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 장사하자!
“자~ 많이들 먹어.”
“와! 고마워요. 형!”
“오빠, 잘 먹을게요.”
진욱은 최근 상승세인 가게 일 덕분에 아버지 용돈 없이도 지갑이 언제나 풍족했다.
보통의 새내기 대학생이라면 상상 못할 금액을 마음껏 쓰고 다녔고, 같은 학번 동기지만, 나이가 3살이 더 많아 형이나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을 향해 통 크게 쏘는 일도 많았다.
“개인 사업하시면서, 공부도 같이 하는 거··· 진짜 쩔어요.”
동기 중 한 명이 감동하며 말하자 진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예전처럼 치열하게 일에 치여 살던 시절도 아니고, 그때 느끼지 못한 청춘을 즐기면서 살아가니 언제나 웃는 상으로 큰손이 된 진욱.
그는 예닐곱명의 동기들을 데리고서 고기를 맘껏 시키면서 가방을 뒤적였다.
“아, 그리고 이거 말이야. 지금 내가 팔고 있는건데 혹시 집에 개나 고양이 키우는 친구들 있나?”
“우리 집 말티즈 두 마리 키워요.”
귀염상의 여동기 한 명의 말에 진욱은 가방에서 꺼낸 수제 간식을 건네줬다.
“이게 지금 내가 팔고 있는거거든? 샘플로 먹여 보고, 효과 괜찮으면 3개 5천원이니까 사가.”
“어머, 고마워요. 오빠!”
“저기··· 고양이 먹는 것도 있나요?”
그러자 진욱은 다른 것도 꺼냈다.
“이게 이번에 닭가슴살 훈제한 건데, 고양이들 잘 먹더라.”
“오, 한 번 먹여 볼게요. 저희 집이 세 마리 키우거든요.”
반려동물 세상이긴 했다.
10명에 3-4명 꼴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꼭 있었고, 그러다보니 이렇게 자연스러운 홍보가 된다.
그날 점심 식사 제대로 한 턱 낸 진욱은 오후 강의 하나 마치고는 가게로 향했다.
“자~ 오늘 매출은 딱 50만원 찍자!”
2007년 당시에 누나 점포의 옆에 세 하나 뒀는데, 평균 매출이 높을때는 80만원, 가장 낮은 날이 40만원 정도였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아서 아예 전문적으로 수제 간식용 동물뼈나 순살 등을 공급받는 곳과 정식계약, 그리고 공장 한 곳에 개인 작업실로 인해서 만든 제품들을 가져와서 팔기만 하면 된다.
50그램, 100그램 단위로 5천 원 1만 원씩 파는 게 날개 돋친 듯 팔리니 적은 원가로 엄청난 수익이 나왔다.
그야말로 뼈와 살을 돈으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이었고, 사람 먹는 음식을 만들었어도 이 정도로 이윤이 남지는 않을 거다.
가게에 도착한 진욱은 웃으면서 출근했다.
짤랑-
“나 왔어~”
“어! 저기 왔네요?”
“저 사람이 사장이야?”
“?!”
아성 펫푸드 가게 안에서는 많은 중년 부인들이 있었다.
각자 강아지를 한 마리씩 안고 있었는데, 낮이 익은 얼굴들이었다.
“이것봐요! 당신이 이거 간식 파는 사람이야?”
“네, 그런데요?”
뭔가 따지러 온 것 같은 전투적인 모습에 드디어 가게 첫 진상이 온 것 같았다.
“아니 무슨 재료가 들었길래 우리 메리가 하루종일 하얀 똥만 싼다고요!”
“우리 초코도 그래요. 애가 계속 기름을 토하고, 흰똥만 나와요!”
초코라는 이름의 강아지는 양쪽 귀를 울긋불긋하게 염색한 말티즈, 메리는 털이 풍성한 포메라니안이었다.
둘 다 소형견 위주였고, 다른 아주머니는 그보다 더 작은 치와와를 들고와서 입을 보였다.
“얘 보여요? 여기서 산 뼈 먹고서 입이 다 찢어졌어요!”
진욱은 그 상황을 보고 침착하게 그들을 앉혔다.
“자~ 자~ 일단 앉아서 이야기 하시죠. 커피 한 잔 드시면서 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설명은 무슨! 우리 애! 어쩔거예요?”
“일단 앉아서 이야기 하시죠. 강아지들 제가 다 봐드릴게요.”
그 옆에서 카운터 보던 소혜나 진영은 잘못 걸린 것 같다면서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욱이 오기 30분 전부터 이거 어쩔꺼냐고 해서 시달리던 그녀들이었다.
하지만 진욱은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이미 해외서적을 보면서 수제 간식에 대한 유의점, 그리고 서울대 수의대에서 테스트를 하고 있었던 증상들이 모두 나왔다.
