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150)

핵심 수하들과 상의한 결과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그 즉시 부대를 움직였다. 량강도로 이동해 제10군단 사령부를 점령했다. 인민위원회까지 접수한 뒤 건국위원회 설립을 선포했다.

가칭 북조선각성자자유공화국이었다.

자오원치와 류야오취안은 북부전구 정보국을 동원해 이 과정을 적극 지원했다. 한 달 뒤로 예정된 독립 선언까지 밀어줄 태세였다.

“고작 량강도에서 멈출 생각은 아니겠지요? 조호견 초인.”

“북조선 영토는 모두 조호견 초인과 휘하 각성자들의 땅으로 만들어야지요. 혹시 압니까? 한반도 통일을 조호견 초인이 이뤄낼지.”

두 중국인 각성자, 그러니까 중국의 생각은 확연히 달랐다.

조호견은 그저 량강도에 둥지를 틀고 각성자들이 좋은 여건에서 성장할 나라를 세우고 싶을 뿐이었다.

좀 더 추가하자면, 중국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 각성자와 비각성자 구분 없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영토에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호견은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북한으로 밀고 들어갈 앞잡이로 내세우려는 것이었다. 언제든 용도 폐기를 염두에 두고.

“공화국의 보복이 걱정됩니까? 그럴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소. 북부전구의 주력이 국경 지대에 집결하고 있소이다.”

“그렇소. 조호견 초인이 승인만 하면 바로 압록강을 건너 진격해 들어올 거요. 조호견 초인은 지휘만 하면 되는 대군이란 말이오.”

조호견 역시 북부전구의 움직임을 모르지 않았다.

두 중국 각성자의 말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북부전구의 주력 정도가 아니라 전체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고레벨 각성자들도 몰려드는 양상이었다. 북한 전체를 쓸어버릴 수준의 전력이었다.

“공화국 인민들의 피해는 원치 않소. 그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를 위해 당신들과 손을 잡은 거요.”

“당연한 말씀이오. 조호견 초인은 그들을 기아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영웅이 되는 거요. 하하하.”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너무 멀리 왔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에서 멈출 수도 없었다.

‘그래. 공화국 인민들의 삶이 나아지면 되는 거지. 그렇게 만이라도 된다면 내가 조국을 저버린 것도···.’

그저 군부의 억압과 착취에서 인민들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정신 승리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그때 부관이 다급하게 집무실로 뛰어들어왔다.

“사령관님. 뉴스 좀 보셔야겠습니다.”

“뉴스는 왜···?”

TV를 켰다.

화면엔 낯선 공간에서 호방하고 웃고 있는 김주환 위원장이 있었다. 고궁이었다. 화면 아래 자막에 경복궁 근정전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뭐야! 위원장이 남조선에 간 거야?”

낯익은 노인과 함께였다. 자세히 보니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이광진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김주환 위원장과 이광진 대통령이 격하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양손을 맞잡고 힘차게 들어 올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남북은 평화 공존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종전선언이었다.

경제 협력, 문화 교류 등 남북 협의 사항들이 자막으로 흘러갔다.

금강산 관광 재개 및 백두산 묘향산 관광 추진, 개성 공단 외에 3개 지역 협력 상공업지구 신설···.

“이, 이게 뭐야!”

자오원치가 리모컨을 집어 던지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저 뚱땡이 핏덩어리 새끼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냔 말이오!”

북한 군부의 친중 인사에게 전화한 모양이었다.

“뭐요! 저 새끼가 한국으로 간 것도 몰랐단 말이오! 그러고도 당신이 군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소!”

욕설을 퍼붓더니 휴대폰까지 집어 던졌다.

얼굴이 벌게진 채 씩씩거리다가 조호견을 쳐다봤다.

“조호견 초인. 계획을 앞당겨야 할 것 같소.”

“계획을 앞당기자면···?”

“초인 휘하 특수부대를 소집하시오. 우리 쪽에서도 선발대를 꾸려 움직이도록 하겠소.”

그때 쾅!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열렸다.

젊은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들어 왔다.

“놀고들 있네. 소집해서 뭐할 건데? 한꺼번에 죽여달라고 모이는 거야? 선발대는 앞장서서 처맞으러 오는 놈들인가?”

