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씨발아!”
급기야 유지훈의 입에서 육두문자까지 나왔다.
“너희 양키 놈들 문제가 뭔지 알아? 너희가 한 짓은 생각을 안 해. 그래놓고 피해 입은 것만 가지고 지랄을 해대.”
“······.”
“약한 놈 졸라게 패서 반 죽여놓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죽도록 맞다가 한 대 받아친 걸 가지고 보복을 하네 어쩌고···. 그게 너희 양키 놈들 종특이야. 깡패 새끼들이라고.”
무시무시한 팩트 폭격이었다.
톰 슐츠도 뭐라 대응할 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기껏 한다는 말이.
“그래도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생각해서···.”
“미친 새끼. 한미 관계가 악화되면 한국한테 안 좋은 게 뭔데? 안보? 방위? 병신아. CIA 부국장쯤 되는 새끼가 TV도 안 보냐?”
“······.”
“남북한 종전 선언했잖아! 주한 미군 싹 내보내야 할 판이야. 괜히 남의 나라에서 좋은 땅 차지한 허접쓰레기들 내쫓을 상황이라고.”
“그래도 미국과 한국이 동아시아 안보를 위해 협력해야···.”
“왜? 중국 때문에? 그건 너희 사정이지. 우린 중국에 아쉬울 거 없어. 여기 보면 몰라? 조선족 자치국 세웠잖아. 중국도 수긍했다고.”
“중국이 인정한 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톰 슐츠가 기를 쓰고 유지훈의 논리에서 허점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헛다리만 짚었다.
“병신아. 누가 인정했대? 수긍했다고 했잖아. 짱개 놈들도 어쩌지 못해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거라고.”
“어쨌거나 유지훈 씨가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있을 겁니다.”
끝까지 천조국의 자존심을 챙기려는 CIA 공작국 부국장이었지만, 유지훈에겐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그러던가 말던가.”
이젠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손만 휘휘 저을 뿐이었다.
톰 슐츠가 수하 요원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
“잠깐!”
유지훈이 불러세웠다.
“열 뻗쳐서 곱게는 못 보내주겠다. 걷어차서 쫓아내든지 해야지.”
톰 슐츠와 요원의 덜미를 잡고는 뒤뜰 쪽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2층 사무실에서 내던져진 두 사람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려는 찰나, 반응하는 생명체가 있었다.
알을 품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주황이와 노랑이였다.
뭔가 날아오는 낌새를 채더니 눈을 번쩍 떴다. 벼락같이 기어와 입을 떡 벌리더니 넙죽 받아 꿀꺽 삼켜버렸다.
두 마리가 사이좋게 한 사람씩 냠냠···.
20m 몸길이의 거대 왕도마뱀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모습이 코끼리가 비스킷을 받아먹는 듯했다.
“뭐야! 너희들 거기 있었냐?”
유지훈이 짐짓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주황이와 노랑이가 특식 제공을 고마워하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다시 알을 품은 채 낮잠에 빠져들었다.
“아이. 누가 보면 내가 일부러 그런 줄 알겠네.”
유지훈이 난감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처 존재감 하나 없이 잠자코 있던 조호견이 마침내 침묵을 깼다.
“녀석들이 거기 있는 거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었소?”
“뭐야? 눈치챈 거야?”
“눈치채고 말고가 뭐 있겠소. 어제 온종일 녀석들 옆에 붙어서 놀아준 거 다 봤는데.”
“녀석들 알 품고 있느라고 사냥도 제대로 못 하잖아. 몸조리 좀 하라는 차원에서 신경 좀 쓴 거야.”
“영양사까지 투입돼서 먹이 주고 있소. 우리보다 훨씬 잘 먹소.”
“시끄러! 간다.”
그렇게 유지훈은 조선족 자치국을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
대한민국은 평화로웠다.
이웃이나 다름없는 중국을 휘감은 격랑에서 철저하게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하다못해 위협적인 몬스터의 출현도 없었다.
국제 정세상 영향을 끼치던 미국과 일본의 입김도 잦아들었다. 거기에 모처럼 찾아온 남북 해빙 무드까지.
건국 이래 최대의 평화와 안정이 찾아든 양상이었다.
“자네가 자리를 비우니 나라가 평화로워지는군.”
“그러게. 이러다 시끄러워지면 또 내 탓이라고 하겠지? 적당한 나라 찾아서 망명이나 할까?”
화무결과 유지훈이 농담을 주고받는 가운데 기겁한 건 이윤성이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게 다 유지훈 초인님 공적 아닙니까.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약해주신 덕분입니다.”
