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의도의 충돌
[탁세현 초인이 합동 수색 작전 어떠냐고 연락 왔어요.]
국회의원 김선규의 기업사냥 일당을 박살 낸 다음 날 강은영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탁세현은 합동 수색 작전을 제안해왔다. 도망친 변종 몬스터 거대악어를 찾아내 퇴치하자는 뜻이었다.
“수색? 출현했을 때 처치하는 게 아니고 찾아내자는 거야?”
[그게 더 국민에게 안전하지 않겠냐는 논리예요.]
“어디 있는지 알기는 하대?”
[강원도 평창 쪽 산간 지대라고는 하는데, 정확한 위치까지는···.]
“국가안전본부에서는? 따로 파악한 건 없고? 차원 에너지 변동이라든가, 목격담이라든가.”
[강원도 산간 지대에서 차원 에너지 변동은 수시로 포착돼요. 몬스터들이 장악한 지역이니···. 특이 사항은 없어요.]
브레이크 등의 이유로 던전을 빠져나온 몬스터들은 각성자들과 격전을 벌였다. 일부 퇴치됐지만, 각지로 흩어져 영역을 구축하기도 했다.
강원도 산간 지대가 몬스터들의 주요 서식지였다. 각성자들이 수차례 대규모 퇴치 작전을 펼쳤지만, 완전한 제거는 불가능했다.
몬스터들의 주요 서식지 주변으로 고압 전류가 흐르는 안전망을 설치하는 게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설악산이나 오대산, 치악산 등 강원도의 명산들이 몬스터의 차지가 됐고, 그 일대 거주민들은 터전을 버리고 이주해야 했다.
“탁세현 영감 재주가 좋나 보네. 국가안전본부에서도 못 찾아낸 놈 위치를 다 알아내고.”
[초인들은 에너지 감지 능력이 남다르긴 해요. 그중에서도 탁세현 초인은 특출난 편이고요. 어떻게 할래요?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돼요.]
“아니야. 국민을 위해 좋은 일 하는 건데, 거절할 순 없지.”
탁세현과 연합 작전을 진행하게 됐다.
JH엔터테인먼트 강재현 회장과 국회의원 김선규를 응징한 직후였다. 아무래도 다른 의도를 지니고 있을 터였다.
물론 유지훈에게도 탁세현을 대하는 데 있어서 다른 의도는 있었다. 의도의 충돌. 누가 꺾이는가의 문제였다.
***
이튿날 뜻하지 않은 방문객이 영훈길드로 찾아왔다.
오랜만에 유지훈이 영훈길드에 들른 날이었다. 연합 작전을 앞두고 준비할 사안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준비에 한창일 때 대형 허머 한 대가 영훈길드 입구에 도착했다. 호리호리한 체구의 중년 사내가 내렸다.
탁세현이었다. 짧은 머리에 각진 용모,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호리호리하지만 탄탄한 몸매. 전반적으로 강인한 인상이었다.
지금까지 유지훈이 마주한 이들 중 분위기만으로는 가장 강렬했다. 무림으로 치면 천마에 비견될 정도. 물론 그 정도로 강하진 않겠지만.
“합동 작전을 수락했다고 들었네.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겠네.”
길드로 들어선 탁세현이 악수부터 청했다.
유지훈은 잠시 갈등했다. 여기서 소멸기를 작렬시킬까.
일단 보류했다. 진짜로 거대악어를 퇴치하려는 의도로 찾아왔을 수도 있을 테니. 가능하면 거대악어는 처치하고 봐야 했다.
“제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너가 여기 없으면 어디 있겠나?”
“저 한동안 여기 안 나왔었거든요. 혹시 스토킹하셨습니까?”
“하하하. 그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아닐세.”
탁세현에게 일행은 없었다.
혼자 왔지만, 단순히 인사차 방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작전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인상이었다.
“설마 지금 바로 가자고 찾아오신 건 아니죠?”
“그 설마가 맞네. 놈이 언제 민가를 덮칠지 알 수 없지 않나. 행적이 파악된 이상 시간 끌 이유가 없을 듯하네.”
“그런데 혼자 오셨습니까? 협력할 인원은···. 현장에서 합류합니까?”
탁세현이 살짝 눈매를 좁히더니 빙긋 웃었다.
“자네와 나, 단둘이 가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군. 일단 수색부터 해야 하니 어중간한 녀석들 데리고 가봐야 거추장스럽기만 할 걸세.”
“그럴 수도 있겠네요.”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건 인근 민가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인데, 놈은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네. 우리 둘만 함께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 걸세.”
탁세현은 그동안 유지훈이 몬스터를 퇴치한 과정을 숙지했다고 했다. 다수와 협력한 작전이라기보다 초인급 강자와 적절한 협공으로 처치한 결과들이었다.
탁세현 또한 이동에 장점이 뚜렷한 특성인 플래시를 보유한 만큼, 소수 정예와 함께할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유지훈으로서도 수긍할 만한 대목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유지훈을 향해 탁세현이 자신의 허머를 가리켰다.
