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일본발 공세 위기(1)
“혹시 종합편성채널이라고 들어봤어?”
“아~ 종편.”
“아는구만.”
미디어법 개정 이후로 나온 새로운 방송국인 종합편성채널.
당시에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고, 저때 공무원을 하던 진욱에게 방통위 동기들이 일에 치여 죽어나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초반 이미지가 정말 나락이었는데···.’
일단 확정된 거대 언론사에 의해 올해 말에 개국하는 4개의 방송사들.
공교롭게도 범 삼정가 쪽의 J그룹에서도 종합편성채널 JBC를 준비하고 있었다.
“저희도 거기에 투자를 하란 말입니까?”
“일단은 제안이야. 이야기는 해 줄수 있어. 그리고 개국하면서 종편의 특혜가 상당하거든.”
“광고 말이군요.”
“맞아. 중간광고 삽입 가능하고, PPL도 자유로워.”
큰 거 광고라는 제안이 맞았지만, 그만큼 투자해야 하는··· 말 그대로 돈으로 광고권을 사는 것이었다.
“이건 확실히 집에 이야기 할 내용이네요.”
“아, 참고로 몬스터티켓도 투자 했다. 걔야 뭐, 외숙부 집안이니까 당연한 거지만.”
그렇다면 삼정가 전체가 지원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액이라 해도 이 건은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만약 회사에서 거부한다고 하면 자신의 포켓머니라도 쓸 계획이었다.
“저희도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좋은 사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뭘. 난 그냥 그렇다고 말한거야.”
용철은 진욱에게 종편 투자에 대해 한가지 더 힌트를 줬다.
“참고로 4개 사에서 마쓰모토는 딱 한 곳만 노린다고 하더라.”
“어딘지 알수 있을까요?”
“쥬신일보의 TVS.”
그래도 쥬신일보가 광고를 많이 해줬었는데, 당분간은 거리를 둬야 할 것 같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리도 마쓰모토 견제하려고 하는데.”
꽤나 많은 정보를 얻은 유익한 자리였고, 오늘의 와인은 진욱이 사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차분하게 정리를 할 내용을 컴퓨터로 작성하고는 내일 아침 올릴 준비를 했다.
***
“종편투자?”
“네, 사장님.”
“아이고, 그걸 저희가 투자한다고 크게 도움 될지 모르겠네요.”
이정열 상무는 재무파트를 맡고 있으니 그쪽에 따로 쓸 예산을 계산하면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사장님, 이제 상장 시작한 저희가 종편 투자를 한다고 해서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올해 말이나 되야 개국한다는데요.”
이번에 자재부장으로 올라온 유승인 부장 역시도 이건 무리수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진욱은 무슨일이 있어도 이게 통과해야 한다고 모두를 설득했다.
“지금 한국마쓰모토가 쥬신일보 종편에 투자금을 수백억 투입한다고 합니다.”
“뭐? 수백억?”
“설마··· 그건 아닐겁니다. 마쓰모토가 일본 내에서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한국 언론사에 그렇게 투자할 리가···.”
“아니요. 일본 자본 전체를 그 녀석들이 끌고 온다고 합니다.”
진욱은 어제 와인 마신 상태에서도 관련 기사와 같이 일본 내 신문도 원본과 번역본을 출력해서 테이블에 올렸다.
“이게 뭐야?”
“니혼게자이신문, 우리말로는 일본경제신문이 한국의 종합편성채널에 출자한다는 기사입니다.”
“허~ 그런데 이게 왜?”
“그 일본경제 대주주 중 하나가 마쓰모토 그룹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내 다른 계열사들도 투자금을 모아 그 규모는 9억엔.”
“9억엔···!”
“요새 환율로 130억이 넘죠.”
“아이고.”
“거기에 마쓰모토 상사가 계열사인 한국마쓰모토 지원한다고 방송장비도 일부 지원한다고 합니다. 방송국 한 곳당 50억엔 정도요. 이거저거 다 합하면··· 일본발 투자가 7~8백억 정도 될 겁니다.”
그야말로 돈 폭탄이었다.