유지훈이 조선족 자치국에 머무는 내내 이윤성은 노심초사했다.
대통령의 특명 때문이었다. 유지훈이 조선족 자치국에 눌러앉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반드시 귀국할 수 있도록 하라는.
심지어 대통령은 유지훈이 북한에서 지내진 않을지도 염려했다. 김주환 위원장과 죽이 잘 맞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유지훈의 귀국을 둘러싼 이윤성에게 주어진 임무가 막중했다.
그런 상황에서 망명을 논하고 있으니 이윤성이 기함할 만했다.
“앞으로 유지훈 초인님의 요구는 뭐든 수용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엔 법을 바꾸겠다고까지 하셨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국회는 야당이 잡고 있지 않나요?”
“여소야대 그 까짓것 아무 의미 없습니다.”
이윤성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유지훈 초인님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원이 있으면 당장 국민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까요.”
“에이~. 설마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죠.”
“아닙니다. 법 개정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지 않으면, 국민들이 반대표 던진 의원 색출해서 끝장을 낼 겁니다.”
여전히 유지훈이 못 미더워하자, 이윤성은 구체적인 설명까지 곁들였다.
“만일 유지훈 초인님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망명이라도 가겠다고 하면 어쩌겠습니까?”
“아하! 망명···.”
“전세계 어떤 국가도 유지훈 초인님 망명을 거부할 리 없습니다. 오히려 경쟁이 붙어서 서로 모셔가려고 하겠죠. 그렇게 해서 유지훈 초인님이 대한민국을 떠난다? 그건 국난입니다.”
“국난까지야···.”
“국민들은 국난의 원흉을 찾아서 처단하려 할 겁니다. 그러니 망명 같은 말씀은 그런 상황에서나 써주십시오.”
제법 쓸 만한 조언이었다.
과거에도 망명을 들먹인 적은 있었다. 효과가 없진 않았지만, 반향 또한 그리 크지 않았다.
이제는 엄청난 반향이 예상됐다.
누구든 걸리적거리는 놈이 있으면, 손에 피 묻히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카드가 생긴 셈이었다.
이윤성은 구체적인 예시까지 하나 더 제시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유지훈이 조선족 자치국 독립에 힘을 쏟고 있던 상황에 야당 국회의원이 SNS에 비난 글을 올린 사건.
[철없는 각성자 하나가 북한 각성자와 연변 조선족 돕는다고 나서서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대통령은 유지훈에게 국가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망동을 당장 멈추고 귀국하라고 지시하라!]
무시무시한 파문을 일으켰다.
여야 지지자 가리지 않고 해당 의원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지역구 유권자들이 격하게 비난했다. 의원직 사퇴와 정계 은퇴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의원은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석고대죄로 용서를 구했지만, 계란과 밀가루 세례만 받아야 했다. 심지어 똥물을 뒤집어쓰기까지 했다.
열흘에 걸쳐 지역구 곳곳을 돌며 삼보일배로 사죄한 다음에야 가까스로 비난이 잦아들었다.
그래도 다음 선거는 물 건너간 양상이었다. 출마는커녕 공천도 받지 못할 처지가 돼버렸으니.
“흐음. 나쁘진 않은데, 한편으로 심심하게 됐네요.”
“어떤 의미에서 심심하게 된 겁니까?”
“이제 가로막는 놈 있으면 좌표만 찍으면 처리되는 거잖아요. 예전엔 적당히 턴 다음에 쥐어팰 수 있었는데요. 죽여도 되고요.”
초인에게 주어지는 자기면책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범죄자의 경우 어떠한 위해를 가해도 형사적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대통령령에 의한 권리. 여기에 유지훈은 자신의 판단에 의해 죽일 수 있는 자격까지 부여받았다.
자기면책권에 살인 면허까지 있으니, 유지훈은 어지간히 걸리적거리는 놈은 사실상 죽여도 무방했다.
털어서 범죄 사실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 특히 정치인의 경우.
“이제 굳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언짢은 일 있으면 두 글자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망명. 그럼 알아서 정리될 겁니다.”
“알겠어요. 그나저나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어요?”
유지훈은 귀국하기 전 이윤성에게 몇 가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다.
비밀리에 진행된 중국의 슈퍼 솔져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와 현재 중국 내 각성자 생태계에 관한 정보였다.
전자의 경우 대한민국 정보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정도로 까다로운 요청이었다.
“둘 다 만만치 않게 힘들었습니다. 일단 어느 정도 파악된 부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윤성이 책자를 유지훈에게 건넸다.
