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흑룡회 소속으로 북부전구에 투입된 인사들이었다. 용두는 흑룡회의 수장을 의미했다.
흑룡회의 수장이 유지훈에게 관심을 보인 모양이었다. 수하들에게 잡아들이라는 지시도 내린 듯했다.
두 사내는 이미 유지훈을 손에 넣기라도 한 듯 시시덕거렸다.
한 사내가 출입문 쪽으로 이동했다. 도주하지 못하도록 문을 봉쇄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문은 내가 막을 테니, 자네는 모처럼 재주 좀 펼쳐보게.”
“좋은 생각일세. 이럴 때 쓰라고 주어진 재주니···.”
사내가 소매를 걷어붙이더니 양손을 털었다. 손을 푸는 모습이었다.
조호견이 미간을 좁히며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멈추시오. 이 자는 내 손님일 수 있소.”
“에헤이~. 조호견 초인. 우리도 멀리까지 와서 당신을 돕고 있지 않소. 당신도 우리를 좀 도우시오.”
“일단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지는 들어봐야 하지 않소.”
“그건 잡아놓고 묻는 방법도 있소. 비키시오. 잘못하면 조호견 초인이 다칠 수도 있소.”
사내가 조호견을 옆으로 밀어냈다.
유지훈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특성을 발동하려는 양상이었다.
유지훈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뒷짐을 진 자세였다. 두 중국 초인들에게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급기야 왼손은 뒷짐 진 채 오른손을 까딱이기까지 했다.
“그만 지껄이고 들어와 봐.”
“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다!”
사내가 힘차게 양손을 내질렀다.
푸르딩딩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였다.
“베놈 스프레이(Venom Spray). 내 특성이다. 신체에 닿기만 해도 마비를 일으키지. 네놈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해도···.”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지려는 찰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으잉? 뭐야?”
유지훈이 전신을 휘감는 것 같던 연기가 돌연 흩어지더니, 다시 뽀얗게 뭉쳐 사내를 덮쳐왔다.
“어! 어!”
연기가 사내를 완전히 뒤덮었다.
두 차례 비명이 전부였다. 사내가 통나무처럼 굳어지더니 그대로 뻗어 쓰러졌다.
“흐음. 독을 사용하는 각성자였군. 그런대로 봐줄 만은 했어.”
출구를 지키던 사내가 소리쳤다.
“뭐가 어떻게 된 거···. 억!”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등 뒤에서 가슴을 뚫고 나온 손 때문이었다.
“이건 또 뭐···?”
화무결이었다.
밖을 다 정리하고 들어와 문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사내의 가슴에 조공(爪功)을 찔러넣은 것이었다.
“자네가 다 처리할 줄 알았는데, 한 놈은 남겨뒀군.”
안으로 들어선 화무결이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니군. 한 놈 더 있었군. 저놈은 시합의 대상이 되는 건가?”
화무결이 가리킨 이는 조호견이었다.
북한 유일의 초인에다가 독립 국가 선포를 목전에 둔 거인이었지만, 유지훈과 화무결 앞에서 시합 대상으로 전락했다.
“아니야. 그놈은 그냥 제압만 해줘.”
“에잉. 그런 거라면 자네가 하지. 굳이 나를 기다릴 필요가···.”
투덜대면서도 화무결은 벼락같이 조호견을 덮쳐 혈도를 제압했다.
조호견은 눈 뜬 채 코 베듯 뻣뻣하게 굳어졌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껌뻑였다.
“나는 힘 조절이 잘 안 되잖아. 싹 없애버리거나, 그냥 죽여버리거나. 둘 중 하나야. 중간이 없어.”
소멸기나 심검 모두 힘 조절이 불가능했다.
소멸기는 각성을 완전히 소멸시켰고, 심검은 마음먹은 모든 걸 베어버렸다. 중간이 없는 게 약점이라면 약점이었다.
“그래도 자네 두전성이는 신통하네. 독공까지 돌려줄 수 있다니.”
“그거 말고 더 신기한 것도 있을 거야. 두고 봐.”
몬스터를 부리는 특성을 반사기로 돌려주는 걸 의미했다.
