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말 한마디에 얼마가 오간다?
화장실에 다녀온 진욱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집어넣고 1층에 내려왔다.
“왜 2층 화장실을 굳이 갔어?”
“사람이 많아서요.”
“그러냐?”
물어는 봤어도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상만, 그리고 진욱은 살살 녹는 쇠고기 맛을 느끼면서 좋은 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2층의 그 꼴보기 싫은 이 사장 놈이 내려올까 봐 빨리 먹은 뒤로 바로 대리기사를 불렀다.
강남에서 상록까지 장거리를 대리기사의 차로 갈 때 취기가 오른 상만을 보고 진욱이 넌지시 말했다.
“아까 말한 그 이 사장이요.”
“으음?”
“그 사람도 이번 사료 입찰 때 참여 하려나요?”
“모르지, 하지만 그놈은 사료업보다는 그 공장 부지 땅만 노린 녀석이니까.”
아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하지만, 그 놈을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어서 속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만.
그리고 진욱은 아까 받았던 사진들을 가지고서 이것을 알리려고 하다가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하고 피식 웃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았을 때, 좋은 분들이기도 하고, 이런 일이 있었다니 이번 일은 제가 대신 복수를 해 드리죠.’
진욱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피식 웃었다.
***
얼마 후.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조달청 공고로 올라온 사료 납품 사업에 아성사료가 정식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수인 이영남의 회사인 ‘YN바이오’ 역시도 입찰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후우- 이영남 그 씹어먹을 인간이 참여했단 말입니까?”
김 부장은 이를 갈면서 자신 역시도 쌓인게 많아 이번 입찰에 대해서 무조껀 성공시키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그때의 상황은 몰라도 사장과 부장이 분노하는 인물이며, 원래 이곳 아성사료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자 좋은 감정일 리가 없다.
“어찌됐건 다들 노력좀 해 줘야겠어. 이거 우리가 국가사업으로 얼마만에 입찰하는 건가?”
옛날 공기업 시절의 ‘아시아태평양사료’ 시절때라면 몰라도, 민영화 이후 핵심기술과 자본, 인력까지 전부 YN에 뺏긴 것을 이번에야 말로 복수할 기회였다.
회의에 참여한 진욱은 그래도 여기 직원들이 애사심은 있다면서 똘똘 뭉친 상황에 대해 속으로 엄지를 올렸다.
그리고 각자 앞으로 입찰을 위해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홍보, 영업, 그리고 품질 관리등에 몰두하고 있을 때 진욱은 따로 아버지와 회의실로 향했다.
“지금 뭐라고 했냐?”
“그럴듯한 직책 박힌 명함 하나 만들어달라고요.”
“허어, 갑자기?”
진욱은 아버지 일을 돕는 견습사원 같은 역할이어서 아직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별안간 직책을 달라고 하니까 머리를 긁적이는 상만.
그리고 진욱은 이 상황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제가 따로 서울에서 움직이려고요.”
“네가 말이냐? 뭐 하긴··· 조달청 건 물어온 게 너이고, 이번 입찰이 성공하게 된 것도 너이긴 하다만···.”
“네, 일단 방법이 있는데, 그러려면 제대로 된 직책이 필요합니다.”
“어째서? 지금처럼 그냥 이 아빠랑 같이 다니면 되지 않니?”
“정 그러시다면, 일단 저 근로계약서만이라도 먼저 쓰죠.”
일단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진욱의 관철에 상만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들의 아성사료 입사에 대해 근로계약서를 써줬다.
다만 한 가지는 빼 놨는데, 직책에 대해서는 일단 공백을 놓은 것이다.
그리고는 사인에 지장까지 꾸욱 찍은 뒤로 계약에 대한 악수를 했다.
그러면서 상만은 재떨이를 꺼내 담배를 태우면서 말했다.
“좋아, 이제 한 번 이야기 해봐. 하 사원.”
“네, 일단은 신문사 기자들을 좀 만날겁니다.”
“음? 그건 이미 김 부장이 하고 있잖아?”
“아니요. 서울로 가서 5대 일간지 찾아갈 겁니다.”
“흐으음.”
진욱의 말에 상만은 지난번에 한 번 말했던, 대형 언론사에 홍보 광고를 싣는 것에 대해 준비한 게 있긴 했다.
“내가 쥬신일보를 구독하는 데 말이야. 그쪽은 3천을 부르더라.”
“흑백이요? 컬러요?”
