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화 (1/200)

01-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검진이 끝난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안경알을 매만졌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정장 차림의 40대 남성은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또 재발했어요?”

“유감입니다. 이번에 떼어낸 용종에 대해서 정밀 검사를 해 봤는데···.”

말을 잇지 못하는 의사를 보고 환자인 재철이 더 담담하게 말했다.

“5년 안에 재발이 없으면 산 거라고 하더니만, 기가 막히게도 4년째에 또 나왔네요?”

“그래도 일단 건강 상태를 봐서는 수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생제 역시도 현재 신제품이 건강보험 처리가 되니 문제없을 겁니다.”

“네, 알겠어요.”

재철은 의사와의 상담을 마치고 데스크에서 진료비를 계산한 다음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또 하늘은 엄청 맑았다.

그는 조용히 주차장에서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병원에서 암 재발 판정을 받고도 너무나도 담담한 하루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정민: 선배님. 오늘 검진 결과 잘 나오시길 기원합니다.]

[김명배 동기: 재철아. 진짜 기운내라. 이번만 견디면 너 완치잖아.]

[어머니: 어디야? 오늘 결과 나오는 날 아니니? 하나님 믿고 꼭 교회 가라. 기도 많이 하고 있다.]

휴대폰에 수많은 연락이 왔지만, 재철은 쓴웃음을 지으며 확인만 한다음에 넘겼다.

김재철.

그는 모두가 동경하는 엘리트였다.

아니, 정확히는 모두가 동경하도록 만들어진 엘리트였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통제당하면서 엄격한 부모 밑에서 맞으면서 공부를 해왔다.

시험을 봐서 1등이 아니면 놀았다면서 맞았고, 1등을 해도 점수가 예전보다 낮으면 또 맞았다.

그렇게 공부하는 기계처럼 그 흔한 취미생활 하나 못하고 육성됐으며, 서울대 입학을 한 뒤로도 사생활을 통제받았다.

그리고 행정고시에 합격했을 때도, 기뻐하기보다는 석차를 물어보던 부모님.

그리고는 재경직을 못 간거냐면서 구박하다가도 얼마 안 있어 나이를 먹은 부모를 봉양해야 했다.

교사였던 아버지의 불미스러운 사퇴, 그리고서 몸이 아프다면서 그동안 키워준 것에 대해 요구했던 많은 돈.

결국 집안에서 개처럼 싸우고 의절까지 갔고, 가끔 어머니의 연락 빼고는 모두와의 거리를 뒀다.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려오니 40대 초반에 요직을 돌고 있는 서기관으로 인정을 받고 조만간 3급 부이사관 자리도 노리고 있었지만, 쉼 없이 달려왔던 그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4년 전에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조금 크기가 크긴 해도 수술로 떼어낼 수 있다고 싹싹 긁어냈지만, 보다시피 재발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직도 많이 남은 공무원 임기와 대출받아서 구매한 작은 오피스텔 하나와 중형차 세단 한 대가 전부.

***

그날 밤.

재철은 한강공원에서 참치캔에 소주를 사고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우-”

그동안 기계처럼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떠올랐다.

“지랄 같은··· 어쩌다 이렇게 됐냐?”

카톡 목록을 살펴봐도, 동기들의 안부, 그리고 사무적인 내용과 계속 교회를 다니라고 하는 어머니의 연락에 괜찮다고 답장한 게 전부.

그리고 핸드폰 카메라에 담긴 앨범들은 전부 회식 자리와 연수 갔을 때, 주변을 찍었던 게 전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은 돈 가지고 혼자 여행이라도 떠나는 건데.”

애석하게도 지금 한탄하면서 하는 혼잣말을 들을 사람도 없었다.

여기저기에 전화해도 평일이다 보니 지금은 바쁘다거나, 진지하게 연락을 받아도 ‘몸 상태 생각해라.’라면서 주말에나 한번 보자는 형식적인 안부가 전부이다.

“바라도 한 번 가볼까?”

그나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대화했던 곳이 그런 바텐더 앞이나, 가끔 가던 집 앞 포차의 아주머니.

한탄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비싼 술과 안주를 판다.

