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150)

“이 자식이!”

청년이 인상을 구기며 스마트워치를 낚아채려 했다.

이자걸이 날렵하게 팔을 거뒀다.

“뭐하자는 거야!”

“당신들이 가져가게 할 수 없거든요. 그럴 거면 내가 왜 내 손으로 동생을 죽였겠어요?”

“뭐야! 죽고 싶어!”

“자웅이의 거룩한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이건 신화의 자산으로 남겨 둬야죠. 여기서 죽고 싶지도 않고요. 물론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말을 마친 이자걸이 씩 웃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기괴한 미소였다.

동시에 두 눈이 핏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사라진 혈안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서서히 몸집이 커졌다.

두 배 가까이 커졌을 때 이자걸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좀 더 놀아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많지 않군요. 서둘러야겠어요.”

쇠를 긁는 듯한, 지옥에서나 들려올 법한 기분 나쁜 음성이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자걸이 몸을 날렸다. 한 놈, 한 놈 붙잡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세 사내, 일본 내각 정보국 비밀 요원들이 마나를 끌어 올려 맞섰다. 이들은 레벨 5 각성자, 사력을 다해 특성까지 발동했다.

그래 봤자 괴물로 변한 이자걸 앞에선 종이 쪼가리나 다름없었다.

재앙급 몬스터의 아가리를 찢어버린 이자걸의 우악한 손길에 부질없이 찢겨나갈 뿐이었다.

“저, 저놈을 죽여라!”

오십에 달하는 야쿠자들이 일본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일본의 4대 야쿠자 조직인 이나가와카이의 정예 조직원들이었다.

외무회담을 앞두고 야마가토산업의 명을 받아 한국으로 건너왔다. 사전에 지저분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야마가토산업의 간부인 요다 노리모토가 와카가시라(若頭 부두목) 자격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시계가 부서지면 안 된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만, 요다 노리모토는 임무를 잊지 않았다.

이자걸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강탈하는 임무. 스마트워치가 열쇠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조직원들에게 강조해 주지시켰다.

안 하느니만 못한 지시였다. 무작정 도망치라고 지시해야 했다. 단 한 명만이라도 살아서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면 이자걸의 실체를 야마가토산업에 알릴 수 있을 테니. 이자걸을 섬에 가둬둘 수도 있을 테고.

스마트워치나 주의하라니. 절망으로 향하는 악수였다. 결사적으로 달려들어도 다 죽을 판국에 조직원들을 위축시키기까지 했다.

괴물 이자걸은 거침없었다. 닥치는 대로 잡아 찢었다. 일본도에 상처를 입어도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며 찢어발길 뿐이었다.

열 명 남짓 조직원만 남았을 때가 돼서야 요다 노리모토는 후회했다. 뒤늦게나마 상황은 판단했다. 조직원 하나를 조용히 불렀다.

“서둘러 섬을 빠져나가라. 배를 타고 돌아가서 야마가토산업의 각성자 그룹에 이 사실을 알려라.”

“와카가시라께서는···?”

“나는 저놈이 섬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요다 노리모토가 비장한 표정으로 이자걸을 노려봤다.

그는 레벨 5의 강화 계열 각성자였다. 물론 스스로도 이자걸의 상대는 아님을 알고 있었다. 다만 마나를 최대한 끌어 올려 특성을 발동하면, 부하가 섬을 빠져나갈 시간은 확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특성을 발동했다. 전신이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특성이었다. 부하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는 괴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쓰러뜨릴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붙들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부하가 섬을 빠져나가기만을 바라며.

쿵! 놈의 허리를 들이받았다.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빙긋 소름 끼치는 미소와 함께 그를 내려다봤다.

“부질없는 기대 버리도록 하시지요.”

콰득!

이자걸이 요다 노리모토의 머리를 잡아뽑았다. 특성을 발동한 신체였지만, 의미 없었다. 무 뽑히듯 뽑혔다.

이자걸이 잡아뽑은 머리를 던졌다. 향한 곳은 필사적으로 달리는 조직원이었다.

빠악!

머리가 도망치던 조직원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강철처럼 단단해진 머리였기에 조직원은 뇌수를 흩뿌리며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즉사.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 요다 노리모토의 눈에 들어온 마지막 장면은 도망치던 부하의 뒤통수였다.

‘내가 왜 저놈한테 날아가는 거지?’

