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유지훈의 질책이 들려온 뒤에야 요원들이 정신을 차렸다.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
어미 왕도마뱀 귀국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녀석은 등에 올라탄 이나연의 지시를 잘 따랐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면서 모여드는 변종 몬스터들을 잡아먹기도 했다.
유지훈과 강은영은 허머를 타고 이동하면서 뒤따르는 조무래기 몬스터들을 해치웠다. 화무결은 어미 왕도마뱀의 꼬리에 매달린 채 뒤에 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장력을 날려댔다.
“다른 분들은 어쩌고 있대?”
“최금강 마스터님은 임무 잘 마친 다음에 몬스터들 처치하신다네요. 마철진 초인님은 몬스터가 별로 안 보인다고 툴툴대는 중이세요.”
“그럼 이쪽으로 오시라고 하지?”
“저 녀석 있는 곳으로는 오기 싫으시다네요.”
“초인씩이나 돼서 쫄긴···. 서원섭 영감님은?”
“따로 연락은 안 해봤는데, 순조롭게 마무리하셨다고 들었어요. 가장 먼저 한국으로 출발하실 것 같다고요.”
“서열 1위인 양반이 가장 먼저 가네? 우리나라 초인 서열은 누가 빠른가로 정한 거야?”
대화하는 동안에도 유지훈은 다섯 마리 몬스터를 벴다.
오는 동안 죽인 몬스터만 100마리는 훌쩍 넘을 것 같았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쉴새 없이 모여들어 어미 왕도마뱀의 뒤를 쫓았다.
“징글징글하네요. 아포칼립스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놔뒀으면 아포칼립스가 됐을 거야.”
“놔둘 걸 그랬나요? 일본 놈들 쫄딱 망해버리게요.”
“일본만 망하고 끝날 일이 아닐 거야. 당장 우리나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인류 전체에 아포칼립스가 닥칠 수도 있어.”
유지훈이 걱정하는 부분은 변이가 인간에게 끼칠 영향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알아본 바로는 아직 인간의 변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일반 들짐승의 변이도 극히 일부 개체들에 한정됐다고 했다.
몬스터와 공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혼종 개체들에 국한된 변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를테면 몬스터와 일반 들짐승의 교미로 탄생한 혼종들이 변이를 일으켰다는 의미.
“최금강 마스터님이랑 마철진 초인님도 마치신 모양이네요. 세 시간 뒤에 출국하신대요.”
“한동안 우리만 남게 되겠군.”
“우리도 저 녀석만 동해로 보내면 출발하는 거 아니에요?”
“좀 더 있다가 가야 할 것 같아.”
“왜요? 아포칼립스가 걱정돼서요?”
유지훈이 말없이 피식 웃었다.
아포칼립스에 대한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뭔가 고약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설명하기 힘든 느낌 때문이었다.
“은영은 나연 씨랑 먼저 가. 손 꼭 붙잡고. 여긴 나랑 무결이면 충분할 거야. 아니. 둘만 남는 게 더 나아.”
“나도 내 몸 하나 정도는 충분히 건사할 수 있어요. 그나저나 나연 씨 손은 또 왜요?”
“아까 손 꼭 붙잡고 있는 거 보기 좋던데?”
강은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연이 걔는 왜 그렇게 내 손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기분은 좋더라고요. 간질간질 손을 타고 들어오는 포근한 기운이···.”
말해놓고 이상한지 강은영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느낌이 묘했어요. 감정적인 부분이 아니라고요. 나 여자 안 좋아해요.”
“무슨 의미인지 알아.”
“안다고요? 혹시 유지훈 씨도 나연 씨 손 잡아봤어요?”
“에휴. 말이 왜 그렇게 가냐?”
유지훈은 강은영의 손을 간지럽힌 기이한 기운의 실체가 이나연에게 잠재된 거대한 기운이라 추측했다.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나연의 능력 개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실전을 거치면서 기운의 활용 폭은 넓어졌다.
어쩌면 이나연 스스로 몸을 뚫고 나오려는 기운을 억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로 인해 강은영의 손을 간지럽힌 거고.
“녀석이 멈춰섰는데요? 나연 씨랑 화 어르신도 내려왔어요.”
그러고 보니 눈앞의 자그마한 산 너머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바람을 타고 코를 자극하는 공기가 짭조름했다.
“저 산만 넘으면 바다인 모양이네. 슬슬 마무리해야겠군.”
