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타깃 (1)
“저희가 요원님 요청대로 잡아가기까진 하겠지만, 제대로 법적 처벌이 이뤄질 거라고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강재현 일당을 잡아가면서 광수대 형사가 남긴 우려였다.
그 또한 경험한 일이라고 했다. JH엔터테인먼트 소속 인기 가수를 대마초 흡입 현행범으로 체포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는데, 벌금형의 선고유예 처분으로 종결된 사건이었다.
“대마초 현행범이면 최소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은 나와야 정상이에요. 벌금형도 이해하기 힘든 판국에 선고유예라니···.”
선고유예는 2년 이내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면소 판결로 이어진다. 전과가 남지 않는다는 의미. 극단적인 의미로는 범죄 사실 자체가 사라진다고 볼 수도 있다.
옆에 있던 형사가 거들고 나서 첨언했다.
“조사할 때부터 난리도 아니었어요. 위에서 편의 잘 봐주라는 지시가 빗발치고, 식사도 매끼 고급 레스토랑에서 포장해다가 대령하고···. 경찰서에 잡혀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모르겠더라니까요.”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오너까지 잡혀갔으니 위에서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네요.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형사 둘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지훈이 빙긋 웃었다.
“예상되는 수순이에요.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처벌한다고 가열차게 후려 패기도 한 거고요. 일단 잡긴 했지만, 저놈들은 미끼예요. 더 큰 고기를 잡고, 결국엔 뿌리를 뽑기 위한 첫 번째 미끼죠.”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그런데 누가 그렇게 압력을 많이 넣는 답니까? JH엔터테인먼트 놈들 잡혀 왔을 때요.”
형사가 잠시 생각하더니 피식 웃었다.
“하도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와서요. 직접 찾아온 국회의원도 있었다니까요. 경찰 출신이라면서 인사차 왔다고는 했는데···.”
“인사차는 무슨. 그때 광수대 전 인원 일렬로 도열해서 영접했던 기억 안 나냐? 청장님이 오셔도 그 정도는 아니었겠다.”
유지훈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예상했던 인물이 움직일 것 같았다. 두 번째 타깃에 접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여당 초선 국회의원 김선규. 경찰 중간 간부 출신 국회의원으로 세간에는 입지전적 인물로 통했다.
순경으로 출발해 경감까지 12년 만에 주파했다. 보통 20년 이상 걸리는 과정을 절반으로 단축해버린 것이었다.
비결은 엄청난 검거 실적이었다. 일단 나가기만 거물 범죄자들을 덥석덥석 잡아 왔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 손을 뻗었는데, 연쇄 살인 용의자가 걸려들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비간부 출신 경찰들에겐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던 김선규는 경정 승진을 앞두고 경찰복을 벗었다. 정계 입문을 선언했다.
고향인 대구에서 치열한 경선을 뚫고 공천을 획득했다. 3선 현역 의원과 구청장 등 기라성 같은 후보들과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였다.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이니 황금 배지를 다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렇게 김선규는 자수성가의 전형으로 칭송받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이었다. 누구에 의해? 박순덕에 의해. 그러니까 크리스털 박으로 개명하기 전부터.
김선규와 박순덕의 인연은 10여 년 전 박순덕이 화류계 거물로 입지를 굳혀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선규는 박순덕의 업소 일대를 담당했다. 계급은 경장. 불법 행위를 단속 나갔다가 눈감아준 일을 계기로 친분을 쌓게 됐다.
이후 둘은 공생 관계가 됐다. 김선규는 박순덕의 뒤를 봐주고, 박순덕은 범죄자들의 정보를 넘겨주는 방식으로.
김선규가 범죄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박순덕은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었다. 화류계 석권에 김선규의 기여가 컸다. 물론 김선규도 엄청난 검거 실적 덕분에 초고속 승진의 출세가도에 오를 수 있었다.
박순덕이 크리스털 박으로 개명할 무렵, 김선규도 정계 입문을 선언했다. 로비스트 크리스털 박과 정치인 김선규. 동반 변신이었다.
김선규는 크리스털 박 덕분에 의원 배지를 달았다.
자금 지원은 물론이고,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작 등을 도맡아준 크리스털 박 덕분에 기적적인 공천을 획득했다.
