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오늘부터 내 이름은 하진욱이야.
상만이 네비게이션에 찍고 가는 곳은 상록시였다.
4-50분 정도면 충분히 갈수 있는 거리에 지하철로도 잘 뚫려있는 수도권의 공업도시.
이제는 하진욱이라는 인물이 된 상황에서 재철은 하나하나 생각하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될 상만을 바라봤다.
큰 덩치에 술배가 약간 나오고 지금부터 관리 안 하면 확 벗겨질 것 같은 머리.
그러면서도 서글서글 웃는 얼굴은 일방적으로 가출한 아들 앞에서도 유지됐다.
“그렇게 싫었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냐? 모든 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들어줄 텐데.”
“···네?”
“됐다. 말하기 싫은 거겠지. 집에 들어가면 걱정했던 엄마한테 사과부터 해라. 일단 이야기는 해 뒀다.”
“아, 네.”
에르쿠스의 속도가 점점 올라가고 그 와중에 전화까지 하는 상만이다.
“어, 그래! 이 사장! 아~ 미안해!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 그랬어. 라운딩 다 끝난 거야? 그럼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좀만 기다려!”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서 계속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옷차림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과 골프를 하다가 다급히 왔나 보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자신에 대해 유추했다.
‘일단 부모님 둘 다 계시고, 성격 좋아 보이는데 용돈도 두둑하고, 차랑 골프도 그렇고··· 확실한 건 최소 중상류층은 맞겠군.’
적어도 집안에 재산 수십억대는 있어 보이는 자산가 같았다.
특히 뒷좌석에 슬쩍 보이는 골프가방을 보고 저건 자신의 과거의 삶에서도 차관급 이상이나 사용하는 모델이어서 더욱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외곽도로를 타고 들어온 상록시의 대로를 타고 도착한 곳은 과거 국가 주도 신도시로 만들어진 고산 신도시 일대였다.
수많은 대기업 건설사들의 고급 브랜드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고, 좀 더 들어가서 나온 곳은 대형 전원주택이었다.
“오···.”
“집에 왔는데, 그게 무슨 반응이야?”
“아, 죄송합니다.”
어리둥절하는 상만을 보고 진욱은 헛기침하면서 차에서 내리고 집을 바라봤다.
2층으로 이뤄진 저택은 120평 정도의 규모였고, 어떤 분 취미인지는 몰라도 앞마당에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가꿔져 있었다.
그리고 상만을 따라 들어오자 그 안에는 수많은 고급 가구들이 가득했다.
“진욱이 데려왔어.”
“!”
그 말에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다급히 달려오는 중년의 여성이 있었다.
50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귀부인이 진욱을 보고서 눈물이 왈칵 터지면서 그대로 끌어안았다.
“아이고, 이 녀석아! 얼마나 걱정했는데···.”
“죄송합니다. 어머니.”
“!?”
반사적으로 자신을 안은 자에게 어머니라 부르며 고개 숙여 사과한 진욱.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 눈치껏 말했다.
“그, 방에 들어가 볼게요.”
“어, 그래그래! 2층에 네 방 다 치워놨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자신의 방은 2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두 개의 방중 잠겨있는 곳 대신에 쉽게 열리는 두 번째 방을 잡았다.
그리고 안에 들어왔을 때, 각종 애니메이션과 걸그룹 포스터가 가득하고, 각종 프라모델이나 공룡 피규어 등이 가득한 방에 도착한 뒤로 침대로 가서 드러누웠다.
“후우-”
푹신한 게, 자신이 과거의 삶에서 썼던 오피스텔 침대와 같은 모델이어서 잠자리는 똑같을 것 같았다.
진욱은 누운 채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다시 일어나서 서랍을 뒤져봤다.
이제부터 이 삶을 살아야 하는데 최소한 어떤 인간인지는 알아야 뭔가 자연스럽게 움직일 게 아닌가?
그래서 컴퓨터를 켰을 때, 다행히도 거기에 대해서 일사천리였다.
비밀번호 없이 들어간 수월한 부팅, 게다가 인터넷 로고와 sns를 열자 아예 자동으로 로그인을 하도록 한 것이다.
진욱은 그것을 보고서 설정에 들어가 ‘****’로 된 비밀번호를 드래그해서 앞으로의 이 사람 개인 신상에 대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다음 하나하나 살펴봤다.
“오···.”
