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50)

각성자 회합에 참석하지 않은 초인 두 명과 정예 각성자들도 함대에 몸을 실은 상태였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포화를 쏟아낸 뒤 상륙하면 됩니다. 동해안을 시작으로 서울까지 쓸어버리도록 하지요.”

***

소시오패스의 선물 (1)

일본 해상자위대의 출격 소식은 대한민국 정부에도 전해졌다.

이광진 대통령은 지체없이 확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대격변의 시대 이후 NSC는 확대 개편됐다. 몬스터 출몰이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각성자 대표들의 참석도 필요해서였다.

기존 구성원에 국가안전본부 본부장과 초인들, 3대 길드 마스터들이 추가된 확대 NSC가 안보에 관한 중요 안건을 논의하게 됐다.

일본 해상자위대 출격에 관해서도 각성자 대표들이 참석했다. 유지훈으로서는 초인이 된 뒤 처음 불려간 묵직한 자리였다.

“익숙한 분들도 제법 눈에 띄네요.”

회의 개시를 앞두고 참석자들을 둘러보던 유지훈이 말을 꺼냈다.

상대는 SSG 국장 이윤성이었다. 이윤성도 이번 NSC부터 위원으로 위촉돼 참석하게 됐다.

“설마 긴장되십니까?”

“긴장되긴요. 이런 자리에서 뻘소리하는 높은 양반들 있다는 소리 종종 들었는데, 어떤 놈들일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긴장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고위 공직자들 대부분 초면이었지만, 유지훈에게 긴장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저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혼 내줘야 할 놈이거나 혼내지 않아도 될 놈.

“대통령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비서실장의 소개와 함께 대통령이 착석하면서 회의가 시작됐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제1호위대군과 제2호위대군이 동해안으로 진격 중이라는 국가안보실장의 브리핑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됐다.

“지금 어디쯤 오고 있다고 합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답한 이는 국방부 장관이었다.

“10분 전에 보고받기로 동해안에서 300km 정도 떨어진 곳을 지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우리 영해로 들어오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20노트 정도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으니 7시간 정도면 영해에 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곳곳에서 침음이 쏟아져 나왔다.

대규모 함대가 대한민국 영해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대응 방식에 따라 전쟁으로 비화 될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에서 별다른 언급은 없었습니까?”

외교부 장관이 대답에 나섰다.

“일본 정부와는 연락이 단절된 상태입니다. 외무대신과 통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대신 일본 대사가 다녀갔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대화 없이 요구 사항만 전달하고 돌아갔습니다.”

외교부 장관이 일본 대사가 전달한 요구 사항을 공개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인정과 일제 침략기에 관한 언급 영구 중단, 억류된 일본 각성자들 석방과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허허허. 완전히 미친놈들 아닌가.”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일본의 망발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이광진 대통령은 대번에 미친놈들이라고 반응한 반면, 반대 견해도 적지 않았다.

“일정 부분 수용해서라도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얻은 게 적지 않습니다. 대국적인 관점에서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비각성자 각료 중엔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외교부 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 측의 요구 사항이 터무니없긴 하지만, 전쟁은 피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북한의 도발도 우려되고, 변종 몬스터 퇴치 또한···.”

“그럼 외교부 장관은 그런 적반하장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겁니까?”

“다는 아니더라도 들어줄 수 있는 건 들어주고, 나머지는 협상을 통해 정리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다른 의견을 구하는 듯 초인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원섭 초인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대한민국 초인 서열 1위 서원섭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전쟁에 관해 제가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대통령님의 뜻을 밀어붙이시되, 전쟁으로 확대될 여지는 없애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노련한 대답이었지만 앞뒤가 맞지 않았다. 바로 반박이 뒤따랐다.

“외람되지만 초인님의 말씀엔 어폐가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이었다.

“대통령님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려면 전쟁이 불가피해집니다. 전쟁으로 확대되는 걸 막으려면 저들의 요구 사항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일단 대통령님의 요구 사항부터 거둬들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이후에 협상을 통해 양측 요구 사항들을 정리해 나가는 게···.”

대통령이 손을 들어 이어지는 발언을 저지했다.

“그게 지금 대한민국의 통일부 장관으로서 할 말입니까?”

“죄송합니다만. 지금 북한의 도발 조짐도 엿보이고, 중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일본과 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실정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양보하시는 편이···.”

“통일부 장관!”

대통령이 탁자를 내리쳤다.

“일본 각성자 놈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망나니짓 한 거 장관은 모릅니까? 그래놓고 적반하장의 요구를 늘어놓는 거라고요! 그걸 들어주자니, 통일부 장관은 대한민국 국민 맞습니까?”

“적반하장인 것 맞지만, 국제 정세가 우리에게 유지하지만은 않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당장 북한과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국무총리께선 어떠십니까?”

국무총리가 머뭇거렸다.

심정적으로는 대통령에게 동의하지만,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다.

“대통령님 말씀이 백번 옳긴 합니다만. 전쟁으로 확대되는 건 막는 게 국민들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일본 놈들의 짐승만도 못한 행태에 굴복하자는 말씀입니까?”

“당장은 숙이는 모양새가 되더라도 추후 국제 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적절한 대가를 받아내는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국무총리의 발언 이후 반응은 확연히 둘로 나뉘었다.

강경 대응과 후퇴였다. 대체로 각성자들은 강경 대응, 비각성자 관료들은 후퇴로 기우는 양상이었다.

“하아. 내가 이런 인사들이랑 나랏일을 하고 있었다니···.”

대통령이 개탄했다.

초인들과 각성자들은 대통령에게 동조했지만, 딱히 의견을 내놓진 못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 때문이었다.

물론 위압감에서 자유로운 인물도 있었다.

당연히 유지훈이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일단 발언권부터 요구한 뒤.

