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150)

[사정이 있어서 오사카 쪽은 다른 사람들한테 맡겼습니다.]

“오사카 쪽이 급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쪽에 감염자들이 드글드글하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저랑 무결이가 이미 치바현으로 출발해서요. 저희 쪽이 상황이 빡빡해서 장삼태 씨 합류가 절실합니다.]

“쳇! 절실한 거 맞긴 합니까?”

[하하하. 장삼태 씨로 들어왔으니 장삼태 씨라고 불러야죠.]

“아 놔, 돌아가자마자 여권 담당한 놈 인사위원회에 회부하렵니다.”

이자걸이 투덜투덜하더니 말했다.

“그래도 준비한 게 있으니 일단 오사카부터 가겠습니다. 후딱 들렀다가 가면 되니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저희는 야마가토제약으로 갑니다.]

전화를 끊은 이자걸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야마가토제약이라니. 악연도 보통 악연이 아닌데···.

“하고 많은 곳 중에 하필 야마가토제약이냐. 이 양반이 나를 놀리나. 에잇! 이번에 가는 김에 무너뜨리든지 해야지···.”

***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 케빈 오리어리가 초조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기다리던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이윽고 벨이 울렸다.

액정에 찍힌 이름을 확인한 케빈 오리어리가 화색이 됐다.

“오! 로버트 미첨 초인님. 연락 기다렸습니다. 잘 진행됐습니까?”

[생각보다 순조로웠소. 유지훈 초인이라는 작자 보기보다 어리숙하더군. 인질이 되겠다는 말에 태도가 바뀌기까지 했소.]

“초인님을 비롯한 포 호스멘이 미국을 위해 희생하신 결과입니다. 포 호스멘의 명예에도 불구하고 인질을 자처하시다니요.”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명예 따위 뭐가 중요하겠소. 공치사는 집어치우고 필요한 거나 말 하시오.]

케빈 오리어리가 통화 상태를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옆에서 대기 중이던 여인이 실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로버트 미첨 초인님. CDC의 린다 에반스 박사입니다. 감염에 관한 연구 책임자입니다.”

[박사가 누구인진 궁금하지 않소. 뭐가 필요한지나 말 하시오.]

“네. 그러시다면···.”

린다 에반스가 머쓱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일단 현재 상황부터 간략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로버트 미첨이 오사카부로 들어선 과정을 들려줬다.

유지훈과 무리를 나눠 움직이기로 했고, 격리된 감염자들 집결지에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유지훈 일행 중엔 중국의 초인 랴오위안허만 동행한다는 부분도 빼먹지 않았다.

[우리에게 우호적인 상황이오. 저스틴 로저스와 다크 디멘션 놈들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중국의 초인을 내세워서 상잔을 노려볼 만하오.]

“감염자 확보는 어떻게 보십니까?”

[랭글리에 따르면 오사카부에 격리된 놈들은 감염이 위험한 수준까지 진행되진 않았다는군. 생포도 가능하리라 보고 있소.]

“최초 감염자는 어떻습니까? 시신이라도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야마무라 레이코라는 여대생 말이오? 그쪽은 유지훈 초인 쪽이 가기로 해서 확답하기 힘들군. 어쨌든 이쪽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치바현으로 가볼 생각이오.]

“온전한 시신이 힘들면 머리라도 확보했으면 합니다. 뇌만 있어도 어느 정도 추적 연구가 가능합니다.”

[그 부분은 나도 잘 알고 있소. 노력은 해보겠소만, 쉽지는 않을 거요. 클래스가 다른 자라서···. 방심한 틈을 노려보긴 하겠지만, 무리하진 않을 생각이오.]

케빈 오리어리가 말을 받았다.

“절대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포 호스멘은 미국의 전략 자산입니다. 네 분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물론이요. 우리도 이국땅에서 객사하고 싶은 생각 따윈 추호도 없소. 그런 의미에서 핵 투하 작전은 어떻게 되고 있소?]

“민간인들의 출국은 마무리 단계입니다. 네 분께서 출국하시면 바로 미군 철수가 진행되고, 이틀 안에 작전이 시작될 겁니다.”

[지긋지긋한 일본 땅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군.]

***

오사카부 오사카시의 중심부 우메다. 상업 시설이 집중된 곳에 감염자들 집결지가 있었다.

이른바 해방군 본부. 텅 빈 도심이 전적으로 이들 해방군의 차지였다. 즐길 거리, 먹거리가 모두 넘쳐나는 풍족한 공간이었다.

단만 감염자들은 굶주려 있었다. 인육을 탐하는 본능을 억제하기 힘든 탓이었다. 먹을 건 널렸지만, 식육 대상인 비감염자는 없었다. 감염자끼리 탐하는 건 해방군 규율 위배였다. 처절한 응징의 대상.

감염 초기는 인육을 탐하는 본능이 가장 치열해질 시기였다. 감염자들은 굶주림에 광분한 채 도심 곳곳을 날뛰고 있었다.

야마무라 레이코의 부관을 비롯해 감염이 절정에 이른 감염자 100여 명이 통제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일촉즉발이었다.

