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50)

“속···국?”

순간 사내의 손에 검은색 빛의 검이 생성됐다.

대답하던 초인의 목을 엄습해왔다.

댕강!

단칼에 목을 날려버렸다.

“에잇! 사부인지 뭔지 하는 작자가 말을 안 전했나 보네. 속국이라는 말 내 귀에 들리면 모가지 날아간다고 경고했는데···.”

랴오위안허가 끝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화살이 돼 꽂힌 순간이었다. 애꿎은 초인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하긴. 전했다고 안 했을 인사는 아니었다. 어차피 목을 잃을 운명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터였다.

“네, 네놈은···?”

마오쥔제가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히 모르진 않았다.

검은색 빛의 검. 랴오위안허가 경계해야 한다고 지목한 이능이었다.

궁금한 건 검의 주인이 여기 있는 이유였다.

“네놈이 여기엔 어떻게···?”

“너희들이 어디선 뭘 하든 다 내 손바닥 안이야.”

유지훈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마오쥔제의 경악한 표정이 이내 비소로 바뀌었다.

“그래. 어떻게 여기 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주위의 초인들에게 눈짓했다.

“죽을 곳을 찾아 기어 들어왔다는 점이 중요하지.”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솟구쳤다. 지붕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동시에 다섯 명의 초인이 뒤를 따랐다.

“뭐하러 멀쩡한 지붕은 쳐부수고 지랄이야. 우린 문으로 나가자.”

유지훈과 화무결은 여유롭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오쥔제를 중심으로 초인들이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뒤이어 날렵하게 몰려든 각성자들이 후방을 차지하고 자리했다. 100명은 훌쩍 넘어서는 인원이었다.

“네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몸소 찾아와 주다니, 연변까지 가는 수고를 덜어줬군.”

마오쥔제의 눈빛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랴오위안허의 전언 이후 사부들은 유지훈 무리에 대한 맞춤형으로 작전을 준비했다.

빛의 검과 특성을 되돌리는 능력에 대비한 작전이었다. 초인들과 각성자들도 작전에 맞춰 배치했다.

“찾아올 만하니까 찾아왔다는 생각은 못 하나 봐?”

유지훈이 삐딱한 어조로 말했다.

“어쨌거나 너희 쪽에서도 평화적인 해결 방안 제시했었으니까, 우리 쪽에서 화답 차원에서 하나 제시할게.”

“어차피 죽을 놈이···.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연변에 한민족 자치국 독립 인정하면 평화롭게 지내줄게.”

“하핫. 개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마오쥔제가 비웃었지만, 유지훈은 표정은 진지해졌다.

“아직 조건이 남았어. 반응은 다 듣고 보이든지 해.”

마오쥔제와 초인들을 둘러본 뒤 말을 이어갔다.

“한민족 자치국 주위 100km 일대로는 각성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조건이야. 오케이 하면 평화 공존이고.”

“못하겠다면?”

“일단 너희들부터 싹 죽는 거지. 그런 다음은···.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군.”

과거 고구려 영토를 모두 되찾겠다는 말을 준비했지만,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수틀리면 고구려 영토에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 베이징까지 진격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테니.

“우리를 다 죽이겠다? 고작 너희 둘이?”

“그 말은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봐도 되는 거지?”

유지훈이 화무결을 슬쩍 쳐다봤다.

“어느 쪽 맡을래?”

앞쪽의 초인들과 뒤쪽의 각성자들을 번갈아 가리켰다.

화무결이 떨떠름한 눈빛으로 양쪽을 살펴보더니 피식 웃었다.

“시합인가?”

“당연하지. 우리 사이엔 항상 시합이지.”

“그럼 많은 쪽을 택하겠네. 만만해 보이는 쪽으로···.”

“과연 그럴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무결이 몸을 날렸다.

100여 명의 각성자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 권장지각을 퍼부어댔다. 학살의 시작이었다.

유지훈은 마오쥔제를 향해 빙긋 웃었다.

