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3화 (3/200)

03- 아버지 저 일할래요.

일요일.

교회에서 식사까지 마치고 온 상만 내외는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나온 아들 진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셨어요?”

“어, 그래.”

확실히 아들이 달라진 것 같기는 했다.

예전 같으면 자신들이 오건 말건 집 안에서 틀어박혀 밥 먹을 때 빼고는 나오지도 않던 녀석이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마중나온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오늘 저녁은 외식으로 가기로 했다.

“이따 나가서 저녁 먹으려고 하는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상만의 물음에 진욱은 잠시 생각하다가 블로그에서 봤던 음식 사진 중에서 자주 나왔던 걸 언급했다.

“스테이크···?”

“하하핫, 그래! 역시 우리 아들은 소고기지!”

상만은 아들이 어릴 때부터 고기 좋아하던 입맛을 잘 안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괜찮은 식당 알아보라고 아내 원숙에게 말했다.

“당신이 괜찮은 스테이크 집 한 번 알아봐.”

“네, 예약할게요.”

그러면서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상만 옆에 조용히 앉은 진욱.

그러다가 전화가 와서 하는 내용을 모두 들었다.

“어, 그래. 김 부장. 아, 쉬라니까 그러네? 내가 말했잖아? 나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이 사람이 나랑 몇 년 일해 놓고선.”

‘쉬라고? 김 부장?’

중소기업에서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지분도 없지만 대충 갖다 붙이는 대로 이사고 상무고 부장이고 맘대로 직책이 나오는데 김 부장이라는 사람도 꽤나 오래 일한 사람 같았다.

“그래, 회사 창립일 쉬는 건 전통이잖나? 걱정하지 말고 다 쉬어. 미리 말해놨는데, 왜 자네만 전날에 와서 이래?”

‘내일이 창립일? 그럼 오늘 다녀온 뒤로 월요일에도 쉰다는 거네?’

진욱은 좋은 정보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앞으로 자신이 할 일에 대해서 계산했다.

그리고 외식을 위해 스테이크 먹으러 갔을 때, 그들은 상록시를 넘어 옆 동네 신도시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진미나 진영이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진미는 몰라도 진영이 그 기지배는··· 에휴, 말을 말자.”

상만은 속 썩이는 둘째 딸을 두고서 연거푸 찬물을 들이켰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스테이크에 칼질하면서 예의 있게 먹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이 된 뒤로 곧바로 진욱은 본론에 들어갔다.

“아버지.”

“음? 왜?”

“저 일할래요.”

“일이라고?”

상만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옆에 있던 어머니 원숙은 놀라서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반응은 진욱 역시도 느꼈다.

‘대체 얼마나 노답인 아들이었으면, 단순히 일한다는 것도 이렇게 부모님이 놀랄 정도냐?’

하지만 일단 새 삶을 받았으니 적응한 다음에는 뭐라도 해야 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화목한 가정과 건강한 몸을 원했던 거지, 금수저로 태어나 평생 놀고먹고 싶은 건 아니니까 말이다.

“어, 어! 그래. 네가 할 일을 한 번 알아보마. 내 친구들 중에 직원 찾는 놈들이 있을 텐데.”

“그럴 필요가 있나요? 그냥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죠.”

“진욱아!”

진심이냐고 묻는 원숙과 놀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게 아들을 보는 상만.

그리고 그날의 스테이크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었다.

***

“읏차!”

끼이이이익-

아성사료 공장에 아침 일찍 홀로 출근한 진욱.

원래라면 오늘은 월요일이면서, 회사 창립기념일이라 쉬는 날이라고 했지만, 진욱 혼자 나왔다.

집에 대고는 ‘화요일 출근 전에 마지막으로 놀다 오겠다. 늦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는데, 부모님은 쿨하게 승낙하시면서 오히려 용돈까지 두둑하게 주셨다.

진욱은 그 돈으로 일단 청소도구부터 있는 대로 산 다음에,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그 냄새 나는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적당적당한 성격은 아니지.”

그리고 이 악취 가득하고, 공무원들이 감사 나왔다간 단박에 영업정지 될 최악의 근무환경인 공장을 전부 치우기로 했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그 위로 목장갑까지 두른 다음 일단 공장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청소함을 찾다가 창고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하아-”

그 안에는 말통에 가득 담겨있는 화학 세척제등이 가득했다.