“오. 유지훈 초인. 뭐든 말씀해보세요.”

대통령이 허락하자마자 손을 들어 몇몇 참석자들을 가리켰다.

“외교부 장관님, 통일부 장관님, 국정원장님···.”

지목된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지훈을 쳐다봤다.

“다들 몰카 동영상 있는 분들이죠?”

박순덕의 동영상이 소환될 시간이었다.

명치를 찔린 사람들이 참담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 이야기는 국민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겠네요. 달리 말하면, 지금 그 자리는 임시로 지키고 있는 셈이고요.”

“임시라고까지는···.”

“그런 분들이 국가의 중대사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나요? 국민들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 아닐까요?”

“우리가 이러는 게 다 국민을 위해서···.”

유지훈이 코웃음을 날렸다.

“국민이 아니라 본인들 자리보전을 위해서겠죠.”

“이거 보세요. 유지훈 초인!”

“아무리 초인이라도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닙니다!”

거센 반발이 밀려들었지만, 유지훈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다들 박순덕 덕분에 일본에 줄 하나씩 있잖아요. 이번 일만 잘 정리되면 한동안 순탄하게 해먹을 수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요! 우리를 친일파로 몰아가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당연하지. 친일파는 친일파로 몰아가야지.

유지훈이 대통령을 바라봤다.

“대통령님께 건의 드리겠습니다. 이번 NSC에 한해서라도 박순덕과 관련된 분들, 그러니까 일본과 이해관계가 있는 분들의 직무를 정지시켜 주십시오.”

“뭐요! 당치않은 말씀이오!”

좌중이 소란스러워졌다.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각료들도 유지훈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대통령은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댄 채 한숨을 내쉬었다.

유지훈이 가도 너무 갔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국무총리가 정리에 나섰다.

“유지훈 초인 말씀이 일리 있긴 하지만 다소 과격합니다. 어쨌거나 전쟁을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대려고 다들 여기 모이신 거잖습니까.”

“맞습니다. 유지훈 초인이 전쟁을 막을 방법을 제시한다면, 저도 미련 없이 자리를 내려놓겠습니다.”

“저도 외교부 장관님과 행동을 같이하겠습니다.”

급기야 일제히 유지훈을 걸고넘어지기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그 행렬에 대통령도 다리를 걸치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유지훈 초인에게 이런 말을 하게 돼 민망합니다.”

공식적인 회의 석상이긴 했지만, 평소와 다른 존댓말은 어색한 한편으로 불안감을 더했다.

“유지훈 초인뿐만 아니라 다른 초인 분들께도 드리는 부탁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나서 주십시오.”

“네? 뭘 어쩌라고요?”

유지훈을 비롯한 초인들이 전장에 뛰어들어 달라는 간청이었다.

현대식 무기로 맞불을 놓으면 전쟁이 될 테니, 초인들과 고레벨 각성자들이 적진에 뛰어들어 적당한 선에서 제압해 달라는 논리였다.

“그러니까 저더러 일본 자위대 함대에 올라타기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거기 가서 한바탕 하라고요?”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고위 장성 하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뛰어 들어왔다.

“일본 함대에서 영해를 향해 함포 사격을 했습니다. 언제든 동해안을 타격하겠다는 위협 사격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눈빛이 한결 간절해졌다.

뒤이어 판박이 표정이 되는 이윤성 그리고 국방부 장관.

준비된 동작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윤성만 대통령과 합작에 나섰겠지만, 이번엔 국방부 장관까지 동참한 양상이었다.

짜놓은 각본 속으로 유지훈을 몰아넣으려는 일종의 수작이었다.

수작에 넘어가 줄 때 주더라도 얻을 건 확실하게 얻어야 했다. 그러려면 선제적으로 공세를 취해야 했다.

뭔가 말하려는 대통령에 앞서 떨떠름한 한마디를 던졌다.

“이럴 땐 저부터 찾고 보는 겁니까?”

“찾을 사람이 유지훈 초인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러려고 저를 초인 자리에 앉히신 거네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대통령에 반대 입장이던 NSC 위원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의 중대 위기 앞에 모처럼 대동단결하는 모습이었다.

“뭐 좋습니다. 하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유지훈 초인.”

역시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NSC 위원들도 유지훈의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모습이었다.

‘아하! 대통령 영감님 이걸 노리고 판을 짰구나. 나를 압박하는 동시에 반대파도 판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도록 하려고···.’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대통령은 들어주겠지. 하지만 반대파가 반기를 들면 여의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은 대동단결해 유지훈의 조건을 수용할 준비가 된 양상이었다.

“우선 적의 함대에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스텔스 기능이 탑재된 소형 잠수정이 준비돼 있습니다.”

대답은 국방부 장관의 몫이었다.

역시 준비하고 판을 짠 양상이었다.

“다음으로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한 가지는 성공하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공 보수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지훈 초인은 성공 보수를 참 좋아하는군. 좋습니다. 또 하나는?”

“향후 대한민국 정부에 친일파는 발을 붙일 수 없게 해주십시오.”

친일파 퇴출 조건. 좌중이 술렁였다.

하지만 대놓고 뭐라 하는 인사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스스로 친일파임을 자임하는 격이 될 테니.

게다가 술렁임에 앞서 대통령이 덜컥 수용해 버렸다.

“좋은 말씀입니다. 유지훈 초인이 임무를 완수하는 순간부터 대한민국 정부에서 친일파는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순조롭게 논의를 마쳤다고 생각한 순간, 국방부 장관이 예상치 못한 걸림돌을 들고 나왔다.

“걸리지 않고 잠수정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거리가 100m 정도입니다. 유지훈 초인님 혹시 수영을 못하시는 건 아니겠죠?”

“네? 수영이요?”

맥주병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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