남북정상회담에 맞춰 양강도 인민위원회 청사로 쳐들어온 대한민국 서열 1위 초인이자 귀환자 유지훈이었다.

***

“그러니까 사연이 있는 놈이라는 말이군요?”

북한으로 향하기 전 유지훈은 이윤성에게 브리핑을 받았다.

조호견을 비롯한 북한의 각성자 현황에 대해서였다. 조호견을 지원한 중국 측 각성자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군부의 극단적인 배척에 의한 피해자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배척이라···.”

“북한 군부의 간부는 세습 권력이라 할 수 있거든요. 특별한 능력을 보유한 자들의 부각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그래도 뚱땡이는 각성자들을 대우해주려 한 거 아닌가요? 나름 효율적인 양성 방안도 강구한 것 같은데요.”

“당 차원에선 그렇지만, 군부의 벽을 넘진 못한 듯합니다. 김주환 위원장도 군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거든요.”

유지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요. 사연이 있다고 해서 무슨 짓을 하든 용서될 순 없다는 의미예요.”

이윤성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의 표시이긴 했지만, 한편으로 약간의 아쉬움도 엿보였다.

유지훈은 중국 측 각성자들에 관한 자료도 살폈다. 북부전구 소속으로 조호견의 반란을 지원하는 인물들이었다.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의외의 단어가 눈에 들어와서였다.

“흑룡회요? 이건 뭔가요? 빌런 조직 아닌가요?”

“그렇게 봐도 무방하긴 합니다만. 개념은 조금 다릅니다. 중국의 빌런 조직은 공산당과 협력 관계거든요.”

흑룡회. 블랙 드래곤 소사이어티(Black Dragon Society)라도 불리는 거대 범죄 조직이었다.

범죄 조직 간부였다가 고레벨 각성자가 된 인물이 빌런들을 규합해 중국 전역의 흑사회를 통합했다. 흑룡회로 재편했다.

중국은 각성자에 대한 예우가 후한 나라였다. 흑룡회에도 손을 내밀었고, 협력 관계를 형성했다. 당의 지저분한 일을 처리해주는 대신, 흑룡회의 불법적인 사업을 용인해주는 모양새였다.

“이번 일을 앞두고 흑룡회 소속 각성자들이 대거 북부전구에 투입됐습니다. 정보국 고위 인사로 기용된 자들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진을 지목했다.

자오원치와 류야오취안이라는 이름이었다.

“공식적인 인증은 받지 않았지만, 초인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흑룡회 소속 각성자들과 량강도에 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모르고요?”

“거기까지는···. 200명 안팎이 아닐까 추측하는 정도입니다. 조호견을 따르는 특수부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을 것으로요.”

“일단은 깜깜이네요.”

숫자도 레벨도 알려진 건 없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원체 변칙이 횡횡해서요. 등록되지 않은 각성자가 등록된 각성자보다 많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그런 것도 다 대륙의 클래스라고 하겠죠?”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상관없어요. 각성자 문제는 각성자로 해결하라고 했으니, 다 각성자로 간주하고 싹 죽여버리면 그만이에요.”

“주의하실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윤성이 자료에서 한 인물을 가리켰다.

추레한 인상의 중년 사내였다. 레벨 4라고 명시돼 있었다.

“보기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데요? 레벨도 낮고···. 특성은 개화한 각성자입니까?”

“정신 계열 특성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벨은 낮지만, 몬스터에게 작용하는 특성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몬스터에게 작용한다고요?”

“몬스터를 부릴 수 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알려진 건 없습니다. 다만 초특급 몬스터를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게 했다는 소문도···.”

“재미있는 놈이군요.”

이윤성은 우려스러워했지만, 유지훈은 그저 재미있었다.

반사기가 어떻게 작동할지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몬스터를 움직여 공격해 왔을 때 반사기를 발동하면, 몬스터가 되돌아가 놈을 공격할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이윤성과 헤어진 뒤 인물 관련 자료들을 강은영에게 건넸다. 현재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몬스터를 부린다는 정신 계열 능력자는 다른 곳에 있네요. 압록강 너머 국경 인접 지역이에요.”

