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150)

“중대장님은 이만 들어가십시오. 오늘은 별일 없을 것 같습니다.”

“됐다. 근무 시간은 엄수해야지. 30분만 더 있으면 된다.”

그때 멀찍이서 요란한 술렁임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수백 명이 무리를 지은 양상이었다.

“중대장님!”

“으음···. 일단 근무 인원들 사격 준비시켜라. 내가 나가서 확인해 보겠다.”

중대장이 검문소 밖으로 나갔다.

총을 겨눈 채 소리쳤다.

“멈추세요!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움직이면 쏘겠습니다!”

사람들이 고분고분 멈춰섰다. 얌전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쏘지 마세요! 저희 검사받으러 왔습니다. 여기 벗어나려고요.”

검문소의 검사 인력이 바쁘게 움직였다.

몰려든 사람들도 이내 긴 줄을 형성했다. 소동은 없었다. 통제 병사들의 지시에 순응하며 대기했다.

“비감염자는 다 빠져나간 거 아니었어?”

“모르겠습니다. 문제 생기면 즉시 격발한다고 경고했는데도 순순히 따르는 걸 보면 감염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검사가 시작됐다.

[음성], [음성], [음성]···.

검진 키트는 전원 음성을 가리켰다.

“중대장님. 5 검문소와 6 검문소에도 수백 명씩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모두 음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5 검문소에서 조사하기로···.”

“조사하기로 뭐?”

“감염자들이었다고 합니다.”

***

다크 디멘션의 수장 저스틴 로저스가 오사카부로 진입했다. 수하 스물과 다섯 명의 감염자가 동행이었다.

하루 전 박살 낸 통제선을 통했기에 순조로운 진입이었다. 자위대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한들 다시금 박살 내면 그만이었지만.

“감염자들 집결지는 어디입니까?”

“오사카시 중심부 우메다입니다.”

해방군을 자처하는 감염자 다섯이 함께했다.

사령관 야마무라 레이코가 가이드로 지목한 인물들이었다.

저스틴 로저스는 사마염과 실험체 여인 그리고 감염자 무리에 합류한 이후 줄곧 유심히 살폈다.

일단 사마염은 그의 레벨을 아득히 뛰어넘은 강자니 논외. 실험체 여인은 그와 대등한 수준인 듯했다.

감염자들 가운데엔 사령관이라는 여인, 야마무라 레이코가 가장 강했다. 그와 비교했을 때 한 레벨 정도 아래였다. 지금은 죽어 사라진 다크 디멘션의 나머지 세 수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외의 감염자들은 대체로 레벨 7과 초인 사이였다. 그나마 가이드로 함께하는 다섯은 초인에 근접했다.

‘노인네가 작업하면 한층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지? 이삼십 명쯤 얻어서 내 밑에 둘 수 있으면 좋겠는데···.’

중국의 슈퍼 솔져 프로젝트에 욕심을 부렸다가 다크 디멘션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장 셋과 휘하 정예들이 목숨을 잃었다. 다크 디멘션 전체 전력의 절반 가까이 날려버린 결과였다.

당장 미국 내 입지가 흔들렸다. 전미각성자협회에서 빌런 소탕에 나선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다크 디멘션을 겨냥한 소식이었다.

제휴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대상은 흑룡회였다. 용두를 비롯한 상당수 간부를 잃었지만, 여전히 아시아 최대 규모의 빌런 조직이었다.

복수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용두의 아들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만난 노인과 실험체. 제휴 대상을 바꾸게 했다. 특히 노인은 기꺼이 고개를 숙일 만한 강자였다.

‘세계 최강일 필요는 없다. 대신 미국에서만큼은 최강이어야 한다.’

물론 무조건적인 굴종은 아니었다. 굽히고 들어간 와중에도 얻을 건 얻겠다는 게 저스틴 로저스의 생각이었다.

당장 이번 임무부터.

오사카부에 격리된 감염자들을 인솔해 빠져나오는 임무였다. 노인이 지정한 장소로 무사히 데리고 가야 했다. 3000명 가까이 되는 대규모 인원을 탈 없이 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수적인 수입이 짭짤했기에 기꺼이 임무에 임했다.

‘포 호스멘이 이쪽으로 온다고 했지. 로버트 놈은 팔 병신이라 했으니 헬파이어는 무용지물일 테고. 이참에 제거하면 되겠군.’

CIA에 심어둔 끄나풀이 전해준 정보였다.

