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자본금 마련했다.
진성은 쉽게 진욱의 동업을 승낙했다.
그리고 진욱은 이것을 확실하게 하려면 잔을 채우며 사촌형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형~ 요새는 구두계약도 법적 효력 있다는 거 알지?”
“하하하- 내가 사촌한테 설마 구라를 치겠냐?”
두 사촌 형제는 잔을 나눈 다음에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택시를 잡고서 헤어졌다.
다음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진욱은 오늘 강의는 째기로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에게 ‘아파서 못 가겠다.’라고 말하면서 오늘 수업 자료만 요청했다.
“아~ 속이야. 해장할 것 좀 시켜야겠다.”
진욱은 원룸 안에서 냉장고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보고서 짬뽕에다가 군만두를 시켰다.
그리고 집 안에서 속을 달래면서 어제 있었던 진성과의 이야기를 두고 생각했다.
“어디 보자, 일단은 영끌해서 대출부터 알아봐야겠는데···.”
넓게 보면 사업자금이지만, 좁게 보면 한탕을 위해서 쓸 투자금액이었다.
일단 그동안 전생의 진욱이 모아놓은 정기예금, 그리고 부모님에게 지원받은 금액으로 투자했던 주식들.
시드머니 800으로 시작했던 금액이 반년 만에 10루타를 넘어서 억대에 가까운 돈이 생겼다.
거기에 카드론 한도 5천까지 확인하자 확실히 중소기업 사장 아들이라고 해도 이 나이에 엄청난 목돈이 생겼다.
“진짜 목돈이 너무 쉽게 모였어. 옛날엔 오피스텔 보증금 모으는데도 10년 걸렸는데···.”
물론 진욱의 씀씀이가 헤퍼서라기보단 전생 부모의 뒷바라지까지 하면서 돈 샐 곳이 너무 많아서 생긴 일이지만 말이다.
빈 그릇 치우면서 하나하나 따져보니 억 단위는 빠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큰 한 방을 위해서 준비하는 가운데, 진욱은 일단 출근을 위해 사당역으로 향했다.
***
“안 해.”
“누나한테도 좋은 기회일 텐데?”
“저기 진욱아, 누나는 말이지. 그런 투자를 정~말 싫어한단다. 특히 집안사람들 엮인 문제에 돈 문제면 더!”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주변에서 거부에 실패한 적이 없는 전직 대기업 증권종사자 사촌의 제안이라고 해도 자기가 가진 돈을 다 투자해서 미국 주식 처박는데 건다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여기에 투자하고, 제대로 법인 만들어서 진성이 형이랑 동업하기로 했어.”
“그거는··· 좀 생각해 볼게.”
“누나 3년 동안은 청년 창업지원 원금 갚으면 바로 졸업해서 합류할 수 있어.”
당장에가 아니라 3년의 기간을 줬으니 선택은 진영이 하면 되는 거였다.
3년 동안은 진욱과 사촌 진성이 얼마나 성공하는지 보고 그때 합류할지 독자적으로 갈지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 나간 투자를 준비하면서도 진욱은 손님맞이에 열중했다.
짤랑-
“어서오세요.”
“저번에 산 그 오리 목뼈 간식 보러왔는데요.”
“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강아지 옷이 아닌 단골로 찾아온 수제간식점 손님이었고, 친절하게 응대하는 진욱이었다.
***
[다음 소식입니다. 계속되는 미국 증시 추락에 미국 AIG사가 본사 매각의사를 밝혔습니다.]
[미국 월가에서는 연방정부에게 지원책을 요청하고 있다고 하며···]
[네, 나날이 안좋아지는 미국 증시 상황에 국내 증시 또한 휘청이고 있습니다.]
[재정경제부는 고환율 정책에 대해 문제는 없으며, 1달러가 1700원대를 돌파한 가운데···]
안에서는 촛불시위에, 밖에서는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로 휘청거리는 상황이었다.
10년 전 1998년 IMF 금융위기를 겪었던 한국이었지만, 2008년에 다시 한번 코스피 반토막으로 인해 국내 외환보유고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1년차 정부가 여기저기 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리고 진욱은 과거 한 번 겪었던 세월을 다시 한 번 겪으면서··· 웃고 있었다.
“진짜 시나리오 대로 가고 있네.”
