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150)

팔대 사부가 나서서 유화책을 제시한 뒤 통하지 않으면, 중국의 초인 전체가 총공세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중국의 초인 전체는 이들이 이끄는 각성자들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사실상 중국 각성자 전체를 전장에 투입한다는 뜻이었다.

일단 사부 셋이 창춘시로 향하기로 했다.

나머지 다섯 사부와 초인들은 각자의 세력을 이끌고 조선족 자치주 인근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사부 셋의 통첩이 거부당하면, 바로 진격할 채비를 갖춘 채로.

그렇게 곤륜의 랴오위안허, 종남의 당이페이, 청성의 리친청이 창춘시에 도착했다. 지린성 당서기 자오쥔하이에게 결정 사항을 전달했다.

“조선족 독립을 추진하는 자들에게 전하시오. 우리가 갈 테니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할 준비를 하라고 말이오.”

원래 세 명의 사부는 연변으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중국 정부를 대신한 사절의 자격으로 방문해 통첩을 전할 계획이었다.

자오쥔하이의 오지랖이 계획을 어그러지게 했다.

“사부님들께서 촌구석까지 가게 할 순 없습니다. 그자들을 이쪽으로 오도록 하겠습니다.”

“용무는 우리 쪽에 있는데, 그래도 되겠소?”

“용무가 어느 쪽에 있는지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한반도의 국가들은 대대로 우리의 속국이었습니다. 우리 쪽에 용무가 있어도 저들이 사신을 파견해 받들곤 한 역사가 있습니다.”

“속국이라···.”

“이번에도 당연히 저들이 와야지요. 사부님들께서 아량을 베풀어 평화적인 해결책을 논의하신다는데, 마땅히 와서 고개를 숙여야지요.”

“당서기의 말씀이 타당한 듯하오.”

그렇게 조선족 자치국 준비위원회에 당장 창춘시로 달려오라는 요구가 전달됐다.

유지훈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요구였다.

“이거 도발 맞지? 아니어도 도발이야. 가즈아!”

***

창춘시로 향한 일행은 단출하게 넷이었다.

일단 유지훈과 화무결 그리고 이나연.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세 명에, 조선족 자치국 준비위원장 조호견이었다.

조호견의 표정은 무거웠다.

“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이야? 명색이 국가 원수인데 오라 가라 해서 기분 나쁜 거야? 표정 풀어. 가서 따끔하게 응징해주면 되잖아.”

유지훈이 물색없이 싱글거리자, 조호견의 안색은 한층 어두워졌다.

“그런 게 아니오. 어떤 자들이 있을 줄 알고 달랑 넷만 간다는 말이오. 우리 아이들도 데려왔어야 했는데···.”

“어이. 걔들 데려와서 뭐에 쓰게? 총알받이로 쓰려고? 그럴 거 아니면 짐밖에 안 돼. 그냥 우리끼리가 제일 깔끔해.”

“저쪽에 팔대 사부가 와 있다는 말을 들었소.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사들이오.”

조호견의 깊은 우려에도 유지훈의 입가에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팔대 사부가 그렇게 대단한 놈들이야? 말만 들어선 무슨 무술 도장 사범 같은데?”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소. 팔대 사부가 국제각성자협회에 가입하면 그날로 세계 초인 랭킹 1위부터 8위까지 바뀔 거라고 했소.”

“오호! 재미있네. 그런데 지금 여기 우리 셋도 세계 초인 랭킹에서 빠져 있거든. 들어가면 바로 1위부터 3위까지 바뀔 거야. 아. 나는 비각성자라서 안 되려나.”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어. 설명하자면 길어. 나중에 술 한 잔 하게 되면 이야기해줄게.”

창춘시에 도착했다.

창춘시 시장이 마중 나와 지린성 당서기 집무실로 안내했다.

그럭저럭 예의를 갖추긴 했지만, 표정에선 멸시가 읽혔다. 너희 이제 다 죽었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냥 넘어갈 유지훈이 아니었다.

“그쪽은 있다가 볼일 다 본 다음에 따로 대화 좀 나누자고.”

당서기 집무실엔 네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응접실 소파 상석과 양옆에 앉은 세 사내와 뒤쪽에 시립한 사내. 세 명의 사부, 랴오위안허 당이페이 리친청과 당서기 자오쥔하이였다.

들어서는 유지훈 일행을 말없이 관찰하는 양상이었다. 일종의 기세 싸움을 걸어오는 듯했다.

자오쥔하이가 인사를 겸해 말을 꺼내려는 찰나, 유지훈이 단호하게 자르고 들어갔다.

“볼일 있는 놈들이 와야 하는 거 아니야? 한 국가의 원수를 함부로 오라 가라 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뭐, 뭐요!”

자오쥔하이가 머뭇거리다가 상석의 랴오위안허를 쳐다봤다.

랴오위안허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을 보냈다. 강하게 밀어붙이라는 의중을 실은 눈짓이었다.