이 당시에는 제대로 된 SNS도, 뒷계정 같은 것도 활성화가 안 될 때였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서 블로그 하나를 발견하고 들어간 진욱은 거기서 진짜 하진욱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흐음, 이글리스라···.”
한때 자신도 이름은 들어본 마이크로 블로그였는데, 여기서 네임드인지 탑100 블로거로 여러 번 활약했던 인물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진욱은 하나하나 읽어봤다.
[오늘 산 물건! 이번에 할인으로 싸게 샀다.]
[이번 애니메이션 리뷰! 분기 중에서는 이게 제일 좋아보이는 듯.]
[내맘대로 어워드 Top10!]
[빨리 어른 되고 싶어라. 맥주를 못 마셔요. ㅠㅠㅠ]
학생의 치기 어린 일기와도 같은 내용들을 읽다가 간간이 피식했다.
그러면서 집안일에 대해서 알 수도 있었다.
하진욱이라는 사람은 위로 누나가 둘 있는데, 대학원 다닌다고 하는 첫째, 그리고 유학 다녀오고 이거저거 하는데 지금은 독립해서 따로 산다는 둘째라고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의 일상에 대해 말하는 것도 보였다.
[재수생이 되었습니다. 하하하하]
[여러분 저 그냥 입대해요.]
[군대에서 수능공부...개소리에요. 하나도 못 함.]
[아버지가 나도 유학가라는데··· 내가 뭔 영어를 알아야지 ㅅㅂ]
[하아- 그렇게 아들을 쫒아내고 싶으셨나?]
“이거구만!”
마지막 글까지 봤을 때, 진욱은 이 상황에 대해 유추할 수 있었다.
제법 사는 집에 세 남매.
거기에 사업을 하신다고 쓴 아버지가 외아들이 재수하고, 군대 다녀온 뒤로도 시원찮은 모습을 보이자 차라리 학위라도 따려는 도피성 유학을 보내려 한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이 하진욱이라는 녀석은 거절하고 막무가내로 집을 나갔지만, 이 부모님이란 분은 어떻게든 그런 자식을 찾아오면서 먼저 미안하다고 한다.
진욱의 과거의 삶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새아버지인 하상만이란 사람은 절대 그런 부류가 아니란 걸 확신했다.
내친김에 포털 사이트 등에서 ‘하상만’ ‘상록시 하상만’ 등을 검색하니 바로 나왔다.
[상록시에 동물 사업을! 사료로 시작하는 공장의 시간!]
아성사료 대표 하상만(59).
신문사는 보통 만 나이를 쓰니 환갑 전후인 것이고, 직원 100여명 규모에 중소기업 사료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거기에 부인이라고 나온 이원숙(55)이라고 쓰인 분은 아까 자신을 막 안아주신 어머니였다.
“후우-”
대략적인 호구조사는 끝낸 진욱은 컴퓨터 외에도 서랍장이나 이것저것 살펴봤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지 각종 만화 여성 캐릭터, 혹은 늑대인간이나 강아지 등이나 로봇 등 자유자재로 펜을 놀린 것들이 보였다.
“흐음, 흐으음.”
그 뒤로 다음 서랍에는 무방비하게도 도장이 통장 케이스와 함께 얌전히 있었고, 슬쩍 열어봤을 때, 군필 재수생치고는 도저히 모을 수 없는 금액을 보며 혀를 찼다.
그 뒤로 이런걸 왜 가지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기본증명서에 각종 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를 보고 진욱은 그것을 모두 달달 외웠다.
그리고 하나씩 외워 적응할 때 조용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어머니인 원숙이 아들을 안으며 말했다.
“잘 쉬었어?”
“아, 네. 실례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
평소와 다르게 아들이 존대하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란 원숙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아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화려하게 차려진 식사상에서 조용히 저녁 자리가 되었다.
“진욱 엄마, 예배 언제 간다고 했어?”
“이번 주는 수요일 저녁이요. 진미도 온대요.”
‘진미···.’
진욱은 아까 방에서 본 자료로 인해서 첫째 누나 하진미와 둘째 누나 하진영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진욱이는 이번에도 안 갈거냐?”
진욱은 교회를 독실히 다니는 집이라고 생각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저는 좀···.”
“그래, 알았다.”
강요도 하지 않고, 그 이후에 더 이상 뭐라 하지도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자기 그릇을 치우려고 하자 원숙이 놀라서 제지했다.
“아니야. 그냥 놔둬. 엄마가 치울게.”
