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150)

“어떻게 하긴 다 때려 부숴야지. 아예 건물을 무너뜨려 버릴까도 생각 중이야. 우리나라 쪽으로 숨도 크게 못 쉬게.”

유지훈이 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실제로 심검을 일으켜 건물을 베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건물 안에 나연 씨 있으면 어쩌려고요?”

“야마가토 놈들이 그렇게 멍청할까? 어디 창고 같은 곳에 데려다가 가둬놨을 거야.”

“그런데 야마가토산업으로 왜 가요?”

“말했잖아. 다 때려 부수러 간다고.”

“일단 빨리 가죠.”

강은영이 액셀을 힘차게 밟았다.

굉음과 함께 허머가 속도를 높였다.

***

야마가토산업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30층 빌딩이었다. 최신식 빌딩은 아니었다.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고풍적인 건물이었다.

“잘됐네. 무너질 때 다 된 듯해. 이참에 재건축하라고 하지.”

다 때려 부수기에 앞서 이나연이 있는지는 확인해야 했다.

유지훈이 화무결에게 눈짓했다.

화무결이 손으로 오케이를 그려 보이더니 건물에 대고 소리쳤다.

“나연 처자 여기 있으면 당장 내보내라!”

십 성 내공을 실은 사자후를 토해낸 순간이었다.

건물이 휘청했고,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다.

“5분 주겠다! 그 안에 안 내보내면, 건물을 무너뜨려 버리겠다!”

다시금 사자후가 작렬했고, 남은 유리창이 모두 박살 났다.

보안 요원들이 달려왔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당장 가세요. 안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든 책임 안 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무결은 또 한 차례 사자후를 뿜어냈다.

“분명히 말했다! 5분이다! 안 나오면 무너진다!”

다시금 건물이 휘청했고, 유지훈이 핀잔을 줬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사자후에 말이 뭐가 필요한가?”

“안 내보내면 무너뜨린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만일 안에 있으면 어쩌려고? 깔려 죽게 한다는 거냐?”

“안에 없을 거라며? 네가 그래 놓고 왜 나한테 뭐라 그러냐?”

두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언쟁을, 강은영이 중단시켰다.

“두 분 안 싸우셔도 돼요. 나연 씨 전화 왔어요. 무사하대서 이쪽으로 오라고 했어요.”

“야마가토 놈들이 납치한 건 맞대지?”

“그건 안 물어봤는데요?”

“그럼 저 건물은 어떡하지?”

유지훈이 사뭇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화무결이 버럭 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무너뜨려야지. 내가 5분 뒤에 무너뜨린다고 했잖아. 나를 허풍쟁이로 만들 참이냐.”

“그래. 무너뜨리자. 이참에 쪽발이 놈들 다시는 못 기어오르게 단단히 가르쳐놓고 가자.”

화무결의 세 차례 사자후는 건물 내 야마가토산업 직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줬다.

5분이라는 경고가 강렬하게 귀를 강타했다. 혼비백산해서 건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각 야마가토산업의 두 주인 중 하나인 야마구치 가문의 가주 야미구치 신타로는 건물 최상층 회장실에 있었다.

“뭐, 뭐야. 저놈들은.”

다급하게 알아본 비서 덕분에 소동의 주인공이 유지훈 일행임을 파악하게 됐다. 이나연의 납치 사실까지 알게 됐다.

곧바로 긴밀히 소통하던 CIA 요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불통이었다. 문자를 보내도 회신은 오지 않았다.

그제야 다급하게 건물을 벗어나려 했다. 옥상으로 달려갔다. 헬기 이착륙 시설이 갖춰진 곳이었다.

그러는 사이 5분이 흘러갔다.

유지훈의 손에 묵빛 광채를 머금은 심검이 형성됐다.

화무결 또한 십 성 공력을 일으킨 장력을 쏟아낼 채비를 갖췄다.

“자. 그럼 시합이다. 어느 쪽으로 무너지는지.”

