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저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겠군요.”
“각성자와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각성자 문제면, 북한에도 각성자 집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당의 고위 간부 지위를 인정해준다고 들은 것 같은데···.”
북한에도 각성자는 있었지만, 수준은 다소 떨어졌다.
발굴해 육성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각성부터 특성의 개화까지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북한은 경제가 어려운 탓에 각성에 대한 투자가 미흡했다.
각성과 관련한 재능이 있어도 꽃피우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보다못해 김주환이 택한 방법이 각성자들을 입대시키는 것이었다. 별개의 각성자 부대를 편제해 모아놓고 육성하는 방식이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겠다는 방책이었지만, 각성의 다양한 방향을 포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뚜렷했다. 획일화와 개성 말살로 인해 발전 또한 더뎠다.
그 결과 북한의 각성자 수준은 세계적으로 하위권이었다.
초인은 하나에 불과했고, 레벨 7 각성자도 서른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수준은 낮았지만, 국가에서 확실히 통제했기에 말썽의 소지도 작았다. 빌런이 존재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런데 각성자로 인한 문제라니···.
“공화국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북한은 군에서 각성자를 통제한다고 들었는데요? 내부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초인이 사령관으로 있다고···.”
“맞습니다.”
강형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호견 초인이 특무대 사령관을 맡아 통제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자가 공화국을 등졌습니다.”
“등졌다는 말씀은···?”
“조국을 배신하고 중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으잉? 그건 또 무슨···?”
“조호견 그 작자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량강도에 괴뢰 국가를 세웠습니다. 스스로 국가 원수가 돼 독립을 선포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남북한 외에 또 하나의 나라가 생기려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저한테 부탁하는 이유가 뭐죠? 제가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일단 난색부터 표하고 봤다.
남의 나라 문제였다. 유지훈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쪽 초인 놈이 중국이랑 손잡고 량강도를 차지했으면, 미사일을 때려 박아서 죽이든지 중국으로 쫓아 보내면 될 일 아닙니까? 미사일 때려 박기는 그쪽 전공이잖습니까?”
강형택과 윤경남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광진 대통령이 대신 대답했다.
“중국이 각성자 문제로 국한했기 때문일세.”
“그건 또 무슨 개소립니까? 나라를 배신했는데, 각성자 문제로 국한하다니요. 그걸 왜 중국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겁니까?”
“중국에서 초호견 초인을 지원할 각성자들을 파견해 독립 선언을 지원하고 있다고 하는군. 북한의 열악한 각성자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취지에서지.”
“그래서 북한의 각성자 인권 수호를 위해 중국이 분연히 나서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바로 그걸세.”
대답해 놓고 대통령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고통받는 북한의 각성자들이 좋은 환경에서 능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중국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하는군.”
“아니. 남의 나라 각성자 문제를 지들이 무슨 자격으로···.”
“이럴 때마다 중국이 내세우는 논리가 있네.”
대통령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대대로 한반도의 국가들은 중국의 속국이라는 주장이지. 속국의 국민 또한 넓은 의미로는 중국의 국민이라는. 속국의 각성자를 중국 각성자가 지원하는 건 중국 내부의 문제라는 논리일세.”
“하아. 그놈의 동북공정이군요. 짱개 놈들 생떼 하나는 진짜···.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짱개 놈들은.”
강형택이 다시금 대답에 나섰다.
“각성자 문제는 각성자로 해결해라. 그렇지 않고 군을 동원하면 중국도 군대를 앞세워 공화국으로 밀고 들어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북부전구의 주력 부대가 국경 지역에 집결한 상태입니다. 언제든 공화국으로 진군할 채비를 갖춘 상태입니다.”
윤경남이 부연했고, 강형택이 참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조호견 그자는 량강도에 그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공화국 각성자의 해방을 기치로 자강도와 함경남북도로 영역을 넓힐 태세입니다.”
물론 중국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일 터였다.
