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9화 (9/200)

09- 성질 더러운 둘째누나.

어린이대공원과 서울대공원의 사육동물 사료 입찰 계약을 따낸 뒤로 농협과도 정식계약을 맺은 아성사료.

둘은 서로의 계약서에 사인하고 사진을 찍었고, 김 부장이 그것을 찍으면서 회사 홍보용 액자를 만들고 지역 신문사에 뿌렸다.

물론 이번에도 한누리 신문사를 필두로 그 깐깐한 쥬신일보 까지도 지면중에 하나를 할애해서 이 기사를 써줬다.

“자, 그래서 이번에 딴 계약이···.”

“우수리 떼고 5억 5천짜리네요.”

연간 5억씩 3년간 16억 5천만원 계약.

진욱이 그렇게 뛰어다닌 것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수 있지만, 아성사료는 100명 이하의 중기청이 인정한 ‘중소기업’이고, 작년 연매출이 170억 정도인 회사였다.

그리고 이 16억 5천은 말 그대로 진욱의 첫 단추.

이 계약으로 인해 지역 신용금고나 농협을 통한 추가 융자가 가능해지며, 언론을 통해 알려져서 다른 곳의 OEM도 받을수 있고, 중기청 지원도 계속 받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진욱은 자신이 그린다는 큰 그림, 가정에서 키우는 작은 애견용 사료제작에 대한 기획서를 아버지에게 건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이 바로 채택되질 못했다.

“진욱아.”

“예, 사장님.”

집에서가 아닌 회사에서는 사장님이라고 존칭을 하면서 공과 사를 지키는 진욱.

상만은 그런 아들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한데, 지금 준 기획서는 나중에 해야겠다.”

“네?”

“그··· 하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냐? 이번에 네가 큰 건 성공시켰지만, 그걸 새거 개발하는 데 쓰기에는 너무 낭비인 것 같아서 말이다.”

지금부터 개발해서 미래의 반려인구 천오백만 시대를  위해 준비하려고 했는데, 예산이 문제였다.

“그러면 이번 매출은 어디에 쓰이죠?”

“지난 번에 말한 공장 내 구내식당 짓는데 추가 융자와 같이 쓰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디 어차피 그것 역시도 진욱이 필요성을 느껴서 한 말이었으니, 공장 부지 중에서 한 곳을 선정해서 일단 식당 만들고 추가로 영양사를 고용하는 데 쓴다니 넘어가기로 했다.

상만은 경영을 위해서 다른 쪽으로 기회 비용을 쓰면서 아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진욱은 이해하면서 잠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생산라인에서 잘 돌아가고 있는 기계를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뭐, 중소기업으로 시작하니 이런 거 감안해야지 뭐.”

첫 단추부터 몇백, 몇천억 쓸 수도 없으니 일단은 감안하고, 새로 돈 나올 곳을 만들기로 했다.

어차피 감안한 일이었다.

새로 산 삶에서 적응하면서, 지금만으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황이니 말이다.

***

“진욱이 주말에 바쁘니?”

“네?”

식사 중에 어머니 원숙이 한 말에 어리둥절하는 진욱.

원숙은 밥을 먹으면서 아들에게 심부름을 하나 맡겼다.

“이번에 김장 새로 한 거하고, 밑반찬들이 있지? 그거 좀 진영이에게 가져다 줘.”

“거 뭘 가져다주라고 해? 진미처럼 지가 와서 가져가라고 하지.”

“요새 일 때문에 바쁘대요.”

“그 지지배가 일을 해? 펑펑 놀기만 하는 녀석이.”

“여보···.”

가족들끼리 다들 화목하다고 해도, 진짜 둘째 누나인 하진영에 대해서는 좋은 말이 잘 안나왔다.

이전 진욱의 개인 블로그를 봤었지만, 의상학 공부하겠다고 재수하고 거기에서 유학보내달라고 땡깡을 부려서 다 보내준 누나.

하지만 돌아와서는 대기업 인턴을 몇 번 들어갔어도 그 성격 때문에 그만두고, 서울에서 독립해서 살면서 간간이 알바와 엄마에게 받는 용돈으로 사는 백조.

얌전한 사생활에 교회 빼고는 밖에도 잘 안나가는 대학원생 진미에 비교하면 정말 극과 극의 성격이라고 한다.

‘흐으음, 둘째누나란 말이지?’

그동안 언급만 됐지 제대로 만나본 적은 없으니 어디 얼마나 망나니인지 한 번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동안 산전수전 다 겪어오면서 진상 젊은 여자도 많이 봤고, 선 자리에서 제 잘난 맛에 사는 콧대 높은 아가씨들 한두번 본게 아니었다.

‘아무리 망나니여도 옛날 우리 부모만 할까.’

달관한 진욱은 자신이 겪은 것 외에는 그냥 편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특히 가족이니 말이다.

***

“좋은 동네 사네?”

상록시에서 강남역에서 내린 진욱은 반찬 한가득을 두 손에 들고 겨우 내렸다.

강남역 인근의 오피스텔에서 자취한다는 둘째 누나가 곧 나온다고 했으니 기다렸다.