“준비는 다 돼 있네. 자네는 몸만 와도 충분할 걸세. 물론 병장기 정도는 챙겨야겠지.”
“에이. 그렇다고 칼 한두 자루랑 몸만 갈 수 있나요. 준비 좀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유지훈이 사무실로 들어가 준비를 마무리했다.
만일에 대비해 몇 군데 전화를 돌렸고, 향후 대응을 당부했다. 장검과 여분의 단검도 챙겼다.
“가시죠. 운전은 영감님이 하실 겁니까?”
“나는 내 차 키를 남에게 맡기지 않네.”
탁세현의 허머가 강원도 평창으로 출발했다.
***
가는 동안 유지훈과 탁세현은 대체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무거운 공기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유지훈의 입가엔 세 단어가 맴돌았다. 구체적으로는 세 이름이었다. 크리스털 박, 박수정, 박순덕.
“박순덕이랑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묻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애써 참았다.
탁세현 또한 비슷한 눈치였다. 크리스털 박의 주위를 들쑤시는 이유를 묻고 싶지만, 꾹 눌러 참는 인상이었다.
유지훈은 묵묵히 탁세현을 관찰했다. 인상과 분위기 그리고 허머 내부에 설치된 첨단 장비들.
“영감님은 놈의 행적을 어떻게 파악하셨습니까? 국가안전본부에서도 제대로 쫓지 못하던데요.”
“괜히 초인이 아닐세. 국가안전본부엔 그만한 인적 자원이 없으니 한계가 뚜렷할 뿐이지.”
탁세현이 유지훈을 흘깃 보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내 차에 설치된 장비들도 국가안전본부의 시스템을 능가하네. 차원 에너지 감지에 관해서는 대한민국에서 내 차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지. 물론 내 감지력이 더해진 결과이긴 하네만.”
유지훈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차원 에너지의 변동을 추적해서 간다기보다는 그냥 목적지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내비게이션에 정확히 주소를 찍고.”
탁세현의 눈매가 살짝 굳어졌다가 너털웃음으로 이어졌다.
“예리하군.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야.”
탁세현이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유지훈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묘한, 조금은 비굴한 미소였다.
“자네 나와 손잡지 않겠나? 자네와 내가 힘을 합치면 대한민국 각성자의 위상을 세계 으뜸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영감님이랑 손을 잡아서 뭘 어쩌자는 말씀이죠?”
“일단 이 땅에서 몬스터를 싹 몰아내고, 국내 각성자들의 능력을 끌어올리도록 힘을 쏟는 거지. 자네에게 엄청난 권력이 주어질 걸세.”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일단 저는 각성자가 아니라서요. 각성자의 능력 같은 건 관심 없고요. 조용히 평화롭게 살자 주의라서요. 권력 같은 건 혐오합니다.”
“자네가 평화주의자라고? 신화를 무너뜨린 게 자네 아니었나?”
“조용히 살고 싶은데, 눈앞에 부조리가 얼쩡거리지 뭡니까. 치워버려야죠. 평화롭게 살기 위해 뭐든 하는 겁니다.”
탁세현의 입가에 쓴웃음이 흘렀다. 아쉬움을 숨긴 웃음이었다. 그리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유지훈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탁세현은 그를 회유하려 했고,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남은 건 어색한 침묵이었다.
유지훈 역시 아쉬웠다. 초인으로서 탁세현은 대한민국에 필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부조리의 편에 선 이상, 그것도 부조리의 정점을 비호하고 있는 이상, 제거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모르긴 해도 탁세현 또한 유지훈을 제거 대상으로 여길 터였다.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유지훈의 확고한 원칙, 도발은 확실히 응징한다는 원칙이 적용될 시점이었다.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 탁세현이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도록 하지.”
높은 산 사이로 넓은 호수가 펼쳐진 곳이었다.
탁세현은 호수가 보이는 풀숲 뒤편에 허머를 주차한 뒤 호수 쪽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유지훈은 뒤를 따르며 기감을 끌어올렸다. 거대한 기세가 감지됐다. 무림으로 치면 초절정의 말엽, 어쩌면 화경의 고수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기운이었다.
탁세현이 손을 들어 호숫가 커다란 바위를 가리켰다.
“제대로 찾아왔군.”
있었다. 거대악어였다.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주둥이만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주둥이만 3m에 달했다. 어림잡아 덩치가 15m는 넘을 것 같았다. 잠을 자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럼 우리 둘이 한 건 해볼까?”
탁세현이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호수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거대악어가 놓칠 리 없었다. 눈을 뜨더니 천천히 호수 밖으로 기어 나왔다. 크르륵 괴성과 함께 기세를 마주 뿜어댔다.
“꼭 그렇게 우리가 온 걸 알려야 했습니까? 재워놓고 처치하면 더 쉬웠을 텐데요.”
“나는 누구처럼 마나 없이 재앙급 몬스터를 상대할 재주는 없네.”
