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150)

“누가 누구의 부하가 된다는 거야! 우린 일본을 외세들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전사들이야. 외세의 부하가 될 일 따윈 없어!”

“해방이라···. 그러기에 너흰 너무 연약하지 않으냐?”

사마염이 다시금 손을 뻗었고, 이번엔 핏빛 구체가 감염자들을 덮쳤다. 역시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이, 이런···.”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 강해지게 해주겠다. 늙지 않게 해줄 수도 있다. 불멸의 존재, 진정한 해방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 말이다.”

“그, 그게 가능해?”

야마무라 레이코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마염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유로운 미소로 응시할 뿐이었다.

“영감님!”

실험체 여인이 다급하게 소리치는 찰나, 번개가 번쩍였다.

향한 곳은 사마염의 등 뒤였다. 맹렬한 기세의 번개가 덮치더니 사마염의 등을 관통했다.

“커헉!”

사마염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주위를 에워쌌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실험체 여인을 노려봤다.

“약삭빠른 년! 눈치채고 피했구나. 그것도 나쁘지 않지. 더욱 고통스럽게 죽여줄 수 있을 테니.”

실험체 여인은 무심하게 사내 일행을 둘러봤다.

쓰러진 사마염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입가에 번진 비릿한 미소는 상황 자체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한 듯했다.

“너희들은 또 뭐야!”

반응은 야마무라 레이코에게서 나왔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사내들을 쳐다봤다.

“오늘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다들 여기로 몰려들고 난리야!”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것일 뿐, 너희들한테는 감정 없다. 참견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겠다.”

“아버지의 원수? 누구? 쟤들?”

야마무라 레이코가 되묻자, 실험체 여인이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닮았군. 주제도 모르고 우릴 데려가겠다고 나대던 늙은이. 목을 잡아 뽑을 때까지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던데···.”

“개 같은 년! 계속 지껄여라. 그럴수록 비참하게 죽여줄 테니. 온몸의 뼈 하나하나를 바스러뜨려 주마.”

젊은 사내, 흑룡회 용두의 차남 리자오슝이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서서히 포위망을 좁히고 들어갔다.

그때 세련된 분위기의 중년 서양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십여 명의 수하를 앞세운 채였다.

“이런! 우리 젊은 용두께서 너무 성급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라고 했소. 다크 디멘션은 끼어들지 마시오!”

“상황이 그럴 수 없는 게···. 젊은 용두께서 약속을 어겼지 않습니까? 다크 디멘션의 몫도 있다고 했는데···.”

다크 디멘션의 수장 저스틴 로저스였다.

그동안 리펑리엔과 함께 노인과 실험체의 뒤를 밟았다. 갑작스럽게 리펑리엔이 치고 나가는 바람에 계획에서 뒤처지게 됐다.

초인급 각성자인 리펑리엔이 특성 썬더 스피어를 발동해 사마염의 등을 꿰뚫은 이후에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됐음을 파악했다.

“애당초 잘못된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적을 제대로 몰랐던 겁니다.”

“무슨 당치 않은 소리요!”

리펑리엔이 눈을 부릅뜨자, 저스틴 로저스가 노인을 가리켰다.

끙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썬더 스피어에 뚫렸던 가슴이 어느 틈에 멀쩡하게 회복돼 있었다.

혈마 사마염이 야마무라 레이코를 바라봤다.

“내가 당한 줄 알았느냐?”

“그, 그게···.”

“너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 방 맞아준 것이다. 어떠냐?”

사마염이 멀쩡해진 자신의 신체를 과시해 보였다.

“나와 손을 잡기만 하면, 너와 너를 따르는 무리는 강해질 수 있다. 함께하겠느냐?”

야마무라 레이코는 주저했다.

대등한 관계의 협력이 아닌 흡수를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저스틴 로저스가 나서 대신 대답했다.

“고민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일본의 해방이 훨씬 앞당겨질 것 같으니까요.”

저스틴 로저스의 시선이 사마염을 향했다.

“그 전에 제가 먼저 그 손을 잡으면 안 되겠습니까?”

“그대가 먼저 내 손을 잡겠다?”

“무슨 소리요! 복수를 위해 흑룡회와 손잡지 않았소!”

리펑리엔이 호통치며 끼어들었다.

저스틴 로저스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복수라니요. 주제를 알아야지요.”

그냥 휘저은 손이 아니었다. 특성을 발동한 손짓이었다.

콰지직!

리펑리엔의 온몸이 육편이 돼 흩어졌다.

저스틴 로저스의 특성 플라스마 블래스터가 작렬한 것이었다.

손 써볼 여지도 없이 리펑리엔이 폭사해 사라졌다.

“복수는 가능한 상대에게 하는 겁니다. 상대에 따라 굽힐 줄도 알아야 오래 살고 세상도 얻을 수 있는 거지요.”

저스틴 로저스의 시선은 여전히 사마염에게 고정된 상태였다.

“세력이 필요하신 것 아닙니까? 제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도움을 주겠다?”

“그렇습니다. 중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 아니 유럽까지 손 아래 둘 수 있도록 다크 디멘션이 돕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대가 얻는 것은?”

“미주 지역이면 충분합니다.”

저스틴 로저스가 야마무라 레이코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일본은 이 분 몫이겠군요. 역시 해방을 위해 한 손 거들겠다는 약속을 빼먹어선 곤란하겠지요.”

“하하하. 마음에 드는군.”

사마염이 유쾌하게 웃었다.

야마무라 레이코에게 물었다.

“어떠냐? 이 정도면 너한테도 손해는 아닐 것 같은데.”

“나, 나는···.”

야마무라 레이코가 주저하자, 사마염이 새로운 약속을 꺼냈다.

