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150)

지금 이자걸의 품에서 재롱을 떨어대는 꼬마 왕도마뱀은 당시 유지훈과 강은영이 조심조심 안아 나른 알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재앙급 몬스터의 새끼인 셈이었다.

“아! 그놈···. 벌써 이렇게 컸습니까?”

“알에서 나올 때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주먹만 한 알에서 팔뚝만 한 놈들이 나오더라니까요.”

“하긴···. 몬스터가 어련하겠습니까. 게다가 어미가 재앙급인데···.”

그러고 보니 집무실이 기괴하게 바뀌어 있었다.

대리석 바닥 대신 흙과 모래가 깔려있었고, 곳곳에 열대 식물들이 가득했다. 꼬마 왕도마뱀의 놀이터로 꾸며진 양상이었다.

“알을 깨고 나온 건 이놈 하나입니까?”

“아닙니다. 일곱 녀석 모두 건강하게 나왔습니다. 이놈은 막내입니다. 이름은 보라고요.”

“보라라고요? 그럼 나머지 녀석들은···?”

“예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그리고 이놈 보라. 일곱 빛깔 무지개입니다.”

“하아. 재앙급 몬스터 이름으로 잘 어울리네요.”

“하하하. 역시 유지훈 씨는 바로 인정하시는군요.”

이자걸이 영차 보라를 들어 올리더니 응접실로 향했다. 그나마 멀쩡한 공간이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보라를 내려놓고 유지훈에게 자리를 청했다.

보라는 유지훈을 빤히 쳐다봤다. 연신 친근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놈 봐라. 나를 알아보기라도 하는 거냐?”

“크르릉~.”

보라가 앞발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영리한 놈입니다. 말도 알아들을 정도라니까요. 어지간한 애완동물보다 훨씬 똘똘합니다. 그렇지? 보라야.”

“크렁크렁.”

“아빠 아저씨랑 잠깐 얘기 좀 할 테니까 혼자 놀고 있을래? 좀 있다가 아빠가 형이랑 누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게.”

“키링키링.”

보라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빨빨거리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제야 유지훈과 이자걸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래 봤자 주제는 여전히 거대 왕도마뱀 가족이었다.

“저놈 형제들은 어디 있습니까?”

“이 건물 안에 있습니다. 처음엔 다 여기 풀어뒀는데요.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서요. 지하 7층 주차장을 싹 털어서 녀석들 놀이터로 꾸며줬습니다.”

이자걸이 꼬마 몬스터들 양육에 대해 들려줬다.

막내 보라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약했기 때문인지 유독 이자걸에게 매달렸다고 했다. 지하 놀이터로 안 가려고 발버둥 쳐서 당분간 집무실에서 키우면서 가끔 형제들에게 데려다준다는 설명이었다.

“어미도 지하에 있는 겁니까?”

“아이고. 어미는 덩치가 산만 한 놈인데요. 지하에 들어갈 공간도 없습니다. 적당한 장소 찾아서 잘 모셔뒀습니다.”

유지훈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덩치가 너무 커서 지하에 들어갈 공간이 없다니.

유지훈의 기억에 어미 왕도마뱀은 10m 길이에 머리 크기가 성인 남자 키 정도였다. 비좁긴 하겠지만, 새끼들과 함께라면 그럭저럭 지하 주차장에서 지낼 수 있는 덩치였다.

“혹시 녀석한테 무슨 짓 한 겁니까?”

“하하하. 역시 유지훈 씨는 못 속이겠군요. 좋은 것 좀 먹이고 주사도 좀 놓고 했습니다. 그때 보셨을 때보다 부쩍 자랐습니다.”

유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자걸은 유쾌하게 웃으며 부연 설명했다.

“이게 다 쪽발이 놈들 자이언트 엿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미랑 떨어뜨려 놨는데 새끼 녀석들이 말은 잘 듣습니까? 반항하거나 그러진 않고요?”

“자연의 섭리라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이자걸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파충류나 조류는 알을 깨고 나온 다음에 가장 처음 본 성체를 어미로 여기는 속성이 있습니다. 녀석들이 가장 먼저 본 성체가···.”

“이자걸 대표로군요.”

“그렇습니다. 녀석들은 저를 어미로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 시점에 궁금증이 하나 추가됐다.

새끼들을 빼앗긴 어미의 반응이었다.

답은 사실상 동일했다.

“이 녀석들의 어미도 알을 깨고 나와서 처음 본 게 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놈도 저를 어미로 알고 있는 겁니다.”

