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50)

차곡차곡 화무결의 학살이 마무리되는 광경을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뭐지?”

“한반도의 나라들이 중국의 속국이야?”

마오쥔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인상을 구겼다.

“몰라. 씨발.”

“모르면 죽어야지.”

비스듬히 그어진 유지훈의 심검이 찬연한 빛을 발했다.

이번엔 목이 허공으로 떠오르거나 하지 않았다.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사선으로 베었다.

둘로 갈라진 시신이 양쪽으로 흩어져 나뒹굴었다.

“무결아. 슬슬 마무리해라. 만두나 먹으러 가자.”

“이런! 나는 세 놈 남았는데···. 졌군. 그나저나 만두 좋지.”

***

상하이 북쪽 창샤항 인근 해안 저택.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고급 승용차들이 몰려들었다.

차에서 내린 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도의 소유자들이었다. 바쁜 걸음으로 저택으로 들어갔다.

모여든 장소는 지하실. 병실처럼 꾸며진 곳이었다.

사방이 유리벽으로 된 두 평 남짓의 공간. 가운데엔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엔 창백한 안색의 젊은 여인이 잠들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갑자기.”

금장 단추가 돋보이는 고급 정장을 입은 노인이 백의의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 옆에는 같은 옷을 입은 여인이 있었다.

백호(白虎). 흑룡회 용두 리자오슝의 팔대 호위 중 두 남녀였다. 본래 팔대 호의의 수장은 흑웅의 몫이었지만, 인세인 위치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백호가 수장 자리를 승계했다.

“용두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질문을 던진 이는 흑룡회 부회주 양카이원. 흑룡회 내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존재였다.

그런 양카이원도 용두의 지시라는 한 마디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용두는 그저 따라야만 하는 절대적인 존재였으니.

시선을 유리벽으로 향했다.

“저 여인 때문인가?”

양카이원의 질문에 남자 백호는 말없이 허리를 굽혔다.

양카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심히 여인을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중년 여인과 중년 사내가 지하실로 들어섰다.

“양 오라버니께선 벌써 와 계셨군요.”

“방금 왔네. 황 부회주께서도 호출을 받은 건가?”

“지급의 사안이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왔어요.”

중년 여인 역시 흑룡회의 부회주였다.

황위시안. 흑룡회의 다섯 부회주 중 세 번째 서열이었다. 부회주 중 가장 젊은 나이이기도 했다.

“제가 가장 먼저 왔어야 했는데, 두 분보다 늦었습니다.”

뒤따라온 중년 사내, 서열 5위 부회주 자오천위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어 남자 백호에게 물었다.

“나머지 두 분 부회주께서는 안 오시는 모양이지?”

“두 분에 대해서는 용두께서 별말씀 없으셨습니다.”

남자 백호가 무표정하게 답했다.

자오천위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허허로운 미소를 지었다.

“용두의 최측근 둘을 제외하고 나머지 셋을 호출하셨다···.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닌 듯하군.”

시선을 유리벽 안 여인에게 향하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아는 듯한 눈치였다.

황위시안이 이체를 띈 눈빛으로 물었다.

“자오 오라버니는 뭔가 아시는 모양이에요?”

“말석에 있는 제가 뭘 그리 대단한 걸 알겠습니까. 오히려 두 분께서 제게 가르침을 주셔야지요.”

“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는 거 있으면 좀 털어놔 봐요.”

자오천위가 양카이원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양카이원의 시선은 유리벽 안 여인에게 고정돼 있었다. 사뭇 심각한 눈빛이었다.

“양 선배께서 파악 중이신 모양인데요.”

자오천위가 백호를 흘깃 쳐다본 뒤 유리벽 안 여인을 가리켰다.

“용두께서 최근에 진귀한 물건 하나를 손에 넣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진귀한 물건이라고요?”

황위시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양카이원을 쳐다봤다.

양카이원은 여전히 유리벽 안 여인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표정은 한층 무거워졌다.

황위시안과 자오천위의 시선도 여인을 향했다. 한참 동안 말없이 여인을 바라봤다.

이윽고 양카이원이 입을 열었다.

“진귀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위험한 물건 같네.”

“어째서···?”

양카이원은 황위시안의 질문은 무시한 채 백호에게 다가갔다.

“뭔가? 저 물건.”

“죄송합니다. 용두께서···.”

“자네는 모르겠는가? 저 물건의 변화를. 차원 에너지의 증폭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네. 이러다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될 걸세.”

백호의 시선도 여인을 향했다.

그의 생각 역시 양카이원과 다르지 않았다.

북부전구 비밀 연구소 폭발 당시 여인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너덜너덜한 시신의 모습이었다. 생명의 징후가 남아 있었기에 다급히 수습해 의료시설로 이송한 것이었다.

의료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차원 에너지를 채워 넣은 밀폐된 유리벽 공간에 놓아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반전이 찾아왔다. 여인이 스스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했던 몸이 서서히 형체를 되찾았다.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후 사흘째 의식은 없는 상태였다. 혈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체온 역시 25도에 불과했지만, 맥박과 호흡은 정상 수준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부회주 셋이 모여든 시점을 기해 혈색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동자의 움직임이 뚜렷이 보였다.

머지않아 의식을 되찾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죄송합니다. 용두께서 지켜보라고만 하셨습니다.”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저 물건이 의식을 찾고 뭔가 하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있을 수도 있네.”

“10cm 두께의 강화 유리입니다. 절대 깨지지 않을···.”

순간 쩌저적 소리와 함께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인의 전신이 맹렬히 떨리더니 서서히 침대 위쪽으로 떠올랐다. 솟구친 머리카락에서 빠지직 전류가 뻗어 나오기까지 했다.