“내 수하가 되는 게 꺼려지는 것이냐? 그건 전적으로 네게 맡기도록 하겠다. 함께하면서 나를 따라도 좋고, 독자적인 길을 가도 좋다.”

“좋아. 그런데 저놈은 어떻게 믿지? 난 양놈은 믿지 않아.”

야마무라 레이코의 거부감에 저스틴 로저스가 빙긋 웃었다.

“선물을 안 드려서 그러시나요? 그럼 드려야죠.”

손을 뻗었다.

이번엔 제법 기운을 끌어올려 위력을 더한 동작이었다.

콰콰쾅!

발동한 특성 플라스마 블래스터가 멀찍이 날아가 작렬했다.

지원을 위해 몰려들던 자위대 부대를 덮쳤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부대 전체가 자취를 감췄다.

그제야 야마무라 레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같이 하지. 대신 조건이 있어. 일본 해방이 가장 먼저야.”

“그리하지.”

“그리고 노인네는 약속부터 지켜. 불멸의 존재.”

“그 또한 당연한 수순이다.”

혈마와 실험체 그리고 야마무라 레이코의 해방군, 거기에 다크 디멘션이 손을 잡은 순간이었다.

***

“으어~. 개운하다. 역시 온천은 쪽발이야.”

유지훈과 화무결 그리고 랴오위안허가 온천욕을 마치고 나왔다.

오사카부의 식인 괴질 사태 때문에 인근 지역은 인적을 찾기 힘든 상태였다. 온천 또한 텅 비어 있었다.

덕분에 유지훈 일행은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역시 손님들이 있었네?”

“내가 뭐라 그랬나. 나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뭐하러. 온천욕 충분히 즐기고 나와도 기다리고 있잖아.”

욕장을 나서니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세를 뿜어내는 자들이었다.

“여긴 무슨 일이지? 작전 변경하려면 한창 바쁠 때 아닌가?”

“작전은 취소됐소.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감사 인사를 못 했소. 늦었지만 고맙소. 덕분에 이렇게 살아서 감사할 수 있게 됐소.”

양팔에 부목을 댄 백인 중년 사내였다.

로버트 미첨, 포 호스멘의 백기사. 나머지 셋과 함께 유지훈 일행을 만나러 온천장을 찾은 것이었다.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왔대?”

“어려울 건 없었소. 랭글리가 주목하고 있어서···.”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아직 정신 못 차린 모양이네. 아예 씨를 말려줘야 그만 주목하려나?”

“아.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오.”

로버트 미첨이 다급하게 설명했다.

“랭글리도 뭘 어쩌려고 주목하는 건 아니오.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것일 뿐이오.”

“그러든지 말든지···.”

유지훈이 심드렁하게 중얼거린 뒤 포 호스멘을 죽 훑어봤다.

“댁들은 이제 가는 거야? 명성에 걸맞지 않게 스타일만 구기고 돌아가게 됐네?”

“그렇게 됐소. 아무래도 초자연적인 능력에 관해서는 동양이 서양보다 한 수 위인 모양이오. 교훈을 얻게 돼 빈손은 아니라는 생각이오.”

“그렇다면 다행이고. 감사 인사는 받을게. 잘들 돌아가.”

유지훈이 가볍게 손을 휘저은 뒤 돌아서려 했다.

로버트 미첨이 주저하며 불러세웠다.

“잠시만···.”

“왜 또 볼일이 남았어?”

“어쩔 참이오? 계속 놈들을 상대할 생각이오?”

“놈들이라면?”

“아까 그 괴물의 동료 그러니까 실험체와 감염자들 말이오.”

“글쎄. 감염자들은 모르겠지만, 실험체랑 같이 다니는 늙은이는 만나야 할 것 같은데?”

로버트 미첨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 그럼 서두르는 좋을 거란 말씀드리겠소.”

“무슨 이유라도 있어?”

“감염자들이 오사카부를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소. 실험체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도 있소.”

“놀라울 건 없군.”

예상했다는 듯 유지훈이 코웃음을 쳤다.

로버트 미첨이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말을 이어갔다.

“미국에선 이 상황을 몹시 심각하게 보고 있소. 당장 일본에 거주 중인 미국인들에게 출국 지시를 내렸소. 민간인 먼저, 다음이 주일 미군의 순서일 거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가?”

“그렇소. 미국인 거주민들의 엑소더스가 마무리되는 대로 일본 전역에 핵 투하를 계획하고 있소.”

“뭐!”

그제야 유지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완전 미친놈들 아니야! 일본 정부랑은 이야기된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않소. 그랬다가 일본 정부가 악심을 품고 감염자를 해외로 내보내기라도 하면···.”

“그러지 못하도록 지원해야지. 작전을 취소할 게 아니라.”

“핵 투하는 지구상의 인류를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이오. 그 외에는 불가항력이라 할 수 있소.”

로버트 미첨이 팔을 들어 보였다.

미국 각성자계의 정점에 선 인물이 사실상 무장해제된 상황을 암시하는 듯한 동작이었다.

일리 있었다. 포 호스멘으로 안 되면, 사실상 불가나 마찬가지라는 진단은 당연했다. 그 이상의 각성자 전력을 쏟아붓는 건 미국 입장에선 뒤가 없는 올인 전략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그래서 우리한테도 적당히 떠나라고 말해주려고 온 거야?”

“그렇소. 유지훈 씨가 불가피하게 희생되는 건 바라지 않소. 그래도 부득이 머물러야겠다면.”

로버트 미첨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리둥절해진 유지훈이 쉽게 반응하지 못하게 하는 발언이었다.

망령 분쇄 작전 (1)

“그래도 부득이 머물러야겠다면···.”

잠시 멈췄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이어진 로버트 미첨의 말은.

“우리, 포 호스멘을 인질로 삼아주시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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