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혼자서도 잘해요.
“여보, 회사에 무슨 일이 있어요?”
“뭔 일이 있어? 왜?”
상만은 밤중에 침대 위에서 묻는 원숙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진욱이가 영어로 된 책을 잔뜩 가져오고는 회사 관련 된 일이라고 읽잖아요.”
“뭐? 그 녀석이 읽을 수는 있대?”
“다 읽더라고요.”
“정말?”
순간 상만이 일어나서 전등을 켜자 빛에 눈을 움츠린 원숙도 일어났다.
자리끼로 놓인 도자기 주전자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상만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녀석이 그런단 말이지.”
“네, 저는 당신이 시킨 줄 알았죠.”
“내가 뭘 시켜? 그 녀석이 알아서 다 하는 거지.”
상만은 처음에는 아들이 자원해서 회사 일을 돕는다고 해서 기특하게 봤는데, 이제는 핵심 인원으로 점점 자라는 그 녀석의 진로를 위해서 뭔가 결정을 해야 했다.
***
한편 재래시장에서 재료를 잔뜩 사온 진욱은 주말에 회사에 와서 직접 책에 나온대로 수제 간식을 만들었다.
“어디보자. 이게 오리목뼈고, 이건 소 목뼈, 오리 도가니에 돼지 귓불때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싼 가격이어서 오히려 덤까지 잔뜩 받았다.
진욱은 그것을 대야에 물을 담고 한 곳에 담아서 핏기부터 빼냈다.
“일단 책에는 2시간이라고 나와있는데, 핏물이 많을수록 강아지들은 좋아한다라···.”
일단은 처음 시도해보는 거니까 책에 나온 대로 FM대로 시도하는 진욱이었다.
그리고 물기를 짜낸다음 식품건조기가 필요한데, 지금 공장 안에는 사료 시제품 만들 때 쓰던 건조기가 미구동 상태로 놓여있었다.
진욱이 가서 전원을 올리고, 예열을 하는 동안 시간이 지나 핏물이 점점 올라오는 재료들.
그리고 시키는대로 물을 버리고 키친타월등으로 쫙 짜낸 다음 판에 담아서 식품 건조기 안에 넣고 돌렸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건조기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자 진욱은 책에 나온 대로 온도와 건조 시간을 맞춘 다음 그것을 꺼냈다.
아침 일찍 나와서 만든게, 저녁이 되어서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훈제 수제 간식으로 완성됐다.
“자~ 일단 이걸 식혀보고, 진공포장해서 파는 게 정석이란 말이지.”
진욱은 원가와 만드는 시간 등을 계산해서 이걸 얼마에 팔면 좋을지 생각했다.
물론 그 전에 제품 등록하고, 사업자 등록증도 따낸다음에 법적으로 이쪽 사업에 대한 논의도 공무원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단 개 먹이는 개가 먹어봐야 알지.”
진욱은 건조기에서 나온 뒤로 식힌 수제 간식을 가져와 아성사료 앞에 있는 개에게 던져줬다.
월- 월-!
짖어대던 개는 반건조 오리목뼈 하나를 집더니 덥썩 물고서 꼬리까지 흔들어내며 허겁지겁 씹었다.
까득- 까드득- 까득!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구석구석 이빨을 이용해 오리뼈 훈제를 통째로 씹어먹는 개를 보니 성공인 것 같았다.
진욱은 완성한 간식들을 하나하나 포장했고, 이걸 요긴하게 쓰기 위해 준비했다.
***
까드득- 까득-
“어머, 완전 잘먹네?”
다음날 진영의 집으로 찾아가 누나가 키우는 웰시코기에게 수제 간식을 건네준 진욱.
“모모! 천천히 먹어!”
아주 환장을 하면서 돼지귓불이고, 오리목뼈고 아드득 까드득 거리면서 먹는 모습을 보자 신기해하는 진영이었다.
게다가 얌전히 있던 고양이도 냄새를 맡았는지 다가와서 킁킁거리다가 돼지 귓불 하나를 앞발로 톡톡 치다가 물고 달아났다.
“이런건 어떻게 만들었어?”
“팔려고.”