현재 김선규는 국회의원 외에 타이틀이 하나 더 있었다.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유망한 중소기업을 인수한 뒤 외자를 유치해 규모를 키웠다. 시가 총액을 두 배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물론 이 과정에도 크리스털 박이 깊숙이 개입했다. 그리고 김선규는 기업인이 아니라 기업사냥꾼이었다.
기술력을 지닌 유망 기업을 인수한 뒤 외자 유치로 그럴듯한 모양은 갖췄지만, 실제로는 회삿돈을 빼돌리고 있었다. 기술력 또한 외국 기업에 넘어가게 설계돼 있었고.
외자는 일본 야마가토산업의 자금이었고, 기업의 핵심 기술력 또한 야마가토산업의 차지가 될 예정이었다.
껍데기만 남은 회사는···. 김선규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는 투입한 자금을 빼돌린 회삿돈으로 다 챙겼고, 야마가토산업은 유망한 기술을 손에 쥐게 됐으니. 회사야 문을 닫든 말든.
기업사냥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일 때 김선규에게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크리스털 박이었다.
“오. 박 여사. 오랜만입니다. 저를 잊으신 줄 알았지 뭡니까.”
[의원님이랑 나랑 어떤 관계인데 그런 말씀을 하실까. 섭섭하게.]
“그러니까 가끔 안부라도 묻고 삽시다. 이렇게 일 있을 때만 연락하지 마시고.”
[우리가 굳이 안부를 물어야 하는 사이인가요. 알아서 다 통하는데. 그나저나 의원님한테 어려운 부탁 하나 드려야겠어요.]
“우리 사이에 부탁은 무슨. 말씀만 하세요. 바로 처리할 테니.”
[JH엔터테인먼트 강 회장 문제예요.]
크리스털 박이 강재현의 체포 소식을 전하며, 광수대 쪽에 손을 써주길 당부했다. 한일 외무 회담을 맞아 JH엔터테인먼트와 강재현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의원님은 지금 일도 정신없으실 것 같아서 말씀 안 드리려고 정태성 장관한테 맡겼는데, 그 양반이 영 일 처리가 신통치 않네요.]
“하하하. 그런 일이라면 진작 저한테 말씀하셨어야지. 책상머리 노인네가 현장 일을 빠릿빠릿하게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의원님 지금 맡은 일이 보통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가토 가주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거죠?]
“1주일 안에 다 정리될 겁니다. 외무 회담 때 야마가토에서도 누가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선물로 안겨준다고 전해주세요.”
[역시 의원님은 시원시원해. 이번 일들 잘 마무리되면, 의원님도 야마가토 쪽 눈에 쏙 들 거예요. 죽죽 치고 올라가시겠어요. 이러다가 나는 눈에도 안 들어올지 모르겠어요.]
“섭섭한 말씀입니다. 제가 어떻게 박 여사를···.”
[재선, 3선 하시고 입각까지 하시더라도 나 모른 척하기 없기예요.]
“제가 여기까지 온 게 다 박 여사 덕분입니다. 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 아닙니다.”
전화를 끊고 김선규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입각이라···.”
그에겐 탐나는 타이틀이 있었다.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경찰청장의 직속 상관. 순경 출신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라 할 수 있었다.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야마가토산업의 지원과 크리스털 박의 로비면 얼마든지 가능한 타이틀일 테니.
발걸음을 재촉할 때였다. 광수대로 달려가 강재현부터 살펴야 했다.
광수대에 강재현은 없었다.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광수대 간부들을 모아놓고 조인트를 한 대씩 걷어찬 뒤, 향후 수사 진행에 대한 가이드를 전달했다. 적당히 무마할 방법을 찾으라는.
이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경찰 지정 병원이었다.
강재현을 비롯한 피의자들은 6인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엔터테인먼트업계 거물과 스타 연예인들의 격에는 맞지 않는 병실이었다.
강재현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어찌나 심하게 맞았는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너희들 뭐 하는 놈들이야! 사람이 이 지경이 되도록 구경만 했다는 거야! 그리고 피해자를 잡아들이는 새끼들이 어디 있어! 그러고도 너희들이 경찰이야!”
