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4화 (4/200)

04- 수상할 정도로 유능한 사장아들(1)

점심때까지 아성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로 진욱은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인근 함바집에서 주문한 밥으로 간이 책상을 펴고 먹는 모습을 보고 진욱은 문화 충격을 느꼈다.

‘공장 주변에 구내식당은 안 보인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쓴 지 20년은 넘어 보이는 플라스틱 반찬통 안에 다섯 가지 반찬으로 나뉘어서 넷이서 한 통씩 먹는 방식이었다.

그나마 밥은 공기로 나뉘었지만, 국은 아예 물통에 와서 배급식으로 받았다.

거기에서 상만 역시도 직원들하고 똑같은 밥을 먹는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정도였다.

“자 먹자!”

아버지의 말에 따라 천천히 식사를 시작하는 진욱.

이런 일이 익숙했는지 모두 군말 없이 먹는다.

진욱은 일단 먹기야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하나하나 생각했다.

‘퇴사율은 보통 회삿밥에 따라 나뉜다고 하지? 게다가 일 끝난 뒤로 오늘 청소해놓은 거 또 얼마나 어질러 놨을지 모르겠고···.’

진욱은 그것 외에도 다른 것들을 떠올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 보니까 아버지 컴퓨터에 OS··· 그거 CD키 입력하라고 한 거 보니 불법 같은데··· 후우···’

아직 시대상으로 쓰는 프로그램은 [Win-xp]. 그런데 복제로 쓰는지 전부 다 라이선스 인증을 요구한다.

그런 상황에서 엑셀 파일이고, 워드 파일이고 과연 제 돈 주고 산 플랫폼이 있기는 할까?

지금까지야 어떻게 견뎌 왔다 해도, 내년 마이크로사의 업데이트 이후로 정품인증 들어가면 이것도 전부 벌금일 것이다.

‘자, 일단 기본적인 건 정하고서 재무제표건 뭐건 보자. 설마 최악은 아니겠지만, 일단 세무서나 감사 규제에 걸릴 것들도 하나하나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 상만이 외쳤다.

“진욱아, 임마!”

“네, 넷?!”

“밥상 앞에서 왜 그렇게 깨작거려? 맛없으면 볶음밥이라도 따로 시켜줄까?”

“아니에요. 잘 먹고 있어요.”

맨날 고급 음식만 먹던 아들이 함바집 밥이 별로인가 싶어서 따로 시켜준다고 물어보는 상만.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 담배 한 대들 태우러 가지?”

상만이 식사를 다 마친 뒤로 간부들을 데리고 우루루 나갔을 때, 진욱은 그 자리에 남았다.

넓은 사무실에 자기 혼자 있었을 때, 조용히 컴퓨터를 하나씩 켜 봤다.

“이봐라, 이거!”

비밀번호 설정이 하나도 안 돼있고, 중요 재무제표 자료까지도 전부 다 드러났다.

게다가 예상했던 대로 엑셀 프로그램을 켜 보자, CD키랑 업데이트 확인해보라고 할 때, 진욱은 한 번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아버지 컴퓨터에 업데이트를 눌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이게 불법 복제 프로그램이라는 오류와 함께 뜰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탕비실에서 냉장고를 열고 음료수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마 그 효과는 금방 나올 거다.

그날 저녁, 퇴근을 앞두고서 상만은 갑자기 서류 파일을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봐, 미쓰 리!”

“네, 사장님.”

“이거 왜 내 자리에서 엑셀이 안 돼?”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경리 여직원이 달려와서 컴퓨터를 이리저리 보면서 클릭을 하는데, 진욱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여기서 일개 중소기업 여직원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어서 여러 번 재부팅을 하고, 다시 클릭해도 라이선스가 없다는 이야기만 나올 테니 말이다.

“어머, 이거 어떡하지?”

“왜 그래?”

보다 못한 김 부장이 나서서 봤지만, 역시나 뭘 알지 못하고 이거 뭐 이러냐고 그랬다.

그리고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결국 오늘은 김 부장의 컴퓨터로 파일 자료를 보고 그걸 출력해서 볼 수 있게 됐다.

상황이 대충 정리됐을 때, 진욱은 컴퓨터를 보면서 겨우 차트 보고 온 상만에게 말했다.

