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쌍끌이로 올라간다.
진욱은 과거 공무원 시절에 금감원 소속으로 파견을 나간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가 2011년이었는데, 이때는 부산에 있는 한 저축은행으로 인해 긴급 감사가 들어갈 때였다.
부산에 있는 동래저축은행 사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로 지역 정치권과 결탁한 대규모 부정 대출에 대한 감사, 그리고 밝혀진 사실은 2조 5천억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회계부정이 있었던 대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이율이 높아서 예금을 하던 고객들이 들고 일어나 뱅크런 사태가 터지고, 그 뒤로 영업정지가 된 동래저축은행을 넘어 다른 저축은행들 역시도 연쇄적으로 부정대출 감사가 들어가 수많은 업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저축은행 사태’라고 불리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지난달에만 7개 회사가 금융업에서 1차로 퇴출 됐다.
그리고 진욱이 내민 것은 현재 2차로 퇴출 위기에 빠진 저축은행리스트였다.
상록저축은행을 운영하는 상규에게 있어서는 규모 확장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 온 거냐?”
“운이 좋았습니다.”
진욱은 펜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면서, 웃어넘겼지만 계속 추궁하는 말에 넌지시 말했다.
“서울대 동문회가 좋긴 좋더라고요. 행시 합격하신 선배님들을 만났다가 술자리에서 감사 대상 이야기를 슬쩍 들었고, 제가 자료를 모아 봤는데, 공개한 재무제표가 안좋은 곳들 리스트를 작성한 겁니다.”
물론 그쪽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적당히 둘러낸 이야기였다.
“몇몇 개는 우리도 들은 정보가 있지만 찌라시인 줄 알았는데.”
진성의 말에 진욱은 한 마디를 더 붙였다.
“그리고 큰아버지께서 200억 종편 투자를 하셨죠? 다른 저축은행도 출자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부실 저축은행 리스트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기름칠을 하려고 했던거구만. 암튼 이 기회에 몇 개 인수할만하겠어.”
상규는 이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리스트를 두고서 인수대상을 잡아보기로 했다.
이미 고객들의 예금은 지역일대 건설업자와 정치권에 들어가서 빈껍데기가 많을 거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지방에서 갑자기 땅 다져놓고 나가떨어지는 공사현장이나 수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매각 대상이 될 금융업체들이 많을 거다.
“인수 잘 되면 200억 빚은 없던 일로 해주마.”
“그거 빚이라고 미리 정하신거였어요?”
“내가 어떤 정보일줄 알고 그냥 줬겠냐? 하하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동안 봐 온 큰아버지라면 이번에 회사 2,3개 정도는 인수할 수 있을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성사료의 융자는 아성저축은행이 계속 맡아줄 것이다.
***
“그게 무슨 소립니까? 죄다 인수해놨는데, 본사에서 수금이라니요?”
[유감이오, 하지만 지금 본사 사정이 급박해서 당장에 해외지사 예산 편성도 줄어들 것 같소.]
“아니, 지진이 일어난 건 알지만···.”
한국마쓰모토는 갑작스러운 자연재해에 일본 본사가 자본 수금에 들어간다는 말에 미칠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 분기에 들어오는 예산을 무리하게 당겨써서 이율이 높은 ‘저축은행’을 통해 공장 인수대금에 썼는데 완전히 일이 꼬였다.
“당장에 한국 업체들 인수한 것 금액 융자부터 본사가 지원하기로 한 건 어떻게 합니까?”
[유감입니다.]
전화가 끝나자 이영남은 멍해진 상황에서 바로 수화기를 집어던졌다.
파각-
“하여간 쪽바리 새끼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건 뭐 있다니까!!”
언제는 한국 돈이건 일본 돈이건 다 좋다고 한 양반이었지만, 갑작스런 본사 방침에 그야말로 물먹은 상황이었다.
똑똑-
“뭐야?!”
신경질적으로 말할 때 조심스럽게 들어온 임원이 서류를 가져왔다.
“김 이사! 그거 뭐야?”
“저, 대표님. 이번에 은하저축은행에서 이자와 융자 회수 논의를···.”
“이런 개···.”
그날 한국마쓰모토 건물 안에서는 헐크가 되어서 쌍욕을 오만가지로 뿜어낸 지사장의 전설이 생겼다.