포 호스멘이 감염자 확보를 위해 오사카부로 향했다는. 저스틴 로저스가 팔 부상으로 특성을 발동하기 힘든 상태라는.

감염자들을 적절히 활용해 포 호스멘을 처치할 계획이었다. 아울러 감염자를 확보해 CIA에 팔아먹을 복안까지 세웠다.

숙적 제거에 거액의 부수입까지. 임무에 뛰어들 이유는 충분했다.

“도착했습니다.”

감염자 가이드가 집결지 도착을 알렸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예상했던 것과 영 딴판이었다.

“여기가···. 맞습니까?”

“틀림없이 여기인데요···.”

황량했다.

3000명의 인파로 가득해야 할 광장은 텅 비다시피 했다.

기껏해야 이삼십 명 정도만 눈에 띌 뿐이었다. 황망한 분위기로 광장 귀퉁이에 쪼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알아보려는 찰나, 본능이 경계 신호를 보냈다.

계산에서 어긋난, 거대한 위험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

오사카부로 향하던 도중 랴오위안허는 유지훈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백신 살포에 대한 귀띔이었다.

[감염자 동향 좀 파악하는 대로 알려 줘. 그쪽한테만 알리는 거니까 포 호스멘한테는 모른 척하고.]

“백신이 효과가 있으면 어떡하오? 그들이 일본을 떠나겠다고 할 테고, 그럼 바로 미국이 핵 투하를 시작하지 않겠소?”

[그건 곤란하지. 인질은 계속 잡아둬야지.]

“내가 말이오?”

[거기 그쪽 말고 누가 또 있나? 재주껏 해봐. 그쪽도 포 호스멘 없으면 별 볼 일 없는 존재잖아. 생존을 위해서라도 붙잡아 놔.]

“뼈를 때리시는군.”

포 호스멘의 의도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상황이었다.

인도적인 의도로 인질을 자청했을 리는 없다는 의심이었다. 뭔가 노리는 게 있으리라 경계했다.

의심의 방향은 감염자의 확보였다. 슈퍼 솔져 프로젝트 실험체를 확보에 실패한 미국이 식인 괴질 감염자를 노린다는 전제였다.

그렇다면 랴오위안허는 목적 달성과 동시에 제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감염자 확보까지는 협력, 확보 이후엔 제거.

[포 호스멘 동향 살펴 가면서 주의해서 움직여. 절대 앞에 나서지 말고. 싸움 나면 후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유지훈의 경고를 뇌리에 새겨뒀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의식적으로 맨 뒤에 자리했다.

로버트 미첨의 눈빛이 왠지 불편해 보였다. 확신했다. 이들의 의도가 결코 순수하지 않다는 점을.

“엘라니스. 랭글리 정보는 자네가 확인해야겠네.”

“왜요? 단말기 고장 났어요?”

“그건 아니고. 어디 흘린 모양인데···.”

“저런! 신고해야 하지 않아요? 계정 정지시켜야죠.”

“신고는 천천히 하지. 중요한 순간에 랭글리 놈들 지랄하는 거 듣고 싶지 않네. 비밀번호를 복잡하게 설정해둬서 문제는 없을 거야.”

“알겠어요.”

엘라니스 잭슨이 단말기를 꺼내 접속했다. 업데이트된 오사카부 상황을 확인했다.

“이상한데요?”

“왜?”

“감염자들이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다고 나와요.”

“벌써? 이런! 다크 디멘션 놈들이 한발 앞선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놈들이 지금 막 도심에 진입했네요. 감염자들을 데리고 이동을 시작했나 봐요.”

“서둘러야겠군.”

로버트 미첨이 랴오위안허를 앞장세우려 했다.

“여기서부터는 랴오 초인께서 선봉을 맡아주셔야겠소. 감염자들도 그렇고, 다크 디멘션의 수장도 그렇고, 일단 헬파이어로 한 방 먹여야 처리할 수 있소.”

“내가 당신들 전술을 정확히 몰라서···.”

“그건 그때그때 내가 일러주겠소. 서둘러야 하오. 일단 갑시다.”

머뭇거리는 랴오위안허를 로버트 미첨이 잡아끌어 앞장세웠다. CIA 정보방이 지목한 장소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기예요! 어?”

손가락을 뻗은 엘라니스 잭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사람이 저거밖에 없지?”

삼천에 가까운 감염자들이 운집해 있어야 했다. 아니면 엄청난 행렬을 이루며 이동하고 있거나.