“정품을 안 써서 그래요.”

“뭐?”

“이 프로그램 정품 써야 하는데, 그냥 복사해서 쓴 거라서 라이선스 시디키 필요하다고 하는 거라고요.”

그 말을 들은 상만은 아들의 컴퓨터 판단을 보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센터에 연락해야겠구만.”

“···네?”

“대당 3만원 주면 윈도우 새로 깔아주면서 이거 프로그램 다시 쓸 수 있게 해주거든.”

‘그것도 불법이라고!!’

물론 OS부터 오피스 정품 프로그램 다 맞춰 대당 몇 십만원에 사는 것 보다, 불법 프로그램 깔아주는 동네 센터 가서 3만원 주는 게 더 싸겠지만, 이래선 안 된다고 하면서 노려봤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상만은 원인을 알게 되어서 진욱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컴퓨터 맨날 하더니만, 이런 쪽 잘 아는구나.”

“여기 새로 깔 CD없나요?”

“괜찮아 다시 깔면 돼. 내일 사람 불러야겠다.”

진욱은 오늘 일에 대해서 자신이 고쳐나갈 첫 계획으로 준비했다.

***

“자, 한 잔 하자!”

“도련님이 건배사 해야 하지 않아요?”

퇴근 이후로 수십 명의 직원이 인근의 한 고깃집에 모여서 회식의 자리를 가졌다.

사장 아들의 첫 출근 기념으로 치기에는 상당한 수였다.

물론 고기는 무한리필이 가능한 퀄리티이고, 음료수도 어느 정도는 먹을 수 있지만, 술값은 오버되면 안된다는 제약이 있지만 말이다.

‘집안에서 하는 거랑 너무 다르잖아!’

뭐 어떤 가장이 안 그러겠냐만, 한 기업을 운용하는 사장치고는 사람이 좋기는 한데, 그만큼 말도 안 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었다.

“자~ 쭉쭉 들이키라고!”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지난 삶에서 두 차례의 암 진단 이후 진욱은 소주 반 모금만 마시면서 계속 자리에 있었다.

“우리 도련님은 술 잘 못 하나?”

싱글거리는 하회탈 상 얼굴을 한 인물은 김원식 부장이었다.

아마 지난번 전화로 창립기념일 때 쉰다고 하니 업무에 대해 물어본 ‘김 부장’이란 사람과, 낮에 컴퓨터를 만지던 그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한 잔 받아.”

자신의 잔을 물티슈로 슥슥 닦고는 받으라는 잔돌리기를 하려는 김 부장을 보고 진욱은 됐다면서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제 잔으로 받죠.”

“어, 그래?”

“대신 제가 먼저 따라드리겠습니다.”

진욱은 능숙하게 두 손으로 소주를 따라드리고, 자신의 잔을 비운 다음 받았다.

그렇게 한잔 쭉 들이킨 다음, 기분이 좋은지 어깨동무를 하는 김 부장이었다.

“앞으로 뭐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하라고, 내가 사장님하고는 10년 동안 같이 일한 사이라고!”

전형적인 회식자리에서 얼굴 벌개진채로 분위기가 달아오른 부장님 스타일이었다.

진욱은 그 뒤로 사무직 직원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본명보다는 미쓰 리라는 식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한미 대리, 32세에 싱글이라고 하고, 각종 경리 겸 회계 겸 탕비실 담당을 맡는 만능 직원이었다.

“아이고~ 다들 잘 어울리시네요!”

나이 40에 운송과 자재파트를 맡은 유승인 과장까지 모여서 간부급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얼추 모였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는 모두 오늘부터 새로 시작했던 진욱의 출근 이후로 회식 자리는 2차, 3차까지 모여 성황리에 끝났다.

***

“후우- 후우~”

진욱은 이른 새벽부터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고 집 밖을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새 삶을 산 뒤로 적응하기 위해, 가족들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 주변부터 살피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뿐만 아니라 아무리 봐도 인기 없을 것 같은 비만 체형의 몸도 좀 가꾸기로 했다.

‘적어도 20kg는 빼야지. 헬스클럽도 끊어야겠고 말이야.’

진욱은 그렇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하나 이루기 시작했다.

지금은 2007년.

