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50)

기껏해야 개헤엄이나 가까스로 칠 수 있는 수준. 거친 바다를 100m나 헤엄쳐 가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기껏 내세운 조건들이 무산되나 난처해진 찰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이자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중요한 회의 중입니다. 급한 일 아니면···.”

[선물 하나 준비했습니다. 곧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선물 받을 상황 아니라고요.”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소시오패스 녀석이 난데없이 무슨 선물을 준비했다는 걸까?

확인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자지러지게 놀라는 동시에 유쾌한 웃음까지 유발하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소시오패스의 선물 (2)

선물 하나 준비했다며, 너무 고마워할 필요 없다는 인사만 남기고 이자걸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체 무슨 선물이길래···.

사무치게 궁금했지만, 궁금할 여유는 없었다. 당면한 문제가 원체 시급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기에.

한편으로 현시점의 문제와 연관된 선물은 아닐까 기대되기도 했다.

이자걸이라는 인물은 항상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상상하기 힘든 놀라움을 안겨줬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원래 주제로 돌아가야 했다. 이자걸의 선물은 염두에만 두기로 했다.

“무슨 전화입니까?”

대통령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뭔가 비상한 낌새를 감지한 듯했다.

역시 대통령은 노련하고 눈치 빠른 인물이었다.

“아닙니다. 개인적인 전화이긴 한데···.”

유지훈이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머뭇거렸다.

친일파로 몰리는 듯한 인사들에겐 절호의 반격 기회였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사적인 전화를 받다니 말이나 됩니까?”

“지금 국가의 운명이 걸린 회의 중인데, 개인 용무나 보는 분이 초인의 자리에 앉아 있다니 개탄할 일입니다.”

기회는 지금이라며 개떼처럼 일어나려는 자들은 진압하고 봐야 했다.

유지훈이 벌떡 일어나 NSC 참석자들에게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을 지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 석상을 빠져나오려 했다.

이윤성과 국방부 장관이 달려 나와 만류했다.

“유지훈 초인님.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물러나시다니요.”

“초인님께서 나가시면 딱히 대응할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까지 대로해 고함을 쳤다.

“당신들 뭐 하는 작자들이야! 당신들이 나가서 일본 놈들 막을 거야! 할 수 있으면 당장 나가 봐! 내가 대통령 자리까지 내줄 테니까.”

목청을 높이던 작자들이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유지훈은 마지못한 듯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초인 자리에 미련 같은 건 없습니다. 국가 중대사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시면 언제든 쫓아내 주십시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유지훈 초인 말고 믿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헤엄쳐서 일본 함대에 올라탈 수 있을지에 관해서였다.

유지훈 외에 다른 초인들과 각성자들은 가능할지도 점검해야 했다.

“수영에 그리 능숙하진 않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면 해보겠습니다.”

“바다 한복판에서 100m를 헤엄쳐서 적의 함대에 올라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유지훈 초인이 앞장서면 최선을 다해 따라가겠습니다.”

서원섭과 마철진도 수영에 능하진 않았다. 그래도 기꺼이 작전에 동참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최금강과 권준성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유지훈에게 모든 게 달린 상황인 셈이었다.

‘어쩐다···. 누가 끌고 가줘야 하는 형편인데···.’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 해군 특수전전단)의 조력을 받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은밀한 접근에 실패하면 함대의 집중 사격을 피할 수 없을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작전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수장되는···.

선뜻 뭐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년 사내가 회의 장소로 뛰어 들어왔다. 조금 전 일본 함대의 위협 사격을 보고했던 장성이었다.

“낭보입니다!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가 모조리 침몰했습니다!”

“뭐, 뭐요? 어, 어떻게···.”

이자걸이 준비한 선물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유지훈은 일단 헛웃음으로 반응했다.

“허허허.”

이런 귀신 같은 소시오패스 같으니···.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했지만, 궁금증이 중요한 때가 아니었다. 일단 생색부터 내고 봐야 했다.

내건 조건들의 대가는 받아 챙기고 봐야 했으니.

“준비했던 것들이 기대 대로 진행됐군요.”

“네? 유지훈 초인의 작품이란 말입니까?”

“조금 전의 개인적인 통화가 이것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하하하. 진작 말씀하시지 않고···.”