주춤했던 자오쥔하이가 용기백배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국가들은 중국의 속국이었소. 볼일이 중국에 있다고 해도 당연히 그대들이 와서···.”

순간 유지훈이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실어 자오쥔하이의 뺨을 가격했다.

쫘악!

자오쥔하이가 멀찍이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지훈이 펄쩍 뛰어 자오쥔하이에게 날아가더니 널브러진 몸 위에 올라탔다. 머리채를 잡고 뺨을 후려쳤다.

쫙! 쫙! 쫙! 쫙!

“이, 이게 무슨···!”

세 사부가 나서려고 했지만, 때마침 화무결이 뿌린 장력에 멀찍이 밀려 주저앉았다.

뺨을 갈기던 유지훈은 분에 못이긴 듯 수도로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빠악!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허연 뇌수가 피에 섞여 흘러내렸다. 지린성 1인자가 즉사했다.

유지훈이 팔을 흔들어 손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세 사부를 노려봤다. 태산이라도 가를 듯한 기세를 머금은 시선이었다.

“내가 복국은 좋아하지만, 속국은 혐오해. 말만 들어도 미쳐 날뛸 지경이야. 앞으로 속국이라는 말을 꺼내는 놈은 그 즉시 대가리를 쪼갤 거야. 저놈처럼.”

***

오지랖이 초래한 참상

곤륜의 수장 랴오위안허는 들어서는 네 명 중 젊은 남자, 유지훈을 주시했다.

멋들어진 용모의 중년 사내와 경직된 분위기의 중년 사내 그리고 화려한 미모의 젊은 여인. 하나 같이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미중년은 감당하기 힘든, 아니 거역하기 힘든 기운을 전신에 휘감은 분위기였다.

‘한국에 저런 초인이 있었나? 못 들어본 것 같은데···.’

젊은 여인도 못지않았다. 괴랄했다. 기세는 읽혔지만, 예전에 감지해보지 못한 종류였다. 새로운 차원의 각성 같았다.

그나마 경직된 분위기의 중년 사내가 만만했다. 중국의 평균적인 초인에 못 미치는 인상이었다. 북한의 초인인 듯했다.

젊은 사내는 기이했다. 각성의 기운이 전혀 읽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대한 무언가를 갈무리한 양상이었다.

사전에 파악한 인상착의로 봤을 때 젊은 사내가 한국의 귀환자였다. 듣던 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허허실실에 정중동. 어떤 의미에선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일단 기세를 쏘아 보내 기선부터 제압해야겠군.’

통하지 않았다.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받아넘길 뿐이었다.

아니. 흘려보냈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초반 기세 싸움은 패배라고 단정해도 될 상황이었다.

자오쥔하이가 인사를 건네려는 찰나, 한국의 귀환자가 반격의 기세 싸움을 걸어왔다.

“볼일 있는 놈들이 와야 하는 거 아니야? 한 국가의 원수를 함부로 오라 가라 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자오쥔하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물러서지 말고 강하게 밀어붙이라는.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국가들은 중국의 속국이었소. 볼일이 중국에 있다고 해도 당연히 그대들이 와서···.”

그때부터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펼쳐졌다.

한국의 귀환자가 무자비하게 자오쥔하이를 구타했다. 급기야 머리를 반으로 쪼개기까지 했다.

아무리 거슬리는 언사가 있었다 해도 한 성의 책임자를 때려죽이다니. 용납할 수 없는 행태였다.

옆의 두 사부와 함께 손을 쓰려고 했지만, 나서기도 전에 주저앉았다. 미중년의 대수롭지 않은 손짓에 멀찍이 밀려 내동댕이쳐졌다.

“내가 복국은 좋아하지만, 속국은 혐오해. 말만 들어도 미쳐 날뛸 지경이야. 앞으로 속국이라는 말을 꺼내는 놈은 그 즉시 대가리를 쪼갤 거야. 저놈처럼.”

주고받은 기세 싸움은 완벽한 패배였다. 당서기만 목숨을 잃었다.

당이페이와 리친청이 발끈해 나서려 했지만, 랴오위안허가 짧은 한숨과 함께 만류했다.

한국의 귀환자, 유지훈이 피식 웃더니 소파로 향했다. 상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이어 일행이 양옆으로 착석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 명의 사부가 앉아있던 자리였다.

“뭐해?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하자고 했다면서? 와서 이야기해 봐. 외교적인 결례는 이쯤 해서 넘어가 줄 테니까.”

지린성 최고 서열 공직자를 때려죽여 놓고 외교적인 결례는 넘어가 주겠단다. 이게 말인지 방귀인지···.

랴오위안허가 양옆의 당이페이와 리친청을 살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이럴 계제가 아닌데···.

랴오위안허는 두 사람에게 진정하라는 눈짓을 보낸 뒤 유지훈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당이페이와 리친청도 옆에 앉았지만, 유지훈을 노려보는 시선엔 노골적인 분노가 실려 있었다.

