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150)

유지훈이 강하게 나갔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협상단이 당황해서 일어서는 찰나, 이자걸이 절충 의견을 제시했다.

“그냥 날로 먹겠다고 내놓으라는 건 아닙니다. 가치에 맞는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인수하겠다는 겁니다.”

이를 받아 관방장관이 통 큰 일성을 날렸다.

“따지고 보면 작금 일본의 위기가 다 야마가토산업으로 인해 빚어졌습니다. 야마가토산업의 전 재산을 국고에 귀속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관방장관께서는 몰수라도 하자는 말씀입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렇게까진 못하지요. 대신 정부에서 인수를 추진할 순 있지 않겠습니까. 안 내놓겠다면 압력이라도 넣어서 인수한 다음에 이자걸 대표에게 내드리도록 하지요.”

“공짜로요?”

“식인 괴질을 종식시키지 못하면 미국의 핵미사일을 때려 박는다고 하잖습니까. 자칫 일본 전역이 불바다가 될 판인데, 그깟 매각 대금 안 받으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야마가토제약도 이자걸 손에 들어왔다.

잘 정리된 줄 알았는데, 하나 남았다. 화무결이 손을 휘저었다.

“이렇게는 곤란하지. 나도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데. 지훈이 자네는 홋카이도의 주인이 되고, 자걸이는 야마가토제약을 먹고. 나만 빈손 아닌가. 있을 수 없네.”

“됐어. 얘들 더 내놓을 것도 없어. 홋카이도 나랑 반씩 나눠.”

화무결을 달래놨더니 이자걸도 들고 일어섰다.

“에헤이. 이건 아니죠. 두 분은 홋카이도를 먹었는데, 저한테는 야마가토제약뿐이라뇨. 사실 야마가토제약은 짐 아닙니까.”

“그건 또 그렇네요. 그럼 이자걸 대표가 홋카이도의 국영 재산 운영권 가져가세요. 신화전자 사업도 마음껏 하시고요. 50년 동안.”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이뤄졌다.

일본 측 협상단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내준 게 작지 않았지만, 나라는 지켰다. 게다가 홋카이도는 여전히 일본 영토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후딱 마치고 온천이나 가봐야겠습니다.”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그런데 내가 온천 좋아한다고 누가 일러줬습니까?”

“비밀입니다.”

일본 측 협상단은 현장에서 서류 작업까지 마무리 지었다.

야마가토제약은 강력한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관방장관의 엄포 한 마디에 꼬리를 내렸다.

“야마가토산업 전체가 문 닫는 꼴 보고 싶습니까?”

깔끔하게 정리된 가운데 야마가토제약으로 향했다.

새 주인의 첫 방문이었지만, 직원들의 환영은 거부하기로 했다. 일단 건물을 싹 비우라고 지시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큰 상황이었으니.

그렇게 유지훈 일행은 텅 빈 야마가토제약 건물에 느긋하게 들어설 수 있었다.

“백신이 효과 있는 거 맞겠죠? 랴오 영감한테서 연락이 없네요. 확인하면 바로 문자 보내라고 했는데요.”

“확실합니다. 나 이자걸이에요. 변종 몬스터 제국의 주인.”

“누가 아니래요? 백신 효과 없으면 지금까지 챙긴 거 말짱 도루묵 되니까 그러죠.”

***

선공의 효과는 뚜렷했다.

로버트 미첨을 제외한 포 호스멘이 특성을 발동해 쏟아냈고, 랴오위안허까지 가세하자 다크 디멘션의 전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수장 저스틴 로저스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스무 명의 수하 중 여섯이 목숨을 잃었다. 다섯 명의 감염자 중 둘도 랴오위안허가 쏟아낸 백색 화염에 휩싸여 소멸해갔다.

물론 반격도 매서웠다.

특히 저스틴 로저스의 특성 플라스마 블래스터. 한꺼번에 포 호스멘 전체를 삼킬 듯 덮쳐왔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다섯 초인이 일제히 마나를 일으켜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크고 작은 상처에 뒤덮여야 했다.

청기사 데이비드 포스터의 상세가 가볍지 않았다. 연신 피 기침을 했다. 부러진 갈비뼈에 장기를 다친 듯했다.

남은 수하들이 쏟아내는 공세도 만만치 않았다.

기세는 초인들에 한참 못 미쳤지만, 열네 명이 한꺼번에 특성을 발동하자 포 호스멘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특성은 없지만 초인급 신체 능력을 지닌 감염자들의 육탄 공격이 더해졌다. 포 호스멘과 랴오위안허가 수세에 몰렸다.

“헬파이어와 헬프리징을 번갈아 발동하시오.”

로버트 미첨이 랴오위안허에게 말했다.

로버트 미첨은 부러진 팔 때문에 특성을 발동할 수 없었다. 마나를 일으켜 방어하며 전황을 살필 뿐이었다. 효과적인 공격 방식을 찾아내 조언한 것이었다.