담당 형사들을 소집해 역시 조인트 한 대씩을 날려준 뒤 병원부터 옮겨줬다. 다섯 모두에게 대형 병원의 VIP 병실을 잡아줬다.
담당 형사들에게는 감시가 아닌 보호를 하라고 따끔하게 지시했다.
“강 회장 문제는 이쯤 하면 된 것 같고···.”
이제 기업사냥 문제를 매듭지을 때였다.
예정대로라면 이틀 후부터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면 됐지만, 서두르기로 했다. 야마가토산업에게 완벽한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서.
김선규는 국회가 아닌 회사 사무실로 향했다.
더없이 가벼운 발걸음이었지만, 누군가 은밀히 그의 뒤를 밟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
“이 정도면 진작에 잡아넣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왜 이런 놈을 멀쩡하게 활보하고 다니게 둔 거죠?”
김선규를 타깃으로 설정한 뒤 이윤성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SSG가 수집 분석한 정보에 따르면 김선규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의 회삿돈을 빼돌리고 있었다.
기업사냥의 정황이 원체 뚜렷했기에 압수 수색 등 수사에 들어가면 증거 확보도 문제없는 상황이었다.
“크리스털 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죠. 잘못 건드렸다가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들이 허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긴. 크리스털 박이 작정하고 손을 쓰면 압수 수색 영장 발부 정도는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제대로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일만 그르칠 수도 있을 법했다.
“인수 과정에서 제대로 자금을 넣었어요. 무자본 인수면 꼬투리가 될 텐데, 절차상 문제 될 건 없었습니다. 외자 유치도 정상적으로 이뤄졌고요. 무턱대고 들이대 수사하긴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타초경사(打草警蛇)를 피하기 위해서였군요.”
“네?”
“아. 타초경사. 풀을 건드려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의미예요.”
“그렇군요. 적절한 표현이네요. 그러고 보니 유지훈 씨 사용하시는 어휘가 남다르십니다.”
“이런 표현만 골라 쓰는 동네가 있어요. 그나저나 여기서도 쓰는 말 아닌가? 국장님 어휘가 좀 짧은 것 같은데요?”
“제가 유학파라 사자성어 같은 데 많이 약합니다.”
지금까지는 크리스털 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김선규의 범죄를 눈감아줬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극할 때였다.
풀을 건드리지 않을 게 아니라, 풀숲을 베어버려 뱀을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유지훈은 이윤성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뒤 두 번째 타깃 김선규를 향한 작전에 들어갔다.
작전은 광수대에서 시작해 강재현이 입원한 병원으로 이어졌다.
유지훈은 모습을 감춘 채 김선규의 작태를 지켜봤다. 물론 장면 하나하나를 포착했다. 첨단 극소형 카메라를 동원한 동영상 촬영.
김선규가 광수대 간부들 조인트를 까고 수사 가이드를 지시하는 장면, 강재현을 만나 경찰 쪽은 잘 정리했으니 잘 쉬다가 나와서 맡은 임무 마무리하라고 당부하는 장면 등이 카메라에 담겼다.
김선규가 국회의원의 지위를 남용해 경찰 수사에 압박을 가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는 영상이었다.
‘동영상으로 흥한 놈, 동영상으로 망하게 해주마.’
그리고 문제의 회사 사무실로 향하는 김선규의 뒤를 밟았다.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김선규에겐 지저분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해주는 범죄 조직이 있었다.
경찰 시절부터 도움을 주고받던 관계였는데,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하수 조직처럼 부리는 상황이었다.
사냥을 위해 인수한 기업에도 조직 인력들이 상당수 투입됐다. 조직 두목이 형식적이나마 대표이사였고, 조직 간부 셋이 사내 이사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유지훈에겐 잘된 일이었다. 부담 없이 깨부술 악의 무리가 형성된 셈이니. 물론 김선규까지 엮어서.
김선규가 회사로 들어간 뒤 조직 놈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비장했다. 뭔가 중요한 일을 앞둔 듯했다.
유지훈이 흡족하게 웃으며 건물 입구로 향했다.
“밥상이 제대로 차려졌구나. 즐겁게 먹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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