***
“마쓰모토 완전 물먹었더라?”
다른 나라의 재난으로 인해 좋아할 일은 아니지만, 어찌됐건 더 이상의 확장이 제대로 막혀버린 이영남 쪽이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썼다고 하더군요. 벌써 주식시장에서도 그것 때문에 연일 하한가라고 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죄 처먹다가 탈 날 줄 알았어. 흐하하하하!”
이영남이 제대로 물먹은 상황에 그저 웃음만 나오는 상만이었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두 가지 기획안을 내놓았다.
“이게 뭐야?”
“주식 투자 기획서요.”
“뭐? 그걸 왜 회사 기획안으로 내?”
“이건 회사가 투자해야 하니까요.”
“···뭐?”
진욱이 내민 주식투자 기획안에는 다름아닌 ‘한국마쓰모토 주식매입’안과 ‘아성저축은행 지분거래안’이었다.
“이번에 큰아버지께서 저축은행 몇 개 인수한다고 하십니다. 안 그래도 저평가 받고 있는 아성저축은행인데, 이때 지분교환을 하는 겁니다.”
“흐으음. 형님네도 바쁘겠네? 근데 한국마쓰모토는 우리가 지분 사 봤자 뭐 도움이 되겠어?”
“주주총회 행사만 할 정도면 됩니다. 게다가 지금 주당 1800원대 밖에 안 합니다.”
승승장구하던 시절 주당 2200원이었던 한국 마쓰모토가 점점 떨어지고 있을 때, 바로 매입을 할 생각이었다.
이번 대지진이 엄청난 규모이긴 해도 이걸로 인해 회사 자체가 무너지진 않고, 마쓰모토가 기껏 뿌리내린 한국에서 장사 접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주식을 사들여서 멋대로 폭주하는 것을 막을 용도였다.
진욱의 제안에 상만은 일단 고려해보겠다고 한 다음 간부들하고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었다.
기획안을 올린 뒤로 진욱은 이후 아성 퍼피스의 분당점 오픈을 위해 떠났다.
***
[동물 호텔이 부산에도 온다! 아성퍼피스 4월 NN일 오픈!!]
[아성사료-대화리조트와 전략적 제휴. 이제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을!]
[아성사료, 한국마쓰모토의 주식 매입. 끝없는 추락의 반등이 될까?]
진욱의 제안을 받으면서 하나둘씩 움직이고 있는 아성사료의 움직임에 주가는 차분하게 오르고 있었다.
사료회사 본연의 일인 사료 생산과 신규 계약이 늘어나면서도 추가적으로 진욱과 진영이 만드는 자회사들도 고공 성장을 한다.
그 와중에 진욱은 외근을 신청하고 용인으로 향했다.
“끼익-”
“어디보자 여기가 은하저축은행인가?”
진욱은 용인 일대의 저축은행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저축은행은 1금융권인 시중은행과 다른 점이 상당히 많았다.
가장 큰 특징은 금융당국의 지점신설에 대해서가 굉장히 빡빡한지라 특정 지역만 한정된 영업이 가능하다.
추가로 저축은행은 영업권 내 의무대출 규정까지 있어서 그것 때문에 지방 회사들하고 술 한 잔에 골프 한 게임의 로비력으로 눈먼 돈들이 돌아다녔었다.
1차 저축은행 퇴출리스트도 그런 비리 속에서 없어진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진욱은 한국마쓰모토를 노리면서 지역 저축은행들을 한 번씩 돌아봤다.
용인 일대에서 있는 저축은행은 시중은행인 한신금융지주 산하의 한신저축은행, 그리고 은하저축은행, 그리고 새마을금고 정도였다.
‘마쓰모토가 국내에서 자금 끌어올린게 지역 상호금고들을 썼다지?’
그 정보를 얻은 진욱은 이 기회에 마쓰모토의 견제를 날리기 위한 방법을 떠올렸다.
그것은 여기저기에 급전을 빌려서 자금 흐름이 원활치 못한 한국마쓰모토의 융자 금융기관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2차 퇴출 위기 저축은행들 중 용인과 그 일대 수도권 저축은행을 큰집에 추천했고, 그 중에서도 은하저축은행에 대해서 정보를 전했다.