대출까지 여기저기 손대서 수억 원을 쏟아부었던 미국 증시 인버스 펀드 소지자 진욱.
그리고 집안의 수천억 재산을 컨트롤 하면서, 미국에 투자한 해외주식과 부동산을 다 빼버리고 인버스에 올인한 진성.
그들은 각자의 집에서 컴퓨터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다른 거래에 대해서도 손을 댔다.
가상화폐 코인이 있기전에 인생 한방 노리면서 주변에서 많이 했던 파생상품, 선물거래.
공무원 시절에 이거 하다가 말아먹은 동기나 선배, 혹은 그렇게 망해서 드러누워서 은닉 자산 추적하던 시절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1년만 더 살아있었다면 내가 금감원에서 당시에···.’
참고로 이 당시에는 해외 투자에 대한 세금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야말로 아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9월이 되어 2학기가 시작될 때 진욱의 모습은 동기들이 놀랄 정도였다.
“어, 진욱이형?”
“어머! 오빠!”
불과 6개월만에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살 좀 빠진 거야 입학 초기부터 계속 운동을 해서 그렇다고 쳤다.
그리고 비싼 옷 입고 다니는 거야 집이 좀 살고, 사업을 한다길래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지금의 진욱의 모습은 1학기 때보다 더 엄청났다.
“아~ 다들 반가워.”
평소 입어보고 싶었던 백화점 명품관에서 산 이태리제 고급 정장.
거기에 새로 맞춘 시계는 파텍 필립의 브랜드였고, 캅스 브로킷에 넥타이 핀까지 전부 명품으로 도배한 몸이었다.
“형, 어디 파티 나가요?”
비슷한 나이대의 학생들과 전혀 다른 튀는 인상의 진욱을 보고 하나둘씩 물어보는 동기들이었다.
진욱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대답했다.
“강의 끝나고 사업 논의할 곳이 있어서.”
“어머, 사당의 그 가게요?”
“그렇지!”
평소 그 수제간식점이 잘 된다는 건 알았고, 몇몇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는 아이들은 직접 들려서 싼 값에 서비스도 많이 받아서 애용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재벌을 방불케 하는 드레스 코드를 보고 ‘이 사람 돈 엄청 벌었나보구나?’ 라고 모두 직감했다.
***
수업을 마친 뒤로 진욱은 동기들과 같이 나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니까 방학중에 주식이랑 펀드를 했다고요?”
“사촌형이 좋은 정보를 줬고, 나도 영끌좀 했지.”
“얼마나 번 거에요?”
동기들의 물음에 진욱은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대박! 3천이요?”
“미쳤냐? 당연히 3억이겠지.”
그러자 진욱이 정정해줬다.
“아니야. 30억이야.”
“!?”
“옷사고, 차사고, 부모님 드린 우수리 떼고···.”
영끌로 한 리버스 펀드는 진욱에게 달러로 수백만을 안겨줬고, 고환율 때 한국 돈을 달러로 환전하고, 받을때도 다시 원으로 바꾼 순간 진욱에게 떨어진 몫이었다.
그리고 이 30억이 진욱의 본격적인 사업 2차의 자본금이 될 것이다.
“나중에 내가 한 턱 쏠게.”
삐빅-
그러면서 진욱이 이번에 산 BMW 차량의 문이 리모컨으로 열렸다.
한 학기만에 너무나도 달라진 진욱을 보고 동기들은 그저 부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휘유~”
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는 진욱은 지금 상황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옛날 정보들만 가지고 이럴 수 있다니까.”
진욱에게는 불과 15년 전의 정보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번 금액이었다.
먼 훗날 빅쇼트라는 이름의 영화가 나온다면 진욱은 그때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썰로 풀어도 좋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진욱이 이 정도로 벌었으면 그 수십 배 이상을 쏟아부은 진성의 경우··· 짐작할수 없을 금액,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권을 받고서 그 일에 대해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RRRRR-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진욱은 핸즈프리를 통해 받았다.
“여보세요?”
[진욱아. 엄마야.]
“아, 어머니!”
상록에 계신 어머니 원숙의 전화였다.
아들이 해외투자를 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했을 때, 너무나도 기뻐했고 처음으로 받은 명품백 선물에 그야말로 업고 다녔던 어머니였다.
상만과 원숙은 정말 좋은 부모님이고 진욱은 자신이 번 만큼 베풀어서 보답했다.