“이거··· 곧 있으면 다 불법 되는건데.”

그중에서도 석유화학 제품인 ‘솔벤트’를 보고서 잔뜩도 있다며 혀를 차는 진욱.

어쨌건 지금 시대에는 불법화학물이 아니니 이걸로 청소는 수월할 것 같았다.

옛날 사무관 시절에도 식자재와 관련된 공장 시찰은 많이 했고,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으니 지금부터 혼자 때 빼고 광내는 작업을 해볼 거다.

치익- 치이이이이익-

일단 솔벤트를 가득 채운 전기 분무기로 때가 찌든 공장 일대의 기계들을 세척 했다.

핏물에 고깃물에 새카만 찌꺼기들이 흘러내리면서 바닥에 뚝뚝 떨어질 때 대걸레로 쓸어내고 다시 기계들을 닦아나가기를 몇 시간 동안 반복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동물 사료라지만, 여기서 만들어진 걸 먹고 강아지나 고양이나 닭이나 잘도 버틴다고 생각했다.

진욱은 한나절 청소하고, 바깥에서 음식을 시켰다.

짜장면 한 그릇 배달하고 밖에서 먹자 그동안 막힌 코가 뻥 뚫린 느낌이었다.

“진짜 여긴 리콜 안 된 게 기적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공장을 지키는 시고르자브종 개가 짖어대자, 군만두 먹던 걸 하나 던져주니 허겁지겁 먹으며 진욱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너도 저거 먹냐?”

멍- 멍-

진욱은 피식 웃으며 식사를 마쳤다.

그래도 새카만 공장 기계가 스테인레스 색을 보이자 뿌듯함을 느꼈다.

짜장면과 군만두 그릇을 다 비운 진욱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몸을 풀면서 방진복을 입었다.

“오늘 공장 출고 전 상태로 가는 거다!”

그렇게 밤이 늦을 때까지 단 한 사람의 의지로 인해 아성사료 공장이 점점 변하고 있었고, 진욱이 모든 걸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었었고,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

다음날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준 아침상을 먹고, 아버지의 에르쿠스 차에 탄 뒤로 출근을 준비하는 진욱이었다.

잠이 많아서 아침을 거른 적이 많았던 아들 녀석이 새벽 6시가 되자 바로 일어나서는 샤워와 식사 이후 자신과 같은 출근 시간에 움직이자 그저 기특했다.

“원래 공장 가동 시간은 9시인데, 나는 한 시간 더 일찍 가는 편이야.”

“사장님 출근 시간에 맞춰 그전에 온 사람들도 많겠네요.”

“아니, 그런다고 수당 안 준다고 하니까 딱 맞춰서 오더라.”

껄껄 웃는 상만을 보면서 진욱은 이 아버지에 대해 많은 분석을 했다.

일단 영세하다고는 할 수 없고 직원 규모도 어느 정도 되는 공장을 가진 중소기업 사장.

골프를 좋아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러면서 경영에 대해서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 상태 최악에 공무원 검문 같은 거 통과 못 할 사람 같지만, 종일 전화하는 걸 보면 누구랑 골프 치고, 누구랑 술 먹고 약속을 많이 잡는 게 로비도 잘할 것 같다.

이런 곳에서 진욱이 첫 일을 시작한다.

이제 자신은 촉망받던 서울대에 행시 출신 엘리트 공무원이 아닌 중소기업 사료공장 사장의 외아들인 하진욱이고, 오늘이 첫 출근이다.

그리고 미리 놀라지 말라면서 아버지에게 귀띔을 해줬다.

“오늘 출근하면 공장이 싹 바뀌어 있을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잠깐 들러서 한 번 손 봤거든요.”

“···너 혼자 공장에?”

“네~”

“허, 청소라도 했냐?”

상만은 웃으면서 어디 한 번 공장을 보기 위해 좀 더 속도를 냈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도 빨리 온 사장님의 검은색 에르쿠스.

그리고 반갑게 맞이하는 개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공장 문을 연 순간 상만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 아니?!”

“어때요?”

진욱이 피식 웃으면서 상만에게 물었다.

분명 금요일 까지만 해도 기계는 잘 돌아가니 꾀죄죄해도 그냥 넘어갔던 공장이 산뜻한 냄새가 나면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어이구야. 이게 다 뭐야?”

