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150)

“응. 우린 오른쪽에 운전석 있는 차에 익숙하지 않아서.”

“중국도 마찬가지요. 심지어 나는 장롱 면허요. 항상 기사가 붙어 다녀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화무결이 냉큼 운전석에 올라탔다.

“내가 하겠네. 나는 왼쪽도 익숙지 않은 건 마찬가지니 그다지 어려움 없이 운전할 수 있을 것 같네.”

“넌 차를 몰아본 자체가 없잖아! 나와! 내가 운전할게.”

결국 운전대는 유지훈의 몫이었다.

***

“뭘 그렇게 구경만 하고 있어? 영감. 그냥 싹 다 때려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청년이 성마른 어조로 노인을 닦달했다.

오사카부 접경을 통제하는 자위대 병력과 각성자들을 노려보면서였다. 가까스로 살생 본능을 억누른 모습이었다.

한바탕하려고 나섰다가 노인에게 혼쭐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기다려 보거라. 보아하니 우리한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듯하구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고 생각하자꾸나.”

자위대 병력과 각성자들은 오사카부를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의 행렬을 통제하고 있었다.

줄지은 사람들이 검사소에 도착하면 혈액을 채취한 뒤 검사 결과에 따라 내보내거나 돌려보내거나를 결정했다.

검사 인원 열 명 중 하나 정도가 오사카부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감염자로 분류된 듯했다.

대부분 거세게 항의했다. 멀쩡하다고, 감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통제 인력의 대응은 완강했다. 결과지에 양성의 기미가 포착되면 여지없었다. 봉쇄된 오사카부에 가두려 했다.

개중엔 격하게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다. 완력을 사용해 통제 지역을 벗어나려는 자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그럴 때면 총성이 울렸다. 총탄이 향한 곳은 머리였다.

“영감님은 뭘 그리 유심히 보는 거야? 보기 좋은 장면도 아닌데.”

노인의 옆에서 심드렁하게 허공을 응시하던 여인이 물었다.

노인은 여전히 시선을 통제 현장에 고정한 채 대답했다.

“양상을 살피느니라.”

“양상? 무슨 양상?”

“돌아가는 자들의 양상 그리고 빠져나온 자들 가운데 양상을 달리하는 자들의 움직임이다.”

“뭔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해? 쉽게 좀 말해봐.”

“허허허. 녀석.”

노인이 귀엽다는 듯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말했다.

“없애버려야 할 자와 살려둬야 할 자를 구분하고 있다.”

“살려둬야 할 자? 다 없애버리러 온 거 아니었어?”

청년이 불쑥 끼어들자,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없애버릴 거면 뭐하러 바다까지 건너왔겠느냐. 없애버릴 놈들은 저쪽에도 차고 넘칠 텐데. 살려둬야 할 자들을 찾으러 온 것이다.”

“살려둔다고? 왜?”

“왜긴! 수하가 필요해서지.”

“영감 수하면, 나한테도 수하인 거지? 나쁘지 않네.”

그때 여인이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뭔가 흥미로운 장면을 포착한 듯한 모습이었다.

“둘 다 입 다물고 저기 좀 봐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통제 인력을 상대로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다.

“나 정말 멀쩡하다고! 같이 온 가족들 괜찮은 거 보면 몰라? 내가 감염됐으면 가족들을 내버려 뒀을 리 없잖아!”

“그래도 곤란합니다. 일단 돌아가십시오.”

검사 결과 양상 판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내는 일견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며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통제 인력은 완강했다. 가족들만 오사카부를 빠져나가게 하고, 사내는 돌려보내려 하고 있었다.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내가 누군 줄 알고!”

사내가 흥분했다. 이마에 핏대가 서기까지 했다.

통제 인력을 밀어젖히고 통제 구역을 뛰쳐나가려 했다. 급기야 완력까지 사용하려 했다.

“영감님이 원하는 종류 같은데? 구하러 갔다 올까?”

여인이 움직이려 했지만, 노인이 막아 세웠다.

“아니다. 잠시만 있어 보거라.”