유지훈은 왼쪽 벽면을 베기로 했고, 화무결은 오른쪽 벽면에 장력을 날리기로 했다. 무너지는 쪽이 이기는 시합이었다.

“간다!”

동시에 공격하려는 찰나.

앞질러 공세를 펼친 이가 있었다.

“보세요! 저 특성 개화했어요!”

이나연이었다.

연달아 뻗어낸 손에서 파란 화염 덩어리가 쏟아져 나갔다.

파파파파파파팟!

일곱 개의 화염 덩어리가 건물 전면을 강타했다.

찬란한 불꽃과 함께 화염 덩어리가 닿은 곳이 소멸했다.

그리고 건물은 기우뚱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뭐야. 이건···.”

심검을 내지를 기회조차 없었다. 피식피식 시들어갔다.

화무결의 장력은 손안에서 소용돌이칠 뿐이었다.

“야마가토인지 하는 놈들 건물 여기 말고 또 없는가?”

그렇지.

다른 건물이 있으면 거기 가서 시합을 이어가면 될 일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강은영을 향했다.

“왜 나를 봐요? 나는 몰라요.”

그러는 사이 굉음과 함께 건물은 폭삭 무너져 폐허만을 남겼다.

창공엔 헬리콥터가 날고 있었다. 옥상에 착륙하려 했지만, 이미 무너진 다음이었다.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막 옥상에 도착했던 야마구치 신타로는 처참한 폐허 속에서 건물과 운명을 같이 했다.

“집에 가자.”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

오사카대학 2학년 여대생 야마무라 레이코는 오전 내내 애완견 해피를 찾아 헤맸다.

현관 청소를 위해 잠시 열어둔 문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아무리 집안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해피야. 어디 있니? 나 12시에 수업 있어. 지금 안 나가면 지각이야. 지난번에도 너 때문에 지각해서 벌점 먹었잖니.”

가끔 있는 일이긴 했다.

해피는 외출을 좋아했다. 주인이 산책시켜주지 않으면 혼자라도 나갔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돌아오곤 했다.

보통은 나갔다가도 30분 후면 돌아왔지만, 오늘은 2시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렇다고 문을 잠그고 나갈 수도 없고.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애를 먹이냐.”

야마무라 레이코는 해피를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빨리 찾아다가 집에 넣어놓고 학교에 가기 위해서였다.

평소 산책시켜줄 때 다니던 길로 찾으러 다녔다. 애완견 빵집부터 놀이터까지 훑었지만, 해피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싶어 등산로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 번 데려간 적 있었지만, 몹시 힘들어했던 곳이었다.

입구 쪽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씩씩하게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해피의 모습이었다.

“해피야!”

달려가서 덥석 안아 들었다.

“너 전에는 이쪽으로 오기만 해도 힘들어서 축 늘어져 있더니 웬일이야? 등산 가고 싶어?”

“깡깡!”

“오늘은 안 돼. 언니 학교 가야 해. 너 때문에 지각할 판이야.”

“깡!”

해피가 레이코의 팔목을 할퀴었다.

제법 세게 할퀴었다. 피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아야! 얘가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레이코가 해피의 엉덩이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알았어. 언니 빨리 학교 갔다 와서 산에 데려다줄게.”

할퀸 자국이 제법 깊었다.

바로 지혈될 것 같진 않았다. 붕대라도 감아야 할 상처였다.

야마무라 레이코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과산화수소로 소독한 뒤 연고를 발랐다. 붕대를 감고는 학교로 향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벌렁벌렁하지?”

기분이 묘했다.

알 수 없는 생기가 샘솟는 느낌이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달리 가벼웠다.

***

유지훈 일행이 귀국하는 날 공항엔 엄청난 환영 인파가 몰려들었다.

입국장부터 공항 주변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월드 스타의 입국 장면을 방불케 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대통령님께서···. 일단 공항부터 빠져나가시죠. 이동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중 나온 이윤성이 유지훈 일행을 안내했다.

공항 통제 인력으로 경찰 병력 2개 중대가 동원됐다.