그런 장면은 없었다.

여기저기 산재해 쪼그린 채 앉아 있는 이삼십 명 남짓의 사람들과 이들을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무리만 있을 뿐이었다.

저스틴 로저스와 다크 디멘션 일당이었다.

“일단 공격해!”

로버트 미첨의 지시가 내려졌고, 포 호스멘이 일제히 특성을 발동했다. 랴오위안허도 습득기를 발동해 헬파이어를 뿜어냈다.

한발 늦게 저스틴 로저스도 이들의 존재를 인식했다. 아주 짧은 시차를 둔 반격이 쏟아져나왔다.

콰콰쾅!

콰지직!

천지가 뒤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포 호스멘과 다크 디멘션의 격돌이 시작됐다.

***

반전의 반전

유지훈 일행은 느긋하게 야마가토제약 건물로 들어섰다.

당초에 우려했던 입장 거부 문제는 말끔히 해결됐다. 아니 아예 이들 차지가 됐다.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인 덕분이었다.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직접 가봐야 하나?”

연락은 없었지만, 직접 갈 필요 또한 없었다.

일본 정부에서 찾아왔다. 총리와 관방장관을 위시한 협상단이 유지훈 일행이 있는 장소로 달려왔다.

“도와주십시오!”

“공짜로요?”

“홋카이도를 드리겠습니다.”

“네?”

홋카이도. 일본 북쪽에 위치한 섬이자 행정구역. 남한 전체 넓이의 80%가 넘는 커다란 섬이었다.

지난번 변종 몬스터 사건 때 대마도와 오키나와를 넘겨받긴 했지만, 홋카이도를 양도받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온천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홋카이도에는 좋은 온천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1년 내내 온천욕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온천에 다녀온 소식을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었다.

핵 투하 문제가 있어서 CIA랑은 관계가 애매할 텐데, 누구한테 들었을까. 궁금했지만, 굳이 확인하진 않기로 했다.

일단 협상이 중요한 상황이었으니.

“홋카이도를 대한민국 영토에 편입하게 해준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좀 곤란하고요···. 유지훈 씨에게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나한테 준다고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유지훈이 애국자이긴 했지만, 죽을 고생의 대가를 계속 국가가 가져가는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개인적인 이득을 취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말씀해보시죠.”

간단하게 덥석 넘겨주는 건 아니었다. 이런저런 과정과 분류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일단 홋카이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점은 변함없었다. 그렇다면 유지훈이 홋카이도 전체의 땅 주인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사유 재산을 억지로 강탈해 드릴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대신 홋카이도에서 징수되는 지방세 전체를 유지훈 씨에게 드리겠습니다.”

“흐음···.”

“국유 재산의 경우 유지훈 씨에게 운영권이 귀속되도록 하겠습니다. 처분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요약하자면, 유지훈에게 홋카이도의 영주 지위를 부여하는 셈이었다. 물론 봉건제도의 영주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기간은 50년입니다. 유지훈 초인님 사후에도 상속자에게 권한이 넘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정부가 제법 머리를 썼다.

홋카이도를 일본 영토로 두는 점에서 명분은 지키는 모양새였다.

지방세 징수라는 실리를 넘겨주긴 했지만, 향후 홋카이도와 관련된 위기는 유지훈이 나서서 해결하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만했다.

일본의 다른 지역도 홋카이도와 잘 엮으면 유지훈의 도움을 구하기 용이할 테고.

“나쁘진 않네요. 그쪽 조건은 일단 수용하는 것으로 하고요. 저도 조건 하나를 내세울게요.”

“말씀하십시오.”

총리를 비롯한 협상단이 바짝 긴장했다.

작정하고 들이대는 요구가 만만치 않으리라 짐작하는 눈치였다.

“야마가토제약을 넘겨주십시오.”

“네? 유지훈 초인님께서 야마가토제약을 어디에 쓰시려고···.”

“이건 제가 아니라 이자걸 대표에게 해당하는 조건입니다. 이자걸 대표의 협조 없이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거든요.”

“하아···.”

협상단이 난색을 표했다.

예상 범위 밖의 조건이라 여기는 듯했다.

“아시다시피 야마가토제약은 사유 기업입니다. 정부에서 내주고 말고 할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대신 국영 기업 중에 적당한 기업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야마가토제약이 아니면 곤란합니다. 홋카이도가 아깝긴 하지만 협상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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