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50)

“대단할 것도 없는 젊은 놈 상대하는 데, 초인이 둘씩이나 나설 필요가 뭐 있는가? 케이타 상은 잠시 쉬고 계시지요.”

키무라 츠요시가 유지훈에게 다가왔다. 위협적인 눈빛으로 노려봤다. 기세를 쏘아 보내는 양상이었다.

“방금 전의 선택을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

“왜? 강제로 제압해서 끌고 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걸 간절히 원하는 것 같으니 별수 없지 않은가.”

유지훈의 시선이 강은영을 향했다.

“지금 나를 납치하겠다는 거지?”

“그런 것 같네요.”

“대한민국 땅에서 쪽발이가 대한민국 국민을 납치하겠다는 거네?”

“바로 그거예요.”

“범죄 행위 같은데 맞나?”

“심각한 범죄 행위죠.”

“그럼 죽어야지.”

유지훈이 벼락같이 키무라 츠요시를 향해 팔을 뻗었다.

네 번째 특성 심검을 생성시켰다. 짙은 묵빛의 기운이 검의 형상으로 유지훈의 손에 쥐어졌다. 기세를 몰아 그대로 베어갔다.

키무라 츠요시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갑작스럽게 엄습해오는 빛의 검.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었다. 마나를 최대한 끌어 올려 왼팔에 실었다. 동시에 오른손을 내질렀다. 특성 썬더 스피어를 발동했다.

빛의 검을 왼팔로 막은 뒤 번개의 기운이 실린 창으로 유지훈을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죽일 순 없었기에 오른쪽 어깨를 겨냥했다. 한쪽 팔을 못 쓰게 하는 선에서 제압하려 했다.

하지만.

싸악! 빛의 검은 레벨 8의 마나가 실린 팔을 가르고 지나갔다.

여세를 몰아 승겅! 목까지 날려버렸다.

심지어 빠지직! 썬더 스피어가 고스란히 돌아와 키무라 츠요시의 가슴을 관통했다.

두둥실! 목이 공중으로 떠오른 가운데, 키무라 츠요시가 가슴에 커다란 구멍에 뚫린 채 훌쩍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츠요시 상!”

니시카와 케이타가 처절한 외침과 함께 몸을 날렸다.

특성 레이저 블레이드를 발동했다. 연달아 세 개를 발사하듯 내보냈다. 싸늘한 빛무리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유지훈을 향해 날아갔다.

레이저 블레이드를 쏘아 보내기 전 니시카와 케이타는 잠시 멈칫했다. 키무라 츠요시가 자신의 특성에 가슴을 관통당한 순간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다만 주저할 겨를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선제공격에 나섰다. 유지훈의 손에 쥐어진 검의 범상치 않은 위력을 직감한 탓이었다.

“오호! 신박한 특성인데!”

유지훈이 탄성을 토해냈다.

빛무리로 형성된 싸늘한 칼날. 자신의 특성인 심검과 유사한 성질로 보였다. 맹렬한 회전으로 위력을 더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일본 초인이 한국 초인보다 강하다는 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 봤자 아이고 의미 없었다. 어차피 반사기로 돌려주면 될 일이었다. 날아오건 말건 심검을 뻗어갔다.

“이, 이게 무슨···!”

니시카와 케이타가 경악했다.

레이저 블레이드가 돌아오고 있었다. 한층 강렬하게 회전하면서.

양팔을 교차해 막으려 했다. 팔뚝이 갈가리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가까스로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푸욱! 목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이물감에 고개를 꺾어야 했다.

심검이 니시카와 케이타의 목을 관통했다.

촤악!

유지훈이 심검을 뽑아냈고.

털썩!

니시카와 케이타가 그대로 주저앉아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아!”

야마구치 구니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초인 둘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하나는 세계 초인 서열 10위 안에 드는 절대 강자급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저놈이 초인님을 죽였다!”

일본 각성자 셋이 동시에 출수했다.

