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일인다역의 사장아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팀장님! 저희 지금 막 준비했습니다!”
아성사료 사무실에서 김 부장이 뭔가를 다급하게 말하다가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자 바로 수화기를 집어 던졌다.
콰앙!
“이런 시발 것들이 진짜!”
김 부장이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하면서 헐크가 된 모습에 사무실 안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리고 보다 못한 상만이 그를 불렀다.
“김 부장! 아, 거 왜 소리를 그렇게 지르고 그래?”
“죄송합니다. 사장님, 하지만···.”
“아이고, 됐어! 됐어! 나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와.”
“후···.”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가는 김 부장을 보고 강의 마치고 늦게 출근한 진욱은 무슨 상황이 생긴건지 아버지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뭐겠냐? 납품 문제 때문에 그러지.”
“납품이요?”
상만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신도 성질 뻗쳐 미칠 것 같은 상황에 대해 말했다.
“태영백화점 납품 취소됐어.”
“아니 그게··· 왜요?”
태영백화점은 서울 사당에 위치한 지역 백화점이었다.
지역백화점이지만, 서울 한복판 동작구 일대에 진욱과 진영에게 있어서는 1호점인 곳, 게다가 유동량과 인근 유통업을 전부 독점하는 핵심 지역이었다.
현재 아성사료의 체급으로는 대형 브랜드 백화점 납품을 앞두고 빌드업으로 생각한 곳이었는데, 제대로 물 먹은 일이었다.
“이유가 뭐래요? 설마 품질 문제로 물고 늘어졌어요?”
백화점에 납품을 하면 MD들이 소규모 기업들을 상대로 트집을 잡아 ‘큰 판매가 안 될 것 같다.’, ‘백화점 내에 올리기엔 품질이 안 좋다.’, ‘기업 이미지 평판이 안 좋다.’ 라는 갖은 트집을 잡아서 단가를 후려치는 갑질을 해대서 그런 이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온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츄르펫인가 하는 거기 납품으로 선점한단다.”
“네? 거기 떨어졌다면서요?”
“정확히는 이영남이 그놈 YN때 떨어진거지, 한국 마쓰모토 이름으로 다시 납품해서 그쪽으로 변경한단다.”
“···후.”
양아치 같은 짓이었다.
이미 유통업 입찰에서 떨어진 회사가 대기업과 손을 잡은 다음에 다시 재입찰을 해서 들어온다.
원래 입찰기간을 무시한 상황에서 갑작스런 난입이었고, 이거에 대해 FM적으로 간다면 공정위에 따질 수도 있었다.
“제가 공정위 찌를 까요?”
“아이고, 그런 짓 했다간 큰일 나?”
“아, 다른 곳도 아니고, 태양백화점 정도이면 그냥 찔러도 될 것 같은데···”
“그러는 우리도 체급이 될 것 같냐?”
“···.”
가슴 아프게도 이제 직원 100명대의 중소기업 공장이 들이받기에는 지역 백화점 하나라도 상대하기에는 버거웠다.
이 상황에서 아성이 태양을 상대로 공정위에 찌른다면, 그쪽도 조사는 들어가겠지만, 그래봤자 ‘재입찰 권유’나 ‘엄중경고’ 수준.
머리를 식히고서 생각을 하니 공무원이었던 자신이 생각해도 그다지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았다.
오히려 쪼끄만 곳이라고 해도 백화점 협회에 정회원인 곳이라 들쑤시면 더 귀찮아질 것이다.
진욱은 PF론으로 대출을 받은 뒤로 이런 상황이 생겨서 아버지하고 논의했던 사업 중 하나가 어그러진 것에 머리를 감쌌다.
“일단 백화점 납품은 당장엔 안 될 것 같다.”
“별수 없죠. 그럼 다음 수를 써야겠네요.”
“일단 큰집에 말한건 어떻게 하게?”
“네, 그건 제가 해결할게요.”
진욱은 그것을 두고서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다음 준비를 했다.
“태양보다 더 좋은 매출이 나오게 해주십시오!”
진욱은 아성펫푸드의 셋방이었던 사당점을 옮겨서 새로운 지점을 오픈했다.
100평 규모의 1층 상가를 통째로 대절해서 ‘신사당점’ 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한 매장은 사전 인터넷 홍보에 이어 직원들을 통해 판촉상품을 나눠주고, 상록본점을 맡았던 지점장 김은희에게 관리를 맡겼다.
“잘 맡아주세요.”