이광진 대통령이 유쾌하게 웃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회의 석상의 몇몇 인사들에게 삿대질했다.

“너! 너! 너! 너! 당장 이 자리에서 나가! 다시는 대한민국 정부에 발붙일 생각 하지 마!”

유지훈의 요구 조건이 신속하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

이자걸의 선물이 어떻게 준비된 것인지 알아봐야 했다. 달리 방법은 없었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사무실로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다른 장소로 오라고 했다. 용인의 테마파크 에브리랜드였다.

“여기가 이렇게 바뀌었군요.”

사실상 폐허와 다르지 않았다.

놀이기구들 대부분이 부서진 모습이었고, 동물들이 머무르던 우리 대부분이 무너진 상태였다.

동물들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대격변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바로 이렇게 됐습니다. 몬스터들의 먹잇감이 모여있는 장소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이자걸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던전을 빠져나온 몬스터들은 먹이를 찾아 헤맸다.

처음엔 사람을 찾아 먹어치웠지만, 이내 각성자 헌터들의 반격에 직면해야 했다.

몬스터와 각성자의 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상당수 몬스터들의 발길이 향한 곳은 동물원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물원이 있는 에브리랜드는 당연히 가장 많은 몬스터들이 몰려든 곳이었다.

“처음엔 신화길드 헌터들을 앞세워서 지켜보려고 했는데요. 어림없었습니다. 처치해도 몰려들고, 또 몰려들고···. 결국엔 몬스터 서식지가 돼 버렸습니다.”

그렇게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던 에브리랜드는 몬스터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몬스터 서식지라 그러시는데, 몬스터가 안 보이는군요?”

“이 녀석들 덕분입니다.”

이자걸이 가리킨 곳엔 역시 꼬마 왕도마뱀들이 있었다.

말이 꼬마 왕도마뱀이지 이제 2m 이상 크기로 자라난 놈들이었다. 거대 몬스터로 성장할 날이 머지않아 보였다.

“정확하게는 이 녀석들 어미 덕분이죠. 풀어놨더니 여기 있던 몬스터들을 싹 먹어치웠거든요.”

“아하···.”

어미 몬스터가 지낼 곳을 찾아본다더니 에브리랜드에 거처를 마련해준 모양이었다. 재앙급 변종 몬스터가 기존 몬스터들에게 재앙이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었고.

어미가 정리한 안전한 공간에서 이제는 새끼들이 유유히 뛰놀고 있었다. 저들 또한 머지않아 재앙급 몬스터로 성장할 테고···.

“너무 빨리 자라서 사옥 내부에선 도저히 기를 수 없게 됐습니다. 나오기 싫다고 몸부림치는 녀석들을 간신히 데리고 왔습니다.”

하긴. 몸길이 2m에 머리 크기가 어린아이 몸집만 한 몬스터들을 건물 지하에 계속 놔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고 있었으니.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는 이제 에브리랜드를 서식지 삼아 야생에 적응해갈 터였다.

“녀석들이 엄마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놈들 어미는 지금···.”

“진짜 어미 말고요. 알을 깨고 나와서 처음 본,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어미로 여기게 된다는···.”

“하하하. 저 말씀이시군요. 안 그래도 하도 저를 찾아대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처음 에브리랜드에 풀어놨을 때, 녀석들은 이자걸과 떨어지지 않으려 난동을 부려댔다.

가까스로 떼놓고 돌아오려고 하면, 일곱 마리가 일제히 이자걸의 차를 뒤쫓는 진풍경을 연출했기에···.

“여기에 제 근무 공간을 하나 더 마련했습니다. 서울 본사와 여기를 오가며 일을 보고 있습니다.”

“이자걸 대표가 서울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하고요?”

“유지훈 씨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하나 더 있거든요. 녀석들이 알을 깨고 나올 때 제 옆에 있던···.”

이나연이었다.

이자걸과 이나연이 번갈아 에브리랜드 근무 공간에서 꼬마 몬스터들과 지내면서 일도 보고 있었다.

“슬슬 다시 개장해도 될 것 같은데요? 저 녀석들이랑 어미만 있으면 다른 몬스터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고민 중이긴 합니다. 그러려면 녀석들 정체를 드러내야 해서요. 그 부분만 해결되면 재개장 문제에 착수하려고 합니다.”