“빨리 데리고 나가든지 해야지, 이러다가 우리끼리 개같이 멸망할 판국입니다.”

“사령관님은 아직 소식 없습니까? 돌파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요.”

“안 그래도 연락은 왔다. 사령관님께서 사람을 보내셨다고 했다. 곧 도착할 때가 됐으니 차분히 기다려라.”

애써 침착하게 말했지만, 부관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굶주림이 길어진 탓에 감염자들이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칫 야마무라 레이코가 보낸 사람들을 식육 대상으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칫 서로 같은 편을 죽이는 상잔이 벌어지면···.

“어! 저기 하늘 좀 보십시오!”

통제 요원 중 하나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 하늘을 가리켰다.

대거 몰려드는 비행물체들. 드론이었다. 서른 대는 족히 넘을 듯했다. 편대를 이뤄 제법 요란하게 날아드는 모양새였다.

“정부 놈들 또 탐색 드론을 보낸 모양이군.”

드론이 날아든 게 처음은 아니었다.

오사카부가 봉쇄된 이후 정부는 수시로 드론을 날려 감염자 현황을 탐지하려고 했다.

감염자들에게 드론은 거슬리는 물체였다. 신체 능력은 초인급이었지만, 특성이 없었기에 하늘은 영역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번번이 탐지를 허용했다. 탐지된 결과는 비감염자들의 탈출 경로로 활용됐다. 인육이 사라졌고, 굶주림의 원인이 됐다.

드론 처치를 위해 총기를 탈취했다. 자위대를 습격해 확보한 총기로 드론을 격추한 이후에야 탐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상한데요? 지금까지 탐색 드론은 눈에 잘 안 띄었잖습니까. 이렇게 대놓고 대거 탐색 드론을 보낸 경우는···.”

“상관없어. 다 격추해버리면 그만이야. 그냥 대고 갈겨.”

탕! 탕! 탕! 탕! 탕!

총구가 불을 뿜었다.

콰콰콰콰콰콰쾅!

드론들이 총탄에 맞아 폭발했다.

화염에 휩싸인 채 폭발하는 모습이 불꽃놀이 같았다.

“이것도 이상한데요? 드론이 총에 맞으면 추락해야 하는데, 왜 폭발하는 걸까요?”

“없애버렸으면 됐지. 뭐가 그렇게 이상한 게 많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발한 드론에서 뽀얗게 먼지가 일었다.

30여 대의 드론에서 피어나온 먼지는 안개를 형성했다. 도심 곳곳으로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콜록콜록. 이건 또 뭐야!”

“정부 놈들 드론 좀 청소해가면서 쓰지. 먼지투성이 드론을 날리면 어쩌자는 거야!”

“한심한 새끼들. 이래 가지고 탐지나 제대로 되겠어? 정부 놈들이 이 모양이니 나라가 이 꼴이지.”

불평을 쏟아내는 가운데, 감염자들의 기침 소리가 도심을 가득 메우다시피 퍼져 나갔다.

***

이자걸은 치바시 동물원에서 유지훈 일행에 합류했다.

“여! 장삼태 대표님. 처음 뵙겠습니다.”

“하하하. 장삼태면 예전에 데리고 있던 시종 녀석이랑 같은 이름이군. 반갑네. 정말 반가워.”

유지훈과 화무결이 이자걸의 일본 방문명으로 놀려댔다.

“장삼태라고 안 부르면 안 되겠습니까? 별로 예쁜 이름도 아닌데.”

“장삼태 씨 맞지 않습니까? 여권 좀 보여줘 보세요.”

“됐습니다. 직원 놈들 월급 많이 줘봤자 소용 하나 없네요. 대놓고 팀킬이나 하고···.”

이자걸이 짐짓 화난 표정을 짓자, 유지훈이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장삼태가 어때서요. 정감 있고 좋잖아요.”

“맞네. 이자걸보다 백 배는 나아. 그 직원 상 줘야 해. 하하하.”

“됐다니까요. 장삼태 타령 그만들 하시고. 웬 동물원입니까? 야마가토제약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지훈이 빙긋 웃었다. 조금은 쓸쓸한 웃음이었다.

“멀쩡한 동물 보고 싶어서요. 지나가다가 에브리랜드 생각나서 들어와 봤습니다. 도심 동물원이라 좀 있을 줄 알았는데요.”

에브리랜드는 대격변 이후 동물이 사라졌다. 몬스터의 먹이가 됐거나, 우리를 탈출해 야생으로 돌아갔다.

유지훈이 방문했을 때 에브리랜드는 어미 거대 왕도마뱀의 터전이었다. 녀석이 떠난 지금은 황폐하게 방치된 상태였다.

“여기도 없군요. 변이가 도심 동물원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네요. 그러고 보니 에브리랜드 북적이던 시절이 그립네요.”

이자걸의 표정은 한층 씁쓸했다.

이자걸은 에브리랜드의 주인이었다. 한편으로 일본에 변종 몬스터의 변이를 가져다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동물원 동물들이 피해자가 된 점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건 그렇고.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습니까?”

“백신이라면 훌륭하게 완성됐습니다.”