“자, 먼저 메리 어머님하고, 초코 어머님부터 이야기 드릴게요.”
“그래! 어디 말 좀 해 봐요! 뭘로 만들었길래. 애들이 이 모양이야?”
진욱은 아들딸과 같은 강아지들을 데리고 따지는 어머니들을 향해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여쭤볼게요. 강아지가 하얀 변을 본다고 하셨죠.”
“그래!”
“딱딱한 변이었나요?”
“설사고 된똥이고 전부 하얗다고!”
반대쪽 카운터에서 듣고 있던 진영과 소혜가 더럽다는 듯 정색했다.
하지만 진욱은 모든걸 다 알고 있어 설명했다.
“어머니, 이 간식 말고 또 뭐 주셨죠?”
“따로 주기는! 나는 이것만 먹였다고!”
“나는 애들 주던 사료랑 섞었어요. 그게 왜요?”
“하아···.”
진욱은 딱 책에 나온 내용, 그리고 수의학센터에서 말한 이야기를 기억해서 바로 대답해줬다.
“저기, 초코 어머님? 이 수제간식은 말 그대로 ‘간식’입니다. 이것만 줘서는 안 돼요. 게다가 하루 한 번으로 족한데, 계속 주셨나요?”
“요 쪼끄만거 몇 개 준게 뭐라고?”
“강아지들이 뼈다귀 좋아하지만, 이거 많이 먹으면 탈나요. 전부 칼슘이라고요.”
진욱은 그러면서 책을 가져와 서울대 수의병원에서 번역한 내용을 보여줬다.
“여기 보세요. 대부분 칼슘으로 이뤄진 사료용 뼈인데, 이걸 과다하게 섭취할시 강아지들이 칼슘 소화를 못해서 그대로 배출해서 흰 변이 나온다고요.”
“으음?”
“병 걸리거나 그런게 아니에요. 초코가 칼슘 소화를 못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앞에 있는 포메라니안 메리도 쓰다듬으며 말했다.
“메리 어머님도 그래요. 간식 이후에 사료까지 같이 주시면, 과식해서 강아지 배탈나요.”
“그, 그래요?”
‘서울대병원 수의학병원’의 자료를 직접 읽게 해주고, 간식에 대한 영양분까지 공개하고 그동안 먹였던 것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조목조목 말하자 어리둥절하는 부인들이었다.
“특히 이렇게 털이 긴 아이들은 설사 한 번 하면 더 큰일나요. 물 잘 먹이고, 앞으로 아무리 졸라도 간식은 조금만 주세요.”
진욱이 설명해주자 두 아주머니들은 조금씩 수긍했다.
그리고 진욱을 향해 으르릉거리는 작은 치와와를 든 부인에게도 말했다.
“애 다친거 볼 수 있나요?”
“어··· 여, 여기!”
“흐으음.”
버르적거리는 치와와의 입을 주인이 두 손가락으로 벌리자 잇몸이 살짝 찢어지고 새빨갛게 부어있었다.
“얘 몇 개월 됐죠?”
“지지난주에 분양했어요. 젖 뗀 아이라고 하고요.”
“아이고··· 어머님, 뼈간식은 7개월 넘은 강아지들만 먹을 수 있다고 주의사항에 썼어요.”
“그게 뭔소리에요? 얘가 얼마나 잘먹었는데.”
“훈제향에 씹는맛 때문에 식탐이 생긴거죠! 원래 이 나이 때 애들한테는 위험해요! 영구치 안 난 유치원생이 갈비 뜯는 상황이라고요.”
“그, 그치만···.”
직접 사온 제품의 진공포장지에 쓰인 ‘견종에 따라 7~10개월 이상의 아이부터 먹을 수 있습니다.’ 라는 주의사항을 보여주자 그제야 마지못해 인정하는 부인이었다.
진욱은 처음으로 장사를 하면서 정말 이런거 안 읽고서 일단 판매점에 들어오고 보는 사람이 앞으로도 많을거라고 직감했다.
“일단은 강아지 입 다친거에 대해서는 유감입니다. 이 사료 같이 연구하는 곳이 서울대 수의학 동물병원인데 제 선배 연락처를 드릴테니 거기서 치료 받으세요. 24시간 동물병원이 있어요.”
인맥은 이럴 때 쓰는 것이라는 듯, 명함을 꺼내 세 아주머니에게 드리자 그녀들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는 바로 처방해주실 거예요. 강아지들 건강을 위해서 병원비 아끼지 마시고요.”
“후우- 난 또 애가 큰 병 걸린줄 알았네.”
“일단은 병원에서 데려가 볼거에요. 근데 만약 딴거 때문에 아픈거면 다시 올겁니다?”
“네~ 네~ 그때 저희 잘못이 있다면 바로 배상합니다.”
