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공무원 일처리는 내가 잘알지.
재수가 좋으면 자빠져도 처녀 치마폭에 안긴다는 말이 있다.
모 영화에서 검사 역할 하는 배우가 맛깔나게 소화했던 그 속담대로 정부 주도의 연어 양식 사업에서 생사료에 대한 유해성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혀 의도한게 아니었는데, 타이밍 적절하게 나온 뉴스였고 진욱은 그 상황에서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이 기회에 노 한 번 더 저을까요?”
“신문사 광고 내자고?”
“이런 걸 보도 해야 농수산식품쪽도 알죠.”
“그래, 나쁘지 않은 방법 같구나.”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할게 있어요.”
“뭔데 그러냐?”
“제가 PPT 가지고 과천 좀 다녀와야겠네요.”
“!”
처음에는 농수산식품부 위주만 생각했는데, 잘하면 환경부가 자신들을 토스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얼마 후 과천시 정부청사에 도착한 진욱은 그곳을 보면서 추억에 잠겼다.
“아, 진짜 오랜만에 오네.”
과천, 원주, 대전, 세종 등으로 많은 자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거쳐갔던 곳 중 하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이었다.
진욱은 자신이 PPT를 만들고, 적절하게 있던 농수산업에 관한 환경 공모 아이디어 신청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환경부 산하 공무원들 앞에서 진욱이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할 것이었다.
“환경부 빠꼼이들 반응이야 눈감고도 알지 뭐.”
이 당시 탈황사업이다 탈질사업이다, 친환경 생산이다 뭐다 하면서 화학 제품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며 규제를 하고, 알게 모르게 뒷거래도 많이 하던 곳이었다.
물론 진욱이 그런 일에 엮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합당한 상황에서 들이받아 보기로 하고 일단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신분증을 내밀고, 방문 계획에 대해 말한 다음 전화를 하자 얼마 안 있어서 바로 한 명이 내려왔다.
“하진욱씨?”
“아, 네.”
“환경정책센터의 김하윤이라고 합니다.”
“아성사료의 하진욱입니다.”
서로 명함을 공유하자 어려 보이는데 과장 직함을 단 진욱을 보는 김하윤.
그리고 30대 전후반으로 보이는데 6급 주무관에 계장급이란걸 확인한 진욱.
‘아마 과장이나 국장급 인물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그게 아니라면 적당히 7~6급의 계장급 선에서 PPT 보고를 받은 다음 그것을 위로 올리는 시스템일 수도 있다.
어느쪽이 됐던 일단 실무진한테 이 것을 알리기 위해 준비한 자료였고, 진욱은 환경부 산하의 회의실을 안내받으면서 원래도 자주 다녔던 그 익숙한 건물 안을 누볐다.
“과장님. 아성사료에서 왔습니다.”
“아, 그래?”
안에서 김 계장이 말하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이 지긋한 공무원이 일어나 진욱에게 다가왔다.
“어서오세요. 환경정책팀 과장 유대근이라고 합니다.”
“아성사료의 하진욱입니다.”
역시나 국가직 과장급 인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 상황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컴퓨터와 빔프로젝터가 대기해 있었다.
그 외에 주변을 둘러봤을 때, 40대에서 50대 나잇대의 공무원이 있는 것을 봐서 5급 한 명에 휘하 팀원들이 모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인사 이후 진욱은 관련 자료를 팜플렛처럼 돌린 다음 컴퓨터를 쓰면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밑에 공무원들이 바로 마이크를 설치하고,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도와줬고, 유 과장은 ‘어디 한 번 해 봐라.’ 식으로 실적이 될지 아닐지를 판단 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럼 지금부터, 아성사료에서 개발한 친환경 사료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 미리 준비한 양복 안의 레이저 포인터.
그리고 공무원들이 좋아할만한 글씨체와 정론적인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진욱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사료에 대해 막힘이 없었다.
먼저 며칠전 보도했던 생사료로 인한 어자원 고갈이 우려된다는 보도를 관련자료로 보였다.
