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타깃 (2) (무료 마지막)
“형님. 갑자기 회사엔 어쩐 일이십니까? 모레쯤 나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고에 없던 김선규의 방문에 오성정밀 대표 최철기가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야간 골프 라운딩을 나가려던 참이라 당황한 탓이었다.
“아직도 우리가 형사랑 건달 사이냐? 형님이 뭐냐? 의원님이라고 해. 아니지. 여긴 회사니까 회장님이라고 불러.”
“우리끼린데 뭘 호칭을 따지고 그러십니까.”
“그런데 너 복장이 그게 뭐야? 어디 놀러 가냐?”
“놀러 간다기보다 비즈니스 때문에···”
김선규가 버럭 했다.
“야! 너 이 회사 대표야. 근무 시간엔 자리 좀 지키라고 했잖아. 이사 놈들은 어디 있어? 다 놀러 간 거야?”
“다들 비즈니스가 있어서···.”
“다 불러들여!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최철기가 입이 댓 발만큼 튀어나온 채로 전화를 돌렸다. 당한 거 돌려주기라도 하듯 호통을 쳐대더니 김선규에게 고개를 숙였다.
“10분 내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작업은 사흘 뒤에 시작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다만 좀 더 철저하게 점검해야 할 것 같다. 주시하는 눈이 예사롭지 않아서···.”
최철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뼉을 쳤다.
“와! 형님 또 줄 하나 잡으신 겁니까? 어디까지 올라가시려고···.”
“시끄럽다. 형님이라 하지 말라니까. 그나저나 자료는 잘 준비해 뒀지? 핵심 기술 관련한 자료는 확실해야 한다. 자금 관련한 서류들도 문제없이 정리돼야 하고.”
“그런 거 제가 본다고 뭐 압니까. 변호사랑 회계사가 알아서 잘 했을 겁니다. 걔들도 오라고 했으니 오면 물어보십쇼.”
“철기야.”
김선규가 나직한 어조로 최철기를 불렀다. 사뭇 무거운 눈빛이었다.
“너 이제 건달 아니다. 언제까지 건달 행세나 할래. 이제 사업가처럼 보이기라도 해야지. 변호사나 회계사한테 맡겨 놓기만 할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봐.”
“봐도 모르는 거 보면 뭐 합니까. 그냥 믿고 맡겨 놓는 게 더 잘 돌아갈 겁니다. 험상궂은 놈이 뒤에서 보고 있으면 긴장해서 될 일도 안 될 텐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철기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할 줄 아는 점에서 나름 괜찮은 보스였다. 적어도 모르는 걸 아는 척해서 일을 그르친 적은 없었다.
다만 김선규의 생각은 달랐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꼼꼼히 챙겨주길 바랐다. 모르더라도 지켜보는 것만으로 아랫사람을 압박할 수 있다고 여겼다.
“모르면 배울 생각이라도 해라. 배우는 척이라도 하든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 자리 앉아 있으면 아랫것들이 멸시해.”
“멸시요? 그럼 제가 그 새끼를 가만히 두나요. 확 묻어버리지.”
“에휴. 내가 너를 데리고 무슨 말을 하겠냐.”
그때 최철기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형님. 그 핵심 기술이라는 거 말입니다.”
“어. 그게 왜?”
“그거 꼭 일본에 넘겨야 합니까? 제가 중국에서 비즈니스 하는 놈을 알게 됐는데요. 두 배 쳐준다고 자기한테 넘기라고 하던데요?”
“뭐?”
김선규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잘 말하면 세 배까지도 받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쪽으로 넘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한테 커미션 좀 두둑이 떼주시고요.”
“큰일 날 소리 하지 마! 이 새끼야!”
김선규가 호통을 쳤다. 한 대 후려칠 기세였다.
“너 어디 가서 그 이야기 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내 운명이 걸린 문제야.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 다 죽는 수가 있어.”
“따로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그놈이 먼저 말을 꺼낸 겁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고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 넘긴다고 했어?”
“검토해보겠다고만 했습니다.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요. 신경 쓰이십니까? 그럼 그놈 담가버리겠습니다.”
김선규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입은 다물 수 있도록 조치해라. 그런데 회사에선 말 좀 조심해라. 담가버리니 어쩌니 좀 하지 말라고.”
“담그는 게 본업인 놈한테 담그지 말라고 하시면 어쩌라는···.”
최철기가 투덜투덜했다.
김선규가 눈을 부라리자, 최철기가 움찔하더니 새로운 질문으로 주제를 환기하려 했다.