모두 키무라 츠요시의 휘하로 레벨 7의 각성자들이었다. 합격 훈련도 잘 돼 있었다. 합격을 펼치면 어지간한 초인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실 셋은 나카무라 형제의 복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상태였다. 마철진을 암살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것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다음 날 입국해 마철진의 뒤를 밟기로 돼 있었지만, 키무라 츠요시의 갑작스러운 호출로 입국 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어쨌거나 지금은 키무라 츠요시의 복수가 우선이었다.

“저놈들도 지금 나를 죽이겠다는 거지? 역시 범죄 행위고.”

유지훈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셋을 응시했다. 강은영에게 눈짓했다.

“저놈들은 은영이 한 번 처리해 봐.”

“내가요? 근처에 굴러다니는 칼이 없는데···.”

“내 거 빌려줄게.”

유지훈이 허공에 심검을 띄웠다.

“될지 모르겠네.”

강은영이 입맛을 다시더니 심검을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두둥실 떠오른 심검이 쐐액! 날아갔다.

“오! 되는데요!”

일본 각성자 셋의 가슴을 뚫고, 목을 날리고, 허리를 베어버렸다.

레벨 7 각성자 셋이 특성도 발동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 야심 차게 준비한 마철진 암살 계획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기도 했다.

“와! 좋은데요! 이 검 나 주면 안 돼요?”

“그 검으로 한 대 맞을래?”

이제 남은 건 야마구치 구니오 하나였다.

“이, 이게 아닌데···.”

사색이 된 채 슬금슬금 도망치려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버려 둘 유지훈이 아니었다. 훌쩍 뛰어올라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가려고? 아직 대화가 안 끝난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다, 다 끝났습니다. 유지훈 씨 뜻대로···.”

“내 뜻은 밝힌 적 없지 않나? 혼자 다 지껄이지 않았어?”

“그, 그게···.”

야마구치 구니오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유지훈이 준엄한 표정으로 다가가 야마구치 구니오의 어깨를 덥석 움켜잡았다.

“나, 나는 외교관 자격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대한민국 정부가 내게 외교관 지위를 부여했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위해를 가하면 국제법에 위배되는 범죄 행위가 됩니다.”

유지훈이 슬쩍 강은영을 돌아봤다.

“그렇다는데?”

“신박한 개소리 맞아요.”

“아닙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 정부에 연락하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강은영이 코웃음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공식 일정이 시작된 다음이고. 그쪽은 적용되기 전에 들어와 있는 거잖아.”

“그, 그게···.”

“그러게 왜 쓸데없이 일찍 기어들어 와서 개수작이야?”

강은영이 무서운 눈빛으로 야마구치 구니오에게 다가갔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말이지. 그쪽이 외교관 지위가 있든지 말든지 지금 상황에선 의미 없다는 거야.”

“그게 무슨···?”

“무슨 일을 당했는지 누가 알겠어.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었잖아. 지금 여기선 아무 일도 없었어.”

대답과 동시에 주먹이 날아갔다.

강은영이 원래부터 보유했던 특성인 아이언 피스트를 발동해 야마구치 구니오의 면상을 강타했다.

쾅! 콰드득!

야마구치 구니오가 얼굴이 박살 난 채 멀찍이 날아갔다.

유지훈이 다급하게 쫓아가 살폈다.

“죽었잖아! 야. 죽이면 어떡해!”

“죽을 짓 했으니까 죽여야죠. 유지훈 씨도 다 죽였잖아요.”

“이놈한테는 와서 무슨 짓을 할 건지 털어놓으라고 할 참이었어.”

“진작 말을 하지···.”

입을 비쭉이던 강은영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보니까 이놈 의지가 보통 굳건한 놈이 아닌 것 같았어요. 유지훈 씨가 몰아붙여도 입을 굳게 다물었을 거예요.”

“지랄을 하세요···.”

이제 박순덕만 남았다.

본래 목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박순덕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별로 놀라지도 않는 것 같네? 예상한 결과야?”

“예상했다기보다 점괘가 그렇게 나왔거든요.”