아직 개국 전의 방송사에게 투자하는 금액 치고는 과하다고 생각될수 있겠지만, 미디어라는게 그만큼 돈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전자계는 방송에 쓰이는 카메라와 모니터, 심지어 소프트웨어까지도 일본산 장비를 써서 그 점유율이 국내 80%를 차지했다.
소니아, P소닉, 카이논 등의 장비들의 공세에 뒤늦게 국내에서도 그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때는 이미 한 발 늦은 상태였다.
마쓰모토 그룹은 그 기회를 노리고 중간업체 역할을 톡톡히 해서 그 금액을 끌어모아 광고 장악을 노렸다.
그 목표는 한국 내에 있는 일본회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면서, 사료 시장 그 이상을 넘어서 제대로 장사판을 벌릴 생각이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거··· 게임이 안 되는구만.”
아성사료 시가총액 전부를 합쳐도 800억 전후일텐데, 저쪽은 그만한 금액을 끌어오고 있었다.
이쯤되면 지금 국내 시장에서 펫푸드에 한정해서 그들과 싸운다는게 굉장히 무모한 짓이었지만, 진욱의 생각은 달랐다.
“종편 투자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일식품과 몬스터티켓 역시도 같은 방송사에 투자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 말을 들으니까 나도 필요성은 느낀다.”
방금 전 까지 종편 투자는 그다지 효과가 없을 거라 말한 유 팀장과 이 이사도 이야기를 들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근데 말이야. 우리가 지금 투자금액 최대로 때려잡아도 20억이 한계거든?”
그 이상 사유재산을 털 수도 있지만, 아성사료가 주식회사 법인화가 된 이상 자칫하면 회계 문제가 생길수도 있고, 그 정도로 사활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네, 저도 그 정도면 적절하다 생각합니다.”
“간에 기별이나 가겠어? 일본 돈 수백억 처먹을 놈들이 말이야.”
“그 정도로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욱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성의 이름은 그 이상으로 더 투자가 가능하죠.”
“!?”
***
“자, 한 잔 받으시죠.”
“감사합니다.”
종로에 있는 고급 요정에서 한국마쓰모토 대표 이영남은 오랜만에 온 손님을 극진히 맞이했다.
“후지사와 상무님은 전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 이젠 전무입니다.”
“아이고, 이거 실례! 전무 진급 축하드립니다. 한 잔 받으시지요. 하하하!”
한국 법인 대표이사 자리를 맡았지만, 본사 임원들에게 있어서는 한끗발 낮은 한국 마쓰모토의 이영남.
그는 적절한 줄타기로 회사를 넘기면서 CEO의 자리를 차지했고, 일본 내에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전에 이야기 한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능숙한 한국어로 질문하는 후지사와 전무의 말에 이영남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걱정 붙들어 메시지요! 수도권 일대의 공장들 싸그리 다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품질 관리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거야 뭐 당연한 거지요. 하하하!!!”
후지사와는 한국에서 보고받은 내용을 확인한 뒤로 생각보다 일처리가 뛰어난 이영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펫푸드는 진출하기 위한 미끼.
펫푸드에서 마쓰모토의 이름을 알린 뒤로는 한국 내 7조원 규모의 사료시장 진출이 주목적이었다.
특히 강아지와 고양이의 펫푸드 이후로 양계용 배합사료 진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그 규모만 해도 2조 원에 육박하는 시장.
이후 한국 내 경쟁사로 국가가 지원한다는 농협사료나 민간기업인 제일식품을 견제하면서 파이를 먹으면 확실한 장사였다.
“다음 분기에도 투자가 계속 될 겁니다.”
“이번엔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전 분기 예산의 10% 더 올리겠습니다.”
“아이고! 그 정도면 넘쳐날 정도입니다. 하하하하!”
이영남은 일본 본사의 돈을 원없이 끌어다 쓰면서 자기 입맛대로 관렵업체 공장을 먹어 치우는 것에 재미 들이고 있었다.
마쓰모토 역시도 현지의 CEO가 진행하는 것을 두고서 생각보다 빨리 예상 매출을 거둘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
“후우~ 집에 가자.”
“네, 대표님.”
조수석의 비서실장이 눈짓하자 운전수가 바로 출발했다.
밤새 후지사와를 접대한 뒤로 피로에 젖은 이영남은 피식 웃었다.
