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프리 트레이드 어그리먼트
아성사료에서는 당장에 사료생산의 재료 수급을 위해 급한대로 이곳저곳에서 고기를 융통했다.
“어떻게 3주치는 마련했습니다만,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정 안 되면 동남아에서 수입을 하는게 어떨까요?”
유 과장의 물음에 상만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인천항에서 걸리는 시간이 있잖아! 게다가 당장에 수급해서 온다고 하더라도 관세는 또 어쩌고.”
과거 싼값에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대량으로 육계를 들여왔다가 관세만 25% 물어서 그다지 재미를 못 봤다.
특히 농산물에 대해서는 관세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값이 셌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조용히 손을 들었다.
“칠레에서 주문하는 건 어떨까요?”
“뭐?”
“제가 이번에 알아봤는데, 그쪽에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진욱은 집에서 가져온 자료에 대해서 모두에게 건넸다.
[삼정물산 칠레 육류 수입건.]
“뭐야, 삼정?”
국내 제1의 대기업의 무역상사에 직접 문의를 했고, 그쪽에서 대략적인 제안서를 보냈다.
“칠레라니! 그 먼데서 여기까지 수입을 해온단 말이냐?”
상만이 되물었을 때,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햐~ 그게 제대로 오기는 한··· 어이구야! 이 양 좀 보게? 손질된 육계 50톤이라고?”
김 부장이나 유 과장, 김 차장, 이 대리까지 눈이 동그래졌고, 이 가격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래, 거기까지 온다 치자. 관세는 어쩌고?”
“관세를 왜 물을 까요?”
“그야 당연히 수입··· 아니, 잠깐!”
아무리 국내 상대로만 운영한 공장이라고 해도 매일 같이 신문 구독에 뉴스는 빠짐없이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 정도는 아는 상만.
그리고 갑작스럽게 동남아나 중국도 아니고 저 지구 반대편 칠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녀석이 미쳤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칠레를 선택하는게 굉장한 이점이 있었다.
“FTA···.”
“네, 맞습니다!”
(Free Trade Agreement).
약칭 FTA로 뜻을 해석하자면 관세 없는 자유 무역 협정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2004년부터 칠레와 첫 FTA를 맺어서 그쪽의 식품과 구리등의 자재, 그리고 한국은 철강과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교환했다.
“삼정물산에서 칠레산 삼겹살과 항정살 등의 돼지고기를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업체가 칠레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시 육계도 대량으로 구할 수 있냐고 물으니 당장 준비할 수 있다더군요.”
“칠레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리는데?”
“산티아고에서 인천항까지 20일 전후라고 합니다.”
“후우- 50톤이라고?”
“그래서 제가 공동구매 가능한 주변 업체 있냐고 여쭤봤던 겁니다.”
한-칠레 FTA를 이용해서 칠레산 삼겹살에 이어 닭까지 같은 업체에서 수입해온다는 진욱의 아이디어.
가격도 적절했고, 거기에 따른 양도 엄청났으며, 국내 제 1의 기업인 삼정물산이 인정한 업체라 위생이나 품질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에 진욱은 제 2, 제 3의 미래까지 큰 그림으로 보고 했다.
“그리고 뒤에 보시면 아까 말했던 태국과 베트남 수입건 있죠? 그게 올해 아세안 연방으로 인해서 FTA가 체결됩니다. 이번에 칠레산으로 육계 수입한 다음에 두 세달 이후에는 관세 면제 자유무역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닭은 물론이고 옥수수랑 감자전분, 수수 등도 수입 가능해요.”
“오~ 그렇지. 그거 체결한다는 뉴스 봤어!”
상만은 막힌 혈이 확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 50톤의 거래는 바로 승낙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필요한 11톤과 다다음달 물량까지 생각해서 준비하게 했다.
“김 부장! 지금 당장 주변 공장에서 추가로 생닭 못구한 공장들 알아봐! 마이카나 한림보다 더 싸게 해줄테니까 전화 돌리면 요청할 곳 많을 거야!”
“네, 사장님!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욱이 한 가지 더 꺼냈다.
“참고로 생닭을 필요로 하는 곳이 또 있는데 이거 입찰은 어떤가요?”