겨우 그 정도의 거래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왔던 지금의 삶.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미 한계치의 주량이었지만, 조금도 뱃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딱- 또그르르르-

재철은 옆에서 다 먹고 구르는 소주병과 안주로 먹은 참치캔과 핫바 껍질을 하나하나 다 챙긴 다음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소주 한 병 더 사고, 대충 보이는 안주 중에 하나를 샀다.

삑- 삑-

바코드가 찍히고 계산을 할 때, 그것을 다시 강물 앞에 앉아서 소주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라리 먹고 죽자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크어-”

속이 아려왔을 때, 안주라도 먹으려고 아까 사온 캔하고 육포를 뜯으려고 했다.

그 순간 재철은 사온 물건을 뒤늦게 확인했다.

자신이 사온 캔에는 고양이가 그려져 있고, 육포에는 강아지의 사진이 박혀 있는 것을 말이다.

“···.”

포장지를 안 보고 식품 코너에 있는 걸 보고 샀는데, 확인하니까 웃음이 나왔다.

“킥··· 크하하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데 눈물이 나왔고, 그것들을 집어 강물에 던지려다가 술기운에 그대로 드러누워 뻗어버렸다.

고급 정장 차림에 엘리트는 모든 걸 놓아버리고 개밥과 고양이캔을 손에 쥔 채로 눈을 감았다.

‘다음 생에는 좀 제대로 된 집안에 태어나고 싶다.’

‘많은 거 바라는 것도 아니야. 날 좀 억압하지 않고, 손찌검도 없는 착한 부모, 그리고 강요하지 않는 집안이면 돼.’

‘재산? 중요하지 않아. 적어도 스무살만 되면 과외로 전부 커버칠수 있어.’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좀 더 잘했을텐데···.’

괜스레 지금까지의 삶을 한탄하면서 눈을 감은 김재철 서기관.

그리고 어두운 새벽에서 갑자기 빚이 내렸다.

***

“···세요.”

“음?”

“···여보세요!”

“으으으음!”

재철은 눈을 뜨고서 자신의 앞에 있는 흰색 정복의 경찰들을 보고 황급히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벌써 해가 뜬 아침이다.

한강변 앞에서 술 먹고 위험하게 잠들어있는 상황, 거기에 양손에는 고양이 참치캔과 강아지 육포가 들려있었다.

“참, 나.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공원에서 주무시면 안 되죠.”

“어우~ 술 냄새. 이 양반 얼마나 마신거야?”

짜증이 가득한 경찰의 말에 재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

그 순간 재철은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자기 목소리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목을 만져봤을 때 두툼한 살이 만져졌다.

헬스로 다져진 자신의 몸은 온데간데 없고 두 눈에는 웬 비만 체형의 몸이다.

“!?”

게다가 J모직에서 50만원 주고 맞춘 정장은 어디 가고 웬 촌스러운 평상복 차림이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네?”

“신분증이요. 신분증! 혹시 학생 아니죠?”

“아, 잠깐만요!”

뭐가 좀 이상했지만, 일단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다행히 지갑이 나왔다.

두툼한 지갑에는 현금이 가득 들어있었고, 신분증을 꺼내는데··· 자신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인물의 것이었다.

“뭐야, 이건 누구···.”

그걸 꺼내 봤을 때, 경찰은 짜증스런 얼굴로 그걸 받으면서 말했다.

“아저씨, 술 덜 깨셨어요? 본인 맞잖아요.”

“···네?”

[하진욱-86XXXX-1XXXXXX]

“!?”

자신의 이름은 김재철인데, 하진욱이라는 사람의 신분증이 나왔고, 이게 어떻게된건가 싶어 머릿속이 혼란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경찰에게 말하려고 했을 때, 그는 오히려 재철을 의심했다.

“집주소 이게 맞습니까? 같이 좀 동행해 주시죠?”

원래였다면, 서기관 신분증 보여주면서 뭐라고 한마디 했겠지만, 이 상황에서 아직도 머릿속이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재철은 그대로 따랐다.

파출소로 향해서 그곳에서 조사받고, ‘어제 몇시부터 마셨냐?’ ‘집이 어디고 연락할 사람이 있냐.’ 등등 진욱을 마구 갈궈대자 시대가 어느때인데 경찰이 이러냐며 속으로 한숨이 나오는 재철.