“그나저나 주식은 언제부터 처분하면 됩니까? 지금이 꼭대기인 것 같은데요.”
지분 정리도 김선규의 작업 중에 중요한 대목이었다.
표 안 나게 털고 나가야 탈 없이 사냥을 마칠 수 있었다.
“꼭대기에선 안 돼. 어깨에서부터 표 안 나게 털기 시작해. 그래도 두 배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거야.”
“에이~. 지금 잘 하면 네 배도 먹을 수 있을 텐데···.”
“이거만 먹고 끝낼 거 아니잖아. 앞으로도 먹을 거 많아. 욕심부리다가 탈 나지 말고 정도껏 먹어.”
그러는 사이 이사들이 하나둘 대표 사무실로 들어섰다.
최철기 조직의 간부들이기도 했다. 놀러 나갔다가 걸려서 불려온 탓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들 뒤로 원래부터 오성정밀 이사들도 따라 들어왔다.
“당신들은 안 불렀는데?”
김선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이가 지긋한 이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희도 전원 참석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누가? 최 대표가 불렀어?”
최철기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저는 저희 애들한테만 연락 돌렸는데요.”
“그럼 누가 불렀어?”
김선규의 시선이 나이 지긋한 이사로 향했다.
“그게···. 저기 저분이···.”
맨 뒤에 따라 들어오는 젊은 사내를 가리켰다.
김선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 뭐야? 당신 누군데 여기를 들어와?”
젊은 사내, 유지훈이 빙글빙글 웃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나? 대한민국의 소중한 지적 재산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건실한 기업을 넘보는 악질 사냥꾼들을 때려잡는 파수꾼이지.”
***
싹 정리하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조직 두목 최철기를 비롯한 간부들이 집결한 자리였지만, 무림을 제패한 유지훈에겐 호랑이 앞에 하룻강아지도 아니었다.
조직 간부 전원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지경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처박는 신세가 됐다.
김선규 역시 다를 게 없었다. 유지훈의 정의로운 매질 앞에 신분 고하는 아무런 의미 없었다.
경찰 출신 국회의원이란 타이틀도 건달과 똑같이 취급당했다. 공평하게 처맞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누구나 다 계획은 있지.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야.”
“나,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야!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그 말 하고 대가리 깨진 국회의원 있다는 소문은 못 들으신 모양이네. 의원님 대가리도 깨드릴까? 얼굴 부어터진 것으로는 부족하셔?”
김선규가 찔끔했지만, 이내 호기를 높였다.
“내가 보통 국회의원인 줄 알아? 내 뒤에···.”
“비슷한 말 한 놈도 쥐어 터져서 병원 입원했는데, 모르시나? 고모 찾던 놈. 아실 텐데. 아까 병문안도 하지 않으셨던가?”
“너, 너···.”
“다 안다고. 그놈 고모. 술집 아줌마. 의원님 뒤에 있다는 사람. 그러니까 개수작 말고 거기 얌전히 머리 처박고 계셔.”
오성정밀의 원래부터 이사들은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채 나란히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겁에 질린 채 유지훈의 활약상을 지켜봤고, 상황이 정리된 뒤엔 경건한 자세로 처분을 기다렸다. 유지훈이 한마디 할 때마다 흠칫 놀랐다가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저기. 말씀 좀 여쭙겠는데요.”
교감 선생님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중년 여인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어렵사리 질문을 던졌다.
“저희도 때리실 거면 빨리 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요. 여기 오기 전부터 마려웠는데···.”
“얼른 다녀오세요. 그리고 편하게들 계세요. 무슨 죄지은 거 있으세요? 누가 보면 벌 받는 줄 알겠어요.”
차라리 벌을 받고 말지.
호러 영화에나 나올 장면을 눈앞에서 보여줘 놓고···.
이사들은 좀처럼 자세를 풀지 못했다. 유지훈이 억지로 소파에 앉힌 뒤에도 양손은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자세였다.
“지금부터 이사님들은 저랑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회사를 지키는 일이요. 핵심 기술 유출도 막아야 하고요.”
유지훈이 변호사와 회계사에게 관련 자료를 가져오게 시켰다.
변호사와 회계사도 약간의 구타는 당한 상태였다. 김선규에게 고용된 인물들이었기에 기본적인 교육은 필요해서였다. 다만 김선규나 조직원들처럼 망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교육의 효과 덕분인지 빠릿빠릿하게 자료와 서류를 챙겨왔다.
