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150)

‘저 미련 곰탱이 마늘만 먹여서 사람을 만들어야 하나···.’

이나연의 여우짓은 유지훈까지 겨냥했다.

“언니를 가만히 놔둔 거 보니까, 혹시 유지훈 초인님 취향이 많이 독특한 거 아닐까요?”

“유지훈 씨 취향이요?”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유지훈 씨가 남자를요?”

강은영이 질색했다가 돌연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러고 보니 화 어르신이랑 각별한 사이인 데다가, 이자걸 대표랑도 기이할 정도로 잘 맞는 것 같았어요.”

“맞네. 우리 오빠랑 잘 맞기 쉽지 않은데···. 우리 오빠도 정신 상태가 보통 이상한 인간이 아니거든요.”

급기야 유지훈을 남색으로 몰아가는 두 사람이었다.

결국엔 걱정거리가 맞았다. 당초에 잡아둔 방향이 잘못됐을 뿐.

“거 조용히 좀 갑시다!”

유지훈의 격한 항의에도 두 사람의 수다는 일본으로 향하는 내내 꽃을 피웠다. 짙은 꽃향기까지 뿜어낼 지경이었다.

도착한 공항은 후쿠오카 공항이었다. 변종 몬스터 무리가 휩쓸고 간 지역의 공항 대부분이 폐쇄됐다.

나리타 공항과 하네다 공항은 당연히 폐쇄됐다. 그나마 가장 안전한 공항이 후쿠오카 공항이었다.

변종 몬스터 무리가 진을 치고 있는 사이타마현까지는 차로 이동해야 했다. 10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그럼 무사히 임무 마치고 서울에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임무가 예정된 지역으로 흩어졌다.

유지훈과 화무결 그리고 새롭게 언니 동생으로 뭉친 강은영과 이나연, 넷만 남았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요원 둘이 안내를 맡겠다며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차량 가져오겠습니다.”

“그냥 같이 가시죠. 운동 삼아 걸어서.”

“아닙니다. 특수 차량이라 좀 먼 곳에 주차해뒀습니다. 여기서 편히 기다리시면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다시 넷만 남겨졌다.

기다리는 김에 이나연에게 물었다.

“녀석을 꼭 한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겁니까?”

“오빠가 그러길 원하니까요.”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라도 있답니까?”

“글쎄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엿 먹일 놈들이 아직 많다고 하는 것 같았어요.”

역시 엿을 빼놓고는 이자걸을 논할 수 없었다.

“또 누구한테 엿을 먹인 답니까?”

“요즘은 짱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동북공정 짓거리가 영 못마땅하다면서요.”

동북공정. 유지훈 역시도 혐오하는 대목이었다.

남북한 사이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근래 행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짱개 놈들 엿 먹이는 일이라면, 기꺼이 동참해줘야지.

“녀석이랑 많이 친해요? 동해 쪽으로 보내는 건 문제없습니까?”

“글쎄요. 저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지···. 막상 만날 생각을 하니 두렵긴 한데요.”

이나연이 옆에 있던 강은영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이렇게 옆에 언니가 있으니 힘이 나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내가 나연 씨 곁에 꼭 붙어 있을게요.”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눈에 꿀이 뚝뚝 떨어졌다.

지랄이 풍년이었다. 괜히 물어봤다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는 사이 내각정보조사실 요원들이 준비된 차량을 가지고 왔다.

대형 허머였다. 특별한 과정을 거쳐 생산된 듯했다. 일반 허머의 1.5배 크기였고, 첨단 기기들이 탑재돼 있었다.

“초인들께 제공하기 위해 생산된 차량입니다. 유지훈 초인님 임무 수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했습니다.”

“혹시 임무 마친 다음에 한국으로 가져가도 됩니까?”

“그, 그건···. 총리님께서 결정하셔야···.”

“농담이에요. 저는 오른쪽에 운전석 있는 차 몰지도 못해요.”

출발했다.

내부 공간은 밖에서 볼 때보다 더 넓었다.

화무결은 맨 뒷좌석에서 다리를 뻗고 눕기까지 했다.