어차피 가 본다고 똑같은 말을 똑같이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세 강아지의 주인들을 두고 은근슬쩍 그녀들을 띄웠다.
“이렇게 가족같이 키우는 애기들인데 배 따뜻하게 하라고 저기 옷도 한 번 봐주세요.”
“여기도 같은 가게에요?”
“저 분이 우리 누나에요.”
“어머! 그러면 남매가 나란히 이렇게?”
“네~”
그러면서 손님을 토스하자 진영은 그 상황에서 졸지에 포메라니안, 말티즈, 치와와가 입을 만한 옷들을 소개했고, 셋 중에서 둘은 나중에 오겠다고 했지만 말티즈 주인은 기어이 한 벌 사서 돌아갔다.
그리고 오늘도 한 건 한 진욱을 향해 진영과 소혜가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야~ 우리 동생 장사 존나 잘하네?”
“거 존나가 뭐야? 존나가···.”
“어우~ 난 진짜 아줌마 세 분 와서 따질 때 얼마나 식겁했는데! 진욱씨가 정말 잘 타일러 보냈어.”
소혜 역시 진땀을 빼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이다! 오늘 장사 끝나면 누나가 한턱 쏜다.”
“오, 정말?”
“이 동네 참치집 하나 오픈했다는데 거기 가 보려고. 소혜 너도 이따 준비해.”
“고마워 사장님!”
***
고급 참치집 정식에 온 셋은 고급 청주를 곁들이며 기분 좋은 회식을 했다.
아버지가 매일 돼지고기다 소고기다 소주에 곁들이는 회식을 하는것과 다른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캬~ 진짜 동생 놈하고 사업하는데 이렇게 장사가 잘된단 말이야.”
“나도 우리 사장님 덕분에 백조 생활 탈출했지. 뭐.”
소혜는 동업을 제안한 진영에게 진심으로 고마워 하면서 자기 가게처럼 열심히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들게 해준 동생 진욱을 보면서 진영이 술 한 잔 따라줬다.
“하진욱씨, 1년 사이에 사람이 달라지셨어?”
“뭐, 그렇지.”
빈말이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 같아진 동생을 보고 한 말이었다.
110kg의 고도비만, 취미생활을 부모님 용돈으로 충당하고, 입시 실패 이후 군대 도피했다가 유학 보낸다니까 싫다고 가출하던 그 철부지 찐따.
하지만 지금은 운동으로 90kg까지 뺀지라 얼굴 윤곽이 확 드러났고, 180이 조금 넘는 키에 확실히 집안 유전자가 드러났다.
거기에 고졸 노답이 갑자기 수능봐서 서울대까지 붙고 자기 가게를 차려서 첫달 매출 천오백 전후의 사장님이 되었다.
“이대로만 쭉 가도 좋겠네.”
“당분간은 그래야겠지.”
“맞아. 지금 회사는 어떻게 된거야?”
진영의 물음에 진욱은 현재의 지분을 계산하면서 말했다.
“일단 나는 근로계약서를 아버지 회사로 썼거든. 엄밀히 말해서 혜성푸드빌은 내가 대리점 지점장 겸 사원이야.”
“그냥 개인사업으로 하지, 왜 아빠 회사를 껴서.”
“누나도 곧 그렇게 될걸? 세금 문제 생각하면.”
“흐음~”
그래도 꽉 막힌 아빠와 어느 정도 화해는 했으니 딱히 싫지는 않았다.
단지 자신의 성공 이후 아성사료와 다 합쳐서 가족같은 운영에 대해서 ‘별로 세련되지 않다.’ 라고 평가할 뿐이었다.
“난 옛날부터 그 똥내나고 칙칙한 공장 싫었어.”
“크···솔직히··· 겁나 지저분하긴 했지.”
진욱이 두 번째 삶으로 처음 공장을 보자마자 음식물 찌꺼기 가득했던 그 악취나는 공장 위생 상태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게다가 동물원 납품 때문에 위생 엄청 신경쓰거든.”
“그러냐? 뒤늦게 청소좀 하시나 보네.”
그 상황에서 진욱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딱 이번 학기 마치고 장사 반응 볼거야. 그리고 지점 늘릴 걸 한 번 말해보려고.”
“뭐?”
“지금은 셋방살이잖아? 아예 옆 상가 임대나 다른 자리 잡아서 해 보려고.”
“어우~ 스케일 크시네? 나한테는 내실 다지라더니만.”
“다지면서 해야지.”
일단 그것을 위해서 새로운 자금책을 마련해야 했다.
당장에 아버지에게 부탁하기엔 서울/수도권 점포 임대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렇다고 개인 융자를 받기에는 이미 누나와 아버지 회사가 있어서 같은 법인 내에서 따로 받기는 힘들다.
‘어디 착한 쩐주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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