“아닙니다. 잘 먹었습니다.”
“!”
진욱은 자신이 먹은 그릇들을 조용히 싱크대에 올려놓고 예의 바르게 인사한 다음 양치를 하러 떠났다.
그 모습에 원숙은 놀란 얼굴로 상만에게 말했다.
“여보, 아무래도 진욱이가···.”
“짜슥이 집 한 번 나가니 개고생을 체험했나? 아주 조용해졌네?”
평소의 사회성 없고, 너무 오냐오냐 키웠던 아들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졌는데, 오히려 위화감보다는 흐뭇해하는 상만이다.
그리고 그런 아들을 위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
“받아.”
“이게 뭐죠?”
“휴대폰! 너 임마 그때 집 나간다고 집어던지고 전에 쓰던 거 망가트렸잖아.”
이 당시에는 최신형이라 할 수 있는 슬라이드폰을 선물로 건네줬다.
“아, 감사합니다.”
“음~ 그래.”
새 휴대폰을 열어보고 확인한 진욱은 지난날 기억했던 아버지의 명함을 두고 하나하나 휴대폰 번호를 기억해서 그걸 저장했다.
그리고 주일이 되어서 교회 가는 부모님 내외에게 인사한 뒤로 진욱은 열쇠를 챙기고 혼자 움직여 보기로 했다.
“흐으음.”
진욱이 향한 곳은 아버지의 명함을 가지고 찾아간 회사였다.
택시를 타고 여기로 보내달라고 하자 금방 알아차리고서 상록시의 공단 한 곳에 도착한 진욱은 내리자마자 그 풍경을 보고 입이 벌어졌다.
“허···.”
뉴스 기사 등으로 사료 제조공정을 맡은 중소기업 공장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다 낡은 철조망에, 개 한 마리.
그리고 낡은 철문을 열자 안에서 역겨운 냄새가 가득했다.
“우우우욱!”
순간 토할뻔한 악취에 얼굴을 돌렸던 진욱은 문을 연 채로 심호흡을 한 다음 겨우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스크를 챙길 걸 그랬다.
새카맣게 먼지가 쌓인 기계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 나는 얼룩.
창고의 기계들을 한 번 둘러봤을 때, 아무리 동물들이 먹는 사료라지만 이래서 리콜 처리 안 되나 싶을 정도로 열악했다.
“내가 농림축산부 있었을 때, 이런데 발견했으면··· 하, 진짜 바로 영업정지 때렸다!”
행시 엘리트 출신인 그에게 있어서는 이게 정말 제대로 운영되는 공장인가 싶을 정도의 의구심이 들었다.
공장의 얼룩들을 한 번씩 둘러보고 그 밑에서 흙먼지가 있을 때, 진욱은 새 신발이 금방 더러워지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수첩을 꺼내 사료공장의 돌아가는 구조를 그려가면서 하나하나 머릿속에 담았다.
“그러니까 여기서 원재료를 만들고 돌린 다음에 건조하고, 건식으로 만들어내는거구만.”
공장을 쭉 돌아본 다음에 마지막에 나오는 곳을 확인하고, 바로 옆 창고로 향하자 그곳에는 딱 우리가 알고 있는 사료의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종이 포대에 쌓여있는 사료들을 각 동물들이 먹는 방식으로 분류되어있었다.
[닭사료- 산란초기]
[닭사료- 육계후계]
[닭사료- 약병아리]
“흐으음.”
각 농가에서 기르는 용도로 분류를 시켜놨다.
그리고 작은 사이즈로 포장이 되어서 팔레트 위에 놓인 것은 강아지용 건식사료였다.
[아성사료-성견용]
[아성사료-유아견용]
이렇게 만들어놓은 재고를 보고, 멈춰있는 지게차와 그 일대에서 이제 납품차량이 오는 것까지 진욱의 머릿속에서 딱 그려졌다.
그 앞으로 있는 가건물은 1층 창고를 두고서 2층부터 사무직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잠겨있었다.
“흐으음.”
굉장히 인자한 부모님과 화목한 가족과 아들 이야기라면 뭐든 지원해주는 집안.
하지만 열악한 중소기업의 공장 하나와 그 뒤로 언제든 위험 요소가 있는 상황.
진욱은 그것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군필 이후 부모님 용돈이나 주면서 호의호식할 사람은 아니었다.
“오늘 저녁에 일 좀 해야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