각성자가 레벨별로 정리된 명단이었다. 레벨 6 이상 고레벨 각성자만 기재돼 있었다. 그래도 1만 명은 거뜬히 넘을 듯했다.
인구 대국인 중국은 각성자 인구 또한 세계 최다였다. 나머지 국가 각성자를 다 더해도 중국보다 적을 거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름 옆에 엑스자 표시는···?”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책자 초반부 명단 대부분 옆에 엑스자가 표시돼 있었다.
특히 레벨 8 초인의 경우 세 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자였다. 책자에 기재된 38명 초인 중 35명이 죽은 것이었다.
“중국 각성자협회의 비밀문서를 어렵게 입수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등재되지 않은 초인이 20명쯤 더 있다고는 하는데, 이들 중에도 생존자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중국 각성자 생태계가···.”
“멸종 위기라고 봐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대외적으로는 쉬쉬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비상을 선포하고 관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입니다.”
유지훈이 책자를 죽 넘겨봤다.
레벨 7 각성자도 열 명 중 일곱이 사망자로 표기돼 있었다. 레벨 6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정도면 중국의 각성자 전력이 한국보다 우위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규격 외 존재인 유지훈과 화무결을 제외하고도.
“말씀하신 슈퍼 솔져 프로젝트의 부작용 때문일까요? 탈출한 실험체의 소행···.”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이윤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체 통제된 정보라 저희 역량으로 접근이 불가했습니다. 휴민트를 총동원해 알아낸 것도 썩 신통치는 않습니다.”
북부전구에서 3년 전부터 비밀 연구를 진행했다. 북부전구 장병 중 강화 계열 특성의 젊은 각성자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얼마 전 연구소로 의심되는 장소에서 의문의 폭발사고가 있었다.
이 정도가 파악된 정보의 전부였다.
유지훈이 린제이 탐슨에게서 들은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들리는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괴담이 하나 있었습니다.”
“괴담이라면···?”
“북부전구 장병 중에 흡혈귀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괴담은 현실이 되고
“흡혈귀라···.”
유지훈이 미간을 좁혔다.
이윤성의 설명이 이어졌다.
“장병 중에 갑자기 늙어졌다가 다시 젊어지기를 반복하는 자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럴 때마다 동료 장병이 하나씩 사라졌고요.”
“흐음···.”
유지훈이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침음을 흘렸다.
괴담이 괴담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이윤성의 안색도 무거워졌다.
“장병들 사이에선 문제의 장병이 갑자기 늙어지는 괴질을 앓고 있는데 사람의 피를 마시면 다시 젊어진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흡혈귀가 됐다는···.”
“그 장병은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지금도 있답니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그 장병이 사라진 이후부터 사라지는 장병 또한 없었다는···.”
유지훈이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혹시 뭐 아시는 부분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아는 것과 다르긴 하지만 생각해볼 여지는 있는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관련된 이야기를 좀 더 수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한 정보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락됐다.
유지훈은 혹시 하는 차원에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 쪽에서는 우리 정부로 별 이야기 없었나요?”
“미국에서는 딱히···. 최근에 우리랑 좀 소원해진 상황입니다.”
그럴 만도 했다.
일본으로부터 오키나와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주일 미군의 대규모 이동이 불가피했다.
미국 입장에선 불필요한 병력 이동과 군비 지출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에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일본이 알아서 정리하도록 내버려 뒀다.
남북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과정에도 미국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미국의 승인을 거쳐야 할 사안이었는데,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됐다.
사전 통보도 없었고, 사후 보고도 없었다. 외신을 통해 전해진 뉴스가 전부였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 입장에선 ‘감히 한국 따위가!’ 하며 분개할 사건이었다.
그래도 미국이 한국에 강경하게 대응할 순 없었다.
세계 패권을 놓고 중국과 대립하는 와중에 캐스팅 보트로서 한국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동아시아 정세를 놓고 미국이 올인에 가까울 정도로 지원했던 일본이 몰락하면서 한국의 가치가 높아졌다.
미국이 한국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만에 하나 한국이 중국의 편을 들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가 극도로 축소된다고 봐도 무방한 탓이었다.
미국은 한국에 불만이 많았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드러낼 순 없었다. 침묵하는 방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양상이었다.
남북 평화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한국의 입장에서 딱히 미국에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 결과가 소원해진 양국 관계였다.
“미국에서 이야기는 왜 물으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이윤성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유지훈은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일본에서부터 중국을 거쳐 조선족 자치국까지 CIA와 얽힌 악연들이었다. 거기에 세계 최강의 빌런 조직 다크 디멘션을 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