“고작 우리 둘이 다 죽여줄게. 저쪽은 우리 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갔으니, 너희들은···. 들어와 봐. 세 수 정도는 양보할게.”

손을 까닥였다.

마오쥔제가 코웃음을 쳤다.

“사양할 이유가 없지.”

초인 둘이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유지훈의 뒤쪽에 착지하더니 특성을 발동했다.

신체가 바윗돌로 변한 초인이 뒤에서 유지훈을 끌어안았고, 팔이 고무처럼 늘어난 초인이 양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양상이었다.

유지훈은 가만히 받아줬다. 진짜 세 수는 양보하려는 듯했다.

“강화 계열 특성의 초인들이다. 네놈을 붙잡아 놓을 능력은 차고 넘치는 자들이지.”

마오쥔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네놈에게 빛의 검과 특성을 되돌리는 괴랄한 능력이 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 몰골로도 발동할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이어 특성을 발동했다.

머리카락이 길게 뻗어나더니 꼼짝 못 하는 유지훈을 향해 날아왔다. 한 가닥 한 가닥이 날카로운 화살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전에 메두사에 의해 고슴도치가 될 테지만.”

***

다른 차원의 존재 (2)

랴오위안허의 전언 이후 사부들과 초인들은 철저하게 유지훈을 겨냥해 작전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인원 편성도 유지훈을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꾸렸고, 공격과 방어 방식까지 맞춤형으로 구성했다.

대표적인 대목이 강화 계열 각성자들의 배치였다.

강화 계열 각성자들을 앞세워 유지훈의 움직임을 제어하려 했다.

빛의 검이든, 특성을 되돌리는 능력이든, 구사의 여지 자체를 봉쇄하겠다는 의도였다.

사부들이 나뉘어 맡은 여섯 개의 그룹에 최소 셋 이상의 강화 계열 각성자를 배치했다.

특히 마오쥔제가 이끄는 선봉 그룹엔 강화 계열 초인 둘을 투입했다. 전신이 바위처럼 단단해지는 특성을 구사하는 초인과 신체가 고무의 탄성을 지니게 되는 특성의 초인이었다.

이들은 유지훈과 맞서게 되자 특성을 발동해 움직임 제어에 나섰다.

바윗돌로 변한 신체로 뒤에서 단단하게 끌어안았고, 고무팔로 양팔을 움직일 수 없도록 제압했다.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상황에서 마오쥔제를 비롯한 나머지 초인들이 일제히 특성을 발동해 공격하는 작전이었다.

유지훈이 호기롭게 세 수를 양보한다고 공언한 상황.

강화 계열의 두 초인은 손쉽게 유지훈의 움직임을 제어했다.

결정타는 그룹의 리더인 공동의 사부 마오쥔제의 몫이었다. 메두사라는 특성을 보유한 초인이었다.

“어리석은 놈! 우리가 뭘 준비했을 줄 알고, 세 수나 양보한 것이냐. 얌전히 죽을 준비나 하거라!”

마오쥔제의 머리카락 수백, 수천 가닥이 유지훈을 엄습해왔다.

메두사. 머리카락을 무기로 만드는 특성이었다. 강도와 길이 그리고 움직임까지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었다.

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들어 살상 무기로 활용할 수도 있었고, 고무 같은 탄력을 지닌 끈으로 변용도 가능했다. 물건을 잡아챌 수도 있고, 전화를 거는 등 기기를 조작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날카로운 화살이었다. 제압한 초인들을 피해 유지훈의 전신에 꽂힐 기세였다.

“끄응. 세 수는 무리였나···.”

유지훈의 입에서 조금은 엉뚱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어 고무팔에 제압당한 양팔을 가볍게 털었다. 붙잡고 있던 초인이 가볍게 딸려오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형편없이 나뒹구는 모습. 고무팔이 아니었다. 늘어나지 않았다. 팔이고 뭐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가라!”