“또한 해외에서는 이로 인해 환경 오염과 어자원 고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생사료에서 배합사료 위주로 돌리는 법안을 내놓은 나라가 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은···.”
해외 선진국의 예시.
그리고 국내의 현실.
마지막으로 그런 상황에서 아성사료가 처음으로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한 양식장용 배합사료 개발.
거기에 실험 관련으로 이천의 양어장에서 무지개송어를 대상으로 한 생사료와 배합사료를 준 두 가지의 사례까지 모두 담았다.
처음에는 중소기업에 그저 그런 국가지원 받고 싶어서 하는 약팔이라고 생각했는데, 환경부 공무원들은 그 프레젠테이션에 계속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유 과장이 손을 들었다.
“네, 과장님.”
“아성사료에서 직접 만든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제품을... 어떻게 개발하게 된 거죠?”
그러자 진욱은 다른 유관기관이지만, 이럴 때 국가직의 의리를 한 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이번 농림수산식품부의 ‘대서양연어 양식사업’에 사료 납품을 위해 단독 개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농수산부.”
“해양수산부가 합쳐지면서 그쪽으로 넘어갔죠? 동해수산연구소.”
“으음, 맞네요.”
환경부 공무원들이 서로 대화를 할 때 유 과장이 다시 물었다.
“그럼 농수산식품부 입찰할 상품을 가지고 여기에 찾아왔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사료 생산을 하는 회사이지만,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을 보고 인증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흐으음.”
“농수산식품부의 어분 50% 이상에 오메가3와 철분, 비타민 등의 입찰조건에는 충족한 상태입니다. 그 상황에서 이번에 환경오염 문제가 된 어분 생사료를 줄이는 쪽에서 환경부에도 관련 사업에 공모를 한 겁니다.”
“그렇군요.”
유 과장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옆에 있는 김 계장에게 뭔가를 속삭였고, 그는 PPT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욱은 그걸 보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지금 누구 실적으로 할지 이전투구 중인거구만.’
환경부가 이 떡밥을 무는 순간, 아성에서 만든 배합사료는 그쪽의 공적이 되면서 농수산식품부에 행세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여기서 농수산식품부가 이 사실을 안다면, 바로 먼저 와서 단독 입찰로 아성사료를 픽하거나 조달청을 통해 이번 양식장 사료 입찰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볼 건 없었고, 잘하면 연말에 아성사료의 이름으로 국가의 표창 하나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상입니다. 더 질문 있으십니까?”
진욱은 마지막으로 물었고, 유 과장이 대략적인 것을 물어서 나머지는 수첩을 통해서 적은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마치자 박수 갈채가 이어졌고, 불이 켜졌다.
이대로 발표 이후 돌아갈지, 아니면 온 김에 농림수산식품부도 한 번 들릴지 생각했는데, 그 이전에 김 계장이 다시 진욱을 불렀다.
그리고 회의실에서 모두가 나갈 때 김 계장은 남아서 진욱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배합사료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 건에 대해서 저희 환경부하고도 같이 협업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네?”
진욱은 미끼를 물었다고 쾌재를 불렀지만, 짐짓 모르는 척 되물었다.
“이번에 저희가 환경 사업으로 공장들에 대한 친환경 사례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배합사료는 생사료 대비 환경적인 대안이 될 수 있으니 이것을 부처에 올리려고 합니다.”
확실히 정책통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좋은 실적이 될 것이다.
“저희야 뭐, 농수산식품부 입찰에만 문제 없다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도 저희가 그쪽 부서하고 미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 말은 아성사료가 이번 연어양식장 사료 사업에서 입찰될 확률이 200%로 높아진다는 말이었다.
“또한 이번 아이디어에 대해서 또 다른 정부 부처와 협업한 곳이 있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김 계장의 물음에 진욱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일단 저희 아성사료가 중기청의 지원을 받고 있고, 식약청 인증을 받은 상태입니다.”
