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150)

국내 정치적 입지가 극도로 위축되는 와중에 찾아온 극적인 뒤집기 찬스.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조바심 나는 눈치였다.

“저도 썩 마음에 들지 않네요. 뭔가 몰래 하는 건 영 성격에 안 맞아서요. 그래서 암살도 거부한 거였는데.”

그러고 보면 과거 무림으로 가기 전 유지훈은 대체로 몰래 하길 즐기는 편이었다. 약했고, 소심했기 때문이었다.

귀환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종전선언과 남북 정상회담 개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유지훈도 나름대로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유지훈이 진행할 작전 역시 철저한 보안이 중요했다.

그래서 국가안전본부나 다른 길드의 개입 없이 철저하게 유지훈과 영훈길드 차원에서 준비했다.

합류 인원도 처음에는 유지훈과 강은영 둘이 논의했다.

“화 어르신도 같이 상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결이는 좀···. 이번에 데려가기 좀 힘들 것 같아서···.”

“왜요? 화 어르신이 영훈길드 전력의 절반 가까이 되는데요.”

“걔 따지고 보면 중국 놈이잖아. 걔네 나라 놈들 쳐 죽이러 같이 가자고 할 순 없지 않겠어?”

“에이~. 그때 그 나라랑 지금 이 나라랑 같아요? 같은가? 그래도 여쭤보기라도 해요.”

일단 의사는 타진하기로 했다.

예상했던 대로 화무결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하는군. 그래도 내 나라의 일인데.”

이어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이래 봬도 나는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일세. 대한민국을 위한 일에 나를 배제하려 하다니, 자네한테 실망일세.”

주머니에서 카드 두 장을 꺼내 들이밀었다.

주민등록증이었다. 또 한 장은 운전면허증이었다.

“보게. 여기 증좌까지 떡하니 있지 않은가.”

“어라! 이건 또 언제 만들었어? 위조한 거 아니야?”

“자네 내자가 만들어줬네.”

화무결이 강은영을 가리켰다.

아니라고 해도 줄창 내자라고 우기는 화무결이었다.

더 이상 부인하는 것도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잠깐 지내다가 가실 줄 알았는데, 아예 눌러사실 모양이더라고요. 본부 통해서 발급받았어요. 여권도 신청해서 곧 나올 거예요.”

“근데 나이가 왜 이래?”

주민등록상으로 화무결의 출생연도는 1983년이었다.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 마흔이라는 의미였다.

“너 일흔 살도 넘었잖아! 왜 사기를 치고 그래.”

“좋은 만남을 위해 어쩔 수 없었네. 자네만 눈감아주면 될 일일세.”

화무결이 너스레를 떨었고, 강은영은 한술 더 떴다.

“좋은 만남을 강조하시길래 아예 유지훈 씨랑 동갑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했는데요. 어르신께서 도저히 양심에 어긋난다며···.”

“이런 공문서 위조단 같으니···. 운전면허증은 어떻게 된 거야? 너 운전할 줄 알아?”

화무결이 느물느물하게 웃었다.

“좋은 만남을 위해 운전은 필수 아니겠나. 별거 아니더군. 필기랑 실기 모두 단번에 합격했네.”

“어르신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에요. 한 번 설명했더니 바로 척척···. 필기도 문제지 한 번 넘겨보고는 바로 만점 받으셨어요.”

“차도 없는 놈이 면허증만 있으면 뭐하냐?”

유지훈의 핀잔에 화무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줄 알고 차도 한 대 뽑았네.”

그러고 보니 길드 건물 앞 주차장에 못 보던 승용차가 한 대 세워져 있던 게 떠올랐다.

독일제 B사 세단이었다. 최고급 모델이었다.

“너 설마 밖에 그 차가···?”

“승차감이 자네 SUV랑은 비교도 안 되더군. 자네도 내자랑 데이트할 때 가끔 몰도록 하게.”

“네가 돈이 어디 있어서?”

“길드에 돈 많더군. 저런 차 수백 대도 뽑을 수 있겠던데?”

“뭐! 길드 돈으로 뽑았다고? 그건 횡령이야! 너 쇠고랑 차고 싶어?”

범죄를 저지른 거란 말에도 화무결은 여유롭게 웃었다.

“허허허. 자네 나를 너무 알로 봤군.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는가. 법인 차량으로 샀네. 차 주인이 영훈길드라는 말일세.”

“이런 창의적으로 치밀한 놈···.”

