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기다려도 되는 일.
소셜커머스 업체에 대한 제안에 진욱은 신중히 고려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이건 괜찮은 사업이 될 겁니다. 앞으로는 오픈 마켓 시장이 오프라인 시장보다도 더 커질 겁니다.”
“네, 저도 오픈 마켓 시장에 대해서는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진욱 역시도 그 중요성은 느끼고 있고 소셜 커머스 업체들과의 온라인 시장 개척은 굉장한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게 다 좋은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금 이것을 제안하는 상대가 몬티라는 것이다.
진욱은 지난 삶에서 소셜 커머스와 SNS 마케팅, 오픈 마켓 성장세로 따라서 새로운 유니콘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을 눈으로 봐 왔던 사람이다.
특히 중기청이 중소기업벤처부로 격상되면서, 유니콘 기업의 대다수는 저 오픈 마켓 시장 위주.
하지만, 거기에 몬스터티켓은 초반 가장 선두에 서다가 서비스 문제로 인해서 고꾸라진다.
그 뒤로 나온 후발주자인 ‘위프라이스’, 그리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쿠폰팡.’에 밀리게 된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굉장히 좋아보이는 제안이었지만, 후발주자들의 제안도 있어서 확실히 답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조만간 술자리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한 번 연락 드리겠습니다.”
진욱의 약속에 한성은 미소를 지으면서 꼭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그 뒤로 다른 회사의 청년 CEO들도 자리를 옮기면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명함을 얻고서 인맥을 만들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진욱은 집에 돌아가면서 과연 여기서 몇 명이 끝까지 같이 갈지는 한 번 봐야겠다.
저 중에서 누구는 버블 이후 타고 올라갔다가 추락할 수도 있고, 유니콘 기업으로 시작해 상장으로 수천억의 대박을 얻을 수도 있다.
“후우~”
“손님? 아직 상록까지는 멀었습니다.”
“아, 네.”
대리운전을 불러서 서울에서 상록까지 가는 동안 진욱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아침에 잘 들어가셨냐?’ 라고 최한성의 문자를 받은 순간 진욱은 다시 많은 생각이 들었다.
***
“그러니까, 인터넷··· 그리고 그 SNS를 통해서 물건을 판다는 거 아니야? 그쪽에서 홍보 다하고, 할인권 뿌리면서.”
“네, 크게 보면 그런 겁니다.”
진욱은 아버지와 누나를 불러서 몬스터티켓에 대한 제안을 보여줬다.
아성사료가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것은 상만의 입장에선 그저 땡큐였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일단 매출이 오르는건 주가 상장을 위해 중요했다.
그리고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을 거 같은데, 왜 바로 승낙을 안 한거야? 아빠 때문에?”
“그것도 있지.”
아성사료의 사장은 상만이고, 아성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진욱과 진영은 어디까지나 국가지원비와 아버지의 지원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환갑의 아버지를 불러서 온라인 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아버지에게 SNS 계정 만들고 사진 올리는 법 까지 알려드렸다.
그리고 상만은 모든 것에 다 OK를 해주는 든든한 아버지지만, 사장인 만큼 저쪽업체에서 얼마나 매출을 떼어가는지, 그리고 계약 조건을 얼마나 붙잡을지를 살피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신나라쇼핑에 옷 납품 때문에 지금 정부 융자 받은건 착실히 갚고 있어.”
이제는 연매출 억대의 수익을 올리는 진영을 보고서 진욱은 잘하고 있다며 엄지를 올렸다.
“조만간 제가 다시 그쪽에 연락하기로 했어요.”
“정확히 언제라고 약속 안잡고?”
“네.”
“왜 그랬어? 삼정가 사람이라면 그 친구도 굉장히 시간 개념에 대해 꼼꼼할텐데···.”
제일식품 납품도 그랬지만, 범 삼정가의 사람들의 철저한 시간 개념을 생각하면, ‘나중에 연락드리겠다.’라는 진욱의 말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욱은 그 물음에 대해 미소를 지었다.