이윤성이 말한 정신 계열 각성자를 만나면 반드시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놈이 국경을 넘어오는 전제가 성립해야겠지만.
건물 바깥도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건물 안팎을 막론하고 수백 명이 널브러진 광경이 펼쳐졌다.
대부분 시신이었지만, 제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유지훈 씨 당부대로 우리 말 쓰는 사람들은 살려 두려고 했어요. 그래도 기를 쓰고 달려드는 놈들은 어쩔 수 없이···.”
작전에 들어가기 전 당부했다.
중국 각성자들은 남김없이 죽이되, 북한 각성자들은 가급적 죽이지 말고 제압하라는 당부였다.
사연을 들은 터였기에 어떤 식으로든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살아 있는 이들은 100명이 조금 안 되는 듯했다.
조호견이 이끄는 각성자 부대원이 200명 남짓이라고 했으니,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인원이었다.
“다들 괜찮지? 어디 다친 사람 있어?”
괜찮지 않으면 이상할 상황이었다.
유지훈과 화무결을 제외하고도, 다섯 명 모두 차원을 달리하는 강자들이었다. 각성자 수백 명 정도에 몸을 상할 일은 없었다.
“임정명 초인님만 조금 지치신 것 같고요. 나머지는···.”
부상 후유증 때문인지 임정명만 다소 힘들어 보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마철진이 옆에서 다독이면서 꼴 좋다며 놀려대고 있었다.
유지연은 이나연을 앞에 세워놓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모습이었다. 오래전부터 팬이었다나.
하긴. 이나연은 신화패션과 신화엔터테인먼트 대표 시절 패셔니스타 셀럽으로 인기를 누렸다. 신세대 여성들의 워너비로 유명했다.
“언니를 이렇게 직접 만나다니···. 그런데 어쩜 언니 이렇게 싸움도 잘 해요? 스칼렛 위치도 언니한테는 안 될 거예요. 사인 좀 해주세요. 아니다.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이나연은 사뭇 난감한 표정으로 유지연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었다.
유지연한테 잘못 걸리면 피곤한데···. 누가 걸릴까 했는데, 이나연이었다. 미련 곰탱이 강은영일 줄 알았는데···.
강은영은 두 사람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 짐을 떠넘겼다는 안도의 웃음일 터였다.
“이틀은 있다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이제 가봐야지. 이놈들은 어떻게 처리할 텐가?”
화무결이 무릎 꿇은 각성자들 쪽으로 조호견을 집어 던지며 물었다.
조호견은 혈도가 제압당해 움직임이 통제된 상태였다. 볼썽사납게 내동댕이쳐졌다. 부하들의 표정이 침통하게 일그러졌다.
“글쎄. 방법은 고민 좀 해봐야겠는데. 그리고 당장 가진 않을 거야. 처리할 것들이 좀 남았어.”
그때 부하들에 의해 몸을 일으킨 조호견이 입을 열었다.
“죽이시오. 전쟁에서 패한 장수에겐 죽음만이 있을 뿐이오.”
안색은 창백했지만, 무심한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대신 부하들은 살려주시오. 나로 인해 잘못된 길에 들어선 죄밖에 없는 녀석들이오.”
“안 죽여. 죽일 거면 진작 죽였지. 살려놓느라 더 힘들었어.”
“그럼···. 뭘 어쩌려는 거요?”
유지훈이 씩 웃었다.
“그쪽들 운명은 대화를 나눠본 뒤에 결정할까 하는데, 그 전에 짱개 놈들 어떤 생각으로 여기 온 건지 들어보고 싶은데.”
“되놈들 생각이야 뻔한 것 아니겠소. 나를 앞세워서 공화국 영토 내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거였겠지.”
“그걸 알면서 짱개 놈들 장단에 놀아난 거야?”
조호견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저 공화국 각성자들이 대우받으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길 바랐소. 배척당하지 않고 지낼 땅덩이 정도만 원했을 뿐이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짱개 놈들은 그쪽을 앞잡이 삼아 밀고 내려가려 한다는 거고?”
“······.”
“멍청한 놈. 널 믿고 따른 부하들이 불쌍하다.”