“2,3면으로 상관없이 3천, 1면에 올리는건 6천이란다.”
국내 최대의 언론사이고, 이 당시에도 정말 막강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쥬신일보가 가장 효과가 좋긴 했지만 확실히 비쌌다.
“중원일보나 동양일보는요?”
“다를바 없어. 딱 500 차이 나더라.”
3대 일간지가 그렇게 된 상황에서 상만은 자신들이 잡은 신문사에 대해 말했다.
“그나마 한누리가 1면 기사 1500이라고 하길래 일단 그쪽을 생각하긴 했다.”
“한누리요? 흐으음.”
진욱은 한누리라는 이름을 듣자 생각에 잠겼다.
친정부적이고 보수적인 논조인 쥬신, 중원, 동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민족주의 색채가 가능한 신문사였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인 공무원 신분이어서 딱히 어느쪽 정치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은 안 가졌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수 있었다.
‘2007년 노 정권때 한누리라··· 오히려 더 좋은데?’
이 당시 한누리는 정말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대기업과 라이벌인 거대 언론재벌, 그리고 금융가까지 앞뒤 안가리고 물어뜯는데 특화인 신문사였다.
게다가 비리에 대해서 조금만 캘게 있으면 일단 노빠꾸로 들이받는 경향이 있어서 진욱이 생각하는 그림에 안성맞춤인 그림판이 될 것이다.
“한누리 신문이라, 네. 알겠습니다. 제가 그곳에 같이 가도 될까요?”
“그러려무나. 약속이 잡힌게 이번주 금요일이니 그때 같이 가자.”
진욱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진욱은 김 부장과 지역지 언론 사람들하고 고기도 같이 먹고 홍보 책자도 선물하면서 아성사료에 대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상록시를 지켜왔던 30년의 역사. 아성사료를 탐방하다.]
뭔가 그럴듯한 제목과 같이 상록시 환경위생과에서도 우수등급을 받은 깔끔한 공장과 사료 생산, 그리고 박정희 정권 시절 지방 공기업으로 시작해서 상록공단 완공이후 현재까지 함께한 향토기업이라는 것을 알리는 홍보 기사였다.
그 상황에서 인터넷에도 관련 기사가 포털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반응은 적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반려동물이나 각종 동물 관련 커뮤니티 등에 올리면서 ‘위생적인 사료’에 대해서 홍보를 직접 했다.
이 당시에는 뒷광고고 그런 말도 없고, 지금의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사료업체들의 비위생적인 실체’ 등을 폭로된 것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대체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진욱은 하나하나 빌드업을 하면서 틈틈이 이번에 박살을 내기로 다짐한 YN바이오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제무제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역시나 지역지에 대해서 언론플레이를 많이 하는 모습이었다.
[뚝심의 사업가. 제2의 도약을 꿈꾸다!]
[용인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수도권의 핵심 기업으로 성장을 노리는 YN바이오.]
현재 YN은 중소기업중에서도 꽤나 재무제표가 탄탄한 강소기업이었다.
규모도 현재 아성에 비해서는 2배가 넘었고, 이대로 성장세를 간다면 중소기업을 넘어 중견기업까지 올라갈만 했다.
“흐음~”
확실히 만만치 않은 상대, 하지만 못 이길 상대는 아니고 아킬레스건은 진욱이 가지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 미리 준비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진욱이 직접 파일을 만들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 모르는 진욱의 부모님은 회사 끝난 이후로도 예전과 다르게 장난감도 안 사고 일만 하는 아들을 보고 흐뭇해 할 뿐이었다.
***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도착한 진욱부자.
그들은 스케줄에 맞춰서 한누리 신문이 있는 사옥에 도착했고, 안에서는 홍보팀 직원과 경제면 기자 한명이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아성의 하상만이라고 합니다.”
기자 앞에서 먼저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자 그들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회의실 한 곳에 들어가서 통성명을 했다.
“한누리 신문의 최승식이라고 합니다.”
[경제부 기자] 라는 타이틀을 달아놓은 그는 두꺼운 안경 너머로 굉장히 날카로운 눈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펜을 쓰는 기자 답지 않게 손 이곳저곳에는 흉터가 가득한 것이 뭔가 험한 일을 했던 사람 같은 이미지였다.
‘어쩌면 운동권 출신일 수도 있고.’
신문사의 성향이 성향인만큼 가능성을 가지고서 진욱이 자신의 가방을 한번 두들겼다.