“제법 오래 걸린다고 했지? 나는 한잠 잘 테니, 밥때 되면 깨우게. 비행기인지 뭔지 어찌나 좁던지, 다리에서 쥐가 나는 줄 알았네.”

후쿠오카 지역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단상은 어려움 없이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이었다. 변종 몬스터의 창궐에서 자유로운 듯했다.

두 시간쯤 달려 히로시마현에 이르자 양상은 확연히 바뀌었다.

황폐해진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무너진 건물도 심심찮게 보였다. 사람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변종 몬스터가 처음 출현했을 때만 해도 별다른 피해는 없었던 지역입니다. 보스 몬스터 무리가 나가노현을 휩쓸 무렵 이쪽에도 변종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변이에 의한 변종 몬스터들에게 공격당한 지역이라는 의미였다.

일본인들에겐 이자걸이 보낸 거대 왕도마뱀만 몰아낸다고 끝날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자이언트 엿 정도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는 길에라도 변종 몬스터 감지되면 세워주세요. 싹 처치하고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더 없이 감사드리겠습니다.”

한참을 달리는데, 앞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었다.

서른 남짓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박격포와 기관총 같은 무기도 보였다.

차를 세웠다. 조수석의 요원이 차에서 내렸다.

“변종 몬스터를 상대하는 육상자위대 병력입니다. 제가 가서 임무 수행 중이라고 말하고 오겠습니다.”

요원이 가서 설명했지만, 여의치 않은 듯했다.

군인들은 총구를 요원 쪽으로 겨냥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요원을 앞세운 채 허머로 다가왔다. 여전히 총구를 요원에게 겨냥한 채였다.

“다들 내려라. 이 차량은 자위대의 임무를 위해 징발하겠다.”

뭘 한다고? 징발?

이것들이 처돌았나?

아니면 변종 몬스터한테 변이라도 된 건가.

유지훈이 문을 박차고 내렸다.

운전석 요원이 다급하게 내려 군인들에게 달려갔다.

열심히 사정을 설명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중령 계급장을 단 군인이 유지훈 일행에게 다가왔다.

요원이 다시금 달려와 중령 앞을 가로막았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중령님. 이분들은 보스 몬스터 퇴치를 위해 한국에서 오셨습니다.”

“조센징 따위에게 이렇게 좋은 차를 내줄 순 없다. 이 차는 자위대 임무에 사용하겠다. 다른 차를 구하든지, 걸어가든지 해라.”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이것들이 제대로 킹 받게 하네.”

가볍게 땅을 박찬 뒤 펄쩍 뛰어오른 기세로 중령의 철모에 당수를 내리찍었다.

콰지직! 철모가 으스러지면서, 중령의 머리도 깨졌다.

“진실의 방도 아닌데, 내가 왜 하이바를 까야 해?”

중령은 군인 정신이 제법 투철한 사내였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면서도 휘청대는 와중에 유지훈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려 했다.

“기어코 죽여달라고 용을 쓰는구나.”

대수롭지 않은 손짓으로 권총을 날려 보낸 뒤 기세를 실은 권격을 중령의 명치에 꽂아 넣었다.

“크억!”

중령이 피를 뿜으며 멀찍이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십여 자루의 총구가 유지훈 쪽을 향했다. 일제히 격발하려고 했다.

화무결이 나설 차례였다.

은은한 미소와 함께 양손을 우아하게 휘저었다.

오 성 공력을 실은 장력을 쏟아냈다. 거대한 폭풍이 군인들을 휩쓸었다.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나머지 군인들이 총을 치켜들자, 강은영이 염동력을 발동했다.

십여 자루의 장총이 군인들의 손에서 벗어나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두어 차례 선회하더니 고스란히 군인들에게 돌아가 가격했다.

빠바바바박!

가격한 곳은 대체로 안면이었다.

군인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검 말고 총으로 하는 것도 괜찮은데요!”

강은영이 유지훈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고개를 까닥해준 뒤 유지훈은 내각정보조사실 요원을 쳐다봤다.

“우리 여기 당신들 구해주러 온 거 아닙니다. 앞으로 다시는 대한민국을 넘보지 못하도록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보여주러 온 겁니다.”