그리고 신분증을 통해 경찰이 집에 연락했을 때, 재철은 품 안에 휴대폰이라도 있으면 자신이 뭘 알아보려 했지만 그것도 없었다.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냐···.’

그러면서 파출소에 있는 화장실을 보고 그 안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봤다.

그래도 키는 180 언저리는 되어 보이지만 비만 상태에 꼬질꼬질한 옷차림이 흔히 말하는 아싸 스타일이었다.

“미친, 이게 대체?”

더 무서운 것은 파출소 화장실에 비치된 달력이었다.

[2007- 10- 27일]

한 장씩 찍는 일력 형태로 된 달력에 써진 날짜가 그랬으니, 저게 클래식 소품이 아니고서야 지금은 14년 전이다.

“나··· 딴 세상 왔나보다.”

2021년 김재철이란 자신은 사라지고, 2007년의 하진욱이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 옛날 자신이 문광부에 있으면서 콘텐츠진흥원 사람들하고, ‘요샌 타인의 몸으로 빙의하거나, 몇십년 전으로 돌아가는 회귀물이 대세입니다.’라면서 거기에 대한 미디어 투자에 대해서 논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 정부 지원으로 선정할 관련 시나리오와 작품들 보면서 ‘이런 걸 진짜 사람들이 보냐?’라고 혀를 차면서도 결제는 해줬는데, 자신이 딱 그 꼴이었다.

재철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음, 지금이 07년이고, 아까 주민등록증 보니까··· 21살, 아니 22살인가?”

지갑을 뒤져보니 대학교 학생증은 안 보이고, 전역증은 보였다.

그래도 군필이라길래 다시 살아도 군대 갈 일은 없다는 걸 안심하는 자신이 싫어졌다.

하지만 그거보다 대단한 건 지갑에 두둑하게 담겨있는 현금이었다.

아직 이때는 5만원 권이 없어서 만원짜리에 수표까지 꽉꽉 차 있었다.

게다가 어린놈이 뭐 이리 카드가 많은지 신용카드만 세 개였다.

외모는 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돈 좀 있는 집에 태어난 것 같았다.

“하진욱이란 말이지···.”

재철은 자신의 새로운 신분이 된 상황에 대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때 화장실로 경찰 한 명이 다가와 진욱을 찾았다.

“하진욱씨?”

“네?”

“거기서 뭐 해요? 보호자 왔으니 밖으로 나오세요.”

“!”

보호자라는 말에 잔뜩 긴장한 재철, 아니 이제는 하진욱.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번 부모도 승질나면 손부터 올라오는 사람일까, 아직 00년대 중후반이면 아직도 체벌에 대한 개념이 미비하던 시절이다.

진욱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그 경찰을 따라 나왔다.

밖에는 조서를 쓰고 있던 덩치 큰 인물이 있었다.

키 180초중반에 푸짐한 체격, 약간 벗겨진 머리에 급하게 나왔는지 골프셔츠 차림에 면바지의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인물은 진욱을 보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이 녀석아!”

우렁찬 소리와 함께 다가올 때, 나이 마흔 넘어도 그때의 트라우마로 반사적으로 움츠러드는 순간.

그는 곧바로 커다란 두 팔을 벌려 진욱을 와락 끌어안았다.

“걱정했잖냐? 아무리 힘들어도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

“그래도··· 무사하니 다행이다.”

파출소의 감격스러운 부자 상봉에서 경찰들은 얼굴을 긁적이며 말했다.

“하상만씨? 이제 아드님 데리고 귀가 하시면 됩니다.”

“아, 예! 아들 놈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세요. 이거 딱지 끊을 수 있는데 그냥 넘어가드리는겁니다?”

하상만이라고 불린 거구의 사내는 연신 파출소에 비타500 박스를 건네주며 경찰들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못난 아들을 데리고 돌아가려 손을 붙잡았다.

밖에는 06년식 검은색 에르쿠스 조수석에 진욱을 태운 상만은 이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집에 가자.”

“···네.”

과거의 삶 재철.

새로운 삶으로 하상만의 아들 하진욱은 그렇게 뭐가 뭔지 모르지만 일단 바뀐 신분과 세상에서 새 가족을 만나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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