“왜? 할 이야기 없어? 그럼 우린 가고. 저놈 입을 통해서 그쪽 의사는 충분히 전달받은 것 같으니까.”

유지훈이 자오쥔하이의 시신을 가리키며 일어서려 했다.

랴오위안허가 다급하게 만류했다.

“아니오. 있소.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이오. 주석께서 전달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소.”

랴오위안허가 당위페이와 리친청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노기가 실린 눈빛이었지만, 애써 진정하는 듯했다. 주석이 거론되자 분을 가라앉히려는 모습이었다.

“해봐.”

짧은 한마디가 돌아왔다.

중국의 국가 주석이면, 전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두 명 중 하나였다.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전혀 예의를 갖추지 않는 태도였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랴오위안허도 슬슬 노기가 끓었지만, 애써 눌렀다. 전달하는 것까지는 필연적인 임무라고 여겼다.

“주석께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자치구로 승격시키겠다고 하셨소. 아울러 북한의 조호견 초인을 통치자로 인정하겠다고 하셨소.”

자치구는 성급 행정구역이었다. 연변을 지린성에 속한 행정구역이 아닌 독립된 성급 행정구역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조호견을 자치구의 통치자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독립만 인정하지 않을 뿐 실질적인 지배권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중국 입장에선 상당한 양보였다.

다만 유지훈에겐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그게 다야?”

랴오위안허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주석의 양보는 그게 다였다. 그가 판단하기에도 그 이상 양보하긴 힘들었다. 다음 단계는 독립 인정이 될 테니.

그렇다고 단호하게 끊을 순 없었다. 어쨌거나 주석의 정한 범위 내에서 가능한 혜택을 제시해야 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들이 자치구로 돌아가 정착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소. 외자 유치에 유리하도록 조선족 자치구를 면세 지역으로 지정할 방법을 찾겠소.”

“무슨 말이 그래?”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금전적인 지원을 하면 하는 거지, 아끼지 않는 건 뭐며. 면세 지역으로 지정하면 하는 거지, 방법을 찾는 건 또 뭐야? 아니면 말려고? 짱개식 말장난이야?”

유지훈의 시선이 조호견을 향했다.

“우리 건국 준비위원장님은 어떻게 생각해?”

“나요? 나, 나는···.”

조호견이 머뭇거렸다.

사실 그는 진작부터 넋이 나간 상태였다.

유지훈이 지린성 당서기의 대가리를 쪼갠 순간부터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유지훈에게 맡길 뿐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주변 국가에 대고 밥 먹듯이 하는 속국이라는 말 한마디에 머리를 으깨버렸는데···.

‘미친 인간, 어쩌자고···. 그래도 속은 후련하네.’

걷잡을 수 없는 국면이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 적진 한가운데까지 달려온 양상이었다.

이제 와서 내릴 수도 없고, 끝까지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유지훈 초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에이~. 그런 뻔한 이야기 말고. 쟤네들이 해준다는 거 이미 우리가 다 준비한 거 아니야? 그것보다도 못한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랬다.

중국 각지로 쫓겨간 조선족의 귀향 및 정착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고, 취업도 보장하기로 했다.

“맞아요. 외자 유치는 이미 했잖아요. 우리 신화에서 공장 건설 및 유통 산업 단지 조성을 위한 실사에 들어간 상태예요.”

잠자코 듣고 있던 이나연이 부연해 설명했다.

면세 지역 지정 같은 건 전혀 필요치 않았다. 조선족 자치국으로 독립하면 중국에 세금을 낼 일 자체가 없으니.

“그렇다는데?”

류지훈의 심드렁한 시선이 랴오위안허를 향했다.

랴오위안허가 쓴웃음을 지었다. 난처한 눈빛으로 당이페이와 리친청을 둘러봤다.

당이페이가 한 차례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우리 땅이다. 너희가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주석께선 독립 국가를 제외한 모든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셨다. 영광인 줄 알고 받아들여라.”

종남의 사부 당이페이. 직설적인 성격이었다. 오만했다. 한족 우월주의에 휩싸인 사내였다.

말을 돌려 하지 않았다. 그의 사전에 중국 내 이민족에게 존대는 없었다. 지시하듯 하대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삶의 방식이었다.

다만 지금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너희 땅이라고? 개소리! 우리 땅이야. 한반도 북쪽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땅이라고.”

“뭐라! 연변은 예로부터 엄연히 중국의 영토다. 조선족에게 거주할 수 있도록 배려했을 뿐이다. 배려를 권리로 착각하지 말아라.”

“예로부터? 흥! 말 한번 제대로 했네.”

유지훈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예전에 이 땅은 우리 조상의 땅이었어. 여기뿐만 아니라 헤이룽장성, 랴오닝성까지 전부 고구려의 영토였다고.”

“그래. 그 고구려.”

당이페이가 비릿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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