돈이 들어오는 길은 무궁무진하고, 앞으로의 세상은 엄청나게 바뀔거다.

그리고 충분한 기반이 있으니 여기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오늘도 조깅을 마친 진욱은 후드를 벗고서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보며 주먹을 내질렀다.

***

“재무차트 어떻게 됐어?”

“여기요.”

“오늘 생산량 차트는?”

“이거요.”

상만의 질문에 따라 파일철로 만든 서류들을 딱딱 내미는 진욱이었다.

상만은 그런 아들을 보고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결재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해봤다.

틀린 것 하나 없고, 웬만한 경력직 사원보다 유능하게 일 처리를 마쳤다.

게다가 기존의 이 대리나 유 과장 등의 간부들이 자신들의 파트 외에 여러 개를 맡은 것에 대해 피로를 호소했는데, 그것을 진욱이 모두 해결해내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추가로 인해 기존 시간부터 1-2시간씩 야근을 하던 사무직들도 정시퇴근에 맞게 움직였으며, 상만은 그저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새 노트북을 선물 받아 아버지의 옆에서 기획서를 하나 새로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일에 치여 살았던 사무관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혼자 감당 가능한 업무량이었다.

남들의 배 이상을 하면서, 거기에 아성사료를 지금보다 더 성장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퇴근 이후, 집에서 저녁 식사 이후 9시 뉴스를 보던 아버지에게 그동안 만들어 논 기획서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회사에 대한 기획서요.”

“으음?”

상만은 갑작스럽게 기획서를 내민 아들을 보고 아들을 찬찬히 바라봤다.

요새 밥 양도 줄이고, 틈틈이 운동하더니 살도 많이 빠져서 파묻힌 이목구비가 드러나는 아들이었다.

‘이 녀석이 정말 달라졌네?’

“꼭 읽어주실거죠? 회사에서 내밀기엔 좀 그래서 집에서 드리는 겁니다.”

“어, 어! 그래 알았다. 천천히 읽어보마.”

“지금요.”

“그래! 어차피 뉴스에 뭐 나오는 것도 없으니 지금 보마.”

상만은 아들이 만든 회사에 대한 기획서를 천천히 읽어봤다.

손가락에 침을 바르면서 천천히 갱지를 넘길 때, 진욱은 그 상황에 대해서 조마조마했다.

원래라면 기본적으로 해야 되는 것이지만, 이 시대는 2007년이고 중소기업 사장들의 마인드를 봤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흐으음~”

상만은 그것을 연달아서 계속 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가져갔고, 진욱은 ‘저게 그렇게 중요하게 볼 건가?’ 싶었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회사 경영을 위해 기본적인 것만 통과할 수 있는 기획안인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어쨌건 자신은 할 일을 했으니,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거라 생각한 진욱은 바로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

다음날도 새벽 일찍 조깅을 하고서 돌아와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돌아온 진욱은 아침식사 이후 아버지의 차로 같이 출근하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출근 이후에 모두가 모여 아침체조를 시작하고, 생산직들이 공장 가동에 들어간 다음 사무직들이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상만은 바로 오늘의 조회에서 말했다.

“이번에 우리 말이야. 사무실 내에 기기들 좀 다 바꿔야 될 것 같아.”

“!?”

“네?”

“사장님. 기기를 바꾼다고요?”

김 부장이나 유 과장이나 간부들이 깜짝 놀랄 때, 상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복합기부터 해서, 컴퓨터 싹 다 새걸로 바꾸려고 하네. 그리고 그 쪽에 대해서 내 아들이 잘 아는 업체가 있다고 해서 맡기려고 하네.”

“!?”

진욱은 어제 자신의 기획서를 받고서 검토한 아버지가 기기 교체에 대해서 자신에게 맡긴다는 말에 흠칫했다.

어떻게 보면 입사 한 달도 안 된 고졸 군필의 사장 아들이 들어와서 회사 내에 있는 중요 비품을 싹 다 교체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주 영세한 중소기업.

거기에 대해서 토를 다는 이도 없고, 전권은 상만이 가진 상태에서 아들 진욱에게 위임했다.

“잘 할 수 있지?”

상만이 미소를 지으며 묻는 말에 진욱은 이런 거로 생각하고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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