“네···.”

“그러니까 앞으로 가로막는 놈 있으면 똑바로 전하세요.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고.”

“네···.”

그때 대형 군용 트럭 한 대가 유지훈을 향해 쇄도했다. 그대로 덮치려는 기세였다.

“조센징 새끼! 죽여버리겠다.”

유지훈이 피식 웃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들어 올린 손에는 묵빛 검의 형상이 쥐어져 있었다.

그대로 달려오는 트럭을 내리쳤다.

써걱!

빛의 검, 심검이 트럭을 반으로 갈랐다.

반으로 나뉜 트럭이 비켜 가듯 유지훈을 지나갔다. 5m쯤 구르는 듯싶더니, 쪼개지듯 양쪽으로 나뒹굴었다.

나란히 앉아있다가 멀어진 운전석과 조수석의 군인들이 동시에 지렸다. 아니 줄줄 흘렸다.

유지훈이 느릿느릿 다가가 두 차례 심검을 그었다.

촤악! 촤악!

두 개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머리를 잃은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이제 유지훈의 무심한 시선은 내각정보조사실 요원들을 향했다.

“이렇게 말입니다.”

넋을 잃은 두 요원에게 일갈한 뒤, 유유히 차에 올라탔다.

***

심상치 않은 여정 (1)

육상자위대의 수장 야다 히로쿠니 육상막료장이 책상 위의 집기를 모조리 내던져 버렸다. 분노를 다스릴 방법이 없어서였다.

조금 전 그는 방위대신 후지타 사다노리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다. 변종 몬스터 퇴치 작전에 투입된 특수부대 때문이었다.

[대체 뭐하자는 겁니까! 그분들은 본국을 도우러 왔습니다. 지원해주진 못할망정 제공된 물자를 징발하려 하다니요!]

“죄송합니다. 소통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착오는 무슨 착오! 내각 정보 요원이 설명까지 다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어코 빼앗겠다고 총까지 들이댔다고 하더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차질 없도록 전달하겠습니다.”

[그분들이 당장 돌아가겠다는 걸 가까스로 눌러 앉혔습니다. 그분들한테 본국의 평안이 달려 있습니다. 최대한 협조하세요.]

“알겠습니다. 심려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야다 히로쿠니는 휴대폰부터 집어던졌다.

이미 보고받은 사안이었다. 한국의 초인과 갈등 때문에 특작대가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다.

중령이 수장을 맡을 정도로 중요한 부대였다. 서른 명 부대원 중 열다섯이 죽었고, 특작대장인 중령은 혼수상태였다.

방위성을 통해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히려 방위대신에게 대차게 깨졌다.

“감히 조센징 초인 따위가···.”

이를 악물었다. 핏물이 배 나올 정도로 강하게.

책상을 내리치려는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조금 전에 집어 던진 탓에 사무실 한구석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밟아서 으깨버리겠다고 다가갔는데, 액정에 찍힌 발신자가 심상치 않았다. 다급하게 받았다.

“네. 회장님.”

야마가토산업의 양대 수장 중 하나이자, 야마구치 가문의 가주 야마구치 히토시였다.

[육상막료장.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회장님께서 신경 써주셔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방위대신에게 한소리 들으셨다지요?]

“그걸 회장님께서 어떻게···?”

[본국에 야마가토산업의 눈과 귀가 닿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야다 히로쿠니는 휴대폰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야마가토산업은 일본 최고의 정보력을 보유한 집단이었다. 지금 어떤 자세로 전화를 받는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본능적으로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하하하. 그리 마음에 두실 것 없습니다. 되갚아주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회장님께 방법이라도···?”

[요즘 죄인처럼 찌그러져 지내는 저한테 무슨 힘이 있다고요. 대신 태평양 건너에서 도움이 될 만한 분들이 오셨습니다.]

태평양 건너면 미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지원 요청에 난색을 표했었다. 비행 몬스터의 기승으로 항공편 확보가 불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식적으로는 거절했는데, 비공식적으로는···?

“혹시 랭글리가 움직인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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