중국은 조호견을 꼭두각시로 앞세워 북한 영토의 실질적인 지배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는 겁니까? 조호견인지 하는 놈 암살이라도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유지훈의 질문에 강형택과 윤경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해본 말인데, 맞는 모양이었다.
“뭡니까? 나한테 청부살인이라도 의뢰하러 오신 거였습니까?”
언성이 높아졌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이라고 해도, 한 국가의 전략 자산인 초인에게 청부 살인을 의뢰라니, 선을 넘어도 세게 넘었다.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문제는 아닐세.”
변명은 이광진 대통령에게서 나왔다.
“현재 북한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는 그자를 감당할 수 없네. 심지어 군대에서도 이탈자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는군.”
“조호견과 그 작자를 돕는 중국 각성자들을 처치하지 않으면, 공화국 영토가 중국 손아귀에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가 될 것입니다.”
강형택이 대통령의 말을 받아 상황 설명을 마무리했다.
동시에 윤경남과 함께 고개를 조아렸다.
“공화국을 도와주십시오. 유지훈 초인님.”
유지훈은 두 사람은 외면한 채 대통령을 쳐다봤다.
말이나 될 법한 요청이냐는 시선이었지만, 대통령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반도가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세. 김주환 위원장은 이번 건이 성사되는 대로 남북 경제협력 재개를 약속했네.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비롯한 문화 교류도 추진하겠다고 했네.”
대통령은 유지훈의 수락을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국민투표 이후 위축된 자신의 입지를 다시금 확장할 계기라 여기는 모습이었다. 유지훈에게도 운신의 폭을 넓힐 기회라고 말하는 듯했다.
“휴우.”
유지훈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요.”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초인님···.”
“아니 왜?”
북한 특사들과 비교해 이광진 대통령은 한층 실망한 표정이었다.
왜 이 좋은 기회를 차버리냐는 당혹감마저 엿보였다.
“돕는 건 좋습니다. 짱개 놈들의 침략에 맞서서 당연히 도와야죠. 갈라져 있긴 해도 한 민족인데요.”
“그런데 왜···?”
“방식이 잘못됐습니다.”
유지훈이 언짢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왜 몰래 가서 암살을 합니까? 당당하게 가서 싹 죽여버려야죠.”
“그건 외부 세력이 개입하게 되면 중국에서 대대적인 보복에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성자 전력과 군 병력을 총동원해서요.”
강형택이 다급하게 설명했다.
유지훈은 다시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왜 외부 세력입니까?”
“네?”
“짱개 놈들은 속국 어쩌고 하면서 조호견인지 하는 놈을 지네 국민 취급한다면서요?”
“네···.”
“나는 당신네랑 같은 민족이에요. 외부 세력의 개입이 아니라 같은 민족을 돕는 거라고요. 그냥 당당하게 가서 다 쳐 죽이면 될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렇긴 하죠···.”
“짱개 놈들 논리가 엿 같죠? 그럼 똑같이 돌려주면 돼요. 아니지. 더 큰 엿을 먹여주면 된단 말입니다.”
“아···.”
유지훈이 대통령을 바라봤다.
“북한 뚱땡이한테 새로 제안 보내는 것으로 하시죠.”
“뭘 어떻게 말인가?”
“이번 건이 마무리된 다음에 남북 경제협력이든 뭐든 할 게 아니라요. 바로 시작하는 것으로요.”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었다.
남북이 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중국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진행해야 할 이슈들이었다.
“경제협력이나 문화 교류 정도로 그칠 문제가 아니겠네요. 대통령님 하고 싶으셨던 거 다 제안하세요. 받아들여지는 거 보고 저도 행동에 나서든지 하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던 거라···.”
대통령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궁극적으로는 통일이었다. 다만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서둘러선 안 될 문제이기도 했다.
자신의 임기 중엔 차기, 아니 차차기에라도 통일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주춧돌을 쌓고 싶었다.
남북의 평화 공존. 처음 추진하면서는 소박한 목표라 여겼다. 지나고 보니 지난한 목표였다.