“제가 이렇게 큰 지점을···.”
“아, 왜 오픈때 약한 소리를 하고 그러십니까? 더도 말고 상록점 매출 이상만 올려주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맞벌이 용의 소일거리로 시작한 지자체 캐셔였지만, 이제는 규모가 자라서 초창기에 고용한 주부들이 지점장급으로 올라가 핵심 인원들이 되었다.
“이번에 고용되신분들도 동작구 주민회관에서 청년 취업반으로 오신 30대 주부님들이에요. 아마 이야기가 잘 될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다들 통솔해서 잘 운영할게요.”
초창기부터 지자체 취업교육을 통해서 들어온 아주머니들 장사.
거기에 맞춰서 진욱은 하나 더 준비하고 있었다.
***
“진욱아. ‘피플인’쪽 연락왔어.”
“어떻게 되겠대?”
“이번에 메인 배너로 올려주고, 그쪽에서 신상 등록한 쪽으로 인바운드 돌리겠대.”
“오케이~ 그럼 됐어.”
진욱은 진성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의 자리로 가서 피플인 사이트를 살펴봤다.
구인/구직 사이트로 유명한 피플인에서 아성사료가 등록되어있었고, 대다수는 ‘40대 이상의 여성사원’과 ‘수공업 생산직 전문경력’의 남직원을 위주로 뽑았다.
“생산직은 그렇다 쳐도 2010년 얼마 안남았는데 방문판매라니···.”
“요새가 더 잘 먹힐걸?”
진욱이 이번에 피플인에 요청한 것은 ‘베테랑 방문판매 사원’들의 고용이었다.
주로 유제품, 건강식품 등을 팔면서 인맥위주로 하는 아주머니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이런 방판이 진짜배기로 먹히는 것은 화장품 사업이었다.
‘참조은 화장품’, ‘아몰레드 화학’, ‘리버플레이츠’등의 화장품 업체에서 가방에 담긴 제품과 PDA폰 하나를 들고 전국을 누비면서 판매하는 아줌마들 이미지가 딱 떠오른다.
진욱은 그런 방판 사원들을 고용해 수제간식 판매 사업을 주문했다.
‘사람도 아니고 반려동물용 음식인데 그게 팔리겠냐?’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팔릴 거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어차피 이제는 입소문 장사야. 저쪽에서 대형 유통매장 잠식하고, 미디어로 광고하면, 우리는 반대로 가는거야.”
“후우, 그건 그렇지.”
백화점 입찰도 뺏기고, 대형마트도 S마트 겨우 하나 잡고, H마트나 로타 마트에 마쓰모토에게 밀려 뺏겼다.
이 상황에서 진욱은 PF론으로 얻은 융자로 단독 매장을 늘리는데 집중했고, 거기에 따라 오프라인 판매 직원들 비율을 높여 물밑에서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형, 나 내일부터 출장이야. 아버지에게 얘기 해 뒀어.”
“아, 신제품 구매하러 간다고 했지?”
“판매처 쫙 깔고 있으니 생산량도 늘려야지.”
유통망 확충, 직원 추가 고용, 그다음으로 진욱이 해야 할 것은 생산량 증가였다.
***
부우우우웅-
끼익- 끼익-
삐-삐삐삐삐삐-!!!
“자, 네~ 이쪽으로요. 이쪽! 거기 조심하고··· 됐어요!”
쿠웅-
주말을 맞이해서 아성사료 안에는 대형트럭에 실려 크레인으로 내려오는 기계들이 있었다.
식품회사의 대규모 공업기계 전문업체 신영정공에서 가져온 다목적 식품 건조기.
대당 300만원 짜리로, 기존에 아성사료에서 쓰는 수제간식 식품 건조기보다 최신형이면서 시간 단축이 가능한 제품으로 열 대를 한꺼번에 구매했다.
그것을 모두 수제간식 전문 공장에 배치한 다음, 지금까지 쓰던 식품 건조기는 용도를 변경해서 ‘신제품 연구용’으로 돌려 버리고 이 10대의 건조기로 쓸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버스를 타고 출근한 아성사료 수제간식 파트의 직원들은 달라진 공장 분위기에 입이 벌어졌다.
“세상에, 이게 다 뭐에요?”
기존에 소규모 수제공방과 다를 바 없던 아성 펫푸드가 본격적으로 대량생산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번에 새로 고용된 직원들을 앞두고서 기존의 직원들은 신형 기계를 한 번 돌려보고 오후부터 생산을 시작해서 기존의 배 이상으로 온 원자재들을 아주 손쉽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생산라인이 늘어나는대로 매장을 늘려서 물량을 계속 투입시켰다.