“한국 놈 돈, 일본 놈 돈 따로 있냐? 돈은 그냥 돈이야.”
처음에는 국가 주도 공기업으로 시작한 아시아합성사료.
거기서 갈라선 이후로 자신이 용인에서 새로 성장시켰다는 것에 자부심이 넘쳤고, 거액의 금액으로 차익을 남겨 일본회사에 넘기면서도 사장 자리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었다.
“하상만이 쪽은 어때?”
“아성사료 말씀이십니까? 최근 제일식품과 같이 미디어에 투자를 한다고 합니다.”
“아~ 그놈들 아직 제일식품 밑 닦아주고 있지?”
아성사료를 두고서 좋게 말해 1협력사지 그냥 하청 비웃는 이영남은 지난번 사료협회때의 일을 생각하며 담배를 물었다.
“내가 하상만이랑 그 아들 새끼는 한 번 꼭 다시 본다.”
제대로 엿을 먹은 뒤로 홈쇼핑 계약 때 설거지 당한 이후로 언제고 그놈 한 번 조지겠다고 이를 가는 영남이었다.
생각 같아선 수도권에 OEM 사료 공장들을 인수할 때 아성사료를 돈으로 찍어서 그냥 먹어 치우고 싶었지만, 한 회사에 그렇게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었다.
“뭐, 그놈들 주식도 사들이고 있으니 몇 년 안에 처리해야지.”
이대로만 간다면 이 바닥에서 자신의 영향력은 대기업 이상으로 올릴수 있고, 설사 지금 자리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돈은 이영남에게 있었다.
***
한편 진욱은 상록시에 있는 한 저축은행 대표실에서 큰 계약을 준비했다.
탁-
“200억원이야.”
“와우···.”
“새끼, 놀라기는.”
하진욱이라는 이름으로 산 지 4년.
그리고 쉴새 없이 일하면서 언젠간 100억짜리 계약을 이 손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바로 받았다.
진욱은 아성사료의 20억 투자 이후로 큰집에도 정보를 흘리고 큰아버지와 딜을 하나 했다.
조건은 종합편성채널 투자에 ‘아성’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투자를 할 것.
그리고 그 대가로 ‘거절할 수 없는 특급정보’를 알려줘서 지금의 아성저축은행 규모를 5배 이상으로 늘여주겠다는 것이다.
“만약에 잘못되면 너한테 다 청구한다?”
“하하하, 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숙지해두겠습니다.”
그렇게 아성저축은행에서 200억 규모의 투자가 종합편성채널 4곳으로 향했다.
훗날 이 출자는 각 방송국의 재무제표에 공개될 것이며, 만약 잘못되는순간 아성저축은행뿐만이 아니라 아성사료 역시도 타격을 입고 금감원과 검찰청에서 사진촬영 스튜디오를 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욱은 하루에 걸쳐서 그 특급정보를 모두 알려주고, 큰아버지를 설득해냈다.
식구 좋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고, 이것을 기점으로 하씨 일가의 아성이란 이름이 전국에 알려질 것이다.
큰아버지와의 계약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진욱은 오랜만에 만난 사촌형 진성과 근처에서 커피 한 잔의 시간을 가졌다.
“언제봐도 대단하다니까?”
“뭐가?”
“나도 대하기 힘든데, 우리 아버지에게 어떻게 200억이나 또 타낸거야?”
“조카를 귀엽게 봐 주시더라고.”
“야··· 장난하냐?”
진성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고 했지만, 진욱은 낄낄거리면서 손가락을 펼쳤다.
“3월.”
“음?”
“올해 3월에 큰 거 온다. 그거 때문에 정보 좀 알려드렸어.”
“겨우 그거야? 이게 뭔 주식 정보도 아니고.”
물론 단순히 말로만 끝난게 아닌 철저한 자료를 분석해서 PPT로 만들어 올린 것이었고, 그것을 전부 읽은 큰아버지가 합당하다 생각하고 내건 투자금이었다.
진욱은 이번 상황이 잘 넘어가면 그때 모든 것을 말해주겠다고 사촌형에게 일러줬다.
그리고 진성 역시도 ‘대체 2011년 3월에 뭐가···.’ 라면서 투덜거렸지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뒤져도 뭐 나오는게 없으니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