유지훈이 초인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붕 떠오르더니 쇄도해 오는 마오쥔제의 머리카락 쪽으로 날아갔다.

파파파파팍!

수백 수천 가닥의 머리카락이 초인의 전신을 가차 없이 꿰뚫었다.

“뭐야!”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장면이었다.

특성을 발동해 고무의 탄력을 지니게 된 신체였다. 튕겨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남김없이 꽂혔고, 그 즉시 절명했다.

마오쥔제가 멈칫하는 순간이었다.

“너도 가라!”

유지훈의 팔이 자유로워졌다.

팔꿈치로 뒤쪽에서 끌어안고 있는 초인을 가격했다.

빠악!

들려선 안 될 타격음이었다.

바위처럼 단단해진 신체인데, 일반적인 육신을 가격한 소리였다.

“크억!”

초인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대로 덜미를 붙잡아 역시 마오쥔제를 향해 집어 던졌다.

고무 특성의 초인을 꿰뚫은 뒤 멈칫했다가 다시 날아오던 마오쥔제의 머리카락이 이번엔 바위 특성의 초인에 가로막혔다.

파파파파파팍!

이번에도 여지없이 뚫렸다. 역시 즉사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특성 메두사를 발동한 마오쥔제의 머리카락이 강철 같은 강도를 지녔다고 해도, 강화 계열 초인을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일반인을 마주한 듯 너무도 간단하게 뚫어버렸다.

결과는 즉사. 야심 차게 준비한 유지훈 맞춤형 작전이 무위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이들이 미처 몰랐던, 간과했던 유지훈의 특성 때문이었다.

소멸기. 유지훈은 붙잡히자마자 소멸기를 발동했다. 소멸시켜달라고 들이대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초인도 각성이 사라지면 비각성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손짓과 발길질에 제압당했고, 메두사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에 당황한 마오쥔제와 심드렁하게 그를 응시하는 유지훈. 어느 틈에 손엔 짙은 묵빛 심검이 생성돼 있었다.

“고작 이게 다야? 대단한 걸 준비한 것 같더니?”

대수롭지 않게 허공에 대고 심검을 그었다.

촤악! 촤악!

마오쥔제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다급하게 거둬들이려 했지만, 빛의 검은 집요하게 쫓아와 뭉텅뭉텅 사정없이 잘라냈다.

강철의 강도에서 고무의 탄성으로 바꿔봤지만, 소용없었다.

“마오 사부를 보호하라!”

옆을 지키던 초인 셋이 동시에 특성을 발동해 공격에 나섰다.

괜한 짓이었다. 허망하게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반사기에 이어 심검의 검격이 펼쳐졌다.

두둥실. 세 개의 머리가 허공에 떠올랐다. 초인 셋은 머리 잃은 시신이 돼 초라하게 바닥에 널브러졌다.

유지훈의 오연한 시선이 마오쥔제를 향했다.

난잡하게 잘린 머리카락 때문에 기괴한 몰골이었다.

중국을 통틀어 팔대 강자로 군림하게 한 특성 메두사를 발동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마오쥔제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나머지 각성자 쪽을 둘러봤다.

화무결의 압도적인 맹위가 지배하는 현장이었다. 100명을 훌쩍 넘었는데, 이제는 서른이 채 남지 않았다.

마오쥔제의 시선을 쫓던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이번 시합은 내가 이기겠군.”

마오쥔제를 향해 손을 까닥였다.

“아직 여유 있네. 할 수 있는 거 있으면 다 해봐.”

마오쥔제는 말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이를 악문 채 한참을.

유지훈이 눈살을 찌푸리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세 수 양보하기로 하지 않았나?”

“아. 그거?”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미안. 내가 죽게 생겨서. 두 수까지만 양보했어.”

“꼴이 사납게 됐군. 한 수 양보 안 했다고 책망이나 하고 있다니···.”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내가 이제 시간이 없거든. 이번엔 저 친구랑 시합에서 이겨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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