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38화 (38/200)

38- 계약이 이렇게 됐네요?

진욱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만을 보고 재벌 파워가 확실히 세다고 느꼈다.

그래도 자기 힘으로 중소기업 유통센터 뚫어서 홈쇼핑 사업 알선까지 받아냈는데 상황이 묘하게 되었다.

‘제일하고 합작은 가능한데, 그쪽에서 홈쇼핑 요청하면 쫌 난처한데···.’

당장에 다음 분기부터 아성사료의 펫푸드가 현기홈쇼핑으로 가기로 했는데, 이 상황에서 제일그룹이 끼었다.

범 삼정가와 범 현기가.

수십년간 대한민국 재계를 양분해왔던 두 기업 사이에서 잘못하면 아성사료가 ‘새우등’이 될 수도 있었다.

잠시 후 진욱의 집으로 진성이 헐레벌떡 달려왔고 셋이서 모여 거실에서 긴급 회의가 시작됐다.

“제일그룹에서 명함 받았다고?”

“차로 불러서 술 한 잔 하자고 하더라고.”

진욱은 책상에 명함을 올려놨고, 그사이에 달려온 요키가 킁킁 꺼리는 것을 집어서 무릎 위에 앉혔다.

“이번에 제일그룹에서 후계자들 사업 시작한다고 하더니만 우리쪽하고 연이 닿을 줄은 몰랐다.”

상만 역시도 그동안 상공회의소나 전경련 등을 다니면서 저 멀리서 재벌가 사람 몇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일단은 이 명함으로 언제 그쪽에서 연락이 먼저 올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다른것도 아니고 차 안까지 불러서 주고 한 번 보자고 한 거라면···”

진성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는 듯이 머리를 굴릴 때 진욱이 말했다.

“제일그룹에서 그 이용철 이사라는 사람이 탁 찝어서 수제간식하고 얌푸드에 대해 말했어요.”

“뭐라고 했는데?”

상만이 다급히 묻자 진욱이 대답했다.

“제품 관리 잘하고 있으래요. 조만간 와인 한 잔 하면서 사업 이야기 좀 하자고요.”

“아이고~”

상만은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서 물을 쭉 들이켰다.

일단 아성사료 전체에 호재이긴 한데 현 상황에 대해서 논의할게 많았다.

“당장에 현기홈쇼핑이랑 전속은 어떻게 하죠?”

“우리가 먼저 깨면 위약금 장난 아닌데.”

“위약금만 있는 게 아니에요. 중기유통센터가 알선해준 거라 그 사람들 문제도 있죠.”

“하~ 이거 난감하네?”

확실히 타이밍이 굉장히 미묘했다.

진성도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할지 답이 안 나왔고, 상만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아들이 제일하고 협상을 해서 현기보다 더 좋은 계약을 한 다면 자신이 총대를 메고 위약금을 해결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뭐 하나는 포기할 생각으로 상만과 진성 모두 고민하고 있을 때, 진욱은 피식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떠오른 것이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게 아니네요.”

“음?”

“방법이 뭔데?”

진성과 상만이 바로 시선을 돌리자 진욱은 무릎 위에 올라타 누워있는 요키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일단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계약상 현기홈쇼핑이 먼저 끝내면 중기유통센터에만 최소위약금 내고 그냥 상호해지가 가능한 계약이잖아요.”

“음, 그렇지.”

중소기업 운영에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 당시는 ‘대기업의 갑질’이라는 말도 없었고 그냥 갑이 일방적으로 을의 거래를 취소하면 그냥 상호 해지로 맞춰서 끝나는 상황이 많았다.

‘뭐, 제일도 안그런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건 잘 생각해야지만.’

진욱은 그것을 계산에 담아둔 상태로 상만과 진성에게 말했다.

“일단 내일 아침부터 아성사료에 대해서 지역지 광고 좀 많이 하죠.”

“음? 그거야 계속 하는거잖아?”

“좀 더 언론을 써서요.”

“···뭔 소리야?”

“무슨 소리냐면요.”

***

“어, 그래. 하하하! 축하는 무슨, 홈쇼핑 아직 올라가지도 않았어.”

진욱이 말한 대로 진성과 상만은 여기저기에 알려서 ‘아성이 대기업 하고 거래해서 유통 납품을 하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주변에 뿌렸다.

특히 S마트 납품 이후로 다른 대기업이 아성에 대해 특허기술을 가진 강소기업으로 인정받아 경쟁 중이라는 말을 퍼트리고, 그것에 대해 축하전화를 사무실 안에서 계속 받는 상만이었다.

“그래~ 내가 술 한잔 살게! 잘만 되면 한 잔이 아니라 열 잔도 살게! 하하하하!”

진욱은 옆자리에서 새로운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아버지가 하는 통화를 듣고 피식 웃었다.