끝이었다. 무인도에 살아있는 사람은 이자걸 하나였다.

물론 생명체는 남아 있었다. 이자걸은 섬에 남은 생명체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야마가토 놈들의 막돼먹은 장난질도 끝내야겠지.”

발길이 향한 곳은 변종 몬스터들이 갇힌 우리였다.

***

추가된 특성의 놀라운 효능 (2)

10분여 시간이 흘렀다. 약효가 지속되는 시간이었다.

이자걸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온몸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였다. 적잖이 지쳐 보였다.

“시간이 부족했군. 역시 시간을 늘리는 게 관건이겠어.”

주위엔 시산혈해가 펼쳐져 있었다.

그를 납치해 끌고 온 무리 50여 명은 사정없이 찢어 발겨진 시신의 모습이었다. 역시 두 조각, 세 조각으로 잡아 뜯겨진 몬스터들의 사체도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지옥도라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리는 현장이었다.

이자걸은 씁쓸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저놈들은 어떻게 한다···.”

아직 몬스터 두 개체가 남아 있었다.

우리에 갇혀 있던 다섯 개체 중 셋은 처치했지만, 남은 둘에게 손을 쓰기 전에 약효가 떨어져 버렸다.

놈들은 그동안 약물로 통제된 상태로 우리에 갇혀 있었지만, 이자걸이 제거에 나선 사이 통제에서 벗어났다. 체내에 지닌 혈독이면 강철 우리 정도는 얼마든지 녹이고 탈출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이자걸이 손을 쓰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약은 남아 있었지만, 연달아 투약했을 때 위험에 대해선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다. 신체가 견뎌낼 수 있을지.

‘위험을 무릅써야 하나···.’

야마가토산업의 만행이긴 하나, 그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어쨌거나 실험과 연구를 진두지휘한 건 자신이었으니.

야마가토산업에, 나아가 일본에 빅엿을 먹이더라도, 놈들이 대한민국에 싸지른 똥은 치우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약을 만지작거렸다. 눈 딱 감고 입에 털어 넣을까 고민하는 찰나 인기척이 느껴졌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투약해야 하나 눈매를 좁히며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고~. 제대로 거하게 한 건 하셨네요.”

이자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도깨비 같은 분인 줄은 알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오시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유지훈이었다.

미모의 여인, 강은영과 함께 오만상을 찌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납치된 것 같다고 해서 찾아 나섰더니, 납치하신 거였네요.”

“하하하. 납치당한 것까진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시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이자걸 대표가 어디서 뭐 하는지 다 내 손안에 있다고요.”

물론 강은영의 새로운 특성 덕분이었지만,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압박하는 쪽을 택했다.

이자걸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흐음···. 들은 기억은 없지만, 그런 것 같군요.”

참상을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강은영이 이자걸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였다.

“이자걸 대표님. 늦었지만 고맙다는 인사 드릴게요. 지난번에 구해주신 거요. 그 자리에서 드렸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었어요.”

“안 그래도 강은영 국장님이랑 인사 나누고 싶었는데, 먼저 가버리셔서 섭섭했습니다.”

“어머! 제가 국장 된 거 아시는구나.”

“그럼요. 제가 국장님한테 지대한 관심이 있거든요.”

이자걸의 능청스러운 입담이 이어지려는 찰나, 유지훈이 단호하게 잘랐다. 남은 두 마리 몬스터를 가리켰다.

“시끄럽고요. 쟤네들은 뭐예요?”

“아. 저놈들은···.”

이자걸이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 처치하지 못한 사정을 설명했다.

“안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놔두고 가면 섬을 탈출할 가능성이 커서요.”

유지훈이 남은 두 마리 몬스터를 유심히 바라봤다.

곤충 한 마리와 파충류 한 마리였다. 곤충은 5m 크기의 바퀴벌레였고, 파충류는 10m 길이는 됨직한 코모도 도마뱀이었다.

거대 도마뱀은 우리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지만, 거대 바퀴벌레는 이미 독액을 뿜어내며 우리 쇠창살을 녹이고 있었다. 탈출은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유지훈의 시선이 향한 곳은 강은영이었다.

“어떻게 좀 해봐.”

“내가요?”

강은영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특성 뒀다가 어디에 쓰려고? 주위에 쓸 만한 칼도 많네.”

진짜 많았다.