“진짜? 너도 사업하려고 하는거야?”
“구상은 하고 있는데, 일단 기획서 써서 아버지에게 보여줘야지.”
“흐응~ 진짜 집안 전체가 개랑 고양이들 호강시키네.”
진영은 재미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 온 주문량을 말했다.
“한복식으로 강아지 옷을 만들어달라잖아. 이거는 특별히 좀 세게 불렀어.”
“하루 평균 주문 얼마나 되는데?”
“열 건은 넘지.”
“혼자 가능해?”
“그래서 놀고 있는 의상학과 후배들좀 부르려고. 아르바이트도 시키고, 잘하면 공방에 직원 만들어야지.”
진영은 이제 한 명의 어엿한 사업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힌트를 준 건 진욱이지만, 그것을 만들고 주문받아서 고객만족을 시키는 수완을 가진건 진영이니 말이다.
“이왕 하는김에 이건 누나가 사 갈게. 얼마나 들었어?”
“원가는 2만원?”
“그럼 수고비 해서 10만원 쳐줄게. 다른 애들 강아지 키우는데도 줘봐야겠다.”
누가 그 아버지에 그 딸 아니랄까봐 지갑 열어서 큰 손으로 꺼내는 게 똑같았다.
졸지에 하루 일당을 받게 된 진욱은 샘플로 쓸 몇 개만 챙기고서 진영네 집 강아지 호강하는 상황을 만들고 돌아갔다.
***
“그러니까, 기존 사료 말고 직접 네가 만든거라 이거지?”
“네, 책보고서 따라해봤는데 아주 쉽더군요.”
상만은 회사에서 기획서를 읽어보면서 그 어느때보다도 꼼꼼하게 분석했다.
이 녀석이 그 동안 어디서 알아왔는지, 해외의 애견 시장에 대한 조사, 그리고 국내에서 수제간식 매장의 상황과 주로 일본과 미국 등에서 수입해오는 고급 간식을 획기적으로 제조해서 판매할 방법까지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판매는 어떻게 하고?”
“제가 인근에 상가 점포를 해서 직접 영업하는 방식으로 가려고요.”
“진욱이 네가?”
“네. 당연히 제가 추진한거니까 직접 팔아야죠.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점포를 늘릴 수도 있고, 온라인 마켓에 올릴 수도 있고요.”
“흐으음.”
아들의 기획안을 봤을 때 확실히 좋은 건이라고 인정한 상만.
그리고 다시 한 번 진욱을 찬찬히 보면서 기획서를 서류에 넣었다.
“좋아. 승낙하마.”
“감사합니다.”
“단, 지금 당장은 안 된다?”
“!?”
지금 당장은 안된다는 말에 혹시 또 예산 문제인가 싶어서 진욱의 머릿속이 돌아갔다.
‘이미 누나가 하고 있으니까 서울에서 창업지원은 안 되고, 나같은 경우는 상록시 지자체에 맡기기에는 아성사료 아들이라는 거 그쪽에서 알테고, 그러면 중기청에···’
진욱은 머릿속에서 돈 수급할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상만이 말한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
“너 이번에 다시 수능봐라.”
“···네?”
“지금 네 나이가 군대 다녀오고 아직 스물 둘이야.”
그러고보니 원래의 삶을 산 진욱은 대학 입시를 실패하고 바로 군대를 가서 이른 나이에 군필이지만 아직 최종학력은 고졸이다.
그것을 알고서 상만은 사업을 맡기기 전 당부했다.
“아직 기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너 일머리를 생각한다면 학위 하나는 확실히 따고 움직이는게 더 좋을 것 같구나.”
“수능이··· 한 네 달 남았나요?”
“지금부터 시작해서 어디라도 좋다. 이 근처에 있는 곳도 좋고 상관 안 할테니 일단 관련 학위를 따 보려무나.”
“흐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래? 그럼 그 동안 너는 휴가처리 시키마.”
상만은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아들을 보고 그것을 더 기뻐했다.
***
그렇게 졸지에 한 번도 안해본 수능을 치르게 되었다.
‘쩝, 나는 학력고사 세대인데.’