마무리는 어미 왕도마뱀을 바다로 들여보내고, 뒤를 쫓은 변종 몬스터들을 남김없이 처치하는 것을 의미했다.
혹시 뒤따르던 변종 몬스터 중에 어미 왕도마뱀과 함께 현해탄을 건너 대한민국에 상륙하는 놈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미 왕도마뱀은 영악했다.
쫓아오는 몬스터들을 떨쳐내기 쉬운 장소를 찾아 이동했다. 유지훈 일행이 쉽게 마무리할 수 있는 곳으로 조무래기들을 유도한 셈이었다.
어미 왕도마뱀이 능선을 넘어 바다로 향했다. 이나연만 작별 인사를 위해 녀석의 곁을 따랐다.
남은 세 사람, 유지훈과 화무결, 강은영은 능선에 서서 바다 속으로 사라져가는 어미 왕도마뱀을 응시했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을 기어오르는 변종 몬스터 무리였다. 필사적으로 보스의 뒤를 따르려 하고 있었다.
세 사람에겐 학살의 시간이었다. 변종 몬스터들이 바다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몰살시켜야 했다.
“그럼 살계를 열어야 할 순간인가. 하하하.”
화무결이 어울리지도 않는 무림 용어와 함께 호방한 웃음으로 사자후를 내질렀다.
뜬금없는 일성이었지만,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산을 오르던 수백 마리 몬스터들이 줄줄이 뒤로 밀려났다.
본격적으로 공격에 나설 순간이었다.
그런데.
콰콰콰콰쾅!
포화가 쏟아졌다.
변종 몬스터 무리를 향한 무차별적인 포격이었다.
유지훈 일행이 자리 잡은 능선도 포격의 영향권이었다. 허겁지겁 자리를 옮겨 허머에 올라타야 했다.
방탄 재질로 된 차량이었기에 포화 속에서도 비교적 안전했다.
“뭐 하는 짓들이야! 여기 우리 있는 거 몰라?”
“이것들이 몬스터 잡으랬더니 우리까지 잡으려 드네.”
세차게 흔들리는 허머 안에서 포격이 끝나길 기다렸다.
포화는 10분 가까이 이어졌다. 확실히 제압해야 한다는 유지훈의 당부가 제대로 전달된 모양이었다.
“그 요원들 어리바리 따라다니기만 하더니, 이번엔 일을 제대로 한 것 같네요.”
“제대로는 뭐가 제대로야! 우리까지 겨냥한 것 같은데. 나가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어. 말 안 통하면 확!”
변종 몬스터가 문제가 아니라, 육상자위대를 상대로 드잡이질을 하겠다고 열을 올리는 유지훈이었다.
이윽고 포격이 종료됐다.
뽀얗게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허머에서 내려 포격이 쏟아진 현장을 확인했다.
아비규환이었다. 갈가리 찢어진 몬스터의 사체가 산등성이를 가득 메웠다. 살아 움직이는 놈도 눈에 띄었지만, 얼마 못 갈 듯했다.
쫓아오던 놈들 대부분이 저레벨 몬스터이기도 했지만, 보스 몬스터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확실히 무기력했다.
“괜찮으십니까?”
열 명 남짓의 군인들이 다가왔다.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인솔하고 있었다.
“육상자위대 별반 하시모토 대위입니다.”
장교가 거수경례로 인사한 뒤 사과했다.
“변종 몬스터를 남김없이 제압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지훈 초인님도 위험하실 뻔했습니다. 사죄드립니다.”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 사죄였다.
한소리 하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떨떠름하게 사과를 받았다.
“괜찮아요. 내가 그렇게 하라고 당부한 거였는데요.”
멀찍이 장교 너머로 부대 진영이 보였다.
200명은 거뜬히 넘을 듯했다. 2개 중대가 출동한 양상이었다. 박격포와 대전차 로켓 등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포화를 쏟아낸 뒤 확인 사살에 나설 채비를 갖추는 모습이었다.
“예상보다 약한 몬스터들만 있었던 모양입니다. 생존한 놈들도 저희가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시모토 대위가 부대원들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확인 사살을 지시하는 모습이었다.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몬스터 무리 쪽으로 달려왔다. 살아있는 놈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댔다.
그때 바다 쪽을 살피러 내려갔던 강은영이 다급하게 올라왔다.
“나연 씨가 안 보여요.”
“어디 숨어 있는 거 아니야? 잘 찾아봐.”
화무결도 미간을 좁혔다. 고개를 갸웃했다.