그러는 사이 사내가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맞은 통제 인력들이 멀찍이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사내의 용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자위대 병력에 이어 각성자들까지 나서 제압하려 했지만,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주먹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뒹굴 뿐이었다.

탕! 탕! 탕! 탕! 탕!

급기야 총탄이 발사됐다. 사방에서 난사한 양상이었다.

사내는 양팔을 모아 머리만 보호했을 뿐이었다. 총탄이 팔을 비롯한 사내의 전신에 작렬했다.

스르르. 사내가 팔을 내렸다.

씩 웃었다.

“이딴 걸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몸에 박혀있던 총탄들이 하나둘 빠져나왔다.

총탄에 의한 상처들도 서서히 치료되는 양상이었다.

“감염자다!”

자위대 병력이 모여들어 사내를 포위했다.

각성자들도 공격 태세를 갖췄다.

“데려와야 할 놈 맞잖아!”

“기다리라고 했다!”

여인이 나서려 했지만, 노인이 잡아 세웠다.

이번엔 좀 더 거친 양상이었다. 노기를 띠기까지 했다.

“가로막는 놈은 다 죽여버리겠다!”

사내가 포위망을 향해 돌진하려는 찰나, 자위대 병력 사이로 네 남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백인 중년 사내가 무심하게 손을 뻗었다.

“죽여버린다고 했다!”

사내가 한층 우악스럽게 손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이한 기운의 일렁임이 둘 사이 공간에 들어서는 듯하더니, 하얀 화염으로 번져갔다. 백색 화염이 사내를 집어삼켰다.

사내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시작으로 발끝까지. 완전히 소멸했다.

“머리는 확보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미모의 흑인 여성의 질문에 백인 중년 사내가 혀를 찼다.

“머리부터 들이미는데 별수 있었겠나.”

“다음번엔 마커스 영감님이 해보는 게 좋겠어요. 꽁꽁 얼려버리는 방법으로요.”

그러는 사이 실험체 여인이 노인 혈마 사마염을 쳐다봤다.

찌푸린 눈살의 주름이 제법 깊었다. 한편으로 눈빛에 깃든 이체가 기이했다. 짜증과 즐거움이 혼재하는 듯했다.

기세들의 충돌 (1)

포 호스멘의 등장으로 상황이 정리됐다.

무심하게 뻗은 손에서 비롯된 백색 화염. 사내를 집어삼켰고, 순식간에 무의 세계로 보내버렸다.

사뭇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줄지어 검사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미친 파장도 강렬했다.

오랜 기다림을 불만스러워하던 표정이 사라졌다. 숨죽인 채 차례를 기다리는 분위기가 됐다.

슬그머니 행렬에서 빠져나가는 자들도 하나둘 눈에 띄었다. 감염자이거나 감염이 의심스러운 자거나일 터였다.

네 남녀는 그저 무심한 시선으로 통제 구역을 둘러볼 뿐이었다.

겁에 질린 대기자들이나, 행렬을 빠져나가 도망친 자들,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만만치 않은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나?”

히스패닉 노인, 적기사 마커스 수아레스의 질문에 백인 중년 사내 로버트 미첨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것 같소. 저런 놈들이 수천 명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차라리 적당히 몰아붙여서 한군데 모아놓은 다음에 핵미사일 쏟아붓는 건 어떨까요?”

동양인 청년, 청기사 데이비드 포스터가 묻자, 바로 핀잔이 쏟아져 나왔다. 흑인 미녀, 흑기사 엘라니스 잭슨이었다.

“총 맞고도 멀쩡한 거 못 봤어? 핵미사일 잘못 때려 박으면 큰일 나. 방사능까지 머금은 괴물이 될 수도 있다고.”

“잘못하다가 우리가 위험할 것 같으니까 그러지.”

“랭글리랑 홈랜드에서 일본 주둔 공군 병력 총동원한다고 했다. 폭격 이후 들이닥친 뒤 빠져나오면 큰 위험은 없을 거다.”

마커스 수아레스가 데이비드 포스터에게 안도의 말을 건넸고, 로버트 미첨이 한 마디 추가했다.

“너희들은 임무는 잊는 게 좋겠다. 신경 쓰다가 위험할 수 있으니. 임무는 나와 마커스가 맡도록 하겠다.”