이자걸은 정말 대단한 사내였다.

재앙급 변종 몬스터 거대 왕도마뱀의 어미인 동시에 향후 재앙급 몬스터로 성장할 꼬마 왕도마뱀들의 어미이기까지 하니···.

2대에 걸친 재앙급 몬스터의 어미에, 꼬마 왕도마뱀이 성장해 알을 낳으면 또 이자걸을 어미로 여기는 놈들이 대거 생겨날 테고···.

몬스터 제국의 주인이 될 날이 머지않은 이자걸이었다.

“이자걸 대표는 걱정이 없겠습니다. 재앙급 몬스터들을 자식으로 뒀으니 누가 덤빌 엄두나 내겠습니까?”

살짝 핀잔을 주듯 말했지만, 이자걸은 정색하며 받아쳤다.

“걱정이 왜 없겠습니까? 이 녀석들 먹여 살리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합니다. 하루에 자기 체중만큼 먹어치워서요.”

“네네. 돈 많이 버세요.”

몬스터에 관한 대화는 여기까지.

본래 방문했던 목적을 찾아갈 시간이었다.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쪽발이 놈들한테 자이언트 엿을 먹일.”

“유지훈 씨 덕분에 몹시 순조롭습니다. 걸림돌을 잘 제거해주셔서요. 지난번에 구한 혈석도 큰 도움이 되고 있고요.”

탁세련과 박순덕이 제거되고, 재앙급 몬스터의 혈석까지 여러 개 손에 넣었으니 이자걸의 계획은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되고 있었다.

“대통령님 대국민 담화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일본 놈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봤습니다. 아쉬운 대목이 있더군요.”

“뭐가 말입니까?”

“독도만 우리 땅이라고 확실히 하실 게 아니라 대마도까지 엮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실은 대마도가 우리 민족의 땅이라는 역사적 기록이 제법 많거든요.”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통령과 자리를 만들어주면 죽이 잘 맞을 이자걸이었다.

“이번에 이자걸 대표도 할 일이 많을 겁니다. 도움 주실 만한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저도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외무 회담이 1주일 후던가요? 각성자들은 오늘 입국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전세기를 타고 들어온다고 했는데.”

유지훈이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미 입국했을 겁니다. 숙소에 도착했을 것 같네요.”

“안 그래도 외무 회담에 맞춰서 뭔가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을 겁니다.”

“또 무슨 꿍꿍이입니까?”

“아시다시피 제가 깜짝 쇼를 좋아해서요. 그때 되면 아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깜짝 쇼라고 해도 유지훈에게, 또 한국에 나쁠 일은 아닐 터였다.

유지훈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한편으로 쪼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용건을 마치고 집무실을 나서려는데, 이자걸이 꼬마 왕도마뱀을 끌어안으며 제안했다.

“이 녀석 형제들 만나보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가면 반가운 사람도 있을 겁니다.”

지하 놀이터로 향했다.

역시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꼬마 왕도마뱀을 안고 있었지만, 놀라는 직원은 없었다.

반가워하며 녀석을 쓰다듬고, 간식을 주고, 함께 사진 찍고···.

이자걸만 이상한 줄 알았더니, 직원들도 정상은 아닌 듯했다.

아기 몬스터 보라는 생글생글 웃으며 직원들의 손길을 즐기고, 간식은 넙죽넙죽 받아먹고, 사진 찍을 때면 발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

“보라 녀석이 유독 직원들과 친합니다. 아예 회사 마스코트로 삼고 싶은데 너무 빨리 자라서···.”

지하 놀이터에선 보라보다 조금 더 큰 꼬마 도마뱀들이 뛰놀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우아한 여인.

이나연이었다.

“어머! 유지훈 마스터님 오셨네요!”

“마스터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그냥 오너입니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자걸이 꼬마 왕도마뱀 두 마리를 양손에 안고 나타났다.

“유지훈 씨 한 마리 키우고 싶은 생각 없으십니까? 잘 기르면 상당히 유용하게 활용하실 수 있을 텐데요.”

재앙급 몬스터를 애완 몬스터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영훈길드 식구들 말을 잘 들을지는 문제였다.

“데리고 키울 만한 사람이 없어서···.”

“잘 키울 수 있는 인력도 하나 딸려 보내겠습니다.”

“그럼 문제 될 게 없겠네요. 그런데 누구를···?”

“제 동생 나연이입니다. 영훈길드 구성원으로 받아주십시오.”

“으음···.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길드 마스터 강은영이 결정할 문제였다.