그 당시에 300점 만점에서 270점 조금 넘어서 서울대 들어갔고, 그 뒤로 수학능력 시험평가라고 이제 수능이 나올때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본 베이스가 어디 가지는 않았다.
언,수,외,탐으로 나온 수능 교재 과목을 보고서 진욱은 스스로 독서실에서 인강 들으며 공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딱히 과외도, 학원도 필요없다고 하면서 보는 영역들은 조금 헷갈리기는 해도 못 풀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말에 감동한 어머니는 매일같이 늦게 도서관에 들어오는 아들을 향해 영양가 있는 음식이다, 보약이다 잔뜩 준비하면서 수험생 뒷바라지를 지극 정성으로 해줬다.
“이건 뭐에요?”
“점심 나가서 먹는거 보다 집밥이 좋아. 도시락 쌌으니까 챙겨 먹어.”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옛날같았으면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단순히 재수생이 동네 인근의 전문대만 가도 된다고 했으면서 이정도로 지극정성이라니··· 진욱은 자신이 진짜 좋은 부모님을 두었다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그렇게 입시를 준비하고 교육청에 졸업증명서를 가지고, 수능 응시를 했으며 당일 날 어머니와 누나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자신에게는 기억도 없는 모교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그것으로 진욱의 2007년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
띠링-
성적에 맞춰서 수능 100% 전형으로 가,나,다 군에 착실하게 맞춰봤다.
그리고 자신의 모교 역시도 굉장한 입결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신껏 지원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을 때, 진욱의 부모님은 그를 끌어안고서 대성통곡했다.
“아이고! 세상에 우리 아들!”
“고생했다. 정말로 고생했어! 으허허허허!”
수능 시험 한 번 봐서 입시 성공한 것 치고는 굉장한 반응이었다.
정말 눈물콧물 다 흘리면서 연신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어머니, 그리고 춤을 추다가 우는건지 우는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기저기에 전화를 돌리고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는 아버지.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전화가 왔다.
[야, 미친! 하진욱. 너 진짜 서울대 붙었냐?]
“어~”
[어떻게? 요새 수시에는 너같은애 전형도 있어?]
“뭐래, 수능 100% 전형이거든?”
행시패스까지 했던 머리인데, 겨우 수능 하나를 못 볼까?
물론 그때하고는 약~간 다른게 있어서 서울대 법대를 무사히 패스했던 과거와는 달리 점수따라 다른 과로 가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서울대 내에서나 차이가 있는 거지 일단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서울대 나온 자식놈!’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진욱은 그 뒤로 이름도 잘 모르는 친척이고, 사촌들에게 연락을 받으며 통장에 용돈이라고 쌓이는 금액을 보고 진짜 집안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제 2의 삶을 얻은 진욱은 그렇게 새 출발을 위해 타이틀을 하나하나 모아갔다.
일단 군필인 상태에서 시작했고, 공장하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면서 내부를 싹 정리하고 일처리를 인정받고, 조달청을 통해 국가 사업까지 납품하는 회사로 유도했다.
거기에 서로가 사이나쁜 가족들을 중재하고, 그러면서 동업자로 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총 동원해서 그럴듯한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는데 아버지의 조건은 ‘일단 수능쳐서 대학 들어간 다음’이라는 조건을 걸었고 거기에 대해서 서울대 입학이라는 회답을 했다.
이렇게 기반을 다 다진 뒤로 진욱은 하나하나 시작할 준비를 했다.
‘옛날같이 녹두거리 그 동네에서 자취할까? 아니면 아버지가 차 사주시려나?’
일단 교통 문제도 그렇고, 낮에는 수업받고, 저녁에는 장사를 하려는 계획까지도 준비하고 있었다.
앞으로 할 일은 많고 시간을 알차게 쪼개서 해야된다.
뭐 특별할 것은 없었다.
지난 삶에도 부족한 용돈은 공부하면서 틈틈이 동네 학생들 과외도 시키고, 아르바이트도 병행해서 움직였던 삶이니 말이다.
그때에 비하면 엄청난 재력에 자신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한 지원을 해주는 가족이 있는 삶.
진욱의 진짜배기 두 번째 삶은 2008년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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