물론 저축은행 인수는 큰아버지의 아성저축은행이 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온 또 다른 이유는 약속 하나 때문이었다.
‘큰아버지가 인수하시는 저축은행 일대에 부동산 건물 투자를 하신다. 그리고 거기 상가에 아성사료 펫푸드 대리점 입주를 하게 해달라.’
큰아버지는 그런 건 일도 아니라며 싸게 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으니 그 자리를 한번 둘러보는 진욱이었다.
“지어진지 1년 남짓의 아파트들. 아직 짓고 있는 곳도 많고 전부 입주한다 해도 상업시설이 부족하네?”
그리고 이 일대는 삼정전자 용인사업장과 수원 사업장, 그리고 윗동네인 분당과 강남 테헤란로로 출퇴근을 하는 젊은 부부층이 상당히 많다.
“주 고객층은 갓 입주하고 아직 아이 없으면서 맘카페 자주 다니는 여성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서울이나 분당에서 전/월세로 다니다가 아예 내집마련을 위해 내려온 5-60대 이상의 시니어 입주민들이었다.
이 사람들 역시 작은 강아지들을 많이 키우니 주 고객층은 확실히 잡을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마쓰모토의 방해도 없을 것이고, 이 기회를 노려서 펫푸드와 동물 카페에 대한 지점 확장에 들어가는 진욱이었다.
***
“괜찮은거 같아요.”
“일일이 다녀온거야?”
“네~ 역시 직접 봐야 알 수 있더라고요.”
진욱은 사흘동안 외근을 다니면서 찍어온 사진들과 일대의 예상 매출표를 올리고 3개 지점에 대한 확장안을 아버지 상만에게 제출했다.
“그래, 아까 형님이 전화했는데, 7월쯤에 은하저축은행 인수할 거라고 하더라.”
“7월이요? 아···.”
왜 7월인지 진욱은 알 것 같았다.
보험사나 시중은행같은 제1금융권은 각각 1월이나 3월에 회계 결산을 한다.
하지만 2금융권인 저축은행은 6월에 시행하며, 7월 인수한다는 말은 회계결산을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
“P&A로 가겠네요.”
“뭐?”
“부실자산 제외 인수요.”
진욱은 그 당시에 수많은 부실저축은행들이 난립하자 2금융권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P&A방식의 인수를 종용한 것을 잘 알았다.
“6월이 진짜 재밌어질거에요. 여기저기 터져나갈거고요.”
“그게··· 재밌겠냐? 여기저기 공사대금 융자 못 받아서 나자빠지고, 지방 공장들 죄다 문닫을게 보이는데?”
“그 사람들 불행은 가슴아픈 일이긴 하지만···.”
진욱은 테이블에 놓인 공단 지도를 보고 말했다.
“이 기회에 저희도 공장 몇 곳을 인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분기 매출이 잘 나오면.”
“네~ 저희는 누구처럼 막 처먹으면 안 되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위험을 마다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었다.
눈앞에 큰 예시가 있어서 지금이야 보수적으로 움직여야겠지만, 2~3년만 지나면 진욱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슬슬 인터넷 앱 사업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응?”
진욱은 자신의 애플폰을 보이면서 애플리케이션 마켓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전부터 스마트폰에 대해서 말한 거 있잖아요? 이젠 갤럭시아폰하고, 애플폰하고 양분하는 시대이니 두 OS에 필요한 앱을 만들겁니다.”
“그래··· 그것도 준비해야지. 근데 말이다. 그때 영입했던 친구들 잔뜩 가르치긴 했는데, 어떻게 걔들만으로 되겠어?”
“사실상 초창기로 시작하는 사업이니 시행착오가 많을거에요.”
“어이구, 그것도 리스크 생각해야겠네.”
상만은 의욕적으로 나가려는 아들의 계획에 뒷수습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진욱은 당당하게 말했다.
“최소한의 리스크로 한 번 완성해보겠습니다. 성공한다면 지금의 매출에서 배 이상은 확실히 오를거라고 자신합니다.”
스마트폰 앱과 펫푸드.
두 개를 합치기 위한 진욱의 프로젝트에 상만은 엄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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