박순덕이 옆에 놓은 작은 테이블을 가리켰다.

가드 여러 장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왜 슬픈 점괘는 틀린 적이 없는지···.”

“유행가 가사는 집어치우고. 이제 우리 볼일 봐야지?”

박순덕이 쓸쓸하게 웃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저승 가면 멍 때릴 시간 많으니까 동영상이나 내놔.”

“동영상이라···.”

박순덕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유지훈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요?”

“뭐가?”

“나는 왜 저주를 받아야 했고, 능력을 얻어야 했는지. 또 세상을 증오하며 탐욕을 추구해야 했는지···. 사연이 참 기구하네요.”

그렇게 보이긴 했다.

어느 틈에 담요에 가린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무릎 밑으로 비어있는 상태였다. 불구가 된 신체. 사고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저주를 받았다는 의미는 누군가가 그녀를 불구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후 분신을 만드는 능력을 얻게 됐을 테고.

“마지막으로 내 사연 좀 들어주지 않겠어요? 털어놓고 떠나고 싶군요. 한을 남겨두고 싶진 않아요.”

박순덕의 눈빛은 간절했다.

받아들이는 유지훈의 표정은 단호했다.

“됐어. 안 들어.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이 한둘이야? 그렇다고 탐욕에 빠져 사는 이유는 안 돼. 동영상이나 내놔.”

“흐흐흐. 기어코 한을 남겨두게 하는군요. 그래요. 떠날 시간이네요. 동영상은···. 한과 함께 숙제도 남겨두는 것으로 하죠.”

박순덕이 기괴한 미소를 짓더니 푹 고개를 꺾었다. 이내 눈과 귀, 입과 코에서 피를 쏟아냈다. 그대로 숨을 거뒀다.

“이봐! 이렇게 가면 어떡해! 동영상 내놓으라고! 동영상 어딨어?”

강은영이 다가가 박순덕의 상태를 살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완전히 숨을 거뒀다. 소생의 여지는 없었다.

“하아. 이 아줌마 마지막 순간까지 속 썩이네.”

“그러게. 얘기 좀 들어주지 그랬어요.”

“온갖 나쁜 짓은 다 저질러놓고 궤변으로 자기 합리화하겠다는 거 아냐. 그런 이야기를 뭐하러 들어줘?”

“그래도 동영상의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니···.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상황이 돼 버렸네요.”

강은영이 콧잔등을 긁적이더니 박순덕의 집을 가리켰다.

“여기가 박순덕의 소굴일 테니, 동영상이 여기 있을 수도 있죠.”

“언제 다 뒤지냐. 무지하게 넓은 것 같은데···.”

“우리가 뒤질 필요 있나요? 변태 국장님한테 연락해서 수색 인력 총동원해달라고 해야죠. 포렌식 전문가까지요.”

“그러면 되겠네. 내가 전화할게.”

유지훈이 휴대폰을 꺼내려 하자, 강은영이 만류했다.

“잠깐만요.”

“또 왜?”

“대통령님의 중대 결심. 뭔지는 확인해 봐야죠.”

강은영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쯤 결심을 실행하려고 하실 거예요. 유지훈 씨가 박순덕 처리했다고 수색 인력 보내달라고 하면, 실행을 중단하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그렇겠군.”

“대통령님께서 어떻게 책임지는 행동을 하시는지는 보자고요. 그런 다음에 연락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하긴. 당장 동영상이 공개될 일은 없을 테니···.”

일단 수색 인력 동원 요청은 잠시 미루기로 뜻을 모았다.

강은영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대통령님께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신다고 하네요. 1시간 후에요. 기다렸다가 보고 연락하면 되겠어요.”

“끝나자마자 바로 연락하면 속 보이지 않을까? 대통령 영감님 눈치가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 시간 끌다가 연락한 거 눈치챌지도 몰라.”

“눈치 빠른 양반이 동영상 찍히는 건 왜 몰랐대요? 쓸데없는 걱정은 바이에른 뮌헨한테 맡겨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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