“당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네. 지금이 아니면···.”

그때 쩡 소리와 함께 유리벽이 반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여인이 눈을 떴다. 누운 자세로 공중에 떠 있던 여인이 똑바로 선 모습이 됐다.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채였다.

“나는 누구지? 또 여긴 어디지?”

양카이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계집을 제압해야 한다! 한꺼번에 공격···.”

미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느 순간에 목이 몸통에서 분리됐기 때문이었다.

그의 목은 어느 틈에 나타난 청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때마침 깨어났구나.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

다른 차원의 존재 (3)

부회주 셋이 용두의 호출로 찾아왔을 때 여자 백호(白虎)는 뒤쪽에 물러서 있었다.

고위 간부 상대는 선임인 남자 백호의 몫이었다. 여자 백호는 나서지 않고 선임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여자 백호 또한 유리벽의 양상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본능적으로 거대한 위험을 감지했다.

양카이원이 남자 백호를 다그칠 때, 여자 백호는 남자 백호가 마지못해 뜻을 받들길 바랐다. 여인이 의식을 되찾으면 감당 불가의 상황이 전개되리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불행히도 남자 백호는 굽히지 않았다. 용두의 지시를 굳게 지켰다. 그 와중에 여인은 의식을 회복했고, 결과는···.

쩡!

10cm 두께의 강화 유리가 반으로 갈라졌을 때, 여자 백호는 그녀를 스쳐 가는 스산한 기운에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 찾아든 것이었다.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된 공간에.

“계집을 제압해야 한다. 한꺼번에 공격···.”

부회주 양카이원의 다급한 몸부림은 시도 단계에서 좌절됐다.

여자 백호를 스치고 지나간 스산한 기운의 주인. 차가운 분위기의 미청년이 양카이원의 뒤에 멈춰섰다.

머리에 손을 얹는 듯싶더니 그대로 잡아 뽑아버렸다.

흑룡회의 2인자 양카이원. 초인이었다. 중국 전체를 놓고 봐도 열 손가락 안에 들 강자였다.

하지만 미청년의 대수롭지 않은 손짓 한 번에 목을 잃은 시신이 됐다.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때마침 깨어났구나.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미청년은 여인을 향해 미소 지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저, 저놈···!”

황위시안과 자오천위 그리고 남자 백호가 일제히 공격에 나섰지만, 미청년은 그저 여인만 바라볼 뿐이었다.

“나를 아는 거야? 너는 누구지? 또 나는 누구야?”

“기억나지 않는구나. 그래. 당장은 그럴 수 있어.”

여인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와중에 양손은 절도 있게 움직였다. 화위시안과 자오천위, 남자 백호의 공격을 물리쳤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처리할게.”

미청년이 자오천위의 팔을 붙잡더니 그대로 꺾어버렸다.

꽈드득! 팔이 부러져 분리됐다.

“끄악!”

비명을 지르는 자오천의 목을 손날로 그었다.

쫘악! 목이 잘렸다.

멀찍이 날아간 목이 유리벽에 튕겨 나뒹굴었다. 눈에는 경악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었다.

미청년은 무심하기만 했다.

여인을 향한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잘 지켜봐. 기억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하는 와중에 남자 백호의 팔을 어깨부터 뽑아버렸고, 머리를 움켜쥐어 으스러뜨렸다.

“다들 들어와! 뭣들 하고 있어! 빨리 들어오란 말이야!”

황위시안이 특성을 발동해 공세를 쏟아내는 한편, 밖에서 대기 중인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신의 수하들은 물론, 양카이원과 자오천위의 수하까지 서른 명은 될 터였다. 안전 가옥에 배치된 기존 인원까지 합치면 칠십에 육박하는 흑룡회 정예들이 몰려들 상황이었다.

미청년은 여유롭기만 했다.

“밖에 있던 사람들 말이야? 보이는 대로 다 죽이긴 했는데, 또 있으려나? 있으면 마저 들어오라고 해. 얼마든지 환영이야.”

황위시안의 특성 소닉 바이브레이션이 연달아 쏟아져 나왔지만, 아무렇게나 휘저은 미청년의 손짓에 위력을 잃었다.

두어 차례 미청년의 몸에 적중됐지만,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약간의 통증에 불과한 듯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였다.

“이, 이게 무슨···.”

황위시안 역시 초인이었다.

그녀의 특성 소닉 바이브레이터는 레벨 7의 몬스터도 갈기갈기 찢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미청년에겐 어린아이 장난에도 못 미치는 양상이었다.

“밖의 녀석들보다는 아줌마가 재미있는데! 좀 더 해봐.”

“이런 개 쌍놈의 자식아!”

황위시안이 노성을 지르며 소닉 바이브레이션을 쏟아내려는 찰나, 미청년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거기까지. 부모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지.”

훌쩍 뛰어 다가가더니 덥석 양팔을 잡아 꺾어버렸다. 부러진 양팔을 뽑아 던져버린 뒤, 정수리를 내리쳤다.

퍼석! 머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졌다.

순간 여자 백호는 도망치려 했다.

도망쳐서 용두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사실은 치가 떨릴 정도로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채 두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덜미를 잡힌 것도 아닌데, 끌려갔다. 무형의 기운이 잡아끄는 양상이었다.

도달한 곳은 유리벽 안 여인의 손이었다.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 여자 백호를 바라봤다.

“오! 드디어 기억난 거야?”

미청년이 반색하며 물었다.

여인이 건조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여자 백호를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영혼까지 얼어붙을 듯 차가운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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