 좀 다녀올 거예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다 다녀올 겁니다.”
“뭐? 그럼 관광이냐?”
“관광도 있지만, 중요한건 거기서 있는 행사요.”
“……?”
진욱은 스마트폰을 통해 아버지에게 관련 영상을 보여 줬다.
그곳에는 영어도 아니고, 다른 외국어로 쏼라쏼라 거리는 음성에 양재동 AT센터보다 배 이상은 큰 엄청난 규모의 박람회 영상이 있었다.
“이게… 뭐야?”
“독일 슈투트가르트 애완동물 용품 박람회라고 합니다.”
“여길 가 보려고?”
“네, 마침 사흘간 진행한다고 하니 일반 티켓을 구매해서 입장객으로 한번 가 보려고요.”
이곳에는 진욱과 상만이 아는 업체들도 많았다.
마스터 푸드, 마쓰모토 식품, 제레미 인더스트리 등 동물사료, 애완용품, 동물 미용용품 등 각종 제품들이 전시되는 세계적인 박람회인 만큼 직접 봐서 견문을 넓히겠다는 진욱의 제안에 상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단순히 놀러 가는 것만은 아닌가 보는구나.”
“가서 두 눈으로 담아서 해외 사례들 좀 보고 올 생각이에요. 물론 거기에 따라서 신제품도 개발하고요.”
“흐음, 그거 보내 달라고 이 자리 만든 거구만.”
“어떻게 안 될까요?”
진욱이 상만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워주자 그는 한잔 쭉 들이켠 다음에 쿨하게 허락했다.
“그냥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자리가 있다면 가 봐야지.”
“감사합니다!”
진욱은 바로 여권 갱신을 준비하고, 독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출장이 아닌 휴가로 유럽으로 떠나 견문을 넓히기 위한 2주짜리 투어가 시작됐다.
* * *
해외에선 펫코노미(Pet+Economy)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른 반려동물 시장.
거기에 맞춰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심이 되는 애완동물 박람회가 여럿 있었다.
일본 요코하마 펫 박람회.
프랑스 애완동물박람회.
홍콩 국제애완동물 박람회.
도쿄 애완동물 및 용품 박람회.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 애완동물 박람회.
미국 라스베가스 국제 애완용품 박람회.
이태리 국제애완박람회.
영국 버밍엄 애완동물 용품 박람회.
그리고 진욱이 찾는 한해의 마지막 슈투트가르트 국제 애완동물 박람회까지 말이다.
1월에서 12월까지 수많은 박람회가 있었고, 거기에 맞춰서 참가하는 기업들이 있었지만, 아성사료는 그곳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제일식품이나 대한사료 등이 참가한다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말고기 대장균 이슈로 인해 제일도 불참을 선언해 상대적으로 한국기업은 별 재미를 못 볼 것이라는 말을 인터넷 기사로 확인했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슈투트가르트가지 15시간이 걸려 도착한 진욱은 찌뿌둥한 몸을 풀고서 내렸다.
과거 공무원 시절 해외연수를 몇 번 가 보긴 했지만, 여행으로 온 적은 처음이었다.
“자~ 한번 움직여 볼까?”
진욱은 호텔로 향해 체크인부터 하고 짐을 풀은 다음 가벼운 옷차림으로 조만간 대형 행사가 열릴 슈투트가르트 전시장으로 향했다.
국제 애완동물 박람회로 인해서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 전시장은 상당한 규모였다.
“여기가 전시 면적 4만4천 제곱미터인데, 유럽에선 작은 편이라니…….”
지난번 K-펫 박람회때 양재 AT센터가 8천 제곱미터 정도였는데, 그 다섯 배가 넘는 규모였다.
진욱이 주변을 돌았을 때, 이름을 알 법한 회사들의 제품이 많았고, 마스터 푸드는 뻔뻔스럽게도 이번 박람회에서 또다시 습식 사료 캔을 홍보하려는 것인지 수십 대의 트럭을 두고서 전시장 설치를 하고 있었다.