야쿠자들이 휘두르던 일본도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아. 되려나? 한 번 해보긴 할게요.”

그다지 자신 없는 말투였다.

새로운 특성을 얻긴 했지만, 강은영의 마나 수준은 여전히 레벨 5에 머물렀다. 초특급, 어쩌면 재앙급 몬스터를 제압하긴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강은영은 도전해보고 싶었다. 서너 단계 상위 레벨 몬스터를 상대로 자신의 특성이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지.

사방에 널린 일본도들을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하나, 둘, 셋···. 열 자루의 일본도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처음 얻었을 때는 일곱 자루였는데, 무림에서 화무결의 지도를 받으며 단련한 덕분에 열 자루까지 늘렸다.

쐐액!

열 자루의 일본도가 무서운 기세로 거대 바퀴벌레에게 날아갔다.

카강캉캉캉캉캉!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거대 바퀴벌레를 공격했지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다섯 자루는 부러지기까지 했다.

강은영이 다시 특성을 발동하려 했지만, 유지훈이 만류했다.

“됐어. 무리야. 레벨의 벽을 넘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유지훈이 나설 차례였다.

강은영은 싹싹하게 뒤로 물러섰다.

이자걸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유지훈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바퀴벌레 껍데기가 원래 그렇게 단단했나?”

유지훈이 놈을 상대할 방법은 소멸기와 반사기 두 가지였다.

소멸기를 작렬시켜 놈의 원천적인 위력을 제거하면, 단단한 껍데기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소멸기를 작렬시키기까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진 임정명이나 마철진 같은 초인 아니면 유지연과 협력의 덕을 봤다. 이를테면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셈이었다.

지금은 협력자가 마땅치 않았다. 강은영을 활용할까 싶었지만, 레벨 차이가 현격했다. 약을 빨지 않은 이자걸은 일반인이었고.

그렇다면 반사기? 반사기가 몬스터에게도 통할까?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유지훈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21세기로 귀환하면서 새롭게 얻은 특성을 확인할 순간이었다.

‘자. 무엇이냐. 정체를 드러내라.’

유지훈이 거대 바퀴벌레를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체내에 거세게 몰아치는 기운에 몸을 맡겼다. 본능을 좇아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손을 타고 서서히 생겨나는 장엄한 형체. 검이었다.

거무스름한 광채를 뿜어내는 검. 찬란한 빛이 무리를 이뤄 형성한 검이었다. 새롭게 추가된 특성은 다름 아닌.

“심검(心劍)이었군.”

무심한 한 마디와 함께 유지훈이 걸음을 옮겼다.

거대 바퀴벌레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천천히, 그다지 힘들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쇠창살을 독액으로 녹이고 우리를 빠져나오려던 거대 바퀴벌레가 날렵하게 뒤로 물러났다.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지독스레 빠른 몸놀림이었지만, 느릿하게 그어 오는 검의 사정권을 벗어날 순 없었다.

싸악!

단 일 검에 거대 바퀴벌레의 몸통이 반으로 갈라졌다.

“아!”

“우와!”

이자걸과 강은영에게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유지훈의 시선은 마지막 남은 몬스터, 거대 도마뱀을 향했다. 다시금 빛의 검, 심검으로 놈을 벨 태세였다.

“잠깐만요!”

이자걸이 유지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뭡니까?”

“저 녀석 제가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이자걸이 거대 도마뱀을 가리켰다.

여전히 우리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끄응끄응. 신음을 흘리며 유지훈과 이자걸을 번갈아 쳐다보는 모습이었다. 물기 어린 눈이었다.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저 녀석 새끼 때 제가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왠지 저를 알아보는 것 같아서요.”

유지훈이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이자걸이 거대 도마뱀에게 다가갔다. 주둥이가 이자걸의 어깨높이까지 오는 육중한 체구였다.

이자걸이 다가가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왠지 눈빛에 웃음을 머금은 듯하기까지 했다.

“나를 기억하는 모양이구나.”

이자걸이 콧잔등을 쓰다듬자, 놈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콧김을 뿜어냈다.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놈을 쓰다듬던 이자걸의 눈이 커졌다.

“너. 알을 품고 있구나?”

거대 도마뱀의 복부 쪽에 희끄무레한 물체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알이었다. 다 해서 일곱 개였다.

알을 품고 있었기에 미동도 없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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