크게 고민할 문제는 아닐 수도 있을 듯했다. 녀석들 어미의 활약이 이미 경천동지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으니.

공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긴 했지만, 그 부분만 해결되면 에브리랜드는 세계 최초의 몬스터 친화 테마파크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많겠지만.

“녀석들 진짜 어미 작품이겠죠?”

일본 해상자위대 2개 호위대군의 침몰.

결정적인 순간에 이자걸이 전해준 선물의 실체를 파악할 때였다.

이자걸은 말없이 빙긋 웃었다. 물론 긍정의 웃음이었다.

“설마 했는데, 역시였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습니까? 녀석들 어미 덩치라고 해봤자 10m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미도 부쩍부쩍 자랐습니다.”

“설마 어미한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약도 좀 먹이고, 주사도 좀 놨다고요. 내보낼 때 세 배쯤 자란 상태였는데, 아마 더 자랐을 겁니다.”

“대체 얼마나···?”

유지훈이 혀를 내둘렀다.

덩치가 10m를 조금 넘었을 때도 재앙급이었는데, 세 배로 커졌으면 그냥 재앙이 되고도 남을 크기였다.

심지어 거기서 더 자랐으면···.

설상가상으로 이자걸도 얼마나 더 자랐을지 모른다고 하고 있었다.

“글쎄요. 만나봐야 알 것 같기는 한데···. 두 배는 더 커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러니 함대를 모조리 침몰시켰겠죠.”

“하아. 졌습니다. 내가 이자걸 대표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유지훈 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녀석들 활용하는 데 유지훈 씨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생각입니다.”

이자걸의 눈빛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이자걸은 유지훈의 손에서 생겨난 검의 위력을 목격했었다. 왕도마뱀의 덩치가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그 검이면 반으로 잘릴 거라고 짐작했다.

유지훈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꼬마 몬스터들이건, 어미 몬스터건, 심지어 이자걸이건. 대한민국에 위협이 된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대통령으로부터 그럴 권한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부디 그래 주시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위해서요.”

그러는 사이 꼬마 몬스터 한 녀석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유지훈에게 기어왔다. 폴짝 뛰어 유지훈에게 안겼다.

유지훈보다 훨씬 큰 놈이 덥석 안겨 날름날름 얼굴을 핥아댔다.

“이놈아 덩치를 생각하고 안기든지 해라.”

“하하하. 유지훈 씨를 기억하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놈이었다.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만나서 인사를 나눴던 막내 보라였다.

“허어. 잠깐 만난 것까지 기억합니까? 사람보다 더 영리하네요.”

나머지 여섯 마리도 유지훈 쪽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까닥까닥,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어미는 돌아오고 있는 겁니까? 쪽발이들한테 자이언트 엿도 먹였는데, 이제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이자걸이 빙긋 웃었다.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녀석이 어디로 향할지는 뭐라 말씀드리기 힘드네요. 다만 저는 아직 쪽발이 놈들한테 자어언트 엿을 먹였다고는 생각지 않아서요.”

“아직 뭐가 남았습니까?”

“엿을 먹일 놈들이 쪽발이 놈들만은 아니기도 하고요. 짱개 놈들도 있고, 코쟁이 놈들도 있고···.”

점입가경이라 여기는 찰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윤성이었다. 왠지 느낌이 긴급한 듯했다.

“네. 국장님 무슨 일입니까?”

[유지훈 초인님. 어디 계십니까?]

“놀이동산에 좀 와 있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놀이동산요? 요즘도 문 연 놀이동산이 다 있습니까?]

“있어요. 몬스터들이 한가로이 뛰노는. 안 그래도 지금 한 놈이 저를 덮쳤습니다. 무거워 죽겠는데 빨리 용건이나 말씀해주세요.”

[아. 네. 그게···. 일본 놈들이 또 사고를 쳤습니다.]

“일본 놈들이요? 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고 칠 여력이 있답니까?”

[적반하장에 관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놈들이라···.]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NSC가 소집됐습니다. 전에 그 장소로 오시면 됩니다.]

서둘러 가야 했다.

이자걸에게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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