진욱은 슈투트가르트 전시장 주변을 돈 다음 도심에 있는 상가에서 반려동물 상품들을 찾아봤다.
“독일 하나만 해도 애완동물 사료랑 관련용품 시장이 40억 유로라고 하더만, 진짜네.”
한국으로 치면 시장 하나가 전부 펫샵으로 이뤄진 곳이 있었고, 한국의 청계천 애완동물 상가거리나, 충무로 애견거리 정도는 우스울 정도의 규모에 진욱의 눈이 돌아갔다.
진욱은 일일이 사진을 찍어보고 거기에 대해서 독일어로 쓰인 것을 영어로 물어물어 어떤 제품인지 하나하나 체크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도 말고기가 베이스인 사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여기는 대장균 이슈가 별로 없네.”
동남아발 공장과는 전혀 다른 생산기지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라 그런지 이쪽은 상대적으로 동아시아 이슈와는 상관이 없었다.
이곳에서의 동물 사료는 최우선순위가 반려동물의 입맛이 중심이었다.
“고단백 전문 식품, 콜레스테롤 방지 식품, 무글루텐의 알레르기 없는 식품… 별의별 게 다 있구만.”
심지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채식주의 반려 식품까지 있는 것을 보고서 세상은 역시 넓다고 생각하는 진욱이었다.
진욱은 며칠간 슈투트가르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관련 물건들을 하나씩 사 보고, 성분 분석을 호텔에서 했다.
주말에는 가볍게 동물원을 돌면서 독일의 선진 동물권 시스템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아 놨다.
그리고 휴가다운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이제 당일이 되어 슈투트가르트 전시장으로 향했다.
정말 오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규모에 진욱의 눈이 돌아갔다.
1995년부터 열린 전통의 박람회라고 하더니 그 위상과 규모가 확실히 세계적이라고 인정할 만했다.
“강아지 영양제에, 고양이 알레르기약, 그리고 저건 또 뭐야?”
째애애애액-
“어우!”
영화에서 해적 선장이나 데리고 다닐 법한 커다란 앵무새들이 가득한 곳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와 새장이 가득한 곳은 조류 전문 부스였다.
새 모이 부스만 하더라도 저게 양재 AT센터의 K-펫 박람회와 맞먹는 수준의 크기였다.
진욱은 하나하나 사진으로 담아 두고는 원래의 목적으로 습식 사료와 동결건조사료 제품들을 둘러보기 위해 해당 전시관으로 향했다.
닭, 칠면조, 말, 소, 돼지 등의 가축으로 만든 제품들을 하나하나 봤을 때 진욱은 순간 요키를 데려왔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진짜 한 마리 데리고서 실시간으로 먹여 본 다음에 반응 보면 대박인데.’
진욱은 일단 하나하나 구매를 시작했다.
그때 진욱의 눈에 들어온 제품이 하나 있었다.
“……!”
진욱은 그 앞에 있는 동결건조 간식을 보고 그 성분표가 영어로 쓰여 있어서 하나하나 확인했다.
정말 이걸로 사료를 만든다고? 하는 생각으로 가게 간판을 봤는데, 의외로 정식 특허까지 있는 제품이었다.
게다가 만드는 레시피조차도 상당히 편해 한국의 펫푸드 대리점에 두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Entschuldigung. Was ist das?(실례합니다. 이 물건이 뭐죠?)”
“Well This is…….(음, 이것은…….)”
독일어로 물었는데, 부스 직원이 진욱을 보고 영어로 대답하자 김이 좀 샌 순간.
하지만 친절하게 진욱이 한번 확인한 성분표를 알려 주자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진짜 이걸로 사료를 만든다고?”
진욱은 그것을 보고서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제품들을 하나하나 구매하고 그 회사에 팜플렛까지 받았다.
잘하면 한국에 진출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제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