***
“이번에 오픈할 매장 리스트.”
“분당에 수원에, 대구에, 해운대, 광주··· 많이도 오픈하네?”
진욱은 PF로 융자한 금액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일단 받은 돈을 원 없이 써 보면서 모자랄 시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래도 새로 오픈한 매장 수익은 괜찮네?”
“목 좋은 자리만 골라서 오픈한거니까.”
실제로 진욱은 그것을 위해서 직접 발로 뛰면서 일일이 시장 조사를 했었다.
온라인에서도 반응을 보고, 기존에 있는 매장과 온라인 배송 사업을 볼 때 평균적으로 ‘어느 지역이 주문량이 많은가?’에 대해서 도표를 만들어 하나하나 알아보고 선별한 자리들이었다.
00년대 후반 이후로 대형프랜차이즈의 시대가 되는 가운데 반려동물 관련 식품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세를 타고 움직이게 되었다.
“초 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마쓰모토 소식은 들었냐?”
“거기도 뭐··· 단독 매장 준비한다며?”
“그러니까 말이야.”
***
워커힐 호텔 커피숍에서 YN과 마쓰모토간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성이요? 아이고~ 그런 코딱지만 한 좋소 따위를 저희가 신경 쓸 게 있습니까?”
마쓰모토의 등에 탄 이후 마음껏 투자받으면서 마트 매장 납품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 동물원 사업 납품으로 인해 물을 먹었지만, 그것보다 더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지금 같아서는 재벌이 부럽지 않았다.
“그래도 국내에서는 그 아성 펫푸드가 제일 잘 나간다고 들었는데요?”
“그놈들 매출 300억 될까 말까한 녀석들입니다. 게다가 시장 선점해서 반짝인기 누리는 거지요.”
“뭐, 일단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이 사장님에게 맡기겠습니다.”
“하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영남은 입이 귀에 걸린채로 악수를 나누며 대화를 마쳤고, 호텔 카페로 돌아온 후지사와 팀장은 조용히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잘 되겠나?]
“5년 안에 매출이익 1억불 선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일본 회사’라는 국민감정으로 인해서 몇 번이나 진출하려고 했다가 물을 먹었던 마쓰모토 그룹이었지만, 일단 순조롭게 안착한 뒤로는 공격적으로 나설 예정이었다.
본사에 보고하기로도 한국 내에서 뿌리만 잘 내리면 이 시장에서 1천억대 전후 매출은 충분히 노릴 수 있는 곳이라 예상했고, 거기에 대해 지금의 한국 사료 시장은 가축용 사료가 주력인 회사가 전부인 이런 고급 반려동물 시장에 대해서는 무주공산에 가까웠다.
그 상황에서 독립매장과 프랜차이즈를 준비해 내년까지 30개 지점을 오픈하고, 이후 대형유통 시장을 쓸어담을 마쓰모토의 움직임엔 거리낌이 없었다.
[협력업체는?]
“일단 3년 계약 끝나면 그냥 처리하면 그만 아닙니까? 인수 이후 우회상장으로 법인 변경도 가능할 것입니다.”
사료협회 내에 있는 YN이라는 회사 덕분에 잘 진출하고, 주식회사 코스닥 상장이 진행되는 그 곳을 인수한 다음 합작법인을 단독 국내법인으로 전환하면 게임 끝.
교두보의 가치는 딱 거기까지였다.
***
“백화점 납품 다시 시작하려고요.”
“뭐? 태양 말고 다른 곳으로?”
“네, 그렇습니다~”
마쓰모토로 인해서 물을 제대로 먹었던 아성사료인데, 진욱이 간부 회의에서 백화점 제품 납품을 다시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메이저 백화점을 노리는 건 힘들텐데···.”
김 부장이 머리를 감싸면서 한숨을 쉬고, 다른 직원들 역시도 우려했다.
그들 역시도 진욱을 대신해서 많은 백화점 납품을 준비했지만, 콧대 센 MD들을 설득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이번에 제가 괜찮은 곳을 마련했어요. 아직 지역백화점이지만 말이지만요.”
“어, 지역백화점?”
“참고로 태양보다 더 크고 서울에 있는 곳입니다.”
“아니, 그런데가 아직 남아있었어?”
상만은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고, 진욱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이 납품 협상할 곳에 대해 말했다.
“어디냐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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