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걸은 여유로운 미소로 흘려냈다.
“프로젝트에 대해 부인하진 않겠습니다만. 저는 관여한 바가 없어서 아는 것도 없습니다.”
“이자걸 대표님이 깊이 개입한 사실 모르지 않습니다.”
“아. 제 말을 오해하신 모양이군요. 물론 프로젝트엔 깊이 개입했습니다. 다만 변종 몬스터는 저와 전혀 상관없는 이슈입니다.”
이자걸이 빙긋 웃었다가 부연해 말했다.
“다만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우선 변종 몬스터는 새끼 시절부터 함께 길러졌습니다. 야생성이 결여된 존재들이란 의미입니다.”
“그 말씀은···?”
“기존 몬스터들과 행동 양식이 다를 것이라는 뜻입니다. 야생성을 찾을 때까지는 숨어서 조심스럽게 다닐 가능성이 큽니다.”
“위험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장은요. 하지만.”
이자걸이 잠시 멈췄다가 강조하듯 말을 이어갔다.
“야생성을 찾는 순간 서식지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겁니다. 먹이사슬의 최상단에서 눈에 띄는 모든 걸 먹어치우겠죠. 게다가.”
“또 어떤···?”
“놈들은 각기 다른 개체들이지만 함께 자라면서 동질 의식이 생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말씀은···?”
“함께 다닐 것이라는 뜻입니다. 흩어져 지내다가도 서로를 찾아 모여들···. 모르긴 해도 그 일대 몬스터들의 보스 집단으로 군림하지 않을까 예상되는군요.”
“만일 지금 놈들이 모여 있다면···. 유지훈 씨가 위험합니다!”
이윤성이 경악했지만, 이자걸은 살랑살랑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걱정도 안 되십니까? 유지훈 씨랑 제법 친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물론 걱정됩니다. 다만 유지훈 씨 걱정은 아닙니다. 몬스터 녀석들 저랑 안면이 있는 놈들일 텐데, 싹 죽을 생각을 하니···.”
이윤성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동안 이자걸은 한층 어처구니없는 걱정을 이어갔다.
“저도 쫓아갔으면 혈석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을 텐데···. 재앙급 몬스터의 혈석이면 정말 유용할 텐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걱정말고 기다리시죠. 유지훈 씨는 좋은 소식과 함께 돌아올 겁니다.”
이윤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지훈도 그렇고, 이자걸도 그렇고, 정신세계가 남다른 족속들이란 생각이었다. 둘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와중에 불현듯 뭔가 뇌리를 스쳤다.
“혹시 일본 각성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싶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큰일입니다.”
이를 활용해 유지훈을 해치려 할 거라는 우려였다.
어쩌면 차례대로 작전에 나선다던 일본의 초인들도 유지훈이 향한 곳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본 초인들이 그쪽에 합류해서 유지훈 씨를 해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둘러 국가안전본부에 알려야겠습니다.”
이자걸 또한 근심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번엔 확실히 우려되는 대목이군요.”
하지만 방향은 달랐다.
“일본의 초인들과 각성자들이 대거 유지훈 씨 손에 죽게 되면 외교 문제로 비화 될 수도 있을 테니···. 아니구나. 몬스터 놈들 먹이가 됐다고 하면 크게 문제 될 건 없겠구나.”
이자걸이 벙찐 표정의 이윤성을 향해 재촉했다.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뭘 말입니까?”
“선수 칠 준비를 하셔야죠. 일본에서 항의 들어오기 전에 미리 대응책을 세워둬야 외교 문제로 확대되는 걸 방지할 수 있을 겁니다.”
“허허허.”
헛웃음만 나왔다.
뭐가 이렇게 다 쉽고 여유롭기만 한지···.
어쨌거나 근심 때문에 가슴이 답답한 상태로 왔다가 후련한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대표님 말씀대로 될진 모르겠지만, 적잖이 안심은 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다 추측입니다. 유지훈 씨를 알기에 가능한 추측이긴 합니다만.”
“유지훈 씨만 믿으면 된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믿음을 저버릴 사람은 아니니까요.”
작별 인사를 나누려 할 때 이자걸이 물었다.
“유지훈 씨가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군요.”
“뭔가 많은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긴 한데,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아! 엿 어쩌고 하셨던 기억은 나는군요.”
“하하하. 엿···.”
“저는 엿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사악한 놈들에게 엿을 먹이는 건 좋아합니다. 그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좋은 말씀입니다. 새겨듣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이윤성이 한 마디 남겼다.
“사무실을 참 독특하게 꾸며놓으셨군요. 밀림에라도 온 듯합니다.”
“하하하. 그런 이야기 종종 듣습니다.”
이윤성이 사무실을 떠나자 이자걸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보라야. 이제 나와도 된다. 손님 가셨다.”
열대 식물 뒤쪽에서 왕도마뱀 한 마리가 쪼르르 기어 나왔다. 폴짝 뛰더니 넙죽 이자걸의 품에 안겼다.
“아이고. 이 녀석 벌써 이렇게 컸구나. 며칠 지나면 안아주지도 못하겠네. 이제 내가 보라 등에 올라타야겠어.”
어느새 초등학생 덩치만큼 자란 왕도마뱀이었다.
말을 알아듣는지 내려오지 않겠다고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너도 여기 떠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고개를 절레절레.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
꼬리를 살랑살랑.
“엄마 보고 싶지 않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기만 했다.
“나 말고 네 진짜 엄마. 지금은 어디 좀 갔거든. 돌아오면 엄마 형 누나들이랑 같이 살 곳 좀 찾아봐야겠다.”
고개를 갸웃갸웃.
“다 같이 살려면 여긴 너무 좁거든. 그러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할 텐데···. 그 도깨비 같은 인간한테 혈석 하나만 달라고 졸라볼까?”