유지훈이 이사들을 불러모았다.
“자료들이랑 서류들 좀 살펴봐 주세요. 뭔가 잘못된 건 없는지요.”
이사들이 다급하게 자료와 서류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내 비명을 질러댔다.
“아! 이건 저희 핵심 기술 개발 과정입니다. 계획 단계부터 연구 과정에서 테스트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엇! 이건 설계도인데요? 초기 실패작부터 1차, 2차, 3차 완성품까지 다 있어요.”
“허억! 자금 집행이 왜 이렇지? 나가긴 많이 나갔는데, 들어온 건 전혀 없네. 회사 자금이 대거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술렁술렁하다니 회사가 사냥당한 증거를 하나하나 잡아냈다.
급기야 전임 대표까지 달려와 증거 색출에 합류했다. 주가 조작 정황까지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아! 회사가 이 지경이 되다니···.”
“그러게 그동안 뭘 하셨습니까?”
“경영은 잘 알아서 한다고 기술 개발에만 전념해달라고 해서요···.”
전임 대표가 김선규를 가리켰다.
전임 대표는 김선규에게 CEO 자리를 내준 뒤 자신은 CTO(Chief Technical Officer 최고 기술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귀인 덕분에 회사를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임 대표와 원래부터 이사들이 유지훈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이쯤 되니 김선규에겐 발악의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줄이나 알아!”
“이미 말했잖아. 대한민국의 소중한 지적 재산을 수호하고 있다고. 건실한 기업을 넘보는 개 같은 사냥꾼들을 응징하고 있고.”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할래?”
유지훈이 김선규의 뒤통수를 후려졌다.
빡!
“또 그딴 소리 하면 대가리 깨질 거라고 안 했어? 기어코 대가리가 깨져야 그 입을 다물 건가?”
대가리는 깨졌다.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김선규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강단은 있는 사내였다.
“너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폭행한 거야. 나랏일을 방해한 거라고. 법의 심판이 두렵지도 않냐?”
“하아. 그 인간 참 말 많네. 딴따라 회사 두목 놈 만나러 가서 못 들었어?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건너뛴 거야?”
“무, 무슨 이야기···?”
그제야 김선규가 당황한 눈빛으로 눈을 껌뻑였다.
유지훈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이댔다.
물론 자기면책권 증명서였다.
“나는 범죄자는 얼마든지 후려 패도 돼. 하긴 민사상 책임은 있다고 하던데. 억울하면 걸어. 나라에서 보상해 준다고 하니까.”
김선규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됐다.
입법 기관의 일원인 그가 자기면책권을 모를 순 없었다. 다만 초인에게만 주어지는 권리인데···. 왜 눈앞의 청년에게 있는지 궁금했다.
이 시점에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일단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이니.
“지금 너는 불법적으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불법적으로 확보한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로···.”
“응. 괜찮아. 나는 너희들 때려 팬 것으로 끝낼 거거든. 고소는 여기 회사 분들이 할 거야. 증거도 회사 분들이 회사에서 찾은 거고.”
회사에 있는 회계 서류와 핵심 기술 자료를 증거로 회사 사람들이 고소를 진행할 문제니, 증거의 불법적인 확보와는 아무 상관 없었다.
김선규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머리에서 흘러내려 얼굴을 적신 피가 참담함을 더했다.
부질없는 한 수를 꺼내 놓았다.
“나는 국회의원이다. 불체포 특권이 있다.”
“병신아! 누가 너 체포한대?”
빠악!
기어코 매를 벌었다.
이번엔 사커킥으로 턱을 걷어찼다.
턱이 박살 났다. 당분간 제대로 말을 못 하게 됐다.
“의원님 졸개들 체포할 거야. 쟤들은 불체포 특권 없잖아. 저 새끼들만 잡아넣어도 싹 정리돼. 의원님도 곧 합류하겠지. 감방 동기로.”
때마침 이윤성이 지원 병력을 이끌고 도착했다.
“진작 드릴 걸 그랬습니다. 이렇게 잘 활용하실 줄 알았으면.”
“뭐가요?”
“자기면책권 말입니다.
“기왕이면 살인 면허 같은 건 없을까요?”
“차라리 제 목을 달라고 하십시오.”
첫 번째 타깃에 이어 두 번째 타깃까지 순조롭게 처리했다.
낚아 올린 물고기들은 더 큰 물고기를 낚기 위한 미끼가 될 터였다.
그리고 이튿날 탁세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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