“오! 실험은 해보셨습니까? 결과는···?”

“대상이 있어야 실험을 하죠. 어디서 식인 괴질 감염자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 그럼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이군요.”

“그렇긴 합니다만···.”

이자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실제 현장에서 실험했으니 결과도 곧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오사카에 들렀다 온다고 한 게···?”

“그렇습니다. 대량으로 살포하고 왔습니다. 혹시 몰라서 농도를 좀 짙게 했는데, 결과에 따라서 조절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유지훈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무엇을 예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이자걸이었다.

“결과 확인이 조금 늦을 수 있는 게 문제이긴 한데요. 이윤성 국장님한테 일본 정보조직 좀 염탐해 달라고 부탁해놨거든요.”

“그 부분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오사카로 향한 자들 통해서 알아보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완전히 신뢰할 순 없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뭔가 의도를 갖고 접근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 쪽 사람 하나 심어놨습니다. 랴오 영감이라고, 장삼태 씨도 아실 겁니다. 조선족 자치국에 망명해온 중국의 초인이요.”

“그놈의 장삼태···. 그나저나 유지훈 씨는 계획이 다 있군요.”

일단 오사카부의 감염자 문제는 절반 이상 해결됐다.

남은 문제는 그들의 탈주를 도우러 간 저스틴 로저스의 다크 디멘션과 감염자 일행이었다.

포 호스멘과 랴오위안허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상당 부분 짐을 덜어줬으니 감당해야지. 못하면 어쩔 수 없고.

그 전에 랴오위안허에게 별도로 연락은 취해야 할 터였다.

현안은 혈마 일당의 동태였다.

아직 치바현에 당도하진 않았는데, 어디쯤인지, 언제쯤 올지는 알 수 없는 형편이었다.

“혈마 놈이 오기 전에 뭔가 했으면 싶은데, 언제쯤 올지 알 수 없네. 마냥 죽치고 기다리기도 뭐한데···.”

화무결이 나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 문제라면 나한테 맡겨주게.”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유지훈에게 툭 던졌다.

단말기였다. 포 호스멘이 CIA 정보망에 접속할 때 사용하던.

“그 녀석들이랑 헤어질 때 슬쩍 챙겨뒀네. 로버트인가 하는 놈 무슨 딴생각을 그리 하는지, 탈탈 털어먹어도 모르겠더군.”

단말기를 작동시켰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그 또한 화무결이 간단하게 해결했다.

“로버트 그놈 부주의하기 이를 데 없더라니까. 내가 바짝 붙어서 곁눈질로 보는데 전혀 개의치 않더라고. 싹 다 기억해뒀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접속 성공! CIA 정보망이 이들 차지가 됐다.

***

망령 분쇄 작전 (3)

혈마 일당의 이동은 더뎠다.

사마염이 도보 이동을 고집한 탓이었다.

오사카에서 치바까지는 차편으로 대여섯 시간은 걸리는 거리. 일당의 우월한 신체 능력을 감안해도 도보로는 열 시간은 잡아야 했다.

경공술을 갖춘 사마염은 차보다 빠를 테지만, 나머지는 그저 우직하게 걸어야 했다.

“어느 세월에 거기까지 걸어가?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니야? 차 몇 대 강탈해서 타고 가자.”

“소란을 일으켜선 곤란하다. 서두르는 것보다 탈 없이 도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라.”

야마무라 레이코의 투정 섞인 제안에도 사마염은 완강했다.

“차 몇 대 가지고 되겠느냐? 사람이 몇인데. 서른 대는 강탈해야 할 게야. 그럼 시끄러워지고,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

일당은 100명에 육박했다.

혈마와 실험체 여인 그리고 야마무라 레이코의 해방군 돌격대.

그나마 돌격대 인원은 많이 줄었다. 원래 200명이었는데, 자위대와 전투 중 일부 멸실됐고, 사마염의 아수라혈염기에 상당수 소멸당했다.

어쨌거나 적지 않은 인원의 이동이었다.

사마염은 철저한 통제를 원했다. 개별 이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시야에서 벗어나면 제거한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인육을 탐하는 건 금지한다. 어길 시엔 한 줌 재로 만들어주겠다.”

식육 금지령을 내렸다.

도보 이동을 고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차로 나뉘어 이동하는 도중 감염자들의 돌발적인 식인 행각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야마가토제약에 도착하기 전까지다. 이후엔 뭘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작업에 잘 동참하기만 하면.”

사마염의 계획은 야마가토제약 연구소를 확보해 중국에서 진행했던 슈퍼 솔져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대상은 야마무라 레이코를 비롯한 감염자 돌격대. 이들에게 활강시의 공능을 심어주는 작업이었다.

신체 능력은 완벽에 가깝게 갖춰졌으니, 여러 단계 작업을 단축할 수 있었다. 원래 공정대로라면 최소 2주는 걸릴 작업이었지만, 이틀 안에 가능하리라고 봤다.

관건은 무탈하게 야마가토제약 연구소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소동이 벌어지고, 목적이 간파당하면 곤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칫 연구소를 파괴하기라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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