서류 업무를 하는 중에도 30분 단위로 아성사료 공식 홈페이지와 펫푸드 공식카페에 ‘큰 건’이 있다면서 슬슬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조만간 ‘아성사료 코스닥 상장’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하자 관심을 가지는 눈이 점점 많아졌다.

‘그 인간 분명히 물 거다. 지금 삘이 오고 있어.’

그렇게 이것을 ‘미끼’로 써서 누군가를 노리고 있을 때, 그날 저녁에 갑자기 진욱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일그룹 기획실 유찬우 팀장이라고 합니다.]

“네? 제일그룹이요?”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온 상황에 진욱은 일단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에 제일식품에서 아성사료와 파트너쉽 논의를 위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번주 시간 조율이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가능은 한데 언제쯤 이야기가 될까요?”

[곧 세부 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일그룹 기획실에서 곧 연락이 있을 거라면서 통화를 마치자 이게 원큐에 일정이 안 잡히는 걸 보고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5분 뒤에 이번엔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다.

명함을 받아 저장해논 번호인데 [제일그룹 이용철]이라는 이름이 떴다.

“네, 여보세요?”

[아, 하 팀장? 나 이용철인데.]

“아, 이사님!”

뭔 상황인가 했더니 기획실이 먼저 떠보고서 바로 보고하자마자 이용철이 다이렉트로 건 연락이었다.

[그룹 내에서 안건은 올렸는데, 뭐 가볍게 한 잔 하는 거 어때요? 이번 주 토요일 신누리 호텔에서.]

“아, 소공동의 신누리 호텔··· 괜찮습니다. 몇 시에 뵈면 될까요?”

[한 여덟시쯤 보자고요.]

“알겠습니다.”

[가볍게 와요 가볍게. 서로 알아갈 단계는 필요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이용철과의 통화는 짧게 끝났고, 진욱은 달력을 보면서 나흘 남은 시간에 손가락으로 셈을 셌다.

‘이 안에만 떡밥을 물면 된다. 이 안에만···.’

진욱은 시간을 재고 있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신제품 연구를 하고, 납품을 위한 아성사료 내 베스트셀러 펫푸드 제품 샘플을 챙기고, 그 사이에 학교도 다니면서 여론 동향도 보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상황에서 진욱은 그 스케줄을 전부 소화해낸 다음 큰 거래를 위해 정장 한 벌을 새로 맞췄다.

“후우-”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진욱은 시계를 보면서 신누리 호텔 내 VIP 라운지에 초대장을 보였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호텔리어가 정중히 인사하며 진욱을 안내했고, 지난 삶에서도 이런 자리는 처음인지라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였다.

‘자~ 한번 가 볼까?’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은 다음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클래식 음악이 인상적인 라운지 바가 드러났다.

가볍게 한 잔 마시는 게 돈 백만 원 나오는 특급 와인바.

그런 곳으로 초대하면서 ‘만나서 이야기나 하자.’라고 말한 사람은 국내의 대재벌 가문의 사람.

“실례합니다. 이사님, 초대손님이 오셨습니다.”

“아 왔어요?”

의외로 이용철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자리까지 셋팅한 다음에 와인 한 잔을 디캔팅하면서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 하 팀장! 앉아요. 앉아!”

이 넓은 라운지 바에 게스트는 진욱과 용철이 전부였다.

그는 오늘의 자리를 위해서 아예 신누리 호텔의 바를 대절하는 스케일을 보여줬다.

“편히 앉아요. 와인 좋아한다고 했나?”

“하하, 네. 입문용으로 조금 배웠습니다.”

“구대륙이랑 신대륙 중 어느쪽을 좋아하시려나?”

“구대륙에 스페인산을 좋아합니다.”

“오케이!”

용철은 바로 박수를 치고 바텐더를 불러서 스페인산 레드와인을 하나 추천했다.

그리고 진욱의 잔이 왔을 때, 서로 건배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성은 오늘도 일을 하려나?”

“아, 네. 납품용 생산분을 채우고 있습니다.”

“하핫, 바쁘겠네. 하긴 그게 좋은거지.”

반말과 존대를 적당히 섞어 쓰면서 말하는 용철은 와인잔을 흔들면서 입술을 축이고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저번에 사료협회에서 우리둘이 사업 이야기 좀 같이 하자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난 이리저리 빙빙 돌리는 거 싫어하니까 바로 말할게요. 지금 아성이 만드는 수제 간식 사업. 그거 완~전 내 취향이야.”

“!”

처음부터 아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얌 푸드’라고 PPL용으로 쓴 브랜드를 언급한 것을 봐서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식품사업부에서 사료부서 맡을 때, 이쪽 파트를 하나하나 살펴봤는데 부가가치가 가장 좋은게 이거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반려동물 시장을 생각하면 앞으로 성장세도 안정적으로 올라갈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쪽으로 와 줘요.”

