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150)

본능적으로 특성을 발동했다.

오른손을 뻗어 청년의 가슴에 10만 볼트의 고압 전류를 흘렸다.

청년은 미동도 없었다.

그저 가소롭다는 미소만 그릴 뿐이었다.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니었군.”

중년 여인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그대로 잡아 뽑아버렸다.

머리가 사라진 시신이 허물어져 내렸다. 검붉은 피를 쏟아내며 널브러졌다.

“돌아가야겠지. 친구들에게.”

청년이 선실로 들어갔다.

어선이 방향을 바꿨다. 북쪽을 향해 느릿느릿 이동하기 시작했다.

***

“그래서 중국 초인들이 지린성으로 모여들었다는 거네?”

유지훈은 연변으로 돌아오자마자 강은영에게 연락했다.

보고 싶거나 하는 애틋함 때문은 아니었다. 인간 내비게이터의 특성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국가안전본부에 확보된 중국 초인들의 자료를 근거로 현재 위치를 파악해달라고 요청했다.

국가안전본부가 확보한 중국 초인 자료는 국제각성자협회에 가입된 28명이었다. 그 외 비공인 초인 자료는 없었다.

강은영은 이들의 사진과 자료를 활용해 현재 위치를 알아냈다. 이메일로 유지훈에게 보냈다.

[중국 초인 전부가 확인된 건 아니에요. 국제 인증을 받은 초인들에 한해서예요. 전에도 말했듯이 중국엔 자체 인증 초인이 더 많아요.]

“나머지도 비슷한 데 있겠지. 뭐. 다 몰려들었는데, 나머지라고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거 아냐.”

[아무래도 그렇겠죠. 팔대 사부인지 뭔지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데, 자료를 확보할 수 없네요.]

“아. 그 작자들. 이제 육대 사부야. 내가 둘 죽였어. 상관없어. 찾아다니다 보면 하나둘 나타나겠지.”

유지훈이 위치 자료를 죽 훑었다.

대략 6개 그룹으로 묶이는 양상이었다. 어떤 지역엔 초인이 다섯 있었고, 어떤 지역엔 셋이 있었다. 대체로 둘에서 다섯 정도로 나뉘어 한군데씩 분포했다.

“이놈들 조를 짠 모양인데? 중국 초인이 공인 비공인 합치면 50명쯤 된다고 했었나?”

[대략 그 정도라는 추측이죠. 뭐. 정확한 건 알 수 없어요. 중국에서도 모를 거예요. 모든 게 띄엄띄엄인 놈들이니까요.]

“그럼 사부들이 각각 조 하나씩 맡아서 인원을 나눴나 보네. 사부 둘이 죽었으니 계획이 조금 틀어지긴 했겠네.”

[으음···. 괜찮겠어요? 각개전투로 상대한다고 해도 초인 일고여덟은 결코 만만치 않아요. 부하들을 대동했을 수도 있고요.]

“사실 나는 모여 있는 게 더 좋아. 번거롭게 찾아다니는 것보다.”

찾아다니기로 한 이유는 연변 주민들의 안전 때문이었다.

중국 초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서 총공세를 펼치면, 피해는 고스란히 연변 주민들에게 갈 테니.

유지훈과 화무결, 이나연에 조호견을 비롯한 각성자 부대면 어지간히 몰려와도 결국엔 물리칠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와중에 주민들이 입게 될 피해까지 온전히 커버하긴 힘들었다.

[인원이 부족하진 않아요? 지원군 필요한 거 아니에요?]

“됐어. 한국 쪽 사정도 여의치 않다며? 마 영감님이랑 임 영감님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양이던데.”

[야마가토 놈들이 싸지른 똥 때문이죠. 변종 몬스터가 여전히 기승이니···. 나라도 갈까요? 그럭저럭 한숨은 돌렸는데.]

“아니야. 은영한테는 위험할 수도 있어. 거기서 길드 애들 훈련이나 잘 시켜. 애들 연변으로 오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한번 논의됐던 사안이었다.

자치국 독립을 마친 뒤 조호견의 각성자 부대 훈련에 관해서였다.

당분간 화무결이 남아 사범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영훈길드 구성원들이 넘어와 합동 훈련을 받는 것도 고려 대상이었다.

남북 각성자 교류 증진 및 경쟁을 통해 능력 극대화 차원이었다.

“슬슬 작전 준비해야 하니까, 위치 변동 사항 있으면 연락해.”

통화를 마친 뒤 강은영이 빙긋 웃었다.

“그럼 나는 서프라이즈나 준비해볼까?”

***

“주석의 양보에 대해 놈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단 말씀이오?”

무당의 사부 장웨이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곤륜의 사부 랴오위안허로부터 협상 결과를 들은 뒤 반응이었다.