탁세현이 검을 뽑더니 거대악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내가 먼저 공격하겠네. 자네는 적당한 기회를 봐서 합류하게.”
탁세현이 특성 플래시를 발동시키며 검격을 전개했다. 순간 이동에 가까운 빠른 몸놀림에 더한 강력한 검공이 거대악어에게 작렬했다.
“크아악!”
거대악어가 주둥이를 벌려 무시무시한 이빨로 반격에 나서는 한편, 꼬리를 휘둘러대며 압박을 가하려 했다.
탁세현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움직임으로 거대악어의 반격을 피했다. 쉴새 없이 거대악어의 몸통에 검격을 꽂아댔다.
거대악어의 전신이 상처로 뒤덮였다. 비명을 질러대며 역습에 나섰지만, 탁세현은 신묘한 몸놀림으로 여유 있게 피했다.
‘대단하군. 당장 치명상은 입히지 못하더라도, 상처가 쌓여 출혈이 많아지면 충분히 처치할 수 있겠어. 문제는 혈독인데···.’
역시나 거대악어가 혈독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주둥이가 아니었다. 나오는 곳은 다리였다. 사방으로 분수처럼 쏟아냈다. 탁세현의 움직임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유지훈이 나설 때였다. 등에 올라타 소멸기를 작렬시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혈독을 맞더라도 재생 능력에 맡기면 될 터였다.
몸을 날리려는 찰나, 뭔가 이상했다. 거대악어 주위에 있어야 할 탁세현이 눈앞에 있었다.
푹! 검이 유지훈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했다.
“이, 이게 무슨···?”
“안타깝게 됐네.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었는데···.”
탁세현이 검을 뽑고는 씁쓸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자네는 저놈의 먹이가 될 걸세. 재앙급 몬스터의 희생양···.”
“아악! 안돼!”
그때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여인이 달려왔다. 강은영이었다.
탁세현이 강은영에게 검을 겨눴다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재앙급 몬스터의 희생양이 둘이 되겠군.”
탁세현이 플래시를 발동해 사라졌다.
강은영은 오열하며 유지훈을 부둥켜안았다. 꿀럭꿀럭 피를 쏟아내는 상처를 꾹 눌러 지혈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는 사이 거대악어가 주둥이를 벌린 채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둘을 씹어 삼킬 기세였다.
절망적인 상황. 강은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유지훈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였다.
그때.
우당탕탕! 퍽! 퍽!
“크아악!”
“꽤액!”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강은영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전신이 시뻘건 괴인이 거대악어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키가 3m는 족히 넘을 법한 거인이었다.
눈빛도 핏빛이었다. 꿈틀대는 푸르스름한 핏줄이 사뭇 흉흉했다. 거대악어의 주둥이를 찢어버릴 듯 움켜쥔 채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뭐지? 저건. 신종 몬스터인가? 왜 지들끼리 싸우는 거지?’
궁금할 겨를이 없었다.
유지훈의 당부가 떠올랐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17호 던전으로 가라는. 귀환한 유지훈이 처음 발견된 곳이었다.
들을 땐 무슨 의미일까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리로 데려다 달라는 뜻 같았다.
일단 유지훈을 들어 업고 달렸다. 차에 던져 놓고 필사적으로 액셀을 밟았다. 유지훈의 호흡은 진작에 사라진 상태였다.
17호 던전에 도착하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란 기대에 미친 듯이 속도를 높였다. 둔턱을 넘는 과정에서 차가 붕 떴다가 우당탕탕 내려앉았다.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좀 가. 단속 카메라에 세 번쯤 찍힌 거 알지?”
“뭐, 뭐야! 안 죽었어요?”
“왜? 죽길 바라기라도 한 거야?”
“심장을 찔렸잖아요. 맥도 안 잡히고, 호흡도 멎었는데···.”
유지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승사자가 거부했어. 탁세현 그놈부터 먼저 보내래.”
“으아앙! 유지훈 씨 죽은 줄 알았잖아요.”
강은영이 눈물을 쏟아냈다.
유지훈이 눈물을 닦아주면서 빙긋 웃었다.
“포근한 게 좋던데? 푹신하기도 하고. 가끔 얼굴 묻어야겠어.”
“뭐예요! 내 손에 죽고 싶어요!”
가슴에 파묻혀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그전에 다녀올 곳이 있었다. 탁세현을 저승사자에게 보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장소였다.
***
절대 강자로 향하는 통로
유지훈이 탁세현과 합동 작전을 위해 출발하기 직전, 강은영은 전화를 받았다. 단둘만의 작전이라는 유지훈의 연락이었다.
“괜찮겠어요? 최금강 마스터님에게라도 알릴까요?”
[아니야. 그럴 필요까진 없고. 내 휴대폰 위치추적 가능하지?]
“휴대폰 위치추적이야 뭐···. 늘상 하던 일이죠.”
[그럼 은영만 적당히 거리 두고 따라와. 와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17호 던전으로 가면 돼.]
“17호 던전이면···. 유지훈 씨 귀환해서 처음 발견된 곳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