“하하, 네. 그건 사장이신 저희 아버지께서···.”

“아~ 아~ 다 알고 있어요. 실질적으로 만든 건 하 팀장이라는 거.”

용철은 빙긋 웃으면서 안주로 카나페 하나를 우물거린 다음 말했다.

“지금 아성이 홈쇼핑 현기하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것까지 알고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니 진욱은 여기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좋아. 그럼 던져보자!’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진욱은 곧바로 돈 이야기를 꺼냈다.

“현기에서 홈쇼핑 수익에 대한 매출 수수료가 42%입니다.”

홈쇼핑을 낀 중소기업이라면 어쩔수 없이 관행적으로 납품하는 수수료 40% 이상.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용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상생을 위해 만난 건데, 우린 10% 까죠. 연계 수수료 32퍼.”

“!?”

그 정도면 먼 훗날 중기청 산하의 공영홈쇼핑의 25%를 제하면 대기업중에선 가장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5대 홈쇼핑 대기업의 연계편성 수수료가 평균 40% 정도인데, 정말 파격적인 거였다.

“조건은 3년 전속. 거기에 제일그룹 산하에 방송국 JVN에 드라마 PPL도 준비할게.”

“PPL이라면··· 홈쇼핑과 연계방송도 하는 겁니까?”

“잘 아네.”

“굉장히··· 파격적인 조건이군요.”

“나 이 사업 완전 꽂혔다고 이야기 했잖아?”

그렇다 하더라도 이게 파격적인건 확실했다.

이 정도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수준이었고, 초면에 만나서 술 한잔 하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진욱이 생각하고 있을 때, 용철은 술잔을 들었다.

“아직도 고민할게 있어?”

“또 저희에게 원하시는게 있나요?”

“있지. 제일홈쇼핑 계약 외에 우리쪽 사료 ODM좀 해줘.”

아성사료의 특허를 가지고 재품설계를 위탁하겠다는 말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홈쇼핑은 구실이고, 이걸 원했던 것 같았다.

납품가는 아버지가 합리적인 선에서 정할테고 아성사료의 코스닥 상장을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제일을 통해 자금흐름도 원활해질 것이다.

한 마디로 이건 거절하는 사람이 바보인 조건이었다.

“이 정도면 현기 손절할만 하지 않아요?”

용철의 제안에 진욱은 와인잔을 쭉 비우고서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이 계약을 바로 아버지께 이야기 드리고 협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오케이~”

“대신 제가 부탁드릴게 하나 있습니다.”

“응~ 응~ 뭐든 말해봐.”

“화요일날 협상할 수 있겠습니까?”

용철은 그 말을 듣고서 대수롭지 않게 승낙했다.

“그게 뭐 어렵다고~”

***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됐을 때, 아침 일찍 아성사료 사무실에 팩스 하나가 날아왔다.

“하, 하하하··· 이런~”

허탈해서 웃음이 나오는 김 부장.

그는 현기홈쇼핑에서 보낸 [아성사료와의 홈쇼핑 전속계약 상호합의 파기서]를 보냈다.

말이 상호합의지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는다는 말이었다.

그 팩스에 모두가 멘붕에 빠져 있을 때, 진욱은 실실 웃으면서 인터넷 포털 뉴스를 보고 있었다.

“물었어~ 미끼를 물었다고~”

[반려동물 1천만 시대! 현기홈쇼핑 우성사료와 납품 계약]

[최근 YN바이오와 합병을 한 우성사료는 개껌과 스틱형 사료 등의 반려동물 사업에 대한 계약을 했으며···]

아성사료가 뭘 할려고 하면 기를 쓰고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고 그 파이를 전부 처먹으려는 회사. 그 이름하여 YN바이오.

얼마 전부터 ‘아성이 현기홈쇼핑하고 계약 준비를 한다~’ 라는 미끼를 뿌렸을 때, YN은 지난번 대형마트 납품 새치기를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현기와 새치기 협상을 시도했다.

중기유통센터를 껴야 해서 적당한 사료 업체를 하나 인수하고, 우회해서 중기청 지원을 받으며 말이다.

“응~ 현기홈쇼핑 수수료 폭탄 맞아봐.”

진욱은 100원 팔아 이거저거 떼고 40원 겨우 벌까말까한 수수료 계약 가지고 잘해보라면서 모니터 너머의 YN바이오라는 이름에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을 상쾌하게 제일식품 사료사업부에서 내건 제안서를 출력해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었다.

이후 용철이 약속대로 화요일 면담을 연락해서 YN과 현기의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제일홈쇼핑과 아성사료의 협상이 들어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이영남이 현기에 호구 잡혔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계약서 잉크는 마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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