“어떻게 생겼으려나.”

과거 블로그 등이나 가족 사진으로 겨우 봤을 때, 확실히 성격 있어보이는 단발머리에 눈이 날카로운 여성이었다.

잠시 그녀를 기다리면서 강남역 인근을 봤을 때, 거대한 마천루가 길가 너머로 보였다.

현재 제 1의 기업인 삼정그룹의 사옥이 거의 다 지어졌고, 내년쯤 완공해서 입주할 것이다.

‘그리고 10년 뒤에 다시 수원으로 본사를 옮길 테고 말이야.’

삼정하고는 과거 금감원과 특허청 시절에 많은 인연이 있었다.

뭐 인연이라면 인연이고 악연이라면 악연이겠지만, 지금은 부사장쯤 될 이재윤과도 인연이 있었다.

진욱은 가끔 그때 삼정전자의 제안을 받았을 때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미 지난 과거의 삶이지만 말이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점점 이곳으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의 주인인 여성은 단발머리에 화려한 장신구가 귀에 잔뜩 걸려 있었고, 불륨감 있는 몸매에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의 각선미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저 멀리 반찬통 들고 있는 상경 청년을 향해 크게 외쳤다.

“야, 하진욱!”

“?!”

뒤를 돌아보자 향수냄새가 확 풍기는 성격 드세보이는 미녀가 있었다.

“이게 누나가 왔는데 못 알아봐?”

“아, 아! 누나! 미안!”

반사적으로 바로 인사하면서 이 사람이 바로 둘째 누나 하진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거야? 엄마가 싸준 반찬이?”

“어, 그래. 이게 김장한 거하고, 밑반찬 싼 거인데···.”

“됐어. 가서 열어보면 되겠지. 들고 와!”

고압적으로 외치는 미녀를 두고서 진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피식 웃었다.

‘진짜 성격 있어 보이긴 하네.’

그녀가 걸어갈 때마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바로 한 번씩 쳐다볼 정도였다.

강남역에서 몇 분 걸리지 않아 주상복합 오피스텔에 도착하고 바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밀실에서 향수가 확 풍겼다.

그런 진영은 어린시절부터 못난 동생을 슥 들러보더니 말했다.

“너 살 좀 빠졌다?”

“응? 아, 운동좀 하느라고.”

“캬~ 이제야 네가 이 누나의 말을 듣는거냐? 그래 돼지가 점점 사람되가는 거 보니까 노력한 거 같다.”

그러면서 찬찬히 뜯어보다가 진욱의 머리를 보고 말했다.

“머리 진짜··· 동네 이발소에서 친 거냐?”

“그냥 대충 깎았어.”

“어떻게 날이 갈수록 관리를 못하냐? 살 하나 뺀거로 끝날게 아니네. 쯧-”

초면부터 굉장한 구박을 하지만, 진욱은 어디까지 떠드는 지 한 번 보잔 식으로 느긋했다.

“오~ 이젠 누나가 말해도 별로 신경 안쓴다 이거지?”

“몇 층이야?”

띵-

대답 듣기도 전에 1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그녀가 나갔다.

그리고 오피스텔 문을 열자 쪼르르 달려오는 강아지가 있었다.

짤뚱한 다리에 귀를 쫑긋 세운 웰시코기가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진욱에게 짖었다.

“모모! 가만히 있어!”

진욱은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피식 웃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한껏 꾸민 방 안에는 강아지 뿐만 아니라 캣타워에서 러시안 블루 고양이 한 마리도 자고 있었다.

진욱이 짐을 내려놓고 살짝 쓰다듬자 눈을 뜬 고양이는 그르릉 거리면서 뒹굴었다.

“니가 웬일이냐? 다꾸 보면 맨날 싫다고 빼던애가.”

“아···.”

지난 시절의 진욱은 고양이를 정말 싫어했나보다.

하지만 지금은 반려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새 진욱이었다.

“여기다 넣으면 돼.”

김치냉장고와 냉장고에 알아서 넣으란 말에 진욱이 열어보자 안에 있는건 죄다 캔맥주, 그 외에 반찬이라고는 편의점에서 사온 레토르트 식품 먹다 남은게 전부였다.

게다가 쓰레기통 한 곳에는 죄다 불량식품만 가득했다.

일단 진욱이 담아온 반찬통을 하나하나 넣고, 김치도 김치냉장고에 담았을 때, 안에서는 진영의 작업물들이 가득했다.

안에는 각종 화려한 옷감들이 가득했고, 디자인하려고 했던 스케치북과 보석, 구슬, 단추 등이 재봉틀 밑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옷 만드나 보네?”

“비즈니스니, 신경끄셔.”

그렇게 말하고는 짐을 다 내려놨을 때, 진영은 넌지시 진욱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아까 신고 온 신발까지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 옷 아빠가 사준거지?”

“음? 아, 가을 자켓이라고.”

“딱 봐도 그래 보인다. 촌스러운 걸 잘도 입고 다니네?”

“그래도 아버지 선물이잖아.”