이렇게 된 마당에 두고 갈 순 없었다.

놔두고 가 봐야 좋은 만남만 하고 다닐 게 뻔했다.

“너도 짱개 놈들 때려잡는 데 같이 가.”

“좋은 만남은 다녀와서 해야겠군. 장 여사한테는 그리 말해놓겠네.”

“장 여사는 또 누구야?”

대답은 강은영의 몫이었다.

“요 앞 카페 사장님이에요. 어르신 소개팅 시켜주신다고 했대요.”

“가지가지 한다···.”

이야기가 너무 엉뚱한 방향으로 와버렸다.

서둘러 본래 주제를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더 데리고 가야 할 사람 누구 있어?”

“당연히 함께 가야 할 처자 있지 않은가?”

화무결이 대번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처자라는 점에서 강은영의 눈치를 살펴야 했지만···.

하등에 필요 없는 짓이었다.

“나연이라면 진작에 연락했어요. 지금 섬에 있다고 했는데요. 바로 이자걸 대표한테 연락하고 나온대요.”

왕도마뱀 가족과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자걸을 섬으로 불러들인 뒤 건너오겠다는 이야기였다.

“나연이? 언제부터 말 트고 지내기로 한 거야?”

“몰랐어요? 우리 언니 동생으로 지내기로 한 거.”

그러고 보니 손 꼭 붙잡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사이였다. 죽고 못 사는 관계가 된 듯했다.

그런데 이번 작전 철저한 보안하에 진행돼야 하는데···.

“나한테 상의도 없이 연락부터 하면 어떡해! 비밀리에 진행하는 작전인 거 몰라?”

“나연이가 남인가요? 나연이 영훈길드 소속이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나···.”

이나연은 지난번 일본 임무에서 능력을 완전히 개화했다. 초인을 능가하는 각성자로 거듭났다.

유지훈이 초인 등극을 권유했지만, 이나연이 거절했다.

“초인이 되면 길드 소속이 될 수 없잖아요. 저는 은영 언니랑 영훈길드에서 활약하고 싶어요.”

기특하기도 하지.

어쨌거나 유지훈 화무결 강은영에 이나연까지. 네 명이 확정됐다.

유지훈은 일곱 명 정도를 적정 인원이라 생각했다. 세 명 정도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첫 번째로 떠올린 인물은 마철진이었다. 영훈길드의 고문격이라 할 수 있는 초인.

“영감님. 건수가 하나 생겼는데요.”

[건수? 무슨 건수?]

“제법 큰 건이에요. 비밀인데요. 어쩌고저쩌고.”

[좋지! 그런 거라면 내가 빠질 수 없지.]

마철진이 한 명 더 끌고 들어왔다.

[옆에 정명이 있는데, 같이 가고 싶은 눈치다. 어떻게 안 되겠냐?]

부상에서 회복한 초인이 합류를 원하고 있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일단 한 번 튕겼다.

“보통 중요한 작전이 아니라서요. 비용도 많이 들고요.”

[그깟 돈 몇 푼 내가 주면 될 거 아냐! 을마면 돼! 을마면 되나고!]

서열 3위 초인과 서열 4위 초인이 합류했다.

합이 여섯. 이제 한 명만 더 찾으면 드림팀이 완성될 상황이었다.

“아쉬운 대로 최가 녀석도 괜찮을 것 같긴 하군.”

“현 상황에선 최금강 마스터님만한 분이 없을 것 같네요.”

초인 서열 2위(원래 1위였지만, 유지훈에게 밀려 2위가 됨) 서원섭도 물망에 올랐지만, 강직함과 영훈길드와 친밀도 등을 고려할 때 최금강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양상이었다.

“최금강 영감님은 길드 소속이라 보안 유지가 조금 걸리긴 하네.”

금강길드는 국가안전본부 등 국가 기관을 비롯해 각성자협회 및 여타 길드들과 긴밀한 연락 체계가 형성돼 있었다.

최금강이 보안을 지키더라도 정보가 새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마스터님 입 무거우시잖아요. 새나갈 일 없을 거예요.”

“그렇긴 한데, 움직임이 노출된 분이라···.”

우려를 지닌 채 연락하려는 찰나, 해결책이 등장했다.

“현관문 비번은 왜 바꾸고 지랄이야! 모처럼 휴가받아서 밀린 잠 좀 자러 왔더니···.”