진욱은 또 다시 국가 사업에 입찰에 대한 것을 가져와 아버지에게 보였다.
[환경부- 지역야생동물센터 사료용 닭고기 수급 입찰공고.]
“!”
“독수리, 말똥가리, 부엉이, 매··· 뭐 이런 천연기념물들 다친애들이나 야생에 있는 새들 먹인다고 몇천마리 단위로 닭을 사서 서식지 들판에 뿌린다고 하더군요.”
“햐~ 이건 또 어디서 알아왔냐?”
“공무원 님들이 인터넷에 입찰공고를 쫙~ 뿌리는데 기회되면 이런건 해야죠.”
도대체 언제부터 국가단위로 사업하는 거 입찰을 저렇게 꿰고 있는지 모를 아들내미였지만, 상만은 일단은 그것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럼 이번에도 진욱이랑 이 대리가 같이 입찰서 만들어 주고, 삼정물산 건은 내가 직접 연락할게!”
“네, 사장님.”
“그리고 윤 과장은 이번에 중기청 지원금하고, 거기서 기업지원은행에 대해 추가 융자좀 알아봐줘! 이번에 그쪽에서 저금리로 100인 이하 사업장 지원책이 새로 올라왔다고 하네.”
“네, 알아보겠습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생산직은 원자재 수급에 차질없이 움직였고, 사무직들은 진욱의 아이디어와 상만의 오더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 그래! 내가 지금 삼정하고 협상하러 간다니까? 장 사장! 자네도 지금 15% 더 쳐달라는거 때문에 닭 못구하잖아? 남미산이 뭐 문제없는 거냐고? 이 사람! 삼정물산 몰라?”
건식 사료공장은 물론이고, 고양이들이 먹는 습식 캔 통조림이나, 지방의 소규모 동물원까지 해서 이곳저곳에서 김부장이 알선하고 직접 협상을 하는 상만.
일당백이 되어야 하는 중소기업에서 모두가 합심했고, 아성사료를 넘어 다른 소규모 공장까지 모두 모여서 하나의 컨소시엄을 만들어 그 대표로 상만이 삼정과 협상을 하러 갔다.
그리고 FTA의 파워를 느낄수 있는 칠레산 육계 50톤의 공급 계약이 삼정물산의 상사맨들을 통해 인천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
“자 모두 건배!”
짠-
저녁 식당에 모인 사무직들은 큰 고비를 넘긴 뒤로 회식에 들어갔다.
“아이고~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
닭고기 수급 때문에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오늘의 회식 메뉴는 공교롭게도 닭갈비였다.
진짜 먹고 죽자는 식으로 잔뜩 시킨 상만은 넉넉하게 소주와 고기를 대접하고, 직원들은 맛나게 먹었다.
중소기업에서 회사원들 사기 올리는데는 적절한 회식, 그리고 월급인상이 전부다.
승진이라고 해야 사장이 부장이라고 하면 부장이고, 차장이라고 하면 차장직으로 하는 일이니 말이다.
“크으~ 좋다!”
소주를 연달아 쭉 비운 상만은 벌개진 얼굴로 기분이 올라왔다.
그리고는 옆에 앉아있는 진욱에게 소주병을 들고 한 잔 받으라고 권했다.
“이번에 말이다. FTA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 네.”
“솔직히 그거 차 몇 대 팔고, TV 조금 싸게 판다고 해서 대기업들이나 혜택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도 이번에 덕좀 봤구만.”
“앞으로 수입/수출 건에 대해서 종합상사들 많이 이용해야 될 거예요. 앞으로 FTA 시장은 더 커질 테니까요.”
“그래야지. 이번에 동물원 납품 끝나는대로 네가 말한 자체 사료 개발도 한 번 추가 융자 받아서 진행해보련다.”
물론 그 전에 조립식 건물로 짓고 있는 구내식당 완공이 먼저겠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김 부장이나 유 과장은 또 거나하게 취해서 잔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진욱은 이 분위기 속에서 웃으며 아성사료라는 곳에 녹아들고 있었다.
***
얼마 후 주말에 진욱은 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지난 삶의 진욱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젠 치워야겠어.”