“오늘 큰집 다녀온다며?”
“네, 아마 밤에 집으로 갈 거 같아요.”
상록으로 향하는 진욱의 말에 어머니는 수화기 너머로도 그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가서 좋은 이야기 하고 이따 보자.]
“네~ 어머니~”
[아들, 언제나 믿고 있어.]
“저도요. 사랑해요!”
과거의 삶에서도 어린 시절이나 했던 말인데, 좀 더 감성적으로 된 것인지 낯간지러운 말을 많이 하게 된 진욱이었다.
그리고 차가 외곽도로를 타고 상록시에 도착했을 때, 하이패스로 통과하고 바로 큰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수백 평의 고래등같은 대저택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큰 어머니의 취미로 곳곳에 직접 기른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고, 정성이 들어가 있는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철컥-
대문으로 들어온 뒤 집 안에 문이 열리면서 진성이 반갑게 사촌동생을 맞이했다.
“어서 와!”
“이거 좋아하실지 모르겠네?”
골프를 좋아하신다고 하길래 사이즈 맞춰서 장갑하고 티셔츠를 하나 선물로 준비한 진욱이었다.
그리고 큰 어머니에게도 드릴 표고버섯 세트를 가지고 와서 일단 인사를 드리러 갔다.
내부 또한 화려한 큰아버지의 집이었고, 각종 도자기와 벽에 걸린 미술품들만 경매에 내놔도 웬만한 수도권 아파트 한 채는 구매할 수 있는 값이 나온다고 한다.
“어머, 진욱이 왔구나?”
“안녕하세요. 큰어머니. 저 이거···.”
“아니 뭐 이런 걸 다 사 왔어?”
큰어머니께 드린 표고 세트, 그리고 서재에서 천천히 나온 큰아버지 상규에게도 인사했을 때, 그분은 반갑게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렸다.
“어서와라 조카야!”
와락 끌어안고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진욱의 등짝을 팡팡 두들기는 큰아버지 상규.
그리고 선물로 가져온 골프웨어를 드리자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큰어머니에게 마실 것좀 내 오라고 시켰다.
응접실에 앉은 뒤로 상규는 크리스탈 재떨이를 올려놓고 담뱃불을 붙였다.
탁- 탁 치익!
장대 담배 한 대를 맛깔나게 태우던 상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진성이랑 같이 해외 인버스 투자 했다면서?”
“네,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크하하! 내가 뭐라 그랬냐? 역시 투자가 한 방이라고 했잖냐?”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때와 같이 투자 불패론을 부르짖는 큰아버지였다.
그리고 거기에 분위기를 맞춰 주면서 진욱은 적절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에 진성이 형이랑 사업을 같이 하게 됐습니다.”
“이야기 들었다. 너 그 말린 개밥 만드는 거 진성이랑 같이 한다며?”
아직도 수제간식을 ‘개밥’이라고 하면서 진욱의 사업을 대수롭지 않게 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진성도 말했다.
“제가 생각해도 이건 괜찮은 사업 같아서요. 제조와 판매는 진욱이가 하고, 저는 세금 문제랑 영업 확장 등을 서포트 해주는거죠.”
“네가 사장이라며?”
“네, 진욱이가 맡아달라고 해서요.”
“애비 사업 놔두고 별안간 진욱이 놈하고 장난질을 하려고 하냐? 에잉~ 쯧쯧.”
별로 탐탁치는 않아 했지만, 법인으로 자리가 있는게 개인사업자보다는 세금을 절세할 방법이 많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겨주는 상규였다.
“뭐, 그런 거 팔아서 얼마 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하하하, 잘 될겁니다. 큰 도움도 있으니까요.”
“상만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그쪽 사업으로 아예 대를 이으려나 보다?”
상규는 동생 이야기도 하면서 담배를 연달아 태웠다.
그리고는 크리스탈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쿨하게 말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하냐?”
“일단은 2호점을 만들 상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상록에 빈 건물 몇 개 있으니 거기 입주해.”
“네?”
“뭘 그렇게 놀라, 이놈아?”
투자금에 이어서 분점 입점할 상가까지 큰집은 대수롭지 않게 지원해줬다.
확실히 말은 괴팍하게 해도 비위만 맞춰주면 뭐든 다 해주는 큰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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