“만나보려면 넘어오게 해야겠군.”

량강도로 출동했다.

북한 내에서 이동은 국가보위성 간부가 지원했다. 판문점에서 출발해 량강도까지 거침없이 이동했다.

량강도에 들어선 이후엔 국가보위성 간부는 돌아갔다. 유지훈 일행만 따로 움직였다.

분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길래 경계 태세라도 갖추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강은영이 지목한, 무리가 집결한 곳에 이르러서야 삼엄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상당한 수준의 각성자들도 눈에 띄었다.

“짱개 놈들부터 우선적으로 조지려고 했는데, 섞여 있는 모양이네.”

작전이 시작됐다.

강은영과 이나연 그리고 유지연, 미녀 삼총사가 선봉에 섰다. 앞을 가로막는 각성자들을 거침없이 도륙했다.

소동이 벌어지지 더 많은 각성자들이 몰려들었다. 임정명과 마철진, 두 초인이 학살에 가세했다.

“여긴 이렇게 맡겨 놓으면 될 것 같고. 우린 대가리 잡으러 가자.”

유지훈과 화무결은 건물 내부로 향했다.

건물 내부엔 더 많은 각성자들이 있었다. 물밀 듯이 몰려왔다. 인해전술이라도 펼치는 기세였다.

“이윤성 국장 정보 꽝이었네. 200명 정도라더니 2000명은 되겠어. 그렇지. 이런 게 대륙의 클래스지.”

많아봤자 두 사람에겐 놀잇감에 불과했다.

아니. 화무결 하나의 놀잇감으로도 부족했다.

껄껄껄 유쾌한 웃음과 함께 휘저은 손짓에 일제히 날아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처박혔다.

“그럼 대가리는 오롯이 내 몫인가?”

유지훈이 거대한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일그러진 그들의 영웅 (2)

“놀고들 있네. 소집해서 뭐할 건데? 한꺼번에 죽여달라고 모이는 거야? 선발대는 앞장서서 처맞으러 오는 놈들인가?”

갑자기 들이닥친 유지훈의 모습에 세 사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내 가소롭다는 듯 피식거렸다.

“어디서 굴러먹던 핏덩어리냐. 놀아줄 기분 아니니까 나가라.”

“어떻게 들어온 거야? 밖에 애들 뭐하냐? 아무나 들락거리게 하고.”

유지훈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기까지 했다.

한 사내만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누구요? 보아하니 공화국 분은 아닌 듯한데. 남에서 오셨소?”

조호견이었다.

유지훈의 분위기에서 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대번에 파악했다. 범상치 않은 기세 또한 읽어냈다.

그제야 나머지 두 사내의 눈빛에도 위화감이 드리워졌다.

“남에서 왔다고?”

“그러고 보니 밖이 왜 이리 조용하지?”

두 사내 중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창밖을 내다봤다.

미녀 삼총사와 두 초인의 학살극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유지훈을 노려봤다.

“어떻게 된 거냐!”

“보고도 몰라? 보이는 대로야.”

“그걸 내가 왜 못 들었냐는 말이다!”

“병신. 네 귀가 이상한 걸 왜 나한테 지랄이냐?”

화무결의 무시무시한 공력 덕분이었다.

건물로 들어선 즉시 기막을 펼쳤다. 소음의 이동을 봉쇄했다.

무림에서나 이해되는 내공의 영역이었다. 사무실 안의 사내들이 초인이라고 해도 선뜻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는 사이 조호견은 유심히 유지훈을 살폈다.

눈매를 좁혔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남측의 귀환자시오?”

유지훈은 말없이 어깨만 으쓱했다.

조호견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분 같구려.”

부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환경의 제약 때문에 각성자의 발전이 형편없이 더딘 북한의 현실이 아쉬운 눈치였다.

중국 각성자들은 눈을 크게 떴다.

“오호! 네놈이 한국의 귀환자인가?”

“안 그래도 찾아가야 할 판이었는데, 이렇게 와줬구나.”

잘 걸렸다는 듯 반색하더니,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았다.

“용두께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놈이 아닌가.”

“회 전체에 수배령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네.”

“잡아가면 부회주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겠군.”

“어떻게 나한테 딱 걸릴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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