협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함께 간 사부 둘이 제대로 손도 못 써본 채 목숨을 잃었으니.

수행한 각성자들에 지린성 당서기까지 목이 날아간 상황에서 랴오위안허 홀로 멀쩡히 돌아왔다.

“그런데도 랴오 사부께선 그냥 돌아오신 거요?”

강한 질책이 담긴 어조였지만, 랴오위안허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이오.”

“그게 어떻게 최선일 수 있소!”

“당 사부와 리 사부께서 암습에 당하셨소. 마땅히 랴오 사부께서 사생결단의 각오로 복수에 나섰어야 마땅하오!”

“이런 망신을 당했는데, 주석께서 앞으로 우리 팔대 사부를 얼마나 하찮게 보시겠소!”

나머지 사부들이 거세게 성토했다.

랴오위안허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나는 살아 돌아와야 했소. 그자들의 실체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오.”

“실체?”

사부들이 눈빛에 이체를 띄기 시작했다.

실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심장함 때문이었다.

“실체라고 할 게 뭐가 있소? 그저 강약의 정도 아니겠소?”

“사부 두 분이 당한 것만으로 그자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소. 랴오 사부께서 추가된들 딱히 달라질 건 없을 거요.”

그래도 질책의 분위기는 이어졌다.

랴오위안허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자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굳이 논할 문제가 아니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자들이 다른 차원의 존재들일 수 있다는 거요.”

랴오위안허의 발언이 새로운 파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다른 차원의 존재 (1)

“다른 차원의 존재라?”

장웨이지의 질문에 랴오위안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우리와 다른, 아니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었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내 특성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아!”

그제야 사부들에게서 놀란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랴오 사부의 특성이 반응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특성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요. 하지만 분명 특성은 있었소. 그렇기에 다른 차원의 존재라 단언하는 거요.”

랴오위안허의 특성은 습득기라 불리는 이능력이었다.

상대하는 각성자의 특성을 습득해 발동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대략 반경 3m 이내 각성자의 특성은 습득 가능했다.

가능 권역을 벗어나면 습득할 수 없기에 일회성의 특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복사기라 불리기도 했다.

여러 명을 상대할 때엔 여러 개의 특성도 습득 가능했다. 동시에 여러 개의 특성을 발동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덕분에 랴오위안허는 팔대 사부 서열 3위에 자리할 수 있었다.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시오.”

장웨이지의 주문에 랴오위안허가 차근차근 상황을 들려줬다.

유지훈이 빛의 검을 생성해 당이페이의 목을 날리고, 리친청이 무형의 탄환을 고스란히 돌려낸 과정부터 이나연의 파란 화염이 수하 각성자들을 모조리 소멸시키기까지.

“그들의 특성 중 어떤 것도 반응하지 않았소. 나로서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거요.”

한 차례 혀를 차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자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같소. 접근 방법을 바꿔야 하오. 그것을 알리기 위해 내 구차한 한목숨 부지했소.”

랴오위안허가 사부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부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요한 정보였다. 몰랐으면 일을 크게 그르칠 수도 있을 터였다.

상대에게 연동하는 특성을 보유한 사부들이 제법 있었다. 반응하지 않는 특성이라면 사부들의 특성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빛의 검과 특성을 되돌리는 능력에 대한 대처법도 고심할 문제였다. 게다가 유지훈 주위의 능력자들에 대해서도.

“기존의 계획을 전면 변경해야겠소.”

장웨이지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편 랴오위안허가 끝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속국이라는 말을 꺼내면 목을 날리겠다는 유지훈의 경고였다.

그 말을 전하기엔 마음이 너무 참담해서였다.

***

중국 초인들의 위치를 확인한 뒤 유지훈은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화무결 이나연 조호견 외에 각성자 부대 전원을 아우르는 회의였다.

일단 상황부터 설명했다. 중국 초인들이 지린성에 모여들어 대대적인 공세를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놈들을 오게 하면 연변 주민들 피해가 불가피하잖아. 그래서 우리 쪽에서 먼저 쳐들어갈까 해.”

바로 질문이 쇄도했다.

조호견을 비롯한 각성자 부대원들의 질문이었다.

“놈들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쳐들어간단 말이오?”

“중국 초인이 모여들었으면 오십에 육박할 겁니다. 우리 전력으로 쳐들어가는 건 무리 아닙니까?”

“지형지물을 활용해 방어진을 구축하는 게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 지원군은 오지 않습니까?”

다 부질없는 질문들이었다.

대답은 ‘아니’였으니.

“놈들이 어디 있는지는 다 파악했어.”

“모이긴 했지만 흩어져서 모였기 때문에 각개격파 가능해.”