공항 빠져나오는 과정은 카 퍼레이드를 연상케 했다.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환영 인파가 태극기를 흔들며 ‘유지훈’을 연호했다.

유지훈은 선루프 사이로 몸을 내밀어 손을 흔들어줬다.

“어째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공항을 가득 메운 환영 인파는 이광진 대통령의 작품이었다.

유지훈의 국내 업적을 비롯해 일본에서 활약상을 조금은 과도하게 국민들에게 알린 덕분이었다.

유지훈을 영웅으로 만들고, 그 영웅을 발탁해 활약하게 한 사실을 자신의 업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의도였다.

물론 목적은 사흘 앞으로 다가온 국민투표일 테고.

일단 유지훈 영웅 만들기는 성공한 양상이었다. 진정한 목적이 어떻게 될는지는 두고 볼 일이긴 했지만.

유지훈 일행을 태운 차는 청와대로 향했다. 환영 만찬이 열리는 장소였다. 대통령은 입구까지 나와 맞이했다.

“이번에도 거하게 한 건 했더군. 허허허.”

“거하다고 할 만한 한 건이 뭐가 따로 있었나요?”

“다 거하긴 했지만, 야마가토산업 건은 특히 거했네.”

대통령은 너털웃음으로 야마가토산업 붕괴를 화두에 올렸다.

유지훈 일행이 본사로 쳐들어가 건물을 무너뜨린 일이었다.

“일본 정부에서 항의라도 하던가요?”

“공식적으로는 심하게 항의했지.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고마워했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고 하더군.”

일본 정부 입장에서 야마가토산업은 눈엣가시였다.

이번에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권력 저편으로 밀어내긴 했지만, 호시탐탐 내각 전복을 노리고 있었다.

한일 간의 굴욕적인 협정을 구실로 총리를 비롯한 내각을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유지훈 덕분에 한 시름 덜게 됐다.

“변종 몬스터의 변이 문제가 국내로 넘어오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하더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앞서 귀국한 최금강 등이 변이의 확산을 우려한 모양이었다.

유지훈 또한 걱정하는 부분이긴 했다. 귀국 일정을 늦춘 것도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국내에 문제 될 일 없도록 손 써두긴 했습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일본 상황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당분간 일본인의 입국을 금지하기로 했네. 관련해서 자네도 도와주기 바라네.”

변이 문제의 열쇠는 이자걸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바다 건너 돌아왔을 어머 거대 왕도마뱀에게서 해답을 찾아야 했다.

한편으로 또 다른 중요한 이벤트도 유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

반전의 계기 (1)

CIA 수석작전요원 제임스 브레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앞의 여인을 보고 있었다. 사실 제대로 눈도 못 마주쳤다. 힐끔힐끔 곁눈질로 쳐다볼 뿐이었다.

CIA 작전 유닛의 비밀 아지트였다. 30명의 특수 요원들이 근무하고,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장소였다.

눈앞의 여인은 직원이 아니었다.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브레넌의 사무실에서, 제임스 브레넌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PC까지 만지작거리면서.

“CIA 공식 서열 3위인 분 PC에 별 재미있는 내용이 없네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금발 미녀였다. 입가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였다.

미소 때문에, 여인의 미모 때문에 제임스 브레넌이 자리를 내주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 건 아니었다.

여인의 정체 때문이었다.

인세인 위치(Insane Witch 미친 마녀) 린제이 탐슨. 세계 최악의 빌런 조직 다크 디멘션(Dark Dimention)의 4대 수장 중 하나였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였지만, 실제로는 50대를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레벨 8의 각성자이기도 했다. 초인의 길을 내팽개치고 빌런 조직의 여주인을 택한 위험한 여인이었다.

“탐슨 여사. 내 PC는 최상위 보안 등급을 허용받은 자들만 접근할 수 있소. 그렇게 무턱대고 들여다본다고···.”

“그래서 미스터 브레넌 자리를 점거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CIA 서열 3위 자리를 불법으로 차지하고 있는 게 나로서도 즐거운 일만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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