유지훈을 쏙 빼닮은 미녀가 궁시렁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역시 여기 모여 있었군. 어! 못 보던 아저씨도 있네. 새언니. 이 잘 생긴 아저씨는 누구예요?”

강은영을 새언니라 부르는 여인이었다.

마치 자기 집에라도 온 듯 사무실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새언니. 요즘도 몸서리 잘 치죠? 나 한잠 때릴 거니까요. 밥 먹으러 갈 때 깨워요.”

“지연 씨···.”

유지연이었다.

유지훈의 동생. 초인 양성 아카데미 수석 생도. 아카데미 졸업 즉시 초인 등극이 당연시되는 실력자···.

유지훈의 눈이 번쩍 뜨였다.

“너 잘 만났다. 당장 일어나. 짐부터 챙겨.”

드림팀의 일곱 번째 멤버가 제 발로 찾아 들어온 순간이었다.

***

남북 정상회담의 날이 찾아왔다.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었던 회담 장소가 이날 아침 정해졌다.

이광진 대통령은 평양 개최를 원했다. 남북 평화 확립의 상징성을 위해서였다. 아니면 종전선언의 의미를 위해 판문점 개최.

김주환 위원장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둘 중 하나로 정하기로 했다.

막판에 불가하다는 통보를 보내왔다.

보안 문제 때문이었다. 군부, 특히 친중 세력 통제의 어려움도 이유로 들었다. 이광진 대통령의 안전을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당일 아침 경복궁 근정전으로 정해졌다.

“어서 오십시오. 위원장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이광진 대통령과 김주환 위원장이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유지훈이 이끄는 일곱 명의 드림팀은 량강도 혜산시 한복판 인민위원회 청사로 들어서고 있었다.

***

일그러진 그들의 영웅 (1)

북한 유일의 초인 조호견. 그는 불세출의 존재였다.

각성자가 성장하기 척박한 환경에서 능력을 꽃피웠다.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단언했던 초인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사실 북한엔 초인 등극을 지원할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국제각성자협회에 가입조차 안 돼 있었다. 외국의 각성자 기관을 통한 초인 인증도 불가능했다.

자비를 들여 중국으로 가서 초인 인증을 받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설움을 감내한 건 물론이었다.

“공화국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다고 다짐했건만···.”

초인 등극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환영 인사조차 받지 못했다.

여타 각성자들과 마찬가지로 군대로 보내질 뿐이었다. 각성자들로만 구성된 특수부대로 배치됐지만, 별다른 특별 대우는 없었다.

몬스터가 출몰했을 때 제압을 위해 투입되는 특수 임무만 수행할 뿐이었다. 처음엔 비각성자의 지휘를 받기까지 했다.

그나마 형편이 나아져서 각성자가 지휘권을 넘겨받게 됐다. 각성자 중 레벨이 가장 높은 그가 지휘관으로 임용됐다.

그래 봤자 계급은 소좌(한국군으로 치면 소령)에 불과했다. 각성자 특수부대의 위상을 대대보다도 아래로 취급했다는 의미였다.

“우리의 공헌을 인정해주진 못할망정···.”

최근 몇 년 사이 북한의 최대 위협은 외세가 아니었다. 나라 안에서 기승을 부린 몬스터들이었다.

조호견이 이끄는 각성자 부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동해 몬스터들을 퇴치했다.

수고했다는 인사 한마디 없었다. 돌아오는 건 외면이었다. 남다른 능력에 대한 경계와 배척이 있을 뿐이었다.

“군부 개새끼들···.”

심지어 좌천까지 당했다.

호위사령부 예하 평양경비사령부 소속이었던 각성자 특수부대가 제12군단 예하로 쫓겨가게 됐다.

공화국의 수도 평양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가 자강도 강계로 밀려가게 된 것이었다. 명분은 중국에서 넘어오는 몬스터 퇴치였지만, 중앙 군부에서 밀어내려는 움직임이었다.

자강도로 온 이후에도 북한 곳곳에 출몰한 몬스터를 퇴치하러 다녀야 했다. 여건만 나빠진 셈이었다.

그러던 차에 달콤한 제안을 받게 됐다.

지금 이 순간, 량강도 인민위원장 집무실에 함께 있는 두 사내였다.

자오원치와 류야오취안. 중국의 북부전구 연합참모부 정보국 소속 각성자들이었다.

당시엔 그저 높은 레벨의 각성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초인들이었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숨겨둔 비밀 병기들이었다.

“중국의 손을 잡는 게 어떻겠소. 각성자의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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