“우리 전력 논할 필요 없어. 너희는 여기 지켜야 하니까. 가는 건 나랑 화 사범 둘이 다야. 한국에서 지원군도 없어.”

“방어진은 당연히 구축해야지. 너희들이. 그런데 그냥 지키고만 있으면 될 거야. 놈들 못 오게 할 거니까.”

놈들의 주둔지로 쳐들어가는 건 유지훈과 화무결이 전부였다.

이나연과 조호견을 비롯한 나머지는 외지에서 자치주로 들어오는 주요 길목 두 군데에 방어진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나연이 부대원 30명 정도와 함께 한 군데를 지키고, 조호견이 나머지 70명을 이끌고 다른 한 군데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나연 씨는 함께 안 간다고 서운해하지 말아요. 신화전자의 사업 터전을 지킨다고 생각해요. 만에 하나 놈들이 쳐들어오게 되면, 나연 씨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나연은 순순히 수긍했다.

유지훈과 화무결 둘이 움직일 때 가장 효율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이나연도 충분히 강했지만, 아직 신법은 미흡했다. 다수의 적에게 에워싸였을 때 곤경에 처할 여지가 있었다.

이나연은 현명한 여인이었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잘 알았다.

화무결에게서 신법을 전수하는 중이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나서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안 그래도 러시아 쪽이랑 사업 관련 미팅이 예정돼 있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 항만 물류 기지 건설을 논의하려고요. 연변 공장과 연계한 물류 단지 조성이죠.”

와중에 이나연은 사업가로서 역량도 발휘하고 있었다.

자치국 건설의 실질적인 일등공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유지훈이 조호견에게 당부했다.

“다녀오는 대로 독립 선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 특이 사항 생기면 연락하고. 바로 돌아올 테니까.”

그렇게 유지훈과 화무결이 떠났다.

목적지는 바이산시. 연변에서 가장 가까운 지린성의 지급시였다.

강은영에 따르면 초인 셋이 모인 곳이었다. 대략 여섯 명이 한 그룹을 형성한다고 볼 때 한 명 이상의 사부가 있다고 추측 가능했다.

[구체적인 건물명 같은 건 모르는데 괜찮겠어요? 뭔가 보이긴 하는데, 가본 적이 없으니 단정하기가 어렵네요.]

“괜찮아. 좌표만 찍어줘. 근처에 가면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 몇이나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어.”

기감을 끌어올리면 될 일이었다.

유지훈과 화무결 모두 무림에서 수십 년에 걸쳐 기감을 단련했다. 초인의 기세 정도는 반경 100m 밖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강은영이 지목한 장소는 바이산시 외곽의 농장이었다.

모여 있는 기운의 크기는 제법 컸다. 레벨 5 이상 각성자가 100명은 될 법했다.

농장 뒤쪽 건물에서 월등한 기운 여섯이 감지됐다. 초인들이 모여 있는 양상이었다.

그중 하나는 나머지를 압도했다. 여섯 사부 가운데 하나겠지.

말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갔다.

***

팔대 사부, 이제는 여섯 사부가 이끄는 중국 초인 무리는 우선 지린성의 지급시에 근거지를 뒀다.

성도 창춘시를 비롯해 지린시 쓰핑시 랴오위안시 퉁화시 바이산시 등 여섯 군데였다.

최종 집결지는 지린시와 바이산시였다. 바이산시엔 선봉에 설 무리가 지린시엔 후방을 지원할 무리가 모이기로 했다.

바이산시에는 일단 공동의 사부 마오쥔제가 이끄는 무리가 자리했다. 초인 일곱과 수하들까지 120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원래 바이산시 무리는 곤륜의 사부 랴오위안허가 맡을 예정이었다.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뒤 후방으로 물러서기로 했다. 특성 습득기의 발동이 불가한 상황에서 선봉은 무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호전적인 마오쥔제가 선봉장을 자청하고 바이산시에 주둔했다.

“쓸모없는 늙은이 같으니. 남한테 의존하지 않으면 힘도 못 쓰는 늙은이가 사부는 무슨 사부야.”

“마오 사부의 말씀이 백번 타당하오. 랴오 사부는 두 사부의 죽음을 헛되이 한 것만으로 사부 자격이 없소.”

랴오위안허에 대한 성토는 이내 유지훈으로 넘어갔다.

“한국 귀환자 놈 암수를 써서 사부들을 해쳤을 거요. 비열한 놈.”

“속국의 비렁뱅이가 암수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 있겠소.”

“이번 기회에 한국 놈들 단단히 가르쳐야 하오. 속국 놈들이 중화를 대하는 자세를 확실히···.”

말하던 초인이 돌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난데없이 나타난 두 사내 때문이었다.

“지나가던 과객인데, 이상한 말을 들어서 말이야. 속 어쩌고 하던 말 다시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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