그동안 벽에 붙어있는 애니메이션 태피, 그리고 각종 찬장에 있는 피규어 까지 박스채로 쌓인것에 잘 담아서 침대 밑에 담았다.
그래도 독서실 책장에 있는 각종 만화책과 일본식 만화가 그려진 소설책은 심심할 때 한 번씩 봤는데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서 놔두기로 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서 진욱이 찾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이었다.
“이게 한국에서는 왜 이리 자료가 적어?”
진욱이 찾고 있는 것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먹는 수제 간식이었다.
처음에는 관련 인물을 고용하려고 했지만, 일전에 알아봤듯이 아직 국가등록 자격도 없고 소규모 상가만 알음알음 나왔지만, 생소한 상황이었다.
진욱은 일단 블로그를 새로 하나 만들고, 거기에서 아성사료의 개나 진영 누나의 웰시코기와 러시안 블루 고양이들 사진을 받아서 올렸다.
애완동물 전문 블로거에 사료 공장에 관한 홍보도 하면서 앞으로 만들 수제 간식 자료까지 수집한다.
궁극의 목표는 자신이 가게를 오픈하고 그것을 알린 다음 최종적으로 프랜차이즈화를 만드는 것이다.
“일단 서울에 세 곳 정도 있는데, 여기도 한 번 견학해 보고··· 정 안되면···.”
진욱은 결심한 듯 해외 포털 사이트로 들어가서 그쪽에서 검색을 해 봤다.
영문 사이트들에 알파벳이 그득한 상황에서 진욱은 차분하게 자신이 원하는 책들을 찾았다.
과거의 진욱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그는 행시 패스에 영어 원서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지식의 소유자였다.
“오~ 그래도 좀 있네?”
동물 뼈 훈제, 큐브 치즈, 심지어 채식으로 만드는 수제 간식까지 다양한 자료의 서적들이 있었고, 그것을 해외배송으로 주문하는 진욱이었다.
이 당시에는 유통 공룡인 ‘에이존’이나 ‘E북’이 생소할 때라 결국 액티브 X를 뚫고 정말 보안 프로그램만 디립다 깔면서 겨우겨우 결제를 완료할 수 있었다.
얼마 후 택배를 본 원숙은 놀라서 물었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제가 주문한거요.”
“어머, 어머머! 이거 다 영어로 된 거잖아? 강아지 그림만 잔뜩 있고.”
“미국에서 강아지들 수제 간식에 대한 제조법이 만들어진 거예요.”
“읽을 수 있겠어?”
“이건~ 일도 아니죠.”
“!?”
영어라고는 질색하던 아들이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원어 서적을 읽겠다고 가져가는 것을 보고 원숙은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다.
순간 그 시선을 진욱도 느꼈는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아버지가 사주신 전자사전에 입력하면 다 번역되더라고요.”
“어? 아~ 그렇구나.”
원숙은 그러니까 뭔가 이해가 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유능하게 보이는 것도 위화감이 느껴지나?’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진욱은 다음부터 방문 열고 공부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방 안에 들어온 진욱은 일제 전자사전을 옆에 두고서 전문 용어나 견종에 대한 단어들만 검색하면서, 쭉 이어갔다.
“흐음, 펫푸드 사업이 600억 달러라니, 엄청나구만.”
이대로 쭉 성장세가 간다면 2020년 쯤에는 1천억 달러의 규모도 무리가 아니었다.
반면 국내 시장은 진욱이 꾸준히 검색한 결과 애견/애묘등의 반려동물 사료 규모는 4억 달러가 채 안된다고 한다.
물론 규모가 그렇다는 거지 이 시장은 굉장한 블루 오션이었다.
일단 해외에서 FTA의 관세면제 버프를 받고 싼 값에 재료를 수급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동물원이나 지자체에 대한 입찰을 조달청을 통해 알아내 계속 장사를 하고, 인터넷으로 끊임없이 홍보를 한다.
다른 쪽에서는 애견용 의류를 만드는 누나, 그리고 자신은 수제 간식 쪽을 배우고, 배합사료 공장의 아버지까지 합쳐서 종합적으로 기업을 크게 키우는 것.
그것이 진욱이 원하는 큰 그림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시간이 지나서 아마 큰 누나나 어머니도 각자의 역할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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