“나연 처자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는군. 아니. 미약하게 느껴지네.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순간 뇌리를 강타하는 상서롭지 못한 생각. 납치였다.
하시모토 대위를 바라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모양이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희랑 같이 가시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인간들 참···. 똑바로 전하랬는데, 제대로 안 전한 모양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나 여기 쪽발이들 도우러 온 거 아니라고. 다시는 못 기어오르도록 확실히 가르치러 온 거라고!”
순간 유지훈의 손에 심검이 생겨났다.
갸웃하는 하시모토 대위의 목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이어 경악해 총구를 겨누는 부하들까지 모조리 베어버렸다.
“가로막는 놈은 다 죽여버리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심상치 않은 여정 (3)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시모토 대위의 목이 날아가고, 뒤에 있던 부하들이 검에 반으로 잘려 죽기까지 3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확인 사살하던 군인들 가운에 이 장면을 목격한 이들도 있었다. 다만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놈부터 죽여!”
일제히 총구를 유지훈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격발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화무결이 뿜어낸 장력에 멀찍이 날아갔고, 강은영이 일으킨 염동력에 총을 강탈당했다.
이어 몸을 날린 유지훈의 심검이 전원의 몸을 둘로 나눠버렸다.
앞선 하시모토 대위 일행까지 마흔에 가깝던 군인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포화에 죽어 널브러진 몬스터와 같은 신세가 됐다.
“저쪽에 본진은 어떡하죠? 또 한바탕 할 모양인데요.”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박격포와 대전차 로켓 등 중화기를 유지훈 일행 쪽으로 조준하는 모습이었다. 다시금 포격을 쏟아낼 기세였다.
“걱정할 일 없을 것 같군.”
화무결이 여유롭게 반응했다.
유지훈은 상대방을 걱정하기까지 했다.
“우리한테 문제 될 건 없어. 오히려 쟤네들이 문제지. 심각한.”
잠시 뒤 하늘에 시커먼 기운이 드리워졌다.
먹구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거대한 물체, 아니 생명체였다.
몸길이 50m에 달하는 거대한 생명체, 어미 거대 왕도마뱀이 펄쩍 뛰어올라 일본군 본진을 덮치는 장면이었다.
“어! 저 녀석이 언제 돌아왔지?”
강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녀석을 바라봤다.
화무결과 유지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헛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은 녀석이 돌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나연이 납치된 것을 녀석 또한 알아챈 모양이라고 판단했다.
“대단한 놈이야. 이럴 때 보면 사람보다 더 영리한 것 같아.”
“원래 금수의 우정이 사람보다 깊은 법일세. 따지고 보면 사람이 제일 간사한 존재야.”
어미 왕도마뱀의 활약이 시작됐다.
일본군 진영을 덮치더니 기세를 몰아 몸부림을 쳐댔다. 중화기들이 박살 났고, 군용 차량들도 폐차 지경이 됐다.
밑에 깔린 군인들은 당연히 즉사했다.
앞발에 맞은 놈도 죽고, 꼬리에 눌린 놈도 죽었다. 물린 놈은 찢어져 죽었고, 입안으로 들어간 놈은 소화돼 죽었다. 그냥 다 죽었다.
결과적으로 육상자위대 별반 2개 중대가 압살당했다.
일본군 진영을 압살한 뒤 녀석은 더 죽일 놈 없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을 어슬렁대다가 유지훈 일행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근처에 오더니 걸음을 멈췄다.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왜 오다 말아?”
“그걸 두려워 하는 모양이군.”
화무결이 유지훈의 손에 생성된 심검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히스토리가 있었다. 녀석이 지금처럼 거대해지기 전 유지훈은 심검으로 베어버리려 했다.
당시 녀석은 알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동료였던 거대 바퀴벌레가 심검에 의해 반으로 잘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몸집이 다섯 배는 커진 상황에서도 당시 기억은 트라우마인 듯했다.
“자식.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거야? 못 당하겠네.”
심검을 거둬들였더니, 그제야 녀석이 다가왔다.
혀를 날름거렸다. 앞발도 까닥거렸다. 자기 앞에서는 심검을 꺼내지 말라는 시늉인 듯했다.
“그래. 착하게만 살아라. 그럼 칼 꺼낼 일 없다.”
유지훈이 녀석의 콧잔등을 쓰다듬었다.
녀석이 기분 좋은 듯 콧김을 뿜어냈다. 한편으로 눈을 껌뻑였다.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친구 걱정돼서 돌아온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