“아쉬운건 저쪽이니 기다려도 될 걸요?”
“뭐?”
진욱은 상만과 진영에게 그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업체입니다. 물론 언론을 타고 배경이 탄탄한 몬스터티켓이 앞서나가겠죠. 하지만 비슷하게 해외 투자나 중기청 지원을 받고 올라오는 다른 업체들이 있습니다.”
“흐음?”
“제가 약속을 뭉뚱그려 말한건 그쪽의 제안도 있을 수 있으니 심사숙고하겠다는 겁니다.”
막말로 삼정가 출신과 언론을 타서 친분을 가졌다고 냅다 계약했다가 더 좋은 조건이 온다면 그때는 난감해진다.
“저희 이미, 현기홈쇼핑하고, 제일홈쇼핑 제안 두고서 그런 일 겪었잖아요?”
“음, 확실히···.”
대기업과의 첫 홈쇼핑 거래라고 현기에게 마구 퍼줬는데,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뒤늦게 제안한 제일 홈쇼핑 제안으로 진짜 큰돈 놓칠뻔한 일이 다시 떠올랐다.
진욱은 그 사실 때문에 이번에 간을 보고 있었다.
물론 그 시간동안 그냥 기다리는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사업 이해를 시켜드리고, 아성사료 내에 있는 간부들에게도 상황을 알리고 말이다.
“그럼 일단 진욱이가 이야기 다 끝나면 그때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자.”
상만이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다면서 일단 아들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말할때였다.
“근데 말이야.”
“응?”
진영이 조용히 손을 들면서 진욱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그러니까 그 소셜 업체 중에 큰 곳인 몬스터티켓 안을 받았는데, 다른곳 제안도 있을수 있으니 기다린다고 했잖아?”
“그렇지.”
“만약에 제안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
“처음부터 몬스터티켓이란 곳 조건이 제일 좋았는데, 굳이 다른 곳 조건 본다고 재다가 타이밍 놓치면 어쩌냐고?”
진영이 의외로 날카로운 질문을 찔렀고, 상만 역시도 눈이 커지면서 아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진욱은 거기에 대해서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또 협상 카드로 쓸 곳이 있어.”
“진짜? 어딘데?”
“요새 가끔 나 불러서 술 같이 먹는 분.”
“???”
진영은 뭔 소리냐면서 머리 위에 물음표를 잔뜩 띄웠지만, 진욱의 ‘믿는 구석’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
그리고 진영이 말한대로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다른 소셜 커머스 업체에 대한 제안은 없었다.
SBC 스페셜이 보도되고, 지역 언론사부터 해서 메이저 신문사까지 아성사료를 찾아와서 꿀이 떨어지는 기사를 써주고, 진욱을 차세대 청년사업가로 포장까지 해주는데도 말이다.
정말 진영이 말한대로 ‘몬티 말고 다른 업체 연락 없으면 어떡해?’라는 말이 슬슬 현실화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욱은 그저 느긋하고 차분했다.
공장에 출근해서 서류 관련 업무를 하고, 요새 조달청은 새로 입찰 나오는 게 없다면서 너스레도 떤다.
그리고 확장한 수제 간식 공장에도 틈틈이 들어와서 자신이 직접 손도 도와주고, 제품에 대한 위생 관리도 철저히 하면서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일과도 끝날 때, 회사 내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생산팀하고, 사무팀 모두 모이는 회식 다들 준비하고 있지?”
며칠 전부터 규모가 늘어난 아성사료를 위해서 상록시 내의 대형 고깃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오늘 메뉴는 뭡니까? 또 돌솥집이인가요?”
“이번엔 갈비로 하려고. 소주 제한 없으니까 맘껏들 먹어!”
“아이고~ 듣던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회식 이야기에 입이 귀에 걸린 김 부장이나 다른 간부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욱은 말없이 자기 자리에서 컴퓨터를 두들기다가 모든 것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음? 하 팀장은 참석 안해?”