그때 북쪽 하늘에 불그스름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직 노을이 드리워질 시간은 아니었다. 붉은빛은 점점 짙어졌고 넓게 퍼져갔다.
이어 우르르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조호견이 참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시작한 모양이오. 되놈들이오. 준비한다고는 했는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국경에 집결한 북부전구 병력이 공세에 들어간 것이었다.
유지훈에게선 의외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래! 이거지.”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렸다.
“도발해 왔잖아. 그럼 뭘 해야겠어? 응징이지.”
***
조호견은 남은 부하들과 함께 유지훈 일행을 따라갔다.
제압됐던 몸도 자유로워진 상태였다. 부하들 또한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대신 한마디 경고가 주어졌다.
“따라와서 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따라오다가 뒤에서 공격하든 뭘 하든. 대신 행동에 대한 책임은 확실히 져야 할 거야.”
딴생각 같은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미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라는 건 충분히 확인한 상태였다.
지금 와서 중국 편에 서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용당할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뒤를 따랐다.
부하들 또한 같은 생각인 듯했다.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북부전구의 전술은 일단 때려 박은 뒤 진군이었다.
박격포와 중기관총, 대전차 로켓, 유탄 발사기 등 중화기로 포화를 쏟아낸 뒤 대규모 병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포화가 종료된 뒤 수백 명의 각성자들이 국경을 넘어 진격해왔다. 수천 명의 일반 병사들이 뒤를 따랐다.
이들을 막아선 이는 단 일곱 명.
그런데 일곱 명의 손에 수백 명이 쓰러졌고, 뒤따르던 수천 명도 죽어 나자빠졌다.
특히 귀환자의 손에 생성된 빛무리 모양의 검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근처 모든 생명이 소멸했다. 모든 걸 베어버렸다. 총도, 대포도, 전차도, 심지어 로켓포까지···.
다른 여섯 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미소를 머금은 미중년은 무시무시했다. 대수롭지 않은 손짓 한 번에 수십 명씩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나 역시 초인인데, 어떻게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전쟁의 신들이 강림한 듯한 광경에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유지훈이 조호견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놀라? 이제 시작인데.”
***
작전명 광개토 (1)
중국 북부전구 병력이 국경을 넘어 진군해온 소식은 대한민국으로도 전해졌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축하 만찬이 진행될 때였다.
“뭐라! 되놈들이 쳐들어왔다고!”
김주환 위원장이 만찬 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내 이 새끼들을 그냥! 당장 핵미사일 준비하라고 해! 베이징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고 말겠어!”
역시 미치광이 핵 신봉자다운 반응을 보였다.
북한 측 관계자 중에선 누구도 못 말릴 상황. 이광진 대통령이 나서야 했다.
“위원장님. 일단 추이를 지켜보시지요. 그랬다가 진짜 전쟁으로 확산되면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되놈들 주특기가 인해전술입니다. 일단 넘어오면 줄줄이 밀고 들어올 겁니다. 초장에 박살 내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두고 보시지요. 유지훈 초인이 그곳에 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좋은 소식 전해올 겁니다.”
“아무리 유지훈 초인이라고 해도 고작 일곱이 가지 않았습니까? 되놈 수천, 수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유지훈 초인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존재입니다.”
이광진 대통령의 허허로운 웃음에 김주환 위원장은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위원장님은 만찬이나 마저 즐기시면···.”
이광진 대통령이 미처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북한 전령이 다시금 다급하게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북부전구 병력이 국경 밖으로 철수했다고 합니다.”
“뭐! 벌써? 내려온 지 얼마나 됐다고?”
“남측 초인들이 싹 밀어 보냈습니다. 아니. 다 죽였습니다. 밀고 내려온 삼천 병력 중 철수한 인원은 육백이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이번엔 이광진 대통령이 기함할 차례였다.
“뭐요! 중국 군인들을 그렇게나 많이 죽였단 말입니까?”
전쟁의 화살이 대한민국으로 향할 우려가 엄습했다.
단순히 침략을 막은 게 아니라 죽여가며 쫓아 올라간 상황이라면.
“그래도 북한 영토 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논리적인 대응은 가능하겠군요. 침공을 막아낸 결과라 주장하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