벌써부터 안된다며 길길이 날뛸 강은영이 눈에 훤히 보였다.

***

“자네 정말 너무했네. 우리 사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대통령의 호출에 청와대로 불려갔다.

이광진 대통령은 만나자마자 볼멘소리부터 늘어놓았다.

국민투표 때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유지훈의 선언 때문이었다.

“너무 하신 건 오히려 대통령님이십니다. 저하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초인 자리에 앉히셔서 제가 얼마나 욕을 많이 먹은 줄 아십니까? 국민 욕받이가 됐습니다.”

“으음. 큰 사람이 되려면 욕도 많이 먹고 그래야 하는 걸세. 성장통이겠거니 생각하고 넘겨버리게.”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이기도 했다.

“나 역시 요즘 평생 먹었던 욕보다 많은 욕을 먹고 있네.”

“그거야 대통령님이 잘못하셨으니까 그런 거죠.”

“그래. 어쨌거나 나는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기회라 여기고 있네. 기꺼이 국민들의 욕을 경청하고 있지.”

“그래서 제가 반대표를 던지려는 겁니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신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더 이어갔다가는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나저나 왜 부르신 겁니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초인 자리에 앉아서 쓸데없이 할 일만 많아졌습니다.”

“그래. 고생이 많네. 용건부터 간단히 말하겠네.”

대통령이 배석한 이윤성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윤성이 준비하고 있던 종이 석 장을 유지훈에게 건넸다.

넘겨보니 이번에 입국한 일본 각성자 명단이었다.

“명단은 지난번에 받아둔 게 있는데···. 인원이 많이 늘어났네요?”

“그렇지. 원래 200명이 오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50명을 늘리겠다고 명단을 보내왔네.”

이윤성이 부연해 설명했고, 대통령이 우려를 추가했다.

“대부분 레벨 5 이상의 고레벨 각성자들입니다. 사실상 일본 각성자 전력의 절반이 투입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놈들은 추가된 인원에게도 외교관 지위와 자유로운 이동을 요구해왔네. 일단 거절하긴 했네만···.”

“제멋대로 행동할 것 같다는 걱정이시군요.”

유지훈이 명단을 유심히 살펴봤다. 고개를 갸웃했다.

“추가된 인원은 대체로 레벨이 낮네요? 레벨3이 대다수에 기껏해야 레벨4 몇몇···. 레벨5 이상은 열 명이 채 안 되는데요?”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이윤성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에서 인위적인 특성 개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레벨3 이하 각성자도 특성을 보유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 봤자 마나의 수준은 그대로 아닙니까? 딱히 위협이 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떤 특성이냐에 따라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윤성의 낯빛이 한층 무거워졌다.

“뉴클리어 밤. 핵폭탄을 특성으로 심어 넣었다는 첩보가 입수됐습니다. 가미카제(神風). 핵폭탄을 탑재한 자살 특공대가 대한민국을 활보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미카제 특공대 (1)

가미카제(神風).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이 연합군 함대에 시도한 자폭 테러 전술을 의미한다.

폭탄을 실은 항공기로 연합군 군함에 충돌해 자폭하는 자살 특공대로 구성된 작전이었다.

당시 인명을 극단적으로 경시하는 최악의 작전이라고 일본 내에서도 극렬한 비난을 받았던 작전이기도 했다.

이윤성의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8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재현되는 미친 시도인 셈이었다.

“자네만 믿네. 이번에도 잘 해결해줄 수 있겠지?”

이광진 대통령이 간절한 눈빛으로 유지훈을 바라봤다.

“왜 또 접니까? 위험한 일만 생기면 저부터 찾고 보는 겁니까?”

“자네 능력이 너무 출중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부탁하네.”

사실 유지훈에게 딱 어울리는 임무라고 할 수 있었다.

소멸기에 반사기 그리고 재생 능력까지. 자살 특공대를 제압하기에 적합한 특성들을 골고루 보유하고 있으니.

다만 무슨 일만 생기면 유지훈부터 찾는 풍조는 시정이 절실했다.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었다.

“이번만큼은 안 되겠습니다. 저도 목숨은 하나밖에 없어요. 핵폭탄을 짊어지고 달려드는 놈을 저더러 어쩌라고···.”

일단 강하게 반발했다.

명단이 적힌 종이를 집어 던지듯 이윤성에게 돌려줬다.

세게 나갈수록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네. 이번 한 번만 자네가 애써주게.”

“SSG를 비롯한 모든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역량을 집결해 유지훈 씨를 지원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