“싹 다 치웠죠.”

어깨를 으쓱거리는 진욱을 보고 상만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지 꼼꼼이 공장 일대를 살펴봤다.

“그리고 바닥에 도장 페인트한거 다 닳아서 미끄러질 위험이 있네요. 새로 한 번 칠하거나 안전화 구비 하시죠.”

“하, 하하하! 그래야겠구나.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일을 했는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상만은 그대로 진욱을 와락 끌어안으며 잘했다고 연신 칭찬하고는 자신의 지갑을 꺼내 담겨있는 지폐와 수표를 꺼내 손에 쥐어줬다.

“아니, 돈 받으려고 한 게 아닌데.”

“보너스라고 생각해. 청소비가 이정도 나올 거다.”

“저 오늘 첫 출근인데요?”

“하하핫! 그럼 나중에 맛있는 거나 사 먹어라.”

며칠 안 봤어도 손이 정말로 큰 분이라고 생각하며 공장 반대편 건물의 조립식으로 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상만과 진욱.

그래도 사무실은 상대적으로 청소가 되어 있었다.

“일단 작업복 네 사이즈에 맞는 거 하나 챙겨 입고, 오늘부터 할 일은 내 옆에 붙어서 회사 돌아가는 거 한 번 둘러봐.”

“네, 그러죠.”

얼마 후 하나둘씩 직원들이 출근하고, 다 같이 모여서 싹 바뀐 공장을 보고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깔끔한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서 모두들 웃는 얼굴이었고, 먼저 출근한 직원들은 구령에 맞춰서 체조를 시작했다.

국민체조를 끝낸 뒤로 생산직과 사무직들이 각자 일을 하려고 할 때 사장인 상만이 직접 나와 진욱을 소개했다.

[에, 다들 아시겠지만, 내가 아들 하나 있는거 알지? 바로 얘야.]

마이크를 통해서 알리고는 한마디 하라고 하자, 진욱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하 진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사장 아들이 회사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여느 중소기업이 그렇듯 일단 박수로 화답했다.

그리고 70명이 넘는 직원들이 새로 청소된 공장에서 생산설비를 돌리기 위해 들어갔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진욱이 한명씩 인사를 하는 동안 잠시 회의실에 들어가서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눈뒤 나온 상만.

그리고는 자신의 자리에서 의자 하나 가져와서 자신의 옆에 앉으라고 하면서 먼저 컴퓨터에서 아성사료 홈페이지부터 띄웠다.

“자, 일단 아빠가 무슨 일 하는지는 알지?”

“사료 공장이죠.”

“그래. 우리는 지금 위탁생산 방식으로 동물용 사료를 만들지. 생산라인은 크게 건식사료와 습식사료 라인으로 나뉘어.”

건식은 흔히 알곡사료라고 불리는 말린 사료이고, 습식은 츄르라고 불리는 튜브형이나 캔에 담긴 사료이다.

“지금은 농협하고 협력하는 1차 사료사에서 닭사료 위탁을 받아서 모든 생산이 그쪽에 집중하고 있어.”

“산란초기나 중병아리 같은거요?”

“너 그거 어떻게 아냐?”

놀란 눈으로 물어보는 상만을 보고 진욱은 사료공장에서 생산된 사료에 대해 일일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미리 자료를 숙지했다.

“육계가 아니라 알 받는 닭 사료가 주축이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전부 가루로 되어 있고요.”

“그, 그래. 말 잘했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그 위탁 생산량 맞추는 거거든? 여기 봐라.”

상만은 그러면서 아성사료의 납품 시스템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해줬다.

그리고 이런 공장의 시스템은 눈감고도 알고 있어 다 꿰고 있었지만, 일단 열심히 가르쳐 주시니 집중해서 들었다.

“나중에 네가 액셀 차트나, PPT같은거 한다면 맡길 텐데 말이다.”

“할 줄 알아요.”

“으음, 정말?”

다시 한번 과거의 하진욱이란 존재는 어땠길래 그 쉬운 걸 못 하는지 욕이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진욱은 과거의 삶에서 문서작성과 정리, 발표에 대해선 이골이 났던 행정 공무원 출신이다.

그렇게 전직 4급 공무원 출신의 서울대 엘리트의 중소기업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업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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