그동안 술은 잘 안 마셔도 자리는 참여하던 친구인데 남들보다 일찍 조기 퇴근을 하겠다는 진욱을 보고서 어리둥절한 간부들이 많았다.
하지만 상만이 일어나서 퇴근 허락을 해 주고 미리 말해뒀다.
“아, 오늘은 따로 일 시킬게 있어서 보냈어. 저녁에 또 협상하러 갈 곳 있으니까 그렇게들 알아.”
상만이 ‘얘 지금 내가 시켜서 일하러 가는거다.’라고 말하자 다른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게 아성사료 내에서 회식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진욱은 곧바로 탕비실로 들어가 미리 준비했던 정장으로 갈아입고는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퇴근하고, 차 안에 있는 향수까지 뿌리면서 급하게 가는 곳은 서울 용산 쪽이었다.
지난번 와인 자리를 가진 뒤로 몇 번 불러줘서 갔던 하이얏트 호텔의 와인바.
진욱은 그곳에 도착해 익숙하게 호텔리어들의 안내를 받고서 자리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진욱의 얼굴을 기억하는 바텐더들이 공손히 인사했고, 안에서는 기다리고 있던 진욱의 ‘믿는 구석’ 친구가 반겨줬다.
“어서 와.”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네요.”
“아니야. 맨날 내가 먼저 와서 한 잔 먹고 싶어 온 거라고.”
진욱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인물은 제일식품 사료사업부 이사 용철이었다.
지난번 삼정재단 특수견 훈련센터에서 만난 뒤로 술 약속 한 번 잡았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용철은 익숙하게 진욱이 좋아하는 구대륙산 와인을 주문하고, 과일과 치즈, 카나페 등의 안줏거리를 셋팅해서 그와 자리를 가졌다.
“요새 품질 좋더라. 홈쇼핑 매출도 잘 나오고.”
“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내가 협력사는 잘 골랐어. 현기한테 뺏어올만 했다니까?”
용철의 칭찬에 진욱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받아들이면서 와인 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방송에 대한 것까지 언급했다.
“사진빨 잘 받더라? SBC 스페셜 보고서 깜짝 놀랐어.”
“아, 그거 보셨군요.”
“아는 녀석이 자기 나온다고 꼭 봐달라고 해서 봤는데, 너도 나오더라.”
“아는 분이 있어요?”
“알잖아?”
진욱이 모르는 척 떠봤지만, 용철은 무슨 말 하는 지 알지 않냐면서 피식 웃었다.
“솔직히 나하고는 촌수 애매한데, 일단은 비슷한 나이라서 만난 친구야.”
“지금 말하시는게 제가 확실히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 몬스터티켓의 최한성 대표 말하시는 것 맞죠?”
“아, 그렇다니까?”
몬티와 한성에 대해 언급하자 용철은 바로바로 대답해줬고, 진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전에 나한테도 투자해달라고 엄청나게 말했었는데, 최 대표 지금은 성공했어?”
“하하하.”
진욱은 멋쩍게 웃으면서 반응을 살펴봤다.
그리고 용철은 와인 한 모금을 쭉 들이킨 다음 에멘탈 치즈를 포크로 집어 먹으면서 진욱에게 물었다.
“이왕 말한김에 불러볼까?”
“네?”
“걔 이 근처 살아. 동부이촌동에 있어서 전화하면 바로 달려올걸? 와인도 좋아하고.”
“아, 그러시다면···.”
진욱이 말하자 용철은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그렇게 해서 따로 연락해주겠다는 진욱의 조건은 바로 하이얏트에서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게 됐다.
얼마 후 진짜로 찾아온 몬티의 최성 대표와 이용철 이사, 그리고 진욱까지 셋이 모여서 술 한잔씩 나누며 기념 사진도 찍게 됐다.
그리고 아성사료와 펫푸드, 진영의 펫드레스까지 소셜 커머스로 홍보해주는 업체는 몬스터티켓으로 결정됐다.
처음 만나서 제안 받았을때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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