***
그 시각 도깨비 같은 인간은 변종 몬스터 출몰 현장에 도착했다.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감지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무라카미 소토가 다가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면 될 것 같군.”
“안 그래도 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변종 몬스터가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혹시 도망칠까 봐 추적을 감추려는 의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변종 몬스터를 발견했다.
“와! 한 마리가 아니었네?”
세 마리였다.
집채만 한 크기의 하이에나와 그보다 조금 더 큰 거대 악어거북 그리고 두 놈을 합친 덩치의 거대 하마였다.
“허허. 하나 같이 치악력이 센 놈들만 모여 있네? 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놈들이 여긴 왜 와 있는 거야?”
유지훈은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 봤기에 동물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하이에나와 악어거북, 하마는 치악력이 세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동물들이었다.
“그런데 저놈들 뭘 하고 있길래 우리가 왔는데, 보는 척도 안 하는 거냐? 무시하는 거냐?”
세 놈이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거대 곰이었다. 특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레벨 6의 몬스터를 잡아먹고 있는 광경이었다.
한국에서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었던 놈이었다. 외래종 변종 몬스터들이 토착종 몬스터를 잡아먹는 현장인 셈이었다.
“기다려야겠군.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으니···.”
유지훈이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났다.
무라카미 소토가 다가와 빈정대듯 말했다.
“왜? 두려운가?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건가?”
“귀가 잘 안 들려?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했잖아. 마지막 만찬이 될 텐데.”
“흥! 네놈도 먹이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 모양이군.”
무라카미 소토가 코웃음을 날린 뒤 청년단이 모인 곳으로 돌아갔다.
“기다리겠다. 너희들이 먼저 시작하면 우리도 가세하겠다.”
“무슨 소리야? 스타트는 네가 끊어야지. 아까 구경한 값은 네가 직접 치른다며?”
영훈길드를 나서긴 전 무라카미 소토가 남긴 말이었다.
청년단 2인자를 때려눕힌 장면에 대한 대가는 직접 치르겠다던.
“흥! 어리석은 녀석.”
“뭐야? 몬스터 퇴치할 때 앞장서서 뭔가 보여준다는 말 아니었어?”
무라카미 소토가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 이죽거렸다.
“어쩌지? 우리는 놈들을 퇴치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한국 땅에서 활개 치도록 놔둘 참이거든.”
“그럼 여긴 뭐하러 온 거야?”
사실 유지훈도 일본 각성자들의 의도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몰랐다는 듯 짐짓 놀란 시늉을 하며 물었다.
“너희들이 모조리 놈들의 뱃속에 들어가는 걸 보기 위해서지.”
“이런. 완전히 속았네. 까맣게 몰랐어.”
유지훈이 허망한 척 비실비실 웃더니 표정을 굳혔다.
“그럼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저놈들부터 싹 처치한 다음에 너희들까지 상대해 줄 테니까.”
“푸훗. 말했을 텐데. 우리는 저놈들이 한국 땅을 활개 치고 돌아다니게 할 거라고.”
“그래서 방해라도 하려고? 과연 가능할까? 너희 실력으로.”
그때 양쪽에서 두 무리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물론 가능하지. 소토 군과 청년단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혹시 몰라서 우리도 함께할 참이니.”
“때마침 세 마리가 한데 모여 있군. 일이 한결 수월하겠어.”
일본 각성자들이었다.
초인 둘이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것이었다.
일본 초인 서열 4위 다케미야 신지와 서열 7위 나쓰메 유이치였다. 각각 스무 명의 각성자들을 거느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무라카미 소토가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리모콘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너도 짐작은 했겠지만, 저놈들은 우리가 길러 풀어놓은 변종들이다. 뇌에 센서가 부착된 칩이 삽입돼 있지.”
무라카미 소토가 리모콘을 조작하는 시늉을 했다.
“이걸 누르면 놈들을 자극해서···.”
순간 유지훈의 손에 짙은 묵빛의 검이 형성됐다.
싸늘한 광휘를 뿜어내며 무라카미 소토의 팔을 가르고 지나갔다.
리모콘을 쥔 손이 팔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유지훈이 땅을 박차고 올랐다. 리모콘을 낚아챘다.
“이걸로 몬스터를 움직인다는 거지? 재미있는 물건이네.”
바닥에 툭 집어 던지더니 밟아서 박살을 내버렸다.
초인 둘을 번갈아 훑어봤다.
“둘밖에 안 온 거야? 기왕 오는 거 셋 다 오지.”
유지훈의 시선이 화무결을 향했다.
“무결아. 네가 한 놈 맡아라.”
“두 놈 다 맡으려고 했네만.”
“그럼 재미없지. 시합인데. 누가 빨리 처치하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지훈이 몸을 날렸다.
손에 쥔 심검이 찬란한 빛의 향연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사냥의 섭리 (3)
유지훈의 심검이 무시무시한 광휘와 함께 일본 서열 4위의 초인 다케미야 신지를 덮쳐갔다.
기습적인 공세에 다케미야 신지가 허둥지둥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당할 형국이었다.
곁에 있던 각성자들이 몸을 날려 막았다.
촤촤촤촤촥!
심검(心劍). 마음이 실린 검이 벨 수 없는 건 없었다.
베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걸 벨 수 있는 검이었다.
막아섰던 각성자들이 일제히 반으로 갈라졌다.
“이놈!”
그제야 다케미야 신지가 경황을 되찾았다.
한껏 마나를 끌어 올린 뒤 특성을 일으켜 유지훈을 향해 발출했다.
매지컬 썬더볼트. 의도대로 조절할 수 있는 번개였다.
크기와 모양, 움직임까지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기에 마법이라 불리기 손색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