“임무요? 무슨 임무요?”

데이비드 포스터가 너스레를 떨었고, 엘라니스 잭슨도 동조했다.

“저는 진작부터 신경 안 쓰고 있었어요. 두 분 지시만 잘 따를 테니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게만 해주세요.”

“엄살은···. 이동하지. 돌아볼 곳이 아직 많이 남았다.”

네 남녀가 발걸음을 옮겼다.

검사가 진행되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혈마 사마염은 네 남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피식 웃고는 실험체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떠냐?”

“뭐가? 밑도 끝도 없이 어떠냐니?”

“해볼 만하겠느냐?”

“누구 쟤들?”

청년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나하나는 조밥인데, 같이 있으면 만만치 않을 것 같긴 해.”

“그래서 몇 명까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

“몇 명? 글쎄···.”

청년이 생각하는 사이 여인이 대신 대답했다.

“두 명.”

“너한테 물은 거 아니잖아? 뭘 안다고 나서.”

“병신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알아? 비슷한 놈들 이미 경험해봤잖아.”

“아. 사부인지 뭔지 하는 머저리들! 걔들이 쟤들이랑 비슷한가···.”

청년이 멋쩍은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평균 내면 얼추 비슷하겠다. 그래 두 명. 얘랑 같이 가면 네 명 다도 문제없어.”

“갔다 올까?”

여인이 사마염에게 물었다.

당장이라도 움직일 기세였지만, 사마염이 만류했다.

“당장은 놔두는 것으로 하자. 우리를 위해 애쓰고 있으니.”

사마결이 검문소 쪽을 흘깃 바라봤다.

비감염자를 추려내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감염 판정을 받고 되돌려보내지는 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네 남녀가 다녀간 효과일 터였다.

한편으로 감염자들 사이에 준비가 이뤄질 여지도 있었다. 빠져나간 감염자들이 무리에 돌아가 상황을 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사마염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그렸다. 청년을 쳐다봤다.

“그래도 경고 정도는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경고? 무슨 경고?”

“적당히 들쑤셔줘야 일이 수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좀 다녀와야겠다.”

“내가? 나 혼자? 둘까지밖에 안 된다니까.”

“그냥 조용히 뒤를 따르면서 동정을 살펴봐라. 적당히 기회를 봐서 치고 빠지는 식으로. 녀석들이 조급해지도록 하는 취지다.”

“아항! 만일 놈들이 흩어지는 일이 생기면 한두 놈 정도는 처리해도 된다는 말이지? 좋아. 다녀올게.”

청년이 바람같이 몸을 움직였다.

네 남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자취를 감췄다.

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쟤 저렇게 보내도 괜찮아? 사고 치는 거 아니야? 차라리 나를 보내지 그랬어?”

“너는 여기서 할 일이 있을 것 같구나. 저쪽 못지않게 재미있는 일이 말이다.”

***

네 남녀, 포 호스멘이 세 군데 검문소를 둘러봤다. 자잘한 사고는 끊이지 않았지만, 격리 작업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처음 방문한 검문소에서처럼 위험한 감염자는 없었다. 감염 의심자 가운데 탈출을 시도하던 이들은 자위대 병력의 총탄이나 각성자의 특성에 머리를 잃는 신세가 됐다.

“아무래도 감염의 양상이 LA 때와는 다른 것 같지 않은가?”

마커스 수아레스의 질문에 로버트 미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LA의 감염자들은 이지를 상실한 양상이었는데, 여기 감염자는 일정 부분 이성을 놓지 않은 모습이었소.”

“이성이 있다는 건 전략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의미겠죠?”

데이비드 포스터가 묻자 마커스 수아레스가 받아 답했다.

“현재 상황이 그런 듯하네. 로버트가 한 녀석을 해치운 사실이 감염자들에게 전해진 것 같아. 행렬에서 빠져나간 자들이 무리에 알린 게 아닌가 추측되는군.”

“무리도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면, 지금 우리 작전에 대비해서 뭔가 꾸미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엘라니스 잭슨이 눈매를 살짝 찡그렸다.

짜증과 흥미 중간 어딘가의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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