그리고 일단 홍보팀 직원과 상만의 홍보 문의가 이뤄질 동안 최 기자는 묵묵히 볼펜을 꺼내서 수첩에 하나하나 적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희가 원래 77년부터 시작했던 기업입니다. 옛날 아시아태평양사료공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주도에 만들어진 기업이었죠.”
“네, 그리고 97년 에 민영화가 된 상태로 지금까지 오셨다고요.”
“최근에 저희가 한영사료나 제일바이오 사료사업부 등과 같이 위탁생산을 맡아서 이쪽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많다고 할 수 있지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지만, 같이 호응해주는 홍보부 직원과 다르게 최 기자는 연신 과묵한 표정으로 자기가 선택할 내용만 적어나갔다.
그렇게 한누리 신문사에서 1500만원으로 1면 광고를 컬러로 올리고, 거기에 대해서 추가 기사로 아성사료 사장 하상만에 대한 인터뷰를 1주일 뒤에 상록시 공장에서 하기로 했다.
그렇게 사무적인 이야기로 진행이 될 때, 1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면서 논의가 거의 끝나갈때였다.
“그럼 이렇게 하고 다음 주에 제가 연락을 드리면 됩니까?”
여전히 까칠해보이는 인상의 최 기자의 물음에도 상만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죠. 좋아하는 음식 있으시면 저희가 맛집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하하하.”
“네.”
사무적인 대답 이후로 수첩을 접는 최 기자.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가 끝날 때 갑자기 진욱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아성사료에 대한 홍보와 저희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 약속은 잡힌거고··· 다음 이야기 해도 될까요?”
“네?”
“음?”
상만도 최 기자도 무슨 소리인가 해서 진욱을 바라봤다.
“아까 소개는 드렸지만, 아성사료의 하진욱이라고 합니다.”
“네.”
“그리고 저는 지금 아성과 상관없이 한누리에 특급 제보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
특급 제보라는 말에 어린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어디 한 번 들어보겠다는 식으로 팔짱을 낀채 고개를 끄덕였다.
태도 자체는 논란이었지만, 일단은 저쪽이 더 권한이 셀 테니 넘어가주기로 했다.
물론 이걸 꺼낸 순간 바로 처지가 바뀌겠지만 말이다.
“이번에 우리 회사가 이렇게 광고를 하는 이유는 국가 사업으로 조달청에 올라온 공지에 입찰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요. 그래서 홍보 기사라고 했죠.”
“네, 조달청에서는 서울시설공단하고, 농협사료가 입찰기업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그것 때문에 지금 농협사료의 모회사인 농협은행 임원들 사이에서 와이로가 거액으로 오갑니다.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요.” “엉?”
“그게 무슨···.”
아이스맨 같은 이 미지의 최 기자는 그 순간 눈썹이 꿈틀거리면서 뭔가 있다는 걸 기자의 촉으로 느꼈다.
그리고 진욱은 어리둥절한 상만의 앞에서 가방을 열고 파일철을 최 기자에게 넘겼다.
그것을 펼쳐본 최기자의 눈이 점점 커졌고, 저게 뭔가 싶어서 보던 홍보부 직원의 입도 커졌다.
“아니, 이런···.”
“입찰에 참여한 기업이 공고 올린 회사 윗선 간부들하고 소고기 맛나게 굽더군요. 게다가 제가 찾아보니까 저 안에 농협사료 임원도 있다고 합니다?”
“!!!!”
안 그래도 정권 말기라 큰 건이 필요하던 한누리 신문이었고, 뭐든 걸리기만 하면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런데 아주 대문짝만하게 찍힌 사진들과 함께 거기에 있는 인물들을 진욱이 하나하나 포털에서 검색해 사진속에 인물들과 매칭해서 파일을 만들어 한누리에 제보한 것이었다.
아성사료에 대한 홍보와 인터뷰에는 시큰둥했어도 이 건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흥미를 가진 한누리 신문.
그리고 그는 아까와는 다른 얼굴로 물었다.
“이거 원본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저요.” “당장 볼 수 있어요?”
진욱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다음 주 상록으로 오시면 아버지 말대로 좋은 맛집에서 한 번 이야기 해 보죠.”
“아니요. 지금 당장!”
“그러면 저희 아버지 인터뷰도 지금 될까요?”
“!?”
진욱은 여유로웠고, 이제 그가 예상한대로 한누리가 더 큰 떡밥을 가지고 흥미를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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