“오~ 하진욱씨 많이 컸어? 아버지라는 존댓말도 하고.”

성격이 드세다는 건 알았지만, 지금까지는 그냥 깐죽 수준이라서 충분히 넘길만 했다.

“이리와 봐.”

진영이 방 한곳으로 부르자 옷장에서 각종 화려한 옷이 널브러져 있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채 포장도 안 뜯은 남자 옷을 몇 개 가지고는 진욱에게 댔다.

“3kg만 더 빼면 입을만 하겠네.”

110에 육박했던 비만 체형은 아침 저녁으로 끊임없이 하는 조깅과 트레이닝으로 97kg까지 빠져 있었다.

진영은 진욱의 몸에 옷을 대 본다음 말했다.

“딱 여기에 맞춰 입어. 집에가서 입은 다음에 사진 보내고.”

“어, 그래. 고마워. 누나.”

“고마울거 없어. 싹 다 치우려고 한거니까.”

‘포장도 안 뜯은거 보니까 전남친껀가 보군.’

아무튼 그렇게 살살 긁으면서도 은근슬쩍 동생한테 옷을 잔뜩 주는 진영.

그리고 옷 챙기고 나가는 김에 인근 카페나 잠깐 가기로 했다.

틱- 티익-

“후우-”

흡연실로 고른 이유는 그녀의 담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 대 맛깔나게 태운다음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아빠가 나 가지고 뭐라고 하지?”

“그냥 그렇지 뭐.”

“아~ 진짜 이번 건만 사업하면 대박인데.”

“뭐 하는데?”

“나 쇼핑몰 차리려고.”

“음?”

“이 누나가 사업가가 되려고 하는거 아니니? 한 번 보라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니 아까 그 어지러운 방 안에서 보인 드레스들이 있었다.

확실히 이거저거 원단에다가 직접 보석까지 박아서 잘 만들기는 했는데··· 평소에 입고 다니기에는 쫌 그래보이는 옷들이었다.

“주문 제작으로 한 번 싹 만들어 볼 거야. 이거 성공하면 완전 독립이라고.”

“아, 그렇구나.”

“아빠가 안 도와준다고 해서, 내가 직접 모은 돈으로 하는거니까 쓸데 없는 소리 마.”

“직접 모은 돈으로 한다고?”

“오브 콜스~”

네일아트가 가득한 손으로 진욱을 가리킨 진영.

그리고 진욱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100% 누나 돈으로 하는거야?”

“뭐, 엄마가 몰래 지원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내가 알바해서 모은거지.”

그 순간 진욱은 이 아가씨가 뭘 몰라도 진짜 모르구나 싶어서 말했다.

“왜 굳이?”

“뭐? 너 지금 무슨 소리야?”

진욱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인터넷 쇼핑몰 한다며? 그런 건 시청부터 살펴봐야지.”

“사업자 등록 곧 할 거거든?”

그러자 진욱은 공무원식 노하우를 알려줬다.

“아니, 일단 창업지원센터 쪽 알아보고 거기에 대해서 신원 조회 한 다음에 사무실 알아봐야지.”

“어?”

“일단 누나 나이를 생각하면 청년창업 지원 센터가 시청에 있을거고, 강남은 잘 안해주지만, 다른 지자체 가면 해주는 곳이 있으니까 일단 된다면 그 동네로 주소 옮겨. 원룸 하나 잡고 작업실로 쓰면 되겠네.”

진욱은 피가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해줬다.

“특히 지금 시즌은 분기별로 하는 창업교육에 대해서 교육을 이수하고, 거기 수업료는 국비지원 해주니까 시청에 알아보고.”

“오, 오오~?”

“소상공인 센터는 만 34세까지 창업지원금 500정도 마련해 주니까 그거 받고 시작한 다음에 누나가 모은 돈은 스타트업 하는 업체 알아봐서 홈페이지 꾸미고 마케팅하는데 알리면 되잖아?”

“너··· 그런 걸 어떻게 아냐? 대학도 안 나온 녀석이?”

“대학하고 상관없거든.”

생돈으로 생각없이 자기가 만든 옷 팔아서 쇼핑몰 사장님 되겠다는 이 철부지 누나를 향해 피가되고 살이 될 조언을 해준다음 진욱은 좀 더 이야기를 했다.

“주문 제작으로 한다면 노리는 타겟층 생각해야 할텐데 그거야 뭐 누나가 알아서 할테고, 창업교육 센터나 그쪽에서부터 사람들 홍보하면 되지. 공방 사무실도 임대지원금 줄걸?”

“야! 씨바! 너 그런 거 어서 들었어? 그리고 그게 진짜 된다고?”

명문대 의상학과에 유학파 출신인 누나가 고졸 중소기업 평사원 동생에게 사업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었다.

“후우, 야, 하진욱.”

“음?”

“너 집에 말해라. 좀 늦게 들어간다고.”

“어···.”

“누나하고 이야기 좀 더 해야겠어.”

피어스 가득한 귀를 팔랑거리면서 좀 더 아는 것을 이야기 해보라며 미소를 짓는 진영 누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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