“식약청은 그렇게 넘어갔고··· 중기청 지원을 받으시는 기업이었군요.”
이렇게 되면 2중으로 국가 지원을 받는 상황이 되겠지만, 워낙 아이디어가 좋은데다가 해외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건이어서 환경부 입장에서는 그냥 진행할만 했다.
“다음 번에 정식으로 저희가 기획안을 올리겠습니다. 다음에는 저희가 아성사료를 시찰하고 사장님을 직접 뵐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사장님이 저희 아버지시거든요.”
“아, 그렇군요.”
순간 ‘어쩐지 과장치곤 젊어보이더라.’ 하는 말을 눈으로 하는 것 같은 김 계장이었다.
어쨌건 환경부와의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졌고, 과거 지자체 쪽에서도 환경시찰에서 A급 이상의 인증을 받은 아성사료를 국가직에서 이름을 알리는 기회가 되어 진욱은 모든게 다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면서 다음 시찰에 대한 약속을 아버지에게 바로 알렸고, 돌아오자마자 아성사료 간부들이 모두 기다리며 진욱을 맞이했다.
***
환경부 공무원 시찰단이 찾아온 아성사료.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위생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성펫푸드 용의 수제간식 수공업 건물과 컨베어로 생산하는 사료생산 설비를 보고서 그들의 손에 엄지가 올라갔다.
지방직 사람들처럼 언론보도 때문에 슬금슬금 온 것도 아니고, 인맥 0에서 시작하는 국가직의 시찰이었지만, 진욱이 있는 아성사료가 뭔가 걸릴게 없었다.
이쪽 바닥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아성사료는 직접 광고비를 낼 필요 없이 국가 오피셜로 호재가 떴다.
[친환경 사료를 만든다! 상록시의 한 공장의 대담한 선언!]
[해외 사례를 참조해 어분의 배합사료를 국내에서도 만든다!]
[환경부 장관 ‘친환경 생산에 대한 공장 적극 지원할 것’]
국가가 알아서 정책을 발표하고, 그 대표 케이스로 ‘아성사료’라는 이름이 다른 유수의 기업들 중에서 떡하니 나오니 그야말로 홍보효과 만점이었다.
정치색을 떠나 쥬신일보, 한누리신문, 연합일보 등의 신문사들이 기사 한 편씩 써 줬고, 거기에 맞춰 상만이 따로 진욱의 요청을 듣고 올린 컬러 지면 광고까지 올라오자 바로 공장 전화통에 불이 났다.
“네, 화천 산천어 양식장이요?”
“하하하, 저희가 지금 이제 입찰용으로 생산해서 그 정도로 대량을··· 네~ 네~ 물론 조율 가능하죠.”
“하하하, 김 사장! 알았어! 자네 몫은 따로 떼 줄게. 저번에도 많이 떼어 갔잖아?”
사장이고 부장이고 대리고 할 것 없이 죄다 전화를 받으면서 전국 각지의 양어장에서 배합사료 문의가 폭주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농림수산식품부가 입찰 결과를 말하는게 굉장한 뒷북이 되고, 환경부 지원을 받는 친환경 사료 인정이라고 해서 너나할 것 없이 마케팅으로 써먹는 회사들의 주문이 폭주했다.
그리고 눈치빠른 다른 기업들은 재빨리 ‘우리들도 배합사료 사업 시작한다!’ 라고 발표했지만, 일단 연구 시작해서 아성사료의 특허를 제끼고 새로 제품을 만드는데는 1년이 걸릴 것이다.
아성사료의 규모와 사장 아들이라는 직책을 이용해서 진욱이 발빠르게 움직인 것이었지, 다른 회사들은 엄연히 절차를 따지면서 시간을 계속 잡아먹을테니 말이다.
진욱은 그 상황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앞으로도 전화가 올 때, 그는 바로 수화기를 올렸다.
“네, 아성사료입니다. 아, 배합사료 문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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