“하고 싶었던 게 있긴 하네. 그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에게 끌려다니는 외교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뭡니까?”
“종전선언일세. 김주환 위원장과 전세계 언론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서서 남북한의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네.”
이광진 대통령이 북한 특사들을 바라봤다.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자신들이 언급할 수 없는 문제라는 눈치였다. 당연히 김주환과 사전에 논의되지 않은 문제일 테니까.
두 사람이 어떤 반응이든 유지훈의 질주는 시작됐다.
“그럼 제안하십시오. 판문점에서 하시든, 서울에서 하시든, 아니면 평양에서 하시든. 제안하셔서 받아들여지면 저는 움직이겠습니다.”
유지훈의 입꼬리가 서서히 말려 올라갔다.
“대통령님께서 뚱땡이와 나란히 종전선언문을 발표하는 순간, 우리 민족의 영토에 기어들어 온 짱개 놈들은 세상과 하직하게 될 겁니다. 조호견인지 하는 개새끼랑 같이요.”
***
드림팀 결성
북한 특사들은 이광진 대통령의 친서와 함께 북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제안이 담긴 친서였다. 대통령이 하고 싶던 사안들이 빠짐없이 실려 있었지만, 핵심은 종전선언이었다.
이를 위해 조속한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강조했다.
“위원장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특사들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김주환 위원장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았다.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가도 어느새 자강을 외칠지 모를 인사였다.
“군부의 움직임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군부엔 친중 세력도 적지 않았다.
자칫 이들이 쿠데타라도 일으키는 날엔 중국의 북한 침공에 빌미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특사들은 이래저래 조심스럽기만 한 눈치였다.
“받아들여지면 가고, 아니면 안 갑니다.”
유지훈의 노빠꾸 질주 본능에 이들의 우려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가서 해결하라고 등 떠밀어 보냈다.
반응은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빨랐다.
이튿날 특사들이 돌아왔다.
“이런 건 전화로 물어보면 되지 뭐하러 왔다 갔다 시간에 교통비까지 낭비했냐고 혼났습니다.”
럭비공 같은 김주환 위원장이 예측 불허의 반응을 보였다.
이광진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전달한 제안의 전면 수용이었다.
“대신 보안을 철저히 지켜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중국에서 미리 알면 곤란할 수도 있으니···.”
북한 내부에서도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하겠다고 했다.
친중 세력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김주환 위원장 최측근에게만 공유해 추진하겠다는 의미였다.
“추후 친중 세력 숙청에도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십니다.”
유지훈에게 추가로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중국과 완전히 단절하고, 새로운 외교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요청이었다.
“저는 각성자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각성자 중에 친중파가 좀 많긴 합니다. 조호견 그 작자의 영향 때문에요.”
한편으로 조심스러운 당부를 덧붙였다.
조호견을 처치할 때 휘하 각성자들에겐 손속에 여지를 둬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작자 때문에 사상이 삐뚤어진 젊은 각성자들이 많습니다. 유지훈 초인님을 보고 겪으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겁니다.”
젊은 각성자들 중엔 열악한 지원 때문에 중국을 동경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중국은 후한 대우를 미끼로 이들을 중국 편으로 만들려고 공작을 펼쳐 왔다.
조호견도 그런 경우였다. 동경하던 초인이 중국으로 넘어가자, 많은 젊은 각성자들이 뒤를 따른 상황이었다.
유지훈은 그런 젊은 각성자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남북한 각성자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면, 북한의 각성자들에게도 잠재된 재능에 맞는 성장의 기회가 되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니까 나더러 호랑이 새끼가 될지도 모를 놈들을 키워달라는 거네요? 물에 빠진 놈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평화로운 공존 속에서 교류할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딴소리하면?
싹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아쉽군. 이런 의미 있는 과정은 감출 게 아니라 널리 널리 알려야 하는데···.”
이광진 대통령은 입맛을 다셨다.
종전선언을 공동 발표할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