“헬프리징?”

“마커스의 특성이오. 모든 걸 얼려 버리는 속성을 지녔소. 내 특성과 동시에 펼쳐지면 위력이 배가되오.”

포 호스멘의 기본 전략이었다.

로버트 미첨의 헬파이어와 마커스 수아레스의 헬프리징으로 공간을 장악한 뒤 엘라니스 잭슨과 데이비드 포스터의 특성으로 상대를 찢어발기는 방식이었다.

엘라니스 잭슨의 소닉 트위스터와 데이비드 포스터의 썬더 스톰은 타격 위력이 극대화된 특성들이었다. 공간이 장악됐을 때 확실한 살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포 호스멘 넷이 함께면 어떠한 강적도 두렵지 않다던 이유가 특성들의 조화로운 구사에 있었다.

랴오위안허가 헬파이어와 헬프리징을 번갈아 뿜어냈다.

동시에 마커스 수아레스도 헬프리징을 더해 공간을 확실하게 확보했다. 엘라니스 잭슨과 데이비드 포스터가 소닉 트위스터와 썬더 스톰으로 공세를 펼쳤다.

체계가 갖춰진 공세에 저스틴 로저스와 다크 디멘션은 방어에 급급한 형편이 됐다. 마나를 최대한 끌어올려 방어막을 형성했지만, 쓰러지는 자들이 하나둘 속출했다.

공세와 수세가 뒤바뀐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제 헬파이어와 썬더 스톰으로.”

로버트 미첨의 훈수가 이어졌다.

데이비드 포스터가 부상 때문에 제대로 특성을 발동하기 여의치 않았다. 공간은 충분히 확보됐으니, 타격의 공세 쪽에 기세를 더하라는 조언이었다.

로버트 미첨은 백전노장답게 보는 눈이 정확했다.

랴오위안허가 헬프리징을 발동하지 않아도 이들의 공간은 확고했다. 헬파이어에 겁먹은 감염자들의 접근이 원천 봉쇄된 덕분이었다.

육탄전의 강자인 감염자들의 발이 묶이자, 포 호스멘은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를 얻게 됐다. 특성의 발동이 한결 수월해졌다.

다크 디멘션의 방어막이 뚫리기 시작했다. 저스틴 로저스가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수하 셋이 쓰러졌다.

포 호스멘 진영의 확연한 우세 국면이었다.

“이제 랴오 초인께서 적절히 판단하셔도 될 것 같소.”

더 이상 훈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치달았다.

랴오위안허는 헬파이어를 기반으로 헬프리징과 소닉 트위스터, 썬더 스톰을 번갈아 구사하며 상대를 공략했다.

습득기는 함께 있는 자가 누구인지에 위력이 결정되는 특이 특성이었다. 극강의 초인들에 둘러싸인 지금 랴오위안허는 차원을 달리하는 강자였다. 손짓 하나하나에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렸다.

다크 디멘션의 셋이 더 쓰러져 여덟만 남게 된 순간.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로버트 미첨이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냈고, 데이비드 포스터가 진영을 이탈해 어딘가로 달려갔다.

“이게 무슨···?”

“저놈부터 잡아!”

데이비드 포스터가 향한 곳은 광장 귀퉁이, 오사카에 남아있던 감염자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던 곳이었다.

날렵하게 달려가 감염자 하나를 잡아챘다. 독수리 먹이를 낚아채듯 제압한 뒤 어깨에 둘러멘 채 내달렸다.

저스틴 로저스의 수하들이 데이비드 포스터의 뒤를 쫓았다.

“데이비드를 보호해야 한다!”

로버트 미첨의 외침에 이어 엘라니스 잭슨도 진영을 벗어났다. 데이비드 포스터를 도우려 몸을 날렸다.

마커스 수아레스가 움직인 방향은 예상 밖이었다. 랴오위안허를 향했다. 헬프리징을 발동하려고 했다.

“그 동안 수고 많으셨소. 목적을 달성했으니···!”

포 호스멘의 목적. 감염자의 생포였다.

치열한 접전이 정리되는 국면에 기회를 포착했다. 기민하게 빠져나간 데이비드 포스터가 감염자 확보에 성공했다.

든든한 조력자였던 랴오위안허가 걸림돌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커스 수아레스가 제거에 나서려던 찰나였다.

로버트 미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경악으로 바뀌기까지 1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랴오위안허가 한발 빨랐다.

적을 향해 쏟아내던 습득기의 방향을 마커스 수아레스에게 돌렸다. 백색 화염이 마커스 수아레스를 집어삼켰다.

“끄아아!”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로버트 미첨이 경악해 뒷걸음질 쳤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유지훈 초인에게서 일찌감치 들어둔 훈수가 있었소.”

랴오위안허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대에게 그대 것을 드리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군.”

로버트 미첨에겐 헬프리징이 작렬했다.

콰지지지직!

얼어붙은 로버트 미첨의 육신이.

툭!

가벼운 주먹질에 산산조각이 돼 흩어졌다.

익숙함과의 조우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돼 버렸다.

포 호스멘의 둘은 감염자(?)를 확보해 달아났고, 둘은 서로의 특성에 당해 목숨을 잃었다.

다크 디멘션 일당은 달아난 포 호스멘 추격에 나선 상황이었다.

현장에 남겨진 자는 몇 없었다.

일단 생존한 감염자 셋. 해방군 돌격대 소속으로 저스틴 로저스와 다크 디멘션 무리의 가이드로 투입된 자들이었다.

이들은 헬프리징의 백색 화염이 걷히고 나자 위세를 되찾았다.

여태껏 백색 화염의 공포에 휩싸여 움츠러든 상태였지만, 이제는 겁날 것 없다는 태도였다.

육탄 공격에 뛰어들 기세로 랴오위안허에게 다가왔다.

“으음···. 이제 내 손에 쓸 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 건가.”

지금껏 습득기의 대상이었던 포 호스멘이 사라지고 없었다. 랴오위안허는 특성 없이 마나만 충만한 각성자인 셈이었다.

잔존하는 마나로 습득기를 발동할 수 있지만, 위력은 현저히 떨어질 터였다. 결국 육탄전에 육탄전으로 맞서야 하는 형편이었다.

일단 질러놓고 보기로 했다. 잔존하는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발동해야 하니 고민의 여지도 없었다.

습득기를 발동해 헬파이어를 구사했다.

화르륵!

백색 화염이 감염자들을 덮쳤지만, 잔불 수준에 불과했다.

집어삼키진 못했다. 신체 일부가 소멸하는 듯싶었지만,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빈약한 헬파이어의 소멸력이 감염자들의 재생 능력에 압도된 양상이었다.

“에게! 고작 이 정도에 겁먹었던 거야?”

“어떻게 죽여줄까? 노인네야. 대가리를 쪼개줄까?”

“아니야. 사지를 찢어 죽이자고. 그래야 뜯어 먹기 좋지 않겠어?”

감염자들의 기세만 올려주는 역효과가 났다.

랴오위안허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저놈들 먼저 처치했어야 했나···.”

그때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저스틴 로저스였다.

“그대는 안 쫓아간 거요?”

“가려다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길래 남아 있었습니다.”

저스틴 로저스가 빙긋 웃으며 잔해들을 가리켰다.

마커스 수아레스와 로버트 미첨이 죽어가며 남긴 흔적들이었다.

“본의는 아니셨겠지만, 큰 신세를 진 결과가 됐군요.”

저스틴 로저스가 가벼운 목례로 감사를 표했고, 랴오위안허도 손을 들어 올려 화답했다.

이어 환하게 웃었다. 답을 찾은 자의 후련한 웃음이었다.

습득기를 발동했다. 저스틴 로저스의 특성 플라스마 블래스터가 감염자들을 강타했다.

콰콰쾅!

거대한 폭발이 감염자들을 집어삼켰다.

버섯구름이 뽀얗게 피어올랐다. 일대가 움푹 가라앉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폭발이었다.

감염자들은 갈기갈기 찢어진 양상이 됐다. 그래도 죽지 않았다. 꿈틀꿈틀 움직였다. 서서히 재생되기까지 했다.

“지독한 놈들이군. 한 번으론 부족한가.”

한 차례 더 플라스마 블래스터가 작렬했다.

다시금 엄청난 폭발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감염자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지경에도 움직임을 이어갔다.

“뇌가 살아있는 한 끝없이 재생한다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가 머리를 짓밟았다.

셋의 머리가 모두 한 줌 뇌수로 흩어진 다음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재생이 중단됐다. 죽음의 문턱 너머로 건너갔다.

남겨진 건 랴오위안허와 저스틴 로저스였다.

“이제 우리만 남았구려. 어떻게, 바로 시작하겠소?”

“하하하.”

저스틴 로저스가 유쾌하게 웃더니 손사래를 쳤다.

“사양하겠습니다. 거울을 보며 싸우고 싶진 않거든요.”

“거울을 보며 싸운다···.”

“재미있는 특성을 보유하셨네요. 안목을 넓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적도 달성했으니 떠나볼까 하는데. 막으시겠습니까?”

저스틴 로저스는 어느 정도 목적을 이뤘다.

숙적인 포 호스멘 중 둘이 죽은 것만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또 하나의 목적도 떠나면서 달성 가능이고.

원래 목적인 오사카의 감염자들 인솔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아쉽지만 노인과 잡은 손은 놓아야 했다.

“나도 그대의 능력으로 그대와 겨루고 싶진 않소. 가보시오.”

랴오위안허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저스틴 로저스가 빙긋 웃고는 몸을 날렸다. 광장 구석에서 넋을 잃은 채 쳐다